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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의 서재입니다.

퇴출당한 망나니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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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저녁밥
작품등록일 :
2021.07.28 01:34
최근연재일 :
2021.12.20 04:59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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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904

작성
21.09.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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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57화 용서

DUMMY

익숙한 한국어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잃었던 기억을 전부 되 찾은 지금의 난 대부분의 선수들이 누구인지 떠올랐다. 우리 감독님과 대화하는 저 아저씨는 진흥중학교를 최초로 우승을 이끈 이종훈 감독님이다. 멀리서 얘기를 들어보니 학교에 간곡한 요청으로 진흥 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 저 녀석들은..'


신기하게 운동장을 둘러보는 진흥중 에이스 조운철,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건들거리는 경기중 4번 타자 최백창까지 그들에게 난 반가운 존재가 아닐테지만, 기억이 돌아오고 처음 만나는 한국사람이 어색하지만 반가웠다. 그리고 최백창 옆에 서있는 한 남자의 얼굴이 유독 눈이갔는데, 그 남자가 내게 다가온다.


"오랜만이다. 황선덕 우승했다며? 축하한다."


의외였다. 아니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순간들이 꿈인 것만 같았다. 어째서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내게 축하를 건네는 것일까? 난 이 사람에게 원망과 저주를 들어도 할말이 없을 사람인데.. 놀란 얼굴로 아무말도 못하는 내게 먼저 다가와 준건 내가 실명에 이르게 만들었던 진흥중 조규환 선수였다. 항상 마음속에 커다란 짐이기도 한 사람이다.


"뭐야? 정말 날 잊은거야?"


비현실적인 이 상황은 너무도 생생했고, 그가 내 손을 억지로 끌어와 악수를 하는 이 촉감마저 사실이 아니라고 최면을 걸었다. 그래서 난 꿈에서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내 솔직한 마음을 고백하기로 다짐했다.


"죄송합니다. 전 야구 선수로써... 아니 사람으로써 저질러서는 안될 끔찍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무고한 규환씨는 저 때문에 야구 선수로써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당연히 용서받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반성하며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전부터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진심을 다해 전했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어도 상관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지금 하는 이 고해성사가 이제는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조규환 선수가 날 일으켜 세워주며 꿈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됐어, 같은 나이에 왠 존댓말이야? 나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멋대로 날 은퇴 선수 만들지 말라고~ 이래뵈도 이 팀에서 1번 타자 하고 있다니까?"


내 빈볼 사건으로 언론에서 크게 이슈가 되면서 조규환 선수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실명으로 고생하는 조규환 선수를 위해 대한민국 최대 대학병원인 선무병원에서 특별히 각막이식 수술비용을 기부하여 빠른 시일내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반갑다. 난 이종훈 감독이라고 한다. U-18 대회에서는 한국 선수들 때문에 고생했더구나. 내가 대신 사과하마,"

"나도 우리 어머니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감사합니다.."


한 동안 얼굴을 들 수 없을정도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


어느정도 서로의 대한 인사들이 끝나고 예정대로 진흥 고교와 테이쿄 고교의 연습 시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고시엔에서 겪은 일은 고시엔에서 끝내야한다며 내게 다시한번 선발 기회를 주셨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오랜만에 올라와보는 기분이었다. 글러브에 감촉과 볼의 실밥들이 결승전에 기억을 다시금 되살아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지금 기분이라면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던질 자신이 있었다. 아니 던지고 싶었다. 멀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준 고마운 분들에게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때 망나니처럼 살았던 내가 과거를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스이이익!! 파밧!!


158km/h를 가볍게 던지는 날 보며 조규환이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150던지던 녀석이 오른손으로 158km/h를 던진다고?'


새삼 선덕이라는 투수의 존재를 깨달은 조규환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맞아 이 자식은 항상 마운드 저 위에서 우리 타자들을 깔보는 녀석이었지'


과거에 비해서 지금의 선덕은 그런 표정이 아니었지만, 그의 피칭만 봐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하지만 극복 해내야 한다.

과거 조규환 역시 선덕의 빈볼을 알고 있었음에도 팀에 승리를 위해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가 자신을 옹호해주고, 황선덕의 노래방 영상까지 목격하고나니 스스로 침묵을 결심했다. 아니 모두들 눈 감아주었기에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 몇몇 언론 매체에서는 빈볼을 피하는 것도 타자의 의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런 언론사들 모두 강한 반발을 받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로써의 삶을 순순히 받아드린 자신에 대한 후회, 뻔뻔하지만 더 이상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극복했어, 나도 용기를 내야 해!'


하지만 배트를 휘두를 때만 해도 틀렸다고 생각했다. 공의 괴도가 기이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오른쪽으로 휜다고 생각하고 휘둘렀는데 조규환이 생각했던 궤도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구질이여서 이대로 스윙 삼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궤도를 벗어났던 공이 다시 내 배트쪽으로 휘어 왔다.


'이게 뭐야!??'


-스이이익!! 타앙!!


만약 너클볼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몸쪽으로 파고드는 저 예측할 수 없는 볼을 두려워했겠지만 무지에서 오는 용기라고 할까? 그가 휘두른 타구는 뒤로 쭉쭉 뻗어나갔다. 그리고 공이 히트하는 순간 지난 결승전에서 겪었던 긴장감이 내 심장을 쥐어짰다. 왜냐하면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타구는 담장을 넘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분이 참 오묘했다. 홈런임을 알고 있어도 굳이 그걸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선덕에 두 눈이 높이 날아가는 조규환의 타구에 머무는 순간 알림이 왔다.


[입스 극복!]

[새로운 수치 멘탈 수치가 생성됩니다.]


매번 프로다운 경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겉멋일 뿐 속은 그리 단단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억을 잃기 전에 있었던 멘탈 수치가 지금에서야 부활해주니 철렁였던 마음이 어느정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결국 타구는 홈런으로 담장을 가볍게 넘겼다. 난 정신을 차릴 겸 로진백을 만지작 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다케노조 감독은 1회초 첫 타자에게 홈런을 맞은 날 보며 흐뭇한 미소로 웃고 계셨다.

그치만 상대 팀은 알고 있을것이다. 내게 얻을 수 있는 럭키 스윙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이이익!! 파밧!!


"타자 아웃!!"


그리고 각성한 듯 내 신들린 피칭에 진흥 고교 타자들은 8회까지 맥을 못추며 줄줄이 아웃 행렬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규환에게 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누가보면 일부로 맞아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희안하게 그는 내 볼을 잘 공략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던질때 타이밍을 망쳤다거나 릴리스 포인트 역시 실수하지 않았다. 굳이 생각해보자면..그냥 잘 맞췄다.


-타앙!!


"또 야? 저 녀석은 무슨 수로 저 마구를 칠 수 있는거야??"

"내말이! 오늘 저 녀석 진짜 신들린 것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이클링 히트(Cycling Hit)를 당했다. 녀석은 집요할정도로 내 너클볼에 잘 반응했고, 난 끝까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마운드를 내려와야했다.

8회까지 1점만을 내주고 잘 틀어막았음에도 찝찝한 얼굴로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내게 토도가 의외에 말을 건냈다.


"천적이네 천적 신경쓰지마 저런 경우 많대"


꽤나 그럴듯한 말이었다. 왜? 어째서? 내 공을 공략했던거지? 다 똑같이 던졌는데 도대체 왜? 라는 내 궁금증이 한방에 해소되는 단어 '천적' 내게도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몹시 신기했다.


***


경기는 5:1로 테이쿄의 승리로 끝이 났다. 끝까지 마운드를 공략못한 진흥 고교에 패배, 이종훈 감독은 덤덤히 패배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눈으로 봤을때도 선덕을 공략할 수 있는 타자는 프로급으로 올라가야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우리 테이쿄는 늦은 우승 축하 파티를 시작했다. 식사 장소는 진흥 고교 근처 불고기집,

며칠간 제대로 음식을 먹지도 못했기에 기분 좋은 경기를 끝마치고 마음 편하게 식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 갈비 하나 더요!"

"이쪽은 곱창이요!"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나뿐이기에 진흥 고교 선수들의 주문을 대신해주느라 도저히 먹을 시간이 없었다. 솔직히 배가 너무 고팠다. 볼살이 떨릴정도로 배고팠다. 평소에 대식가이기는 했어도 식탐이 강하지는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이 가게안에 있는 모든 고기를 다 먹을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들 그만 부려먹고 선덕아 너도 얼른 먹어라"


진흥 고교 이종훈 감독이 안쓰럽다는 듯 날 보내주자, 그제서야 내 테이블로 힘 없이 걸어왔다. 그리고 내 테이블에는 귀한 손님이 미리 앉아계셨다.


"고생 많았다. 이거 먹어 미리 구워놨다."

"허업..! 고맙다아..따흑!"


오늘의 천적이었던 조규환이 고맙게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날 위해서 미리 정성껏 구웠던 고기를 내게 내밀었다. 솔직히 진심으로 감동했다.


'제게 고기를 구워주다니.. 혹시 당신은 천사입니까?'


타석에서는 악마같았던 녀석이 이렇게 착해보일 수 없었다. 같은 팀이라고 하는 것들은 지들 입에 고기를 우겨넣기 바빠보여 봄받으라는 듯 째려봤지만 아무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쁜 놈들!'


그에 반해 조규환은 천사 그 자체였다.

어릴적 아버지가

'사탕사주는 사람은 따라가는 거 아니여도 고기사주는 사람은 따라가도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문득 생각났다. 난 수북히 쌓여있는 고기를 보며 순간, 이 녀석이 원한다면 한국으로 넘어가 진흥 고교 결승전 마운드를 대신 서줄 생각까지 하고 있을정도였다.


-우걱우걱!


걸신이라도 들린 듯 폭풍흡입하는 내 모습에 옆에 있던 토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말렸다.


"야야야!!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해! 내일 경기 안할꺼야?"

"몽라! 엄출스가 엄써!!(몰라! 멈출수가 없어!)"


일전에 토도 아버지와 만났을때는 천천히 빠르게 흡입했더라면 지금은 진공청소기처럼 닥치는 대로 입에 집어 넣고 있었다. 이미 어느정도 배를 채운 조규환과 토도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씨익 웃으며 내 고기를 같이 구워 줬다.


'고..고맙다. 친구들아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내게 고기를 구워줬던 사람은 이둘 뿐만 아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통역해준 진흥 고교 선수들도 하나둘씩 내게 고기를 나눠주며 단체 회식은 훈훈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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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9화 애리조나는 더워! 21.09.10 1,902 26 13쪽
59 58화 재회의 약속 21.09.09 1,912 25 10쪽
» 57화 용서 21.09.08 1,937 25 11쪽
57 56화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1 21.09.07 1,824 20 10쪽
56 55화 각자의 각오 21.09.06 1,759 19 12쪽
55 54화 냉정과 열정사이 21.09.05 1,795 20 11쪽
54 53화 U-18 에이스의 격돌 21.09.04 1,923 19 12쪽
53 52화 완전체 결승전 21.09.03 1,826 21 15쪽
52 51화 성장 21.09.02 1,779 24 12쪽
51 50화 지원군 두두둥장! +1 21.09.01 1,760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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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8화 마운드의 주인공 21.08.30 1,836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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