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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이세계 힐링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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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감투
작품등록일 :
2023.05.16 00:56
최근연재일 :
2023.06.17 20:10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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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8
글자수 :
138,993

작성
23.06.0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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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판도라의 항아리 (1)

DUMMY

각자의 자리에서 두 사내는 얼음땡 이라도 한 것처럼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두 손을 차분히 아래로 내리며 대화를 나눠보자는 신호를 보내었다.


“저는 우선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뭐, 따지고 보면 이 저택의 사람이죠!”



저택 탄광 노예니. 이 저택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말은 꼭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던컨이 눈을 얇게 좁히고서 나를 흘겨보았다.


“복장이··· 특이하군.”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옷 상태를 살펴보았다.


넝마 같은 옷에 꾀죄죄한 손과 발. 누가 들어도 저택 사람이라는 말은 믿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설득해야 했기에 나는 두 손을 앞쪽으로 내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식당 조리 담당이 아닌, 저택의 지하 탄광 설비 담당입니다!”



던컨은 나가려던 문고리에서 잠시 손을 놓은 후 팔짱을 끼고서 검지로 팔뚝에 두드렸다.

일단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 라는 제스처 같았다.


또 한 명의 사내, 로톤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 또한 던컨과 같은 자세를 취하였다.



나는 천천히 운을 떼었다.


“역시 귀족분들이라 마음의 여유가 풍만하여, 이런 평민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시다니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던컨 라이메르가 사무적인 태도로 답했다.


“그렇게 격식 차릴 거 없어. 본론만 얘기해.”

“지하 탄광에서 저희를 좀 구해주십쇼. 귀족님 동생분이 저희를 무임금 노예로 부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춥고, 또 습하며, 고통스러운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테이블 아래에서 르뱅이 불쑥 튀어 나왔다.


“로톤! 아저씨가 찾는 라마렌도 탄광에 있다 냥!”


로톤은 미간을 좁혔다.


“라마렌···? 그게 누구지?”


내가 르뱅의 말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아, 적안에 적발을 지닌 사내아이를 말하는 겁니다. 당신 이야기는 그 아이에게서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로톤이 찾던 남자아이, 그러니까 우리식으로는 라마렌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던컨이 손으로 이마를 탁! 하고 짚었다.


“맙소사. 내 전우가 찾던 아이가 탄광에 있었다니! 당장 구하러 가세!”


잠시 뒤 밖으로 나간 던컨은 경비병들을 대동하고 들어와 나와 르뱅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해 갔다.



우리는 저택 중앙로비를 지나 접객실의 반대편 동쪽 복도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갔다.


어느덧 바깥으로 나오는 회랑까지 왔고, 나와 르뱅의 기대감은 부풀기 시작하였다.


르뱅이 내게 귓속말을 걸어왔다.


“현! 우리한테 포상이라도 주려는 걸까 냥? 보물 창고 한 번 멀리에 있다 냥!”

“그러게.”


이윽고 기나긴 걸음 끝에 우리는 어딘가에 도착하였다.


차가운 공기, 어두운 내부, 구치소 같은 구조처럼 양쪽을 마주 보고 있는 철창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당황하여 적발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여기는 왜···.”



그때, 철제 갑옷을 입은 한 사내가 다가와 던컨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던컨은 뒤에 있는 우리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철창 안에 넣을 친구들을 데려왔어. 죄목은 ··· 친구의 가족을 팔아넘긴 죄지.”

“예??”

“포상은···! 황금은! 다 어디에 있냐 냥!!”


우리는 얼떨결에 철창 안으로 끌려가 저택 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철컹!>


심장이 떨어질 듯 날카로운 쇠 소음이 울리며 내 주먹만 한 자물쇠가 철창문에 채워졌다.


쇠창살 너머, 경비병들과 나란히 서 있는 던컨이 우리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미안. 신원이 불명확한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동생한테 혼나거든. 여기서 반성이라도 하고 있으라고.”



르뱅이 쇠창살을 움켜쥐고는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나는 묘족이다 냥! 나는 신원이 확실하니 나는 풀어줘라 냥!!”



던컨은 무릎을 살짝 굽힌 채로 눈웃음을 지었다.


“묘족 공주님은 날이 밝는 대로 제가 자택까지 바래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시죠?”



르뱅은 검지를 올린 채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은 저택 아래 탄광이 내 집이다 냥! 거기에 우리 언니도 있다 냥! 그리고 우리 아빠는 세계 제일 괴도다 냥!!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냥!”


옆에 있는 경비병들이 웃음을 참듯 입을 가렸다. 던컨 또한 옅게 입가에 호선을 그리더니 목기침을 한 후 서둘러 말을 끝맺었다.


“예예. 조만간 르뱅의 누님도 알현하러 가겠으니. 진짜 주소를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검은 머리 친구와 저 뒤에 있는 주황 머리 아가씨랑 기다리고 계시죠.”


르뱅은 두 손으로 쇠창살을 잡아당기며 고양이 하악질을 하였다.


“지금 놀리는 거지 냥!!”


던컨은 굽혔던 무릎을 피고 일어선 후, 경비병들과 함께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인영이 멀어져갔고, 이내 사라졌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햇볕을 머금은 바닥의 타일이 노란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고, 감옥한 쪽 구석에는 낡은 모포 더미가 돌돌 말려있었다.


아마 잠잘 때 사용하라는 것처럼 보인다.



적당한 자리에 앉으려 무릎을 굽히자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고..”

“현! 일어나라 냥!”

“잠시만 쉬자. 여기서는 광석 안 캐도 되잖아.”

“그게 말이냐 냥!”


<깡!>


나는 허리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괴도님, 계획 있으십니까. 저희 소지품은 보다시피 저 앞에 선반 위에 있는걸요.”


르뱅이 눈썹 위에 한쪽 손날을 가람막처럼 가져다 댄 채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나가기 위해선 우선 기다란 나뭇가지, 혹은 쇠막대가 필요하다 냥.”


나는 콧방귀를 뀌며 도로 자리에 누웠다.


“그런 게 있을 리가.”


뒤쪽 어둠 너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어.”



정확하게는 돌돌 말려있는 모포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일순 나와 르뱅의 시선은 그쪽을 향했고,

잠시 뒤 모포를 걷고서 주황색 단발머리를 지닌 주근깨 얼굴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우리를 모를 테지만, 우리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나는 묵힌 기억 속에서 이름을 끄집어내어 말했다.


“로쉘? 이였던가”




불과 몇 시간 전, 마담 멕케이에 의해 주방에서 추방당한 견습 조리생. 그녀는 숙소에서 강아지를 몰래 키운 것을 발각당해 조리생 자격을 박탈당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던 그녀가 그대로 사용인 숙소에 불을 질렀고, 보아하니 우리가 떠난 후에 붙잡혀 죗값으로 철창신세를 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붉은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찰랑거렸다.


“내 이름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보니, 주방 쪽 사용인이었나 보네. 당신들도 마담한테 뭐 걸리기라도 한 거야?”


나와 르뱅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셈이죠.”

“뭐 그런 거지 냥.”


그녀는 뒤편으로 가 쌓여있는 낡은 모포 중 하나를 손으로 들추며 말했다.


“쇠 막대기가 필요하다 했지?”


그리고 모포 아래에서 다 삭은 쇠 막대기를 꺼낸 후, 르뱅을 향해 던졌다.


“자 받아! 원하는 상태는 아닐 테지만 말이야.”



르뱅은 재빠르게 쇠막대기를 낚아채고, 문쪽으로 가 신난 표정으로 자물쇠를 풀기 시작하였다.


<휘리릭, 뚝딱..>


<···>


<딸칵!>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우리는 무사히 철창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로쉘은 허리춤에 한 손을 얹고 르뱅을 칭찬하였다.


“오. 고양이 솜씨 좋은데?”

“고양이 아니다 냥! 묘족이다 냥!”


르뱅은 바깥으로 나와 선반 위 올려져 있는 우리 물건을 부지런히 챙겼다.




나는 뒤를 돌아 로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생김새나 눈동자의 상태로 봤을 때는 꽤 정상인처럼 보여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아까 숙소에 불 지른 건 로쉘 당신이 맞나요? 그게, 직접 얘기를 나눠보니까. 그런 분 같진 않아서.”


로쉘이 대수롭지 않게 답하였다.


“아. 그거 우리 뽀삐가 지른 거야. 한동안 산책을 못 시켜줬었거든.”


르뱅이 궁금해하듯 고개를 왼편으로 살짝 꺾었다.


“뽀삐가 뭐냐 냥? 이름 같은데.”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뽀삐야.”



나는 그녀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지 진심인지 알기 어려웠다.

돌이 불을 질렀다는 건가.



옆에 있던 르뱅이 그녀를 독려하듯 쾌활하게 말하였다.


“돌에 이름을 붙이는 취미가 있구나 냥! 나도 디저트에 이름 붙이는 거 좋아한다. 냥!”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지금은 활동 시간이 아니라서 이 보석 안에서 쉬고 있는 거지. 절대 돌이 아니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아무튼 일반적인 동물과는 다른 어떠한 생명체가 저 보석 안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르뱅은 문방구 신제품 장난감을 구경하는 아이처럼 신기해하였다.


“뽀삐 같은 애들은 일반적인 강아지는 아니지 냥?”

“응. 보석 안에서 생활하고, 특정 시간대만 밖으로 나오는 애들을 정령이라고 불러. 우리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남기신 소중한 친구야.”

“으음 그런 사연이···”


로쉘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듯 밝게 말했다.


“그나저나 너희들 다음 일자리는 구했어?”

“그건··· 차차 알아봐야지.”



내 말에 잠시 품 안을 뒤적이던 로쉘이 명함 크기의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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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강아지 살리기 (1) 23.06.10 1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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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님은 왜 돌쇠에게 마들렌을 주었을까? (1) 23.06.06 2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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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23.06.04 22 0 9쪽
17 판도라의 항아리 (2) 23.06.03 22 0 9쪽
» 판도라의 항아리 (1) 23.06.03 2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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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나뿐인 내 전우 (1) 23.05.29 32 0 11쪽
13 거룩한 고양이 23.05.28 26 0 10쪽
12 고양이 교육법 23.05.27 26 0 10쪽
11 뭍에서 뭍으로 23.05.26 30 0 11쪽
10 예스마담 23.05.24 32 1 11쪽
9 「나는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2) 23.05.23 38 0 9쪽
8 「나는 네가 지난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1) 23.05.22 44 1 11쪽
7 라즈베리 마들렌(2) 23.05.21 49 1 9쪽
6 라즈베리 마들렌(1) 23.05.20 52 1 11쪽
5 낭만고양이 대작전(2) 23.05.19 58 1 11쪽
4 낭만고양이 대작전(1) 23.05.18 7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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