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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의 서재입니다.

퇴출당한 망나니 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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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저녁밥
작품등록일 :
2021.07.28 01:34
최근연재일 :
2021.12.20 04:59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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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4,904

작성
21.09.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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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0쪽

56화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DUMMY

타구가 히트 하는 순간 히나타를 제외한 모든 순간이 멈춘 듯 느리게 보였다. 길게만 느껴지는 그 시간 동안, 선덕의 방망이가 휘두르는 방향에 맞춰 타구가 천천히 올라간다. 청량한 타격음이 들리고, 허망한 얼굴로 타구를 바라보는 이사오도 눈에 보인다. 모두 자신을 향해 보고 있었다. 경기는 이미 패색이 짙었고, 카라스노 고교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은 관중들은 없었다. 그 사실이 좌익수 히나타의 뒷목을 간지럽혔다. 속 시원하게 긁어버리고 싶었다. 그들의 생각을 바꿔주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몸이 자동으로 펜슬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눈 앞에 충격 흡수용 매트 틈새로 작은 홈이 보인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지금 할 수있는 작은 확률에라도 몸을 던지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부상 생각따위는 하지않았다. 그저 머리 위로 올라오는 저 공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생각이 행동으로 바뀌는 건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거침없이 오른발을 작은 홈을 향해 밟고 얻은 추진력으로 점프해 글러브를 높이 뻗었다.


-퍼억!!


순간 상황을 파악 못한 사람들이 어리둥절할때


"이런 망할 천재녀석 같으니라고!!"


마이크가 감탄사를 내뱉자마자 이어서 심판도 아웃 콜을 했다. 그리고 끝나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1루를 향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붙는 히나타, 오랜 시간동안 투수로 많이 지쳤을텐데도 그의 송구는 일직선을 향해 날아갔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슈퍼 세이브 키타무라 노다도 다시 1루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이...이게!! 이게 바로! 고시엔 결승전입니다!! 그렇죠!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어요!"

"과연 프로에서도 저렇게까지 파이팅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군요. 오히려 프로들이 보고 배워야할 마음가짐인것 같습니다."


관중들도 히나타의 슈퍼 세이브로 꺼져가던 승리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아...아직 끝나지 않았어!! 가라! 카라스노!!

-아직 1이닝 남았다!!

-다음 공격에 히나타까지 연결시켜라!!


방금 전까지 기죽어서 응원할 생각도 못하던 사람들의 응원이 시작되자, 테이쿄를 응원하는 관중들 역시 벤치로 돌아가는 히나타를 향해 박수쳐주었다. 각자 응원하는 지역은 달라도 그가 보여준 정신력은 대우받기에 충분했다. 개막전에서 저급하다고 비난받던 관객 태도와는 180도 다른 모습, 그 모습에 외국에서 건너온 스카우터나 기자들 역시 감명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년부터 고시엔은 무조건 와야겠네요."

"그래 무조건이야 무조건"


훌륭한 인재발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이 크고 자라는 나라의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실제로 쿠바 만을 예를 들어도 지원환경에 차이가 너무도 확연했다.

마이크는 한편으로 부러웠다. 그 이유는 미국도 쿠바와 다르지 않게 특출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에게만 관심을 가질뿐, 아마추어들의 현실은 비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라는 달랐다. 아마추어들도 그들만의 리그가 확실하게 존재했고, 조금 부족하지만 그들의 열정에 공감할 관중들이 있었다. 과연 전 세계에 이렇게 야구하기 좋은 나라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타석에 들어서는 카라스노 고교 선수들의 표정은 확연히 달라졌다.

그건 누구보다 지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히나타에게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그들만의 보은(報恩)이었다.


-타앙!!


첫 번째 시작은 선덕의 너클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맞춘 1번타자 히로키의 내야 안타였다. 이어서 2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전 타석에서 이 선수의 약점을 확실하게 공략했던지라 선덕은 꽤나 자신이 있었다. 불리한 볼 카운트에 쉽게 배트를 허비하는 타입인 카라스노 2학년 야규에게는


'2스트라이크 잡는 게 급선무다.'


확실하게 표정을 굳힌 난 2구 모두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밀어넣을 생각이었다. 에이시 선배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사인도 한방에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와인드업을 마친 내 손에서 공이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오싹한 이 기분..


-타앙!!!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이전보다 더욱 종횡무진 달리는 너클볼을 깔끔하게 올려 쳐냈다.


"서..서설마!!!"

"올해 친 홈런 중에 가장 비거리가 길지 않을까 생각되는 장외홈런이!!! 9회 초 카라스노 마지막 공격에서!!! 작렬합니다!!!"


4:0에서 4:2로 돌변한 상황, 테이쿄 벤치도 술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투수교체를 위해 미리 몸을 풀고 있었던 료헤이도 방금 친 홈런에 기가 죽을 정도였다.

그 만큼 카라스노 고교 타자의 기합들은 대단했고,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선덕에게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삐빅!


급하게 에이시가 요청한 작전타임 따로 전략을 짜기 위함이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느껴지는 이 불쾌한 공기를 정화 시키고자 잠시 멈춘것 뿐이다.


"괜찮아 방금껀 저 녀석이 잘 친거야 실투는 아니였어"

"예 알아요. 그치만.. 후우.."


깊게 숨을 들이켠 선덕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게 남은 타자들은 각자 연타석 홈런을 쳐도 이상할게 없는 히나타와 다나카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선덕의 상태를 읽은 에이시가 평소라면 억지로라도 마운드를 교체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카라스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선덕뿐이라고 판단한 그의 결정을 감독도 동의했다.


-스이이익!! 파밧!!


1구는 전력을 다한 포심 패스트


-스으으윽!! 퍽!


2구는 홈플레이트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


-스이이익!! 티잉!!


3구는 밑으로 빼는 체인지업 아쉽게도 파울이 되고 말았다. 긴장한 얼굴로 히나타를 관찰하던 난 한가지 확실한 생각이들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타자는 내 특정 볼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공을 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생각이 얼마나 투수에게 부담스러운 압박이 되는 지를,

결국 긴장에 끈을 먼저 놓은 건 나였다.


-스이이익!! 타앙!!!


또 넘어갔다. 이번 경기 2연속 홈런, 난 꺾이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이 사자에게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부끄럽지만 더 이상 마운드에 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이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결국 난


-삐빅!!


마운드를 처음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들어간 료헤이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아무리 카라스노의 타자들의 기세가 대단할지라도 갑자기 등장한 언더핸드 투수의 공을 공략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았다.


"축하드립니다. 고시엔 첫 진출에 우승까지 거머쥐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지금 선덕 선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인터뷰는 나중에 따로 해드리겠습니다."


감독과 코치에게 집요하게 달라 붙는 기자들이 오늘의 선발 투수 선덕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댔지만, 크게 좌절한 선덕은 영혼없는 인형처럼 쓸쓸하게 경기장을 퇴장했다.


***


[에히매현 최초 테이쿄 고등학교 야구부 고시엔 우승!]

[고시엔 역사상 가장 많은 스타 플레이어 배출한 테이쿄!]

[U-18청소년국대 야구 대결은 테이쿄의 승리!]

['졌지만 잘 싸웠다!' 끝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최고의 경기!]

[8회 홈런 도둑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입을 모아 호평일색!]


고시엔 결승전이 끝나고 그 어디에도 황선덕이라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터뷰요청을 거절했다는 것에 대한 보복이다. 후지그룹에서 막고 있다. 다양한 음모들이 나돌고 있었지만, 오히려 주변에서 고시엔 우승학교 에이스에 대해 한줄 없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정작 선덕 본인은 아무래도 좋았다.


황준표는 집에 영혼이 가출한 망령이 떠돌고 있으니 거슬릴 수밖에 없었는데, 참고 참았던 그의 인내심은 3일이 지날때 폭발하고 말았다.


"야!! 밥 진짜 안 먹을꺼야!?"

"먹을게.."


깨작깨작 먹는 선덕이 거슬렸던 황준표가 밥상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다케노조 감독이 주고간 책을 하나 보여줬다.


"너 여기 들어갈 생각 있냐?"

"뭔데 이게"

"너 같은 얼빠진 놈들이 잠깐씩 다녀오는 정신개조 프로그램이야"

"안 가"


시큰둥 하며 다시 방으로 올라가려는 선덕을 붙잡은 황준표가 부엌에 숨겨놓은 가방을 하나 던지며 피식 웃었다.


"이미 신청해서 못 물려"


-빵빵!!


집 밖에 거대한 버스 한대가 클락션을 울리자 놀란 내가 밖을 나가봤다. 버스 안에는 테이쿄 모든 멤버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황준표가 가방을 집밖으로 던져버렸다.


"갔다 와"


하는 수 없이 선덕은 바로 버스에 탑승했고, 버스의 행선지는 효고현의 고시엔 경기장이었고, 어리둥절하는 선덕이 하차를 거부했다.


"안 가 안 가!! 안 갈꺼야!! 안 내려!!"

"떽!! 그러다 숨져요. 어린이!"


근육몬 마치다가 선덕을 억지로 끌어내렸다. 경기장에 도착한 선덕은 그날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있지도 않은 카라스노 선수들의 벤치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벤치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네 친구 고맙네 고마워! 이거 너무 큰 빚을 지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허허허"

"무슨 소리! 자네와 나 사이에 허허! 고시엔 우승 축하하네"


넉살좋게 서로 악수하는 두 감독 그런데 낯익은 감독 뒤로 더 익숙한 한국말들이 들려왔다.


"와아.. 여기가 고시엔이야?"

"선배! 오늘 우리학교 연습시합할 팀이 올해 고시엔 우승학교래요!"

"알아 임마! 그 팀 감독하고 우리 감독님하고 이 구장에서 같이 뛰었다고 하셨잖아"


그리고 선덕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학생은...


"근데 규환아 쟤 어디서 많이 본것 같지 않냐?"


선덕이 실명에 이르게 만들었던 진흥 중학교 조규환 선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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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1 21.09.07 1,825 20 10쪽
56 55화 각자의 각오 21.09.06 1,759 19 12쪽
55 54화 냉정과 열정사이 21.09.05 1,795 20 11쪽
54 53화 U-18 에이스의 격돌 21.09.04 1,923 19 12쪽
53 52화 완전체 결승전 21.09.03 1,826 21 15쪽
52 51화 성장 21.09.02 1,779 24 12쪽
51 50화 지원군 두두둥장! +1 21.09.01 1,760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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