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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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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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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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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4화

DUMMY

길고 곧게 뻗었으면서도 탄성이 살아있던 칼날이나, 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엽도(柳葉刀)나 박도(朴刀)보다 넓은 가드, 그리고 폼멜까지.


내가 쓰던 검은 크기가 좀 컸지만, 전형적인 서양식 양손검이었다.


그 검은 죽었어. 이제 없어! 하지만! 여기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라고 외치지 못해서 더더욱 슬프다.


현철을 듬뿍 써서 만든 만큼 칼끝부터 자루까지 시꺼멨다.


단순히 색만 검으면 별문제 없지만, 별다른 무게감을 느끼지 못했던 이전과 다르게 묵직한 감각이 어색했다. 게다가 무게감에 걸맞은 자태라서 더 어색했다.


칼날의 형태는 중원에서 흔히 보는 검과 다르게 원래 모습이었지만, 1mm도 휘어지지 않겠다는 듯 두툼해졌고 그만큼 폭도 넓어져서 모양이 굉장히 변했다.


폭이 넓어져서 가드는 조금 짧아진 느낌이지만, 폼멜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빨리 휘둘러 봐!”


실의에 빠진 모습 따위 필요 없다는 듯 막무가내로 끼어들었기에 나는 안타까운 감상을 고이 접어둔 채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부웅.


이렇게 묵직한데 공기를 가른다는 느낌이 들자 나도 모르게 놀랐지만, 이걸 제대로 다루려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점도 알아차렸다. 하지만 영감님들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묵직하다는 점에 푹 빠져서 내 감정을 걷어찼다.


“이렇게 묵직하면서도 만듦새가 뛰어난 물건은 우리 말고 만들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당가제일은 곧 중원제일. 우리야말로 중원 최고의 장인들이야. 그러니 현철을 이만큼이나 쓰고서도 휘두를 수 있는 검을 만들 수 있지!”


솔직히 내가 가져온 현철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건만, 그걸 다 넣었다고 검이 이렇게 무거워질 리가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공을 불어넣자마자 검이 펼쳐져서 갑옷으로 변하거나, 검을 꺼내는 즉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소리가 나오는 기능이라거나 손잡이만 뽑히더니 내공을 불어넣어야만 칼날이 나오는 검만 아니라면 기꺼이 받아줄 수 있다.


솔직히 마지막은 좀 탐난다. 빛으로 이뤄진 검이라니, 휘두를 때마다 붕붕 소리가 나는 건 남자의 로망이잖아.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는 할 수 있으니까 내공을 살짝 불어넣어 봐야지.


표면적과 부피가 늘어난 만큼 평소보다 내공을 많이 넣어야 할 줄 알았건만, 별 차이가 없기는 개뿔. 평소보다 두 배의 내공을 넣고 나서야 비로소 진기를 불어넣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현철검 한 자루만으로도 검기와 맞설 수 있도록 진기가 잘 통하지 않도록 만들었지.”


“이걸 내가 생각했어야 했는데!”


“으하하하! 형님이 생각하시기에도 멋지지 않습니까!”


내가 검기에 의존하는 무인도 아니니 딱히 상관없지만, 두 분이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으니 잽싸게 질문 하나 더 던졌다.


“그런데 이걸로 혈인을 벨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하! 베긴 뭘 베. 압도적인 질량으로 으깨버리면 그만이야!”


“그렇지. 형님 말씀대로 으깨버려! 시체가 걸어 다녀 봐야 시체지. 한시바삐 저승으로 보내주는 게 넋을 기리는 일이야.”


원래 날을 날카롭게 갈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베기 힘든 물건을 검이라고 칭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영감님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닌 만큼 나머지는 내가 고민해야 할 일이 되었다.


그러니까 남은 건.


“내일 떠나신다고요?”


“그래. 나흘 뒤면 결혼식도 끝나는데 길 막히기 전에 움직여야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움직이면 눈에 띄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몸도 크고 명성도 제법 있어서 함께 움직인다고 한들 고자들이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그러니 다른 하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 혼자 미리 움직이는 편이 낫다.


“알겠어요. 무운을 빌게요.”


“아주버님, 감사해요.”


정수네 부부를 시작으로 양 가주님 내외, 당효성과 당은호 등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인사했다.


깔끔하게 이별하고 섬서로 향하는 길에 오르자마자 눈이 따라붙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부지런히 걸으면 두 달 만에 등봉현에 도착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한겨울에 숭산을 오르게 된다.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지만, 정륜공도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은 만큼 굳이 얼음을 깨며 수련하고 싶지는 않아서 움직였다. 그 덕에 고자들도 더럽고 추악한 황궁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 테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배은망덕한 고자들은 내가 동쪽으로 진로를 틀기 무섭게 끼어들었다.


“어딜 가지?”


거참, 한중성 안에 있을 땐 쥐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동문으로 나오기 무섭게 고자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얘들이 겨울 산을 무서워할 리는 없으니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여기서 동북쪽으로 길 따라서 움직이면 서안이 나오잖아. 그러니까 서안으로 가겠지. 그런데 나 알아?”


“요주의 인물 백도진.”


“너는 나를 알아도, 나는 너를 몰라. 오늘 처음 봤는데 다짜고짜 반말이면 굉장히 섭섭한데.”


당연하게도 나는 말로만 섭섭함을 드러낼 생각이 없다.


애초에 권력 말고 다른 건 전부 길가에 널린 돌멩이처럼 보는 족속이 환관인데 내가 말로 한다고 들어먹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 내가 섭섭함을 느끼면 어떻게 되는지 뼈에 새겨줘야지.


“지시 불이행. 계도하겠다.”


환관 세 명이 검을 빼 들고 순식간에 날 포위하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와 동시에 언뜻 비친 무엇인가가 심히 거슬려서 곧장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점잖게 질문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거 음기(陰氣)잖아. 니들 마공 익혔냐?”


공자왈 맹자왈 웽알앵알거리며 자기 이권만 아득바득 챙기려 드는 강남의 신사들보다 내가 더 신사답다고 자부할 수 있건만, 황제바라기 고자들은 기합조차 내뱉지 않고 달려들었다.


거참,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잖아.


이전에 쓰던 칼집에 칼을 넣지 못할 만큼 폭과 두께가 변해버려서 새로운 칼집을 만들어야만 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새까만 검이 완성되었다.


이걸 왜 지금 말해주냐고? 얘들은 굳이 칼날로 때려잡을 필요도 없이 칼집으로 때려잡아도 과분할 정도니까 여유 부리는 거지.


철퇴로 써도 될 만큼 크고 무거운 검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조금 살벌한 소리와 함께 고자들의 무기가 부러졌다.


일격에 무기가 부러졌으니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권력 없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고자들은 내게 진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맨주먹으로 달려들었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만큼 어지간하면 한 대 정도 맞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매가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주먹질에 맞아주자니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런 만큼 나는 가볍게 피하며 살포시 터치했고, 환관들은 얌전히 무릎 꿇었다.


황제 앞에서 오체투지를 일삼는 놈들인데 무릎 정도로 봐주니 정말 점잖다고 자부했지만, 환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날 노려봤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대화할 준비가 된 모양이니 차분하게 설득해야지.


“너희가 어디서 무슨 개짓을 저지르더라도 나랑 엮이지만 않으면 관대하게 못 본 척해줄 수 있어. 그런데 왜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반말 찍찍 내뱉고 무기를 휘두르는 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약속을 어기려고 했으니까.”


“미치겠네. 그 새끼는 자기 부하한테 업무 내용도 안 알려준 모양인데. 그건 둘째치고, 그래서 너네는 내가 연경으로 달리면 막을 수 있고?”


연경이라는 소리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아하니 답답하던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돌아가서 그, 뭐냐. 사례태감인지 사레들린 새끼인지 하는 놈한테 똑똑히 전해. 나는 숭산으로 가서 약속한 날이 올 때까지 수련할 테니까 꼬우면 어디서라도 좋으니 날 막으라고. 대신 다음에는 그냥 안 보낼 테니까 각오해라.”


점잖게 내지른 만큼 속이 어마어마하게 시원해지지는 않았지만, 해야 할 말을 다 한 만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굉장히 애석하게도 머리 나쁜 고자들은 내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고자들을 때려눕힌 날로부터 정확히 보름 후, 깊은 산속 옹달샘 근처에 고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거참, 니들 환관이 아니라 산적 아니냐? 서안 근처도 아니고 첩첩산중에 이만한 인원을 동원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잖아.”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거참, 사람이 감상을 말하는데 아득바득 끼어들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헛소리는 거기까━”


“고자가··· 말대꾸?!”


캬, 고자라는 소리 듣자마자 몇 놈은 발광하듯 화내는데 앞에 서 있는 놈들은 참 조용하네. 그나저나 저기 수풀이 흔들리는 걸 보아하니 이 새끼들 관군까지 동원한 모양인데?


“건방진 소리 지껄이지 말고 잘 들어라. 사례태감께서는 네놈이 사죄하고 감숙으로 향한다면 이번 잘못을 관대하게 잊어준다고 하셨다.”


“관대는 개뿔 지랄염병하네. 지금 누가 누구한테 잘못했다는 건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건 알겠으니까 이유나 찾아보자. 아랫도리가 허전해서 찬바람이 잘못 들어갔나? 그 새끼는 응천부에 있어서 찬바람 들어가지도 않을 텐데?”


농담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수풀이 들썩거렸다. 물론 고자들은 날 죽일 듯 바라봤지만, 겨우 그 정도 눈빛으로 사람이 죽겠니? 적어도 이렇게 친근하고 부드럽게 바라봐야 사람이 좀 쫄지.


“갈(喝)!”


어맛,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치면 놀라잖아. 연약한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려면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라. 그러지 않으면 남궁세가의 역사는 오늘로 끝날 테니.”


아, 씨발. 이 새끼들은 한도라는 걸 모르네.


“해 봐.”


“뭐라?”


“해보라고, 고자새끼들아. 니들 신삥이라서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해봐.”


“이걸 저열한 협박 따위로 느끼다니 사례태감께서 네놈을━”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버릇없이 끼어드는 놈은 좀 맞아야지.


일단 개소리 지껄이지 못하도록 아구창을 몇 대 때리고, 괜히 일어나서 숨소리 쌕쌕거리면 귀찮으니까 확실하게 기절시킨 다음 가벼운 시각적 충격을 위해서 살짝 던져주면 조용해진 환경이 완성! 참 쉽죠?


“군문에 있을 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약했어. 그런데 왜 너희가 그렇게 물고 빠는 황제가 날 잡으려고 했을까. 이유를 알려줘?”


알려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많이 모자란 놈들에게 지식을 전파하는 일 또한 신사의 의무이니 차분하게 설명해줘야지.


“내가 좀 미친놈이거든.”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식히지 않으면 저 새끼들 전부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해줘야지.


“너희가 만약 남궁세가에 손대면 나는 즉시 연경으로 갈 거야. 거기 한창 공사 중인데 벽돌 몇 개를 벽력탄으로 교체하는 거지. 그리고 황제 새끼가 오는 날 벽력탄을 터트리면? 쨔잔. 성대하게 지은 궁전이 개털 되었네요.”


물론 내가 황제를 죽일 생각은··· 없지는 않네. 키우던 개가 사람을 물면 주인 잘못도 있으니까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야지. 그래도 지금은 황제 목숨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일개 무림세가 하나를 무너트렸다고 황제의 위엄이 바닥에 떨어지면 황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요?”


환관 몇 명이 대표로 책임지겠지만, 목이 달아나는 건 몇 명 수준이 아니겠지. 여기 온 놈들은 물론이거니와 뒷배 봐주던 놈들이 줄줄이 굴비로 얽히면 만 단위는 우습다.


아무리 그래도 만 단위는 좀 심한 거 아니냐고? 여긴 사람이 넘치는 동네다. 황제라면 분명 겨우 만 단위로 위신을 세울 수 있다며 옥새 쾅 찍겠지.


그런데 벌써 깨닫고 도망치면 좀 곤란한데.


나는 아직 화가 안 풀렸거든.


“고자새끼들아. 너희가 지금 도망치면 나는 응천부로 달릴 거야. 그러면 내가 한 말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겠지?”


“원하는 게 뭐냐!”


“뭐긴, 씨발. 화풀이할 테니까 좀 싸우자는 거지. 그래도 난 니들처럼 존나 비겁하지는 않으니까 반항해도 좋아. 여기서 깔끔하게 끝내자고.”


분노가 열로 변한 덕에 온몸이 뜨끈뜨끈하다. 아주 좋은데.


“그리고 거기 수풀 속에 숨은 니들. 니들도 끼고 싶으면 끼어도 좋아. 대신 다친 건 알아서 치료해라.”


귀찮은 관군한테도 확실히 말했으니까.


신나게 날뛰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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