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7.01 14:19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5,946
추천수 :
72
글자수 :
655,973

작성
24.02.27 10:10
조회
24
추천
1
글자
12쪽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DUMMY

아들이라.

어쩌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까?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재혼해서 만난 아이인데, 이제 제 앞가림도 해요. 취업했거든요.”


당연히도 도플갱어를 가리키지 않았다.

애당초 현묘에게 그 일은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일 뿐이겠지.

천선도 딱히 불편한 내색을 내비치진 않았다.


“특이하네요? 부모님이 교사면 학업을 강요하는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편견이죠. 게다가 요즘엔 대학보다는 직장이 먼저인 세상이잖아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해요.”

“든든하시겠어요. 벌써 제 앞가림을 한다면.”

“예. 아버지로서 한시름 놓았죠.”


원하던 대답일까?

천선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공감하시죠? 자식을 키워본 부모로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속담이다.

저출산이 심각해진 요즘, 주목받는 문장이기도 했다.


“예, 키울 때 많은 배려가 필요하죠. 혹여 삐뚤어지진 않을까, 잘 살펴야 하고요.”

“맞는 말이에요. 아이가 올곧게 자라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가 반드시 필요하죠.”


정론이다.

아이는 배려받아야 한다는 말은 그 누구도 함부로 반박하지 않는다.

현실을 바꿀 능력이 없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비용도 아니지 않을까요? 마을 하나 값이라고 생각하면, 돈 몇 푼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니까.”

“음···.”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잖아요?”


현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다.

하긴, 테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천선도 이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내비쳤다.


“알고 있었나요?”

“아···, 묘하다는 느낌은 있었죠. 하지만 직접 도움을 요청해오지 않으면 저도 도와줄 수 없는지라···.”


여우 같은 얼굴이 위아래로 끄덕였다.


“삼촌이 돼서 그걸 모른 척할 순 없잖아요?”

“아, 예.”

“그래서 말인데, 선물을 직접 나눠줄 수 있을까요? 그냥 덜렁 사주기보다는, 얼굴 도장을 찍는 편이 확실할 것 같아서요.”


현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무난하게 진행한다면 협력하죠.”

“‘무난하게’라면···.”

“학교에서 허락을 구하는 일인데, 직접 정의 구현을 하려고 하시면 많이 곤란해서요. 그냥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내자’ 정도로 끝맺어주셨으면 합니다.”

“확실히, 학교는 많이 곤란해지겠죠. 그럼 테이나 저도 불이익을 받을 테고요.”


함부로 지르는 것도 상황을 보아 가면서 해야 할 일이다.

아무 때나 돌발행동을 했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설령 천선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알겠어요, 주의할게요.”

“예, 그리고 선물은 몇 시에 오는지···.”

“아마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일 것 같네요. 좀 더 서두르거나 늦출 수도 있고요.”

“우선 교장 선생님께 보고는 해야겠지만, 아마 일정을 뺄 수 있을 거예요. 점심시간을 조금 짧게 끝내고, 수업 시간 앞부분만 조금 빼는 식으로요. 선생님들도 이해해주실 테고요.”


제안은 부드럽게 흘러간다.

하긴, 다름 아닌 전교생에게 선물을 돌리는 일이지.

준다는데 싫을 리 없었다.


또, 아직 수능이나 기말고사처럼 굵직한 일정은 한참이나 남았다.

지금 잠깐 시간을 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러모로 분위기도 환기할 겸, 생색도 낼 겸.

심지어 잘생겨서 다들 좋다고 하는 중이니까.


“감사합니다.”

“저는 보고하러 가봐야 하는데, 혹시 따로 준비를 더 해야 하나요?”

“아뇨, 주문을 해둬서 괜찮아요.”

“그럼 체육관으로 먼저 가세요. 다른 선생님께 안내해달라고 말해둘게요.”


현묘가 의자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나간다.

천선은 뒷모습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쳐다보았다.

그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게 보였다.


하지만 철컥, 문소리가 나자마자 미소는 사라지고 만다.

봄바람 같던 얼굴은 어느새 차가운 벌판 같이 변했다.

가느다란 외형은 날카롭게만 느껴졌다.

화라도 난 사람처럼.


“···하.”


작은 웃음.

언뜻 경멸 같은 감정도 느껴진다.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제가 안내해드리려고···, 무슨 일 있으셨나요?”


누군가 들어왔을 때, 잠시나마 표정 관리를 못 했을 정도였다.


“아뇨,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중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선물을 돌리는 일은 신경 쓸 게 많아서요.”

“아···.”

“체육관으로 안내해주신다고요?”

“네. 따라오세요.”


들어온 교사는 학교 현관에서 교무실까지 안내해준 사람, 테이의 담임이기도 했다.

듣기로는 수학 교과 담당과 결혼했다고 했지.

그 말은 여기서 몇 년의 연차가 쌓였다는 뜻이기도 할 터였다.


“테이는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나요?”


위층으로 발을 옮기며 넌지시 질문했다.

삼촌으로서 할 만한 이야기다.


“네, 테이가 워낙 착해서 딱히 문제는 안 일으켰던 것 같아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문제가 있나요?”

“오랜만에 봤는데 표정이 딱히 밝진 않더라고요.”

“그건 애가 좀 조용한 편이라···.”


교사는 곧 말을 아꼈다.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머리를 거쳐서 내뱉기 위해서였다.


“사실 잘 모르죠.”

“그래요?”

“네. 학교가 공부만 가르치는 곳은 아니긴 한데, 정작 부대끼면서 지내면 문제가 많이 생기거든요. 학교랑 학부모님들도 금지하시고요.”

“그래도 대충은 보이지 않나요?”

“의외로 안 보여요. 담임이라고 해봐야 조례 때 짧게 더 보는 것뿐이거든요.”

“······.”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오히려 제가 다른 선생님들보다 무지한 편일 거예요. 제가 또 테이가 듣는 교과엔 안 들어가서···.”


학교란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그런 일은 학원이 더 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 제도는 대입만을 얘기한다.

수시, 정시, 논술···.

정작 담임 교사는 자기 담당 학생에 대해서 알아갈 시간도 없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던데, 정말 코앞도 못 보고 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신경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힐난하려는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좀 답답해서···. 그리고 선물을 나눠주면 반쯤 해결될 텐데, 뒤늦게 소란을 떨면 긁어 부스럼일 거예요.”


그러는 사이 체육관에 도착했다.

바닥엔 경기장과 레일이 보였고, 구석엔 탁구대와 네트가 마련되어 있다.

운동하는 장소로서 필요한 설비였다.

동시에 저 멀리엔 단상과 스피커도 존재했다.

애당초 체육관과 강당 겸용으로 쓰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넓은 공간은 유달리 허무해 보였다.

하긴, 밝고 활기차야 할 곳일수록 그 속이 비었을 때 낯선 법이지.

더군다나 담임이 천선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되나요?”

“네. 여기 의자도 있으니까 쓰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아니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애들한테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교사는 고개를 한 번 더 숙인 후 돌아갔다.

천선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다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 휴대폰을 꺼낸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은 금세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유송 씨, 선물은 어떻게 되는 중이죠?”


준비한 일을 확인한다.

적절한 순간에 효과를 터뜨리기 위해서겠지.


-예, 지금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점심시간 끝난 직후에 들어오면 될 것 같아요. 조절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통화가 끝나고 천선은 눈을 감았다.

평소에 그랬듯, 뭔가를 생각할 때 보이는 습관이다.


“흠, 담임 선생님은 빼둬야 할까···.”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댔다.

도대체 어떤 계획을 짜고 있길래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과연 저 안에서 빠지는 게 좋은 일까, 나쁜 일일까?


당장은 추측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선 도플갱어만이 알고 있겠지.

그 계획이 끔찍할지 아닐지는.


“테이 학생 삼촌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현묘가 다시 올라왔다.


“점심시간을 20분 일찍 끝내고 수업 시간을 20분 정도 늦추기로 결정했어요.”

“배부 자체는 10분 안팎에 끝날 텐데요?”

“네. 그 대신 남는 시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하시면 돼요. 다들 삼촌분께 관심이 많기도 하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건물에 있는 학생까지 창문에 달라붙어서 구경했을 정도니까.

호기심이 동해서라도 얘기를 들어보고 싶긴 하겠지.

물론, 그냥 얼굴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겠지만.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간헐적 단식 중이라서요, 점심은 따로 안 먹어요.”

“아, 그럼 단상 옆쪽 대기실로 이동해주시겠어요?”

“네, 그럴게요.”


천선이 안쪽으로 들어가자, 여러 사람이 밖을 오간다.

방송 장비를 만지고 마이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걸 보니, 원래 전교생이 모이는 행사는 이곳에서 주로 이뤄지는 모양이다.


“너네 왜 벌써 왔어?”


그러는 사이, 학생은 속속들이 도착했다.


“오늘 잘생긴 오빠가 뭐 말한다면서요! 밥 받자마자 마시고 뛰어왔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볼래?”

“공부는 재미없잖아요!”

“응? 저분이랑은 말도 못 섞어봤잖아? 재미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에이, 잘생기면 재밌는 거죠! 그냥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데!”


북적거림은 점차 커진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각 반의 담임 교사는 학생을 줄 세우기에 여념이 없었고, 어느새 단상 위에는 현묘 역시 올라가 있었다.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이제 행사 시작하겠습니다.”


천선은 바로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 이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오늘 왜 모였는지 들었나요?”

“네···!”

“다들 평소보다 활기차네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네, 방송에서도 말했다시피 어떤 분이 여러분을 위한 선물이 준비하셨어요. 오늘 다들 봤죠? 남성 한 분이 학교로 들어오는 모습이요.”

“봤어요···!”

“그렇게 오셨는데 그냥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됐어요.”


간략한 설명이 지나간다.

하지만 더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진 않았다.

외부인으로서 할 말로는 이 정도가 적당했다.

더 덧붙인다면 호들갑이나 다름없겠지.


“자, 삼촌분. 나와주세요.”


이제 차례는 천선에게로 돌아왔다.

단상 옆 대기실에서 나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단상 위에서 고고히 걷는 모습은 길거리를 얼핏 지날 때와는 또 달랐다.


“와···.”


살랑살랑 움직이는 몸짓.

밑에서는 감탄사가 올라왔다.

따스한 분위기와 선이 가는 미모가 보기 좋게 전시된 덕이다.

누구나 홀릴 듯한 매력은 그렇게 여과 없이 쏟아져 내렸다.


“안녕하세요?”

“······.”

“다들 반응이 없네요. 저만 반가운가요?”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

그건 말문을 턱 막히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작가의말

연참은 이번 주 내로 71화?까지 올릴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그렇게 달린 후 주 4회로 전환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4 94화. 가위바위보 24.04.18 6 0 12쪽
93 93화. 날카로움 24.04.16 14 0 12쪽
92 92화. 돌아온 아들 24.04.15 11 0 12쪽
91 91화. 소년병 24.04.13 11 0 12쪽
90 90화. 비디오테이프 24.04.11 12 0 12쪽
89 89화. 어머님 24.04.09 10 0 12쪽
88 88화. 천재 24.04.08 12 0 12쪽
87 87화. 복수 24.04.06 15 0 12쪽
86 86화. 도마 위 24.04.04 10 0 12쪽
85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10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83 83화. 외모라는 컨텐츠 24.03.30 14 0 12쪽
82 82화. 오소서, 주 예수여 24.03.28 11 0 14쪽
81 81화. 요한묵시록 24.03.27 10 0 13쪽
80 80화. 종말 24.03.25 11 0 11쪽
79 79화. 정말 몰랐을까 24.03.22 8 0 12쪽
78 78화. 유기견 보호센터 24.03.21 12 0 12쪽
77 77화. 기말고사 마지막 날 24.03.19 14 0 12쪽
76 76화. 주마줌스 24.03.18 14 0 12쪽
75 75화. 안녕하세요 24.03.15 14 0 12쪽
74 74화. 목숨은 하나 24.03.12 13 0 12쪽
73 73화. 갈굼의 시작 24.03.11 10 0 12쪽
72 72화. 책임은 어른에게 24.03.05 14 0 11쪽
71 71화. 요즘 애들 24.03.05 10 0 12쪽
70 70화. 가해자와의 조우 24.03.04 12 0 12쪽
69 69화. 범죄자 옹호 24.03.04 12 0 12쪽
68 68화. 좋은 책임자 24.03.03 15 0 12쪽
67 67화. 참교육? 24.03.03 21 0 12쪽
66 66화. DJ뭐야 24.03.02 23 0 12쪽
65 65화. 달란트 24.03.02 22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