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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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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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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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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0화

DUMMY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화산의 일대제자들이 깔끔하게 전멸했다. 무지막지한 물량과 압도적인 힘에 밀려서 화성촌은 잿더미로 변했고, 좌성군이라는 아해가 멸문을 막기 위해 애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너무 피곤해서 내 귀가 법유 대사님의 발언을 멋대로 왜곡한 줄로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게 대문파 중 한 곳이자 오악검파의 필두인 화산파가 하루아침에 망해버렸다는데 덥석 믿을 수도 없잖아.


“그래서 소림은 어떻게 한답니까?”


“복잡하고 귀찮은 준비가 많겠지만, 당연히 화산으로 가겠지.”


혈교가 날뛰면 강호 무림에 어뿐만이 아니라 양민들도 피를 흘릴 수밖에 없으니 어지간해서는 무림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칠대문파도 나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화성촌을 잿더미로 만들었으니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셈이다.


무림 공적 딱지가 야무지게 붙을 테니 소림의 행보는 이성적이면서도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나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지?


“가고 싶냐?”


이게 문제다.


더러운 핏덩이들을 저승으로 돌려보내서 억울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유죄 판결 확정인 개잡놈들을 염라대왕 앞으로 신속 배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놈들을 돕느라 고생하느니 동생 부모님이 계신 낙양을 지키거나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편이 더 낫다는 마음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냉큼 움직여라. 괜히 어물쩍거리다가 인파에 휩쓸리면 할 수 있는 일도 손 놓고 바라만 보게 될 거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니까 있는 줄도 몰랐던 청개구리 심보가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드네.


“마음먹었으면 괜히 어물거리지 말고 빨리 가라니까. 열 달이면 애도 낳을 시간인데 너도 그만큼 수련했으면 제대로 보여줘라.”


청개구리는 내가 아니라 법유 대사님이셨다.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될 텐데 애를 낳느니 어쩌니, 하시면서 말을 돌리시다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감사냐. 몸 성히 돌아오면 된다. 이왕이면 다음에 올 때 네가 거둔 애들도 데려와라. 널 닮지 않아서 외공에 재능이 없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살펴봐야지.”


법유 대사님의 배려 덕에 법각 대사님과 심정 스님 등 신세 진 분들께 인사드릴 수 있었고, 말도 한 마리 빌려서 잽싸게 움직였건만, 낙양을 찍자마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섬서로 넘어갔다.


그리고 참상을 눈앞에 뒀다.


“빌어먹을.”


언덕 위에서 바라본 화성촌은 메뚜기 떼에 휩쓸린 것만 같았다. 사람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강언과 비슷했지만, 거대한 마을 하나에 혈인들이 가득한 만큼 더 역겹다.


뼈까지 씹어 먹을 이빨은 없는지 백골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듯 갈가리 찢어진 화산파의 깃발과 화산파 무인들이 입었던 옷이 시체 대신 매달려있었다.


화산파에 대한 감정이랄 게 딱히 없지만,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건 선을 넘었지.


신창양가의 무인들 역시 살짝 건드려도 폭발할 것처럼 분노했다.


당장에라도 화성촌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혈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다는 기세를 뿜어냈지만, 우리의 목적은 화성촌을 우회해서 사천삼세의 무인들과 합류하는 것인 만큼 허락할 수 없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크흠.”


가주님 아들의 의형이자, 명망 높은 내가···. 내 입으로 자화자찬하려니까 굉장히 쪽팔리네.


아무튼 이름값과 의형이라는 이유로 선봉대의 대장을 맡게 된 만큼 신창양가의 무인들도 내 의견을 존중하듯 헛기침하며 기세를 갈무리했다.


“여러분의 의기는 저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지금 분노를 쏟아내는 것보다 훗날 더 큰 싸움에서 쏟아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말 몇 마디로 이들의 분노를 전부 추스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저 꼴을 보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진형을 갖춥시다. 사과 껍질 좀 깎는다고 사과가 쪼개질 리가 없잖습니까.”


처음에는 뜬금없이 무슨 사과냐며 이해하지 못하던 이들도 내가 흑호대검을 꺼내자 방긋 웃었다.


무인의 자존심을 산산이 짓밟은 더러운 종자들을 쓸어버릴 순간이 왔다며 웃는 모습은 너무나도 강렬했지만, 나도 그렇게 웃고 있다.


“고삐를 늦추지 마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오늘로 끝나지 않습니다. 혈인에 발목 잡혀서 헛되이 죽으면 혈교가 웃습니다. 아마도 그걸 가장 바라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단숨에 몰아치되, 제가 신호하면 군말 없이 따라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갑시다.”


한 문파의 일대제자들을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라면 혈인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니 우리가 돌격해서 얻는 건 혈인 몇의 목숨이 아니다. 혈인을 장난감처럼 다루고, 사람 목숨을 물건 취급하는 쓰레기들에게 강호 무림의 의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겸사겸사 지난번에 결판내지 못했던 놈의 모가지도 따고, 훼방 놨던 놈의 모가지도 함께 꺾어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그러니까━


“돌격!”


“휘릭휘릭 끼요옷!”


양가의 무인들답게 기마에 소질이 가득한 만큼 무인인지 마적떼인지 모를 소리도 튀어나왔지만, 모두 번들거리는 눈빛과 함께 말을 몰았다. 그리고 혈인들이 반응해서 움직이는 순간 무지막지한 물리력이 작용했다.


말과 흑호대검 그리고 내 몸까지 더해진 질량은 일개 혈인 따위가 막을 만큼 가볍지 않았다. 내 뒤를 따르는 양가의 무인들은 나처럼 무게만으로 온전히 쳐부수는 대신 창을 이용해 조자룡처럼 날뛰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이 따로 없었다.


보기만 해도 얹힌 속이 풀어질 만큼 시원했지만, 여기서 더 날뛰면 발목 잡힐 수밖에 없는지라 목소리를 높였다.


“좌측으로 말머리를 틀어라! 빠져나간다!”


나를 포함해 31명의 기병으로 수십 마리의 혈인을 불구로 만들었지만, 셀 수 없을 만큼 남아있는지라 여기서 잠시라도 지체했다가는 맛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거나 피를 쪽쪽 빨려서 미라가 되는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돌격하기 전에 주지시킨 보람이 있는지 누구 하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말을 몰았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일렀고, 우리는 잽싸게 말을 몰아서 사천삼세가 오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혈교에 나사 빠진 놈만 있는 게 아닐 텐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다. 화산파가 자신들을 일거에 소탕하려고 하자마자 더 큰 힘으로 짓눌러버린 놈들이라서 우리나 사천삼세의 움직임을 모를 리 없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절반을 뚝 떼어서 사천으로 달려주십시오.”


“네?”


“혈교의 정보망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번도 방해받지 않았습니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비열한 이들인 만큼 습격당할 수도 있겠군요.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타고 왔던 말까지 몰아줘서 보냈지만,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듯 사천삼세의 무인들은 무탈하게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날 태우고 달릴 때보다 생기 넘치는 말을 보고 있자니 괘씸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아무튼.


내가 사람을 보낸 뜻을 저들도 충분히 이해한지라 도착하자마자 회의가 열렸고.


“저들이 강하다는 것도, 무시 못 할 힘을 드러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들이 온힘을 다하기 전에 예봉을 확실하게 꺾어야만 합니다.”


“저들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소이다. 하지만 청성산이 더럽혀진 이상 우리는 멈출 생각이 없소.”


“자네의 염려를 알고 있지만, 제자들의 원수를 갚을 때까지 아미는 등을 돌리지 않는다.”


차례대로 당효성 총관, 장진모 진인, 대정 사태의 발언이 이어지자 나는 이들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물러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 셋 다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들이받았다가는 화산파 꼴이 날 테니 물어는 봐야지.


“그래도 정면에서 쳐들어가는 건 곤란합니다. 저들이 어떤 술수를 쓸지 모르잖습니까.”


“알고 있다네. 하지만 한 번은 맞붙어야 하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화산에 머무는 이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잖나.”


아미와 청성이 양익을 맡아서 길을 뚫고, 사천당가와 신창양가가 중앙을 돌파해서 화산의 제자들을 구출한다.


이게 최선이라는 말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피의 파도에 휩쓸려 익사할 미래가 뻔히 보이는 만큼 열심히 입을 털어야겠네.


“화산 내부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운신의 폭이 넓어질 텐데 아쉽군요. 혹시 개방과 연락할 수 있습니까?”


“용두방주가 좌 장문인에게 학을 뗐다지만, 그들도 이번 일을 좌시하지는 않을 테니 연락 자체는 가능하다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모월 모일 모시에 공격할 테니 협공해달라는 말만 전할 수 있어도 된다.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지만, 정보의 질이 올라갈수록 개방도의 목숨이 덧없이 사라질 테니 그건 욕심이겠지.


그런데 전서구는 안 쓰나?


“전서구로 화산파와 소통할 수 없습니까?”


“가능하다네. 하지만 그 또한 개방의 조력이 필요하다네.”


빌어먹을 개방이 문제다.


거지들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야 하는 처지라니 진짜 암담하네. 그래도 이 동네 거지가 사천 거지들처럼 썩어빠지지는 않았을 테니 일단 기다려봐야지.


정보를 얻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행동을 늦춰야만 했다.


화산파가 불쌍하다지만, 그걸 구하러 가다가 사천삼세가 망해버리면 혈교가 더 극성을 피울 테니 열심히 설득해야지.


“그렇다면 진군을 늦춰주실 수 있으십니까.”


“화산의 제자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귓등으로 들었나?”


“똑똑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사천삼세가 무너지면 중원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두 분은 몰라도 대정 사태께서는 복수만 생각하셨는지 눈을 끔벅거리다가 비로소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뒤늦게라도 깨달았으면 된 거야.


“이미 들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신창양가의 무인들과 함께 기습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혈인들은 야생동물처럼 반응했을 뿐,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는 건 저들의 의도가 다른 데 있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지난번에도 저들이 힘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추측했지만, 이번에도 그러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천삼세의 몰락은 화산파의 일대제자들의 떼죽음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서 패배를 논하는가.”


불안 요소를 밖에서 떠들어봐야 사기 떨어지는 소리만 들을 게 뻔한데 왜 밖에서 주둥아리를 놀리겠어.


“여기이기에, 그리고 여러분들이기에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모름지기 싸우기 전에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걸 검토해야 합니다. 옛 무림맹에 왜 총군사가 필요했겠습니까.”


삼등분해서 진격하겠다는 계획을 돌려 까자마자 세 분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쓴소리는 이제부터 시작인데요.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르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세 문파의 얼굴임과 동시에 무림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아니, 기본적인 신호도 정해두지 않고 진격하겠다니 무슨 생각이십니까. 어느 한쪽이 돌출되었다가 포위당하면 어쩌시려고요.”


“지금 누가 누구 위에 서자는 소리가 아니잖습니까. 칠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위엄은 사천에 두고 오셨습니까? 하다못해 군에서도 오장이나 십장처럼 조를 짜서 명령을 전달하는데 평시처럼 일대제자가 이대제자를 관리하겠다고요? 그 많은 이들을 세 분이 직접 관리하실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소리만 치지 않았을 뿐이지, 세 분이 내놓은 계획안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하나씩 논파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졌다.


어쩐지 목이 칼칼하더라니.


아무튼 군대는 아니더라도 상호협력 대신 명령체계 비슷한 거라도 만들려면 사흘은 더 필요하겠다 싶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으나 거지 한 명이 달려오면서 야간 회의에 돌입할 수밖에 없어졌다.


“혈교가 화산파 포위망을 풀고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도망치는 대신 뒤로 물러나기만 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당효성과 장진모 진인 심지어 대정 사태마저도 똑같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끔뻑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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