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D-5
올해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시리즈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현재 메이저리그의 가장 큰 이슈는 시즌 승률 1위를 달리던 우승후보인 다저스가 홈에서 탈락했다는 사실과 그들을 꺾은 디백스의 상대가 오늘 결정 되었다.
[승률 1위를 꺾은 디백스의 디비전 시리즈 상대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확정!]
상대 전적으로도 이기고 있는 팀이기도 했고, 솔직한 마음으로 현 디백스의 전력이 신경 쓸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보다 오늘 해야 하는 일일 미션 할당량을 어떻게 다 채우느냐가 더 큰 문제였다.
[레전드의 일일미션!]
(1. 논스톱 20km런닝)
(2. 웨이트 트레이닝 2시간)
(3. 필라테스 1시간)
(4. 수영 1시간)
[현재 레전드와의 싱크로율 10%]
"이..이걸 다 하라고?"
'지난번 모든 구종 70%를 달성하고 난 뒤로 얻은 랜덤 보상이 화근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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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미션 성공! 구종의 70%를 달성하셨습니다.]
[손가락 강화에 성공합니다.]
【제구력이 75% > 85% 상승합니다.】
[손가락 한정 랜덤 보상이 지급됩니다.]
[상자를 여시겠습니까? YES or NO]
'당연히 예쓰지!'
눈앞에 화려한 폭죽들이 터지면서, 한눈에 봐도 좋을 것만 같은 황금색 상자가 눈앞에 배송되었다. 그리고 터치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누르니,
[손가락이 짧아 슬픈 레전드의 재림!]
-레전드 선수의 싱크로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눈앞에 야구 선수들의 얼굴과 스팩이 적힌 여러 장의 카드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중 유독 눈길이 가는 두 선수가 보였다.
[전동렬(한국), 놀란 라이언(미국)]
'전동렬 아저씨도 짧았구나
와.. 이 사람도 손가락이 짧았어? 근데 무슨 수로 170km/h를 던진 거야?'
내가 선택할 선수는 당연히 투수계의 레전드 중 레전드인 놀란 라이언이었다.
【놀란 라이언을 선택하셨습니다.】
[일일 미션에 놀란 라이언의 트레이닝이 추가됩니다.]
[미 달성시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나야 감사하지! 누가 놀란의 트레이닝을 배울 수 있겠어??'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선택한 그의 대해 검색을 하자, 그의 손가락 컴플렉스는 꽤 유명한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라이언은 짧은 손가락으로 인해 패스트볼을 던질 때마다 공을 더 깊고 타이트 하게 잡았어야 했다. 큰 손가락은 더 큰 지렛대 효과를 불러오며, 지렛대 효과는 더 빠른 구속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손가락이 길면 지렛대 효과뿐만 아니라 공에 회전을 거는 데 더 수월하며, 찍어던지는 발톱 효과(Clawing effect)와 함께 손에서 손가락으로 속도 전이(Speed transferal)도 유리해진다. 그중 가장 좋은 점은 변화구로 던지는 데도 유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
'그렇다는 건 손가락만 길었다면 도대체 이 사람은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다는 거야??'
문득 마우스를 잡고 있던 내 오른손을 쳐다보았다.
'크..큰 건가?'
이전 슌스케에게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했는데.. 마우스를 가릴 정도의 크기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크게 느껴진다. 그다음에는 리모컨, 그다음에는.. 책상에 올려진 야구공을 잡았다.
솔기를 중지와 검지로 잡고보니, 자기 손 가락 길이가 새삼 징그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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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는 언제까지 저렇게 뛸 생각인 거야?"
"아까 경비 아저씨에게 들었는데, 5시부터 저러고 있다더라"
"지금 8신데?"
체이스 필드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선수들이 걱정스럽게 날 쳐다보았지만, 지금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아하아...
'20킬로 개 빡세다..'
탄소섬유소재 특수 제작 런닝화와 공기저항을 줄인 트레이닝복까지 착용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뛰어나가질 못했다.
'첫날 이니까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웨이트는 자신 있으니까'
원래 몸에 비해 근육량이 남달랐던지라,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도착했을 때는 꽤 자신 있었다. 하체하기 전까지는..
"크아합!!! 뜨아!!"
요란한 기합 소리로 근육들의 비명을 대신했다. 팀의 4번 타자인 J.D 마르티네즈가 훈수를 두려 했지만, 그냥 날 가지고 놀기 위한 핑계일뿐,
"힘을 주라고 힘을! 아~놔 허우대는 멀쩡한 놈이 이렇게 몸을 못 써서야.. 잘 보라고 나처럼 이렇게! 이렇게!"
"아이 씨 저리 안 가요!?"
"젊은 놈이 근성이 없어 근성이!! 라떼는!#$%$%#"
"아침에 런닝 20킬로 뛰고와서 그렇다고요!"
죽을힘을 다해 중량을 들어 올리는 날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로 내 허벅지를 양손으로 내리치기도하고,
-타악!타악!
"악!! 때리지마!"
잠시 쉬는 사이에 중량을 지 마음대로 추가하거나,
"이 정도는 더 추가해야.."
"아..무리무리무리무리!! 빼빼빼!!! 빼라고 이 자식아!!"
다양한 방법으로 날 괴롭혔다.
"웨이트 장소를 바꿔야 하나..저 꼰대 자식.."
웨이트 트레이닝장으로 나오면서 실실 웃고 있는 마르티네즈를 향해 눈으로 쌍욕한번 해주고 식당으로 왔다.
"뭘 먹을까나~"
하루 일과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내 요청으로 특별히 한식을 추가해주셨는데, 다니엘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한국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메뉴는 단연 김치찌개였다. 레시피는 우리 아버지가 직접 알려주셨고, 김치도 한국에서 공수해 온 명품 브랜드 종갓댁 김치로 만든 찌개는 평소 탄수화물을 기피하던 많은 선수들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다.
"맛있겠다~!"
"황! 너 그렇게 먹으면 돼지될 텐데 괜찮겠냐?"
"그럼 파워가 세지겠지요~~"
다니엘이 걱정스럽게 날 바라봤지만, 그렇게 말하는 다니엘의 접시에도 김치찌개와 돼지갈비가 야무지게 올라가 있었다. 다른 선수들도 어느새 뷔페식으로 퍼가는 식당에서 한식을 찾아먹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한테 들었어 너 요즘 왜 그래?"
"뭐가요?"
"새벽부터 나와서 런닝하질 않나, 감독님에게 요청해서 필라테스까지 신청했다며?"
"필라테스 끝나면 수영도 할거예요."
"갑자기 너무 무리하면 몸 상한다."
다니엘이 걱정하는바가 무엇인지는 잘 안다. 그러나 난 시각적으로 지금 내 신체의 변화를 확인할 수가 있었기에, 그 부분에서는 걱정이 없었다.
"형도 같이 필라테스랑 수영 하실래요?"
"엥? 그거 여자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수영은 같이 해 줄 수 있다만.."
"요즘 시대가 어느땐데 여자 남자가 어딨어요? 필요하면 하는 거지"
"그..그런가?"
혼자보다는 둘이 덜 민망하다. 다니엘 형에게는 미안 하지만, 사실 나도 필라테스는 처음이라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
체이스필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필라테스실,
"필라테스는 기본적으로 코어 운동을 베이스로 몸을 단련시키는 운동입니다."
'그게 야구에 도움이 되나..?'
"선생님~ 필라테스가 야구 선수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전문 운동선수는 근육이 타이트한 부분이 많아서 야구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선수들도 많이들 이곳에 방문해주신답니다."
'요가처럼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건가..?'
"우선 스트레칭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자세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해주시면 됩니다."
여리여리한 흑발의 강사분을 따라 스트레칭 동작을 따라 하는데, 새삼 내 몸에 유연성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쳐다봤지만,
"이...이이게 원래 안 되는 건가..?"
아예 감도 못 잡는 다니엘을 보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건 리포머라는 기구입니다. 여기 위에서 밸런스 잡는 운동을 해볼건데요. 음... 키 크신분 잠시 이쪽으로.."
다니엘은 자신이 아니기를 바라며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지만,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강사가 딱 다니엘을 지목했다.
'꼴 좋다 크큭!'
"자 우선 제 손을 잡으시고.."
"아옙.."
정중하게 악수를 하려는 다니엘에게 당황한 강사가 손사례를 치며 매트와 연결된 손잡이를 다니엘의 오른손에 쥐어줬다.
"자세는 스쿼트 자세를 하시고, 손잡이를 당기면서 몸을 세워주시면 됩니다."
리포머라는 기계는 스쿼트 상체 회전 즉 상하체 밸런스 운동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여러분들도 일어나서 여기 계신 회원님..저 혹시 성함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로페즈"
"다니엘씨의 동작을 따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볼을 붉히는 다니엘을 보아하니, 당분간 이곳에 자주 데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거 근육 풀어 주는 운동 아니었나..!
-부들부들부들..
오늘 오전부터 계속된 트레이닝 때문에 간단한 필라테스 동작에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그 밖에도 포워드 런지(체어를 활용해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 캐딜락(양팔로 기구에 매달려 뒤로 몸을 신전해주는 전신근력 강화운동)등등 많은 운동이 끝이나자, 서 있는것조차 힘들 정도로 온몸이 덜덜떨렸다.
"이거 해볼만한데? 재밌다. 근데 너 괜찮냐?"
"예? 예에.. 마지막 수영 가시죠.."
"에이 난 물 싫어해~ 내일 보자~"
'쳇 수영까지는 무리인가..근데 아까 수영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다니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방금 강의를 끝마친 강사 에밀리가 우리 뒤를 따라왔다.
"선덕 황! 수영 가실꺼죠? 같이 가요!"
"예? 에밀리씨도요?"
"못 들으셨어요? 저 수영도 같이 하기로 했는데?"
-쫑긋!
앞서 걸어가던 다니엘이 그대로 문워크를 하며 뒤로 돌아왔다.
"제 차로 가시죠 저 근데 혹시 수영복 대여 됩니까?"
"형이 그건 왜 물어요? 물 싫다며..읍!"
다급하게 내 입을 틀어막는 다니엘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에밀리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어서 가시죠! 무브무브!"
씩씩한 다니엘의 차를 얻어타고 수영장까지 오게 되니, 새삼 미국이 얼마나 좋은 인프라가 갖춰진 나라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이야.. 여긴 그냥 워터파크 아니야??"
"확실히 크긴 크네.."
다니엘도 이 정도 규모의 수영장은 처음인 듯싶었다.
"자 저기서 수영복 대여하시고, 30분이내로 다시 이곳으로 모여주시면 되세요~"
"넵!"
넓은 수영장 규모에 비해 거의 우리가 전세낸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한국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도 없으니 강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오늘 선덕 황의 운동량을 봤을 때는 아무래도 근육을 풀어 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씨는.."
-움파! 움파! 움파!
'물을 싫어한다고 했었나? 구라쟁이'
나랑 같이 가기 귀찮아서 거절한 티가 팍팍날 정도로 이 양반의 접영은 꽤 훌륭했다. 에밀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접영으로 날뛰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잘하는 제자보다 못하는 제자를 챙기는 성격이었다.
"좋아요. 그렇게 온몸에 힘을 풀고 잠시 대기할게요."
'아..편안하다.. 여기서 이대로 잠들고 싶다..'
물 위에 온몸에 근육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근육통에 어질어질했는데 겨우 안식처를 찾은 기분이었다.
'2시라..'
[현재 레전드와의 싱크로율 10.2%]
'고작..0.2%?'
평소에도 꽤나 연습벌레라고 생각했는데, 라이언에 비하면 세상 게으른 선수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아직 피칭 연습은 시작도 못했는데.. '
이대로 끝났으면 하는 내 발걸음은 다시 불펜장으로 향했다.
디비전 시리즈까지 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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