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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신더의 서재입니다.

남궁세가에서 시작하는 강호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작품등록일 :
2023.07.03 15:51
최근연재일 :
2023.10.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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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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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1화

DUMMY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련을 마쳤지만,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정수와 아가씨가 떠들고 있다.


“가만히 놔둘 수 없군.”


원래 커플이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면 염장질이라고 핍박받는 법이고, 부부가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면 금실 좋은 부부라며 부러움을 사는 법이다.


동생이 핍박받도록 놔둘 수는 없으니 어서 기정사실로 만들어야 내 마음이 편해지겠지.


물론 점순이 같은 정수라면 무슨 교제냐며 펄쩍 뛰겠지만, 나흘 동안 지극정성으로 모시듯 함께 다녔으면서도 제 마음과 마주하지 않는 점순이를 가만히 놔둘 수 없다.


씻으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아가씨가 정수를 포기할 리가 없는 만큼 정수의 마음을 돌려야 할 텐데 그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하여간 점순이들이란.


좋아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화끈하게 고백하면 별일 없겠지만, 점순이라는 족속들은 자기 마음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 게 종특이다. 설령 직시하더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커서 괜스레 투덜거리는 만큼 정수가 물러날 수 없는 상황부터 만들어야겠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와서 차를 한 잔 마셨다. 여기서 대뜸 빨리 사귀라거나 약혼하라고 하면 정수가 도망칠 테니 일단 이야깃거리를 찾아야지.


“그런데 당 소저는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셨소이까. 아무리 약초가 귀하다고 한들 당가의 영애께서 이렇게 먼 곳까지 직접 나설 필요가 없잖습니까.”


“아주버님께서는 말씀도 잘하시네요. 말씀드린 대로 약초 때문이에요. 한겨울에도 자생지가 있을 만큼 비싸고 귀한 약초는 아니지만, 누가 사재기하는지 물량이 줄어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한 데다가 정수도 귀 기울이기 시작했으니 약초 찬스를 한 번 더 써야겠군.


“과연 그렇군요. 공녀께서 손수 나서다니 대단하십니다. 도와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제가 구하는 약초는 가문에서는 진연초라고 불리는 약초인데 약으로도 쓸 수 있고, 독으로도 쓸 수 있어요. 여기에서 자생지 몇 곳을 찾아냈으니 한동안 문제없겠죠.”


“그 진연초는 어디에 쓰는 겁니까?”


“뚱뚱한 사람들에게 피가 잘 도는 약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요. 특별한 과정을 거치면 상처에서 피가 멎지 않도록 하는 역할로도 쓸 수 있어요.”


그 외에도 배합법에 따른 효능을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 말은 안 듣지만, 자기 관심 분야나 전문 분야에서는 말이 많아지는 사람이었군. 그나저나 피가 멎지 않는 약이라니 수상쩍네.


“다른 약초도 아니고 피를 멎지 않게 하는 약초만 사재기라니 수상하지 않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가씨는 정수가 동의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몸을 바싹 붙였고, 정수는 그만큼 몸을 뒤로 뺐다. 저런 식이면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언제까지고 지켜보기만 하면 진전이 안 될 테니 슬쩍 끼어들어야지.


“거참, 정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면 참 잘 맞을 것 같은데.”


“정말요?”


“어흠.”


혼잣말을 들켜서 민망한지 헛기침 내뱉으며 딴청 피우다가도 아가씨의 눈빛을 받자마자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정수는 잘했다는 듯 날 바라보고 있지만, 이거 너 결혼시키려는 수작이야.


“아주버님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해봐서 아는데 결혼이라는 건 둘이 함께 탑을 쌓는 일과 비슷하오. 혼자 좋아하는 모양으로 막 쌓아봐야 반대쪽과 맞지 않으면 볼품없잖소.”


이제야 정수도 내 계획을 알아차렸는지 배신자 보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근데 둘이 잘 놀았잖아. 염장질했잖아. 그러면 대가를 치러야지.


“형님?”


힘없이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모양새가 배신당한 사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동생아 내가 먼저 배신당했으니 얌전히 있으렴.


“그러니까 아가씨도 너무 자기 말만 하지 말고 정수 이야기도 들어주시오. 얘가 잘생기긴 했지만, 아직 몸도 마음도 연약해서 잘 들어주는 사람한테 약하거든.”


정수는 무슨 개소리하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아가씨는 이런 조언이 처음인지 반짝반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거참, 둘 다 부담스럽네.


“아주버님 좀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이야기는 무슨. 이제부터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시오. 더 끼어들면 주책이지.”


그걸 기다렸다는 듯 아가씨는 곧장 고개를 돌리더니 정수를 보며 조잘거렸다. 말을 들어주라는데 곧장 조잘거리다니 참으로 안타깝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니니 넘어가야지.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여지없이 두 사람은 산을 올랐으며 나는 수련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아침이 조용했던 만큼 기쁜 마음으로 수련할 수 있었고, 수련도 술술 풀려서 미소를 머금고 객잔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주버님 오셨어요.”


내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풍기는 분위기부터 한층 얌전해졌다. 그런데 정수도 싫지 않은 분위기네.


물론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정수의 눈빛이 묘하게 차가웠지만, 좋은 거 다 알아.


아무튼 두 사람이 합류한 식탁에 앉아 뜨끈한 탕을 먹기 시작하다가 전서구가 날아오자 모두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여기서 전서구를 쓸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는지라 아가씨가 움직였고, 서찰을 읽더니 곧장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세요.”


밥 먹다 말고 도와달라니 맥락 없는 말이지만, 저 아가씨가 어지간한 일로는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는 묘한 믿음이 있었다. 그건 정수도 똑같이 생각했지만, 나처럼 가만히 있는 대신 먼저 다가가서 질문했다. 아닌 척하면서 관심 있는 게 다 보인다. 이 녀석아.


“무슨 일이시죠?”


“성도로 가야겠어요.”


성도? 갑자기 왜?


“눈 때문에 길이 막혀서 무인들의 발이 묶여있는데 본가에서 급하게 복귀 명령을 내렸어요.”


작은 종이 안에 저렇게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니 대단하네. 이런 감상을 삼키고 정수를 바라봤다. 사실 바라볼 필요도 없었지만.


“알겠어요. 도와드릴게요.”


“고마워요.”


아가씨가 손을 꼭 잡자마자 정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던 게 맞네. 마음에도 없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반응할 수가 없지.


“괜찮죠?”


정수는 뒤늦게 내 시선을 알아채고서는 질문했지만, 나로서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만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건방진 꼬맹이가 머릿속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당문에서 복귀하라고 명령할 만큼 급한 상황에서도 내 뒤통수를 치진 않겠지. 물론 생각이라는 게 없어서 칠 수도 있지만, 훗날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런데 하산하는 게 문제네. 나야 괜찮지만, 두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조난을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어.”


“그건 걱정 없어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이 동시에 설피를 보여줬다. 은근히 잘 맞는 수준이 아니라 천생연분이 따로 없네.


“좋아. 급한 일이니까 준비하자마자 바로 가자고.”


“네.”


***


“묘한데.”


대략 한 달 만에 돌아왔건만 같은 동네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게는 반쯤 닫힌 데다가 기껏 연 데도 호객행위 하나 없이 조용한 걸 보아하니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은혜 아가씨.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게다가 아가씨를 모시러 온 당문의 무인들도 극히 조심스러운 태도인지라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성도 인근 곳곳에 괴인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전조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무차별 살육을 벌이기에 양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주님께서 소집령을 내리셨습니다.”


여기도 괴인이라니 세상 참 흉흉하구만.


“그런 정보보다는 괴인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우선 독이 통하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을 빨아들였다가 죽을 때 터트려서 함부로 하독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강시처럼 피부가 단단해서 어지간한 암기로는 생채기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거참, 괴인이 아니라 혈인인 모양이네. 그런데 독을 모았다가 터트린다니 벌써 업데이트가 된 건가? 아니면 당가 전용 업데이트일지도 모르겠군. 어느 쪽이더라도 골치 아픈 건 변함없지만.


“가장 골치 아픈 건 놈들이 죽을 때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체만 남아도 분석해서 파훼할 수 있을 텐데 죽으면 핏물만 남기고 녹아내리듯 사라집니다.”


“성도에도 혈인이 나타났군요.”


정수의 목소리에 아가씨가 고개를 돌렸고, 정수는 머쓱한 듯 헛기침하더니 자기가 아는 바를 털어놨다.


“아주버님께서 때려잡으셨다니 안심이 됩니다만, 힘으로 누르는 수밖에 없다니 안타깝네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구려. 당가는 독과 약 그리고 암기로도 유명하지만, 장법이나 수법 역시 무림일절로 통하지 않소이까.”


“물론 그런 분들도 계십니다만, 성도 전역을 지키기에는 숫자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데릴사위분들도 전부 나섰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당가의 무인은 내 질문할 때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가씨의 시선을 받자마자 술술 대답했다. 편하구만.


“그런데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관아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관군은 개새끼들, 아니, 높으신 분들의 집을 지키느라 여념 없습니다.”


캬, 멋지다. 아주 그냥 개새끼들이 따로 없네. 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기들 집만 지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역시 현실은 상상보다 기이하구만.


“청성과 아미에는 도움을 청했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자세한 내용은 본가에서 들으시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바깥이 음울해진 만큼 성벽 안쪽도 영향을 받으리라고 생각했건만, 내가 틀렸다.


병사들이 눈에 띄지만, 거리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평상시나 다름없지만, 그렇기에 이질적인지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무엇보다도 성벽이 결계라도 되는 것처럼 밖에서 느낀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더더욱.


“성문 하나만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활기찬 모습이라니 기이하네요.”


“그러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빨리 본가로 가야겠어요.”


정수는 물론이거니와 아가씨도 느낀 모양이기에 서둘러 움직였지만, 어딜 가나 태평한 분위기인지라 속이 울렁거렸다.


“빨리 움직여! 창고에 가서 금창약 가져와!”


“여기 내상약 가져왔다. 사태가 급하지만, 급하게 치료하면 오히려 용태가 나빠지니 약한 거로 들고 왔어. 이거 반드시 알려주고 복용시키도록.”


거참, 전쟁터나 다름없는 당가타에 도착하자마자 울렁거림이 멎다니 나도 참 이상한 놈이구만.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


내 기분과는 별개로 계속 안내받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잊고 살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커다란 지도와 붉은 점, 화살표 등등 군막에서 보던 게 다시 내 눈앞에 펼쳐지자 아까와는 다른 울렁거림에 구토할 뻔했다. 하지만 군대 2번 가는 꿈이 아니라 실제로도 2번 다녀온 내게 짬 냄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왔느냐.”


“다녀왔어요.”


“그런데 옆에는 누구냐.”


“이쪽은 제 약혼자가 될 양정수 소협이시고, 이쪽은 양정수 소협의 의형이신 철면괴협 백도진 대협이세요.”


아, 철면괴협이라는 별호가 내게 붙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반갑소. 사천당가의 총관이자 은혜의 삼촌 되는 당효성이오.”


“반갑습니다. 백도진입니다.”


내 뒤를 이어서 정수도 인사하자 당효성이 불타는 눈으로 정수를 바라봤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수.


“크흠.”


“아, 실례했소. 이쪽은 개방의 성도 분타주인 도각 대협이시오.”


“명성이 자자한 철면괴협을 뵙소이다.”


내 별호가 철면괴협인 건 지금까지 까맣게 잊었으니까 둘째치더라도 나한테 적의를 뿜어대는 이유를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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