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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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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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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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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수 :
65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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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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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DUMMY

“안 반가우시면 그냥 돌아가야 할까요?”

“···아,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조금 서운할 뻔했는데.”


조용했던 분위기가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서로 떠들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상황을 못 받아들인 듯이 각자 떠들어댈 뿐이다.


“또 어수선해졌네요. 아, 보기는 좋아요. 그런 모습이 한창 예쁠 때잖아요?”

“꺄아아아악···!”

“그런데 대화할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는데, 그동안만 제가 말할 수 있게 허락해주시겠어요? 다시 각자 담소를 나누시면···, 어쩔 수 없죠. 물러날게요.”


그 말에 다시 단상 아래가 조용해졌다.

떠들면 그만하겠다니, 절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은 입도 열지 않았던 척을 한다.

서로를 탓하듯이 노려보면서.


“조용해졌네요. 그럼 일단···, 테이야? 이쪽으로 나와볼래?”


다들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을 짓는다.

아직 학생들은 천선이 어떤 명분으로 왔는지 모르는 탓이다.

그러는 사이, 몇 명은 뒤쪽으로 시선이 박혔다.

당연하게도 테이가 있는 방향이었다.


“얼른.”

“···네.”


가장 뒤, 인형처럼 작고 예쁘게 생긴 아이가 움직인다.

밀리고 밀려서 저기 있겠지.

이름을 불린 지금에서야 앞으로 올 수 있었다.


키가 큰 다른 아이들 틈새.

테이는 꾸물대며 앞으로 향했다.

좁은 길이란, 그 자체로 발길을 붙잡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통로 끝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퉁 소리라도 날 것처럼 넘어지듯 빠져나온다.


“아.”


가녀린 몸이 비틀대면서 나왔다.

뒤에 가득한 전교생과 대조되어, 안타까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테이야, 올라와.”

“네···.”


천선은 비틀대면서 올라오는 테이를 옆에서 잡아주었다.

꼭 얼굴도장을 찍어주기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여기 있는 친구가 제 조카예요. 예쁘죠?”


그 모습에 질투 어린 눈빛도 생겨나지만···,


“오늘 온 것도 우리 조카 한 번 보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


금세 불만은 가라앉는다.

천선을 여기까지 불러냈는데, 어떻게 원망을 할 수 있을까?


“요새 많이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요.”

“아니, 그건···”

“그래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부탁도 할 겸 왔습니다. 조카가 부담스러워하니까 여기까지만 해야겠네요.”


작은 등을 아래로 살짝 밀었다.

테이는 올라선 단상이 불편했던지, 냉큼 아래로 내려간다.

아예 원래대로 뒤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기색이기도 했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서, 쭈뼛대고만 있지만.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네요. 음, 그럼 우리 잡담이나 할까요?”

“네···.”

“좋아···.”

“네에···!”

“다들 요즘 뭐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나요? 취미 같은 거요.”


관심을 표하는 질문이다.

그러자 학생 몇몇은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친구랑 수다요! 소설이랑 웹툰 얘기 주로 해요!”

“로판 좋아해요!”

“저는 빙의물이요! 빙의물이라는 게 책 속으로 들어가는 건데···.”


처음엔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요리 잘해요!”

“저는 쿠키! 쿠키 구운 적 있어요!”

“청소하는 거 좋아해요!”


그다음엔 점점 생각이 스며든 대답이 나온다.


“저는 클래식! ···좋아해요!”

“무용에 관심이 많아요!”

“차랑 다과요!”


이제 나오는 대답은 완전히 가식으로 느껴질 정도다.

천선은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단상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턱 짓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겠지.


“다들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네요.”

“헤헤헤···.”

“여러분에 비해서 저는 초라하네요. 저도 웹툰이나 소설을 좋아하거든요.”

“아앗···.”


괜히 내숭을 떨었다가 뻘쭘하게 됐다.

정작 이쪽은 소설을 즐겨본다고 대답을 하니.


“요즘엔 무협을 즐겨봐요. 아, 여러분도 읽어보시지 않나요? 요새는 무협지 배경으로 로맨스 소설도 나오던데.”


다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고독’이라는 것도 아세요?”

“네! 들어봤어요!”

“다들 아시는 것 같지만, 혹시나 싶으니 설명을 드릴게요. 고독은 항아리에 독을 품은 짐승을 죄다 집어넣어서 만드는 맹독이에요. 아귀다툼 끝에 독하디독한 정수가 모이는 거죠.”


천선은 나지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학생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다만, 이번만큼은 어딘가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저는 이 학교가 그런 느낌을 받아요. 독을 품은 짐승을 한 군데에 몰아넣은 항아리.”

“······?”

“각자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이 많겠죠. 놀고도 싶고 뭔가를 자랑도 하고 싶고, 남들보다 잘나고 싶고. 그런데 그런 여러분을 이 건물 하나에 모아둔다니, 얼마나 괴롭겠어요?”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느릿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맞는 소리 같다는 뜻이겠지.


“이 항아리 속, 많이 괴로우실 거예요. 가끔은 화풀이를 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눈앞에 거슬리는 누군가가 있다면요.”

“음···.”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친구들이에요. 똑같은 처지예요. 굳이 말하자면, 경쟁자가 아니라 동지죠.”


맞은편에 있는 인간은 분명히 나와 똑같은 처지였다.

똑같은 처지, 한자로 압축하면 ‘동지’라고 부를 수 있겠지.

하지만 몇몇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동류라고 여기지 않았다.

경쟁자···, 최소한 타인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은 하나예요. 항아리 속에 계신 여러분은 최대한 사이좋게 지내야 해요. 서로에게 독을 뿜지 않고 또, 서로를 잡아먹지 않고.”

“······.”

“여러분께 드릴 부탁은 그뿐이에요. 항아리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니까요.”


마침일까, 아니면 저 멀리 있는 시계를 보고 한 설계일까?

체육관 저 멀리에 있는 문이 슬쩍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틈새로 드러났다.


“때마침 선물이 왔네요. 유송 씨?”

“네, 천선 씨. 최신형 태블릿 PC, 최고 사양으로 312대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술렁였다.


“뭐? 태블릿?”

“선물이 태블릿이야?”

“에이, 아니겠지. 전교생한테 다 돌린다잖아. 태블릿을 어떻게 다 돌려?”

“아니, 근데 방금 312라고···.”


다들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잘생겼다고 좋아하면서 왔는데, 이런 선물까지 있다니?

와닿지 않는 게 당연했다.


“자,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시겠어요? 선생님들도 도와주세요.”


그때,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건 사람들이 박스 무더기를 들고 온다.

규모가 규모인지라, 해당 회사 직원이 파견되어 나누어주는 모양이다.

한 번에 대여섯 대씩 들어오고 구석에 쌓여갔다.


“뭐야? 진짜야?”

“이거 한 대당 못해도 몇십은 할 텐데···.”

“2억은 그냥 깨졌겠는데?”


교사들은 그렇게 전달된 박스를 살폈다.

전달받은 바가 없는지라, 놀랍기만 한 모양이다.

어른도 이렇게 술렁이는데 아이는 어떨까?

다들 아예 몸을 돌리다시피 한 뒤, 서로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야, 진짠가 봐!”

“뭐야? 왜 주는 거야?”

“그거 아냐? 막 동창회 같은···”

“야, 우리 여고야!”


혼란이 가중될 무렵, 천선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학생들 통솔하고 선물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3학년 먼저 배부하죠.”

“네, 그럼 다른 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우선 학생들부터 진정시켜주세요.”

“다들 조용! 나눠줄 테니까 대열 흐트러뜨리면 안 돼!”


역시 어른이 정신 차리고 움직여야 아이들도 진정할 수 있는 법.

아직 시끄러웠지만, 일이 차근차근 진행됐다.

직원 한 명당 열 대씩은 들고 오는 상자, 그걸 자기 반 인원수에 맞춰서 가져간다.

계속 쌓이고 있었던지라 금세 한 반에 다 돌아갔을 정도다.


“뭐야, 진짜 태블릿이잖아!”


받은 학생 중 한 명이 요란을 떨면서 박스를 개봉했다.

얇은 전자기기가 전등 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와! 나도 진짜야!”

“다 주는 건데, 다 진짜겠지!”

“그래도 진짜 줄 줄은 몰랐지!”


받은 사람은 야단법석을 떨면서 자랑을 해대기 시작했다.

다들 받을 건데, 그토록 기쁜 모양이다.

반면, 아직 받지 못한 학생은 그 모습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껀 언제 오지?”

“모자라면 어떡해?”

“다 있나?”


불안한 목소리도 울려 퍼진다.

다만, 그런 기색은 금세 사라진다.

워낙 물건이 얇고 가벼워서 빠르게 배포되는 덕이다.

그런 끝에 3학년, 2학년을 거쳐 1학년까지 손에 쥐었다.


“와, 나까지 왔다!”


그 모습을 보며 천선은 미소를 지었다.


“못 받은 사람 있나요? 다들 들어서 확인시켜주세요.”

“다 받았어요!”

“여기요!”

“네, 전부 받은 것 같네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시간이 됐네요. 이제 가봐야 하겠네요.”

“아···. 조금만 더 있어 주시면···.”

“여러분들도 수업해야 하잖아요.”


학생들이 아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얼굴에 홀려있던 판국에, 선물까지 준다니.

호감이 최고조로 올랐을 터였다.

그렇기에 천선이 지금 물러나는 거겠지.


“그럼 제 조카랑 친하게 지내주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단상을 내려갔다.

그 등 뒤에서는 아쉬움 서린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


학생들이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품에는 다들 얇은 태블릿을 껴안은 채로.


“대박! 역시 비싼 게 좋은가 봐! 메모리도 완전 커!”

“이걸로 그림 그리면 쩔겠다!”

“히히! 야자 시간 다 죽었어! 이걸로 영화 다운 받아 봐야지!”


선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이렇게 화기애애하다니.

물론, 이제 수업 시간인지라 교사가 곧 들어왔지만 말이다.


“다들 즐겁네?”

“네, 쌤!”

“봤어요? 진짜 잘생겼어요!”

“잘생겼는데 돈도 많아!”

“맞아, 맞아!”


교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좋았으니 됐네. 아, 참. 테이한테 고맙다고 말해뒀지?”


천선이 여기에 와서 그 거금을 쓴 이유.

그건 테이를 따돌림에서 구하기 위해서였지.


“테이야, 땡큐!”

“너네 삼촌 진짜 잘생겼더라!”

“SNS 뭐 한대? 주소 좀 가르쳐주라!”

“얘들아, 고맙다고 하라니까 그걸 물으면···.”

“아, 참! 태블릿 고마워!”


야단법석한 감사 인사가 지나갔다.

그 덕에 테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모습을 입 닫고 지켜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바로, 계속 테이를 따돌려왔던 무리였다.

그토록 괴롭혔는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선물을 받아버렸다.


하지만 내어놓기도 그랬다.

반쯤 자수나 마찬가지였고,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위험하다.

반 친구들 모두가 테이에게 호의적인 상황이니까.


“하, 하···.”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혹여나 불똥이 튀지 않게끔.


작가의말

다음화 때문에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법과 질서를 사랑하며 한국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폭력을 미워하며 어떤 상황이라도 대화를 최우선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제가 왜 이런 말을 적었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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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86화. 도마 위 24.04.04 10 0 12쪽
85 85화. 보호받아야 할 24.04.03 10 0 12쪽
84 84화. 개판 24.04.01 12 0 12쪽
83 83화. 외모라는 컨텐츠 24.03.30 14 0 12쪽
82 82화. 오소서, 주 예수여 24.03.28 11 0 14쪽
81 81화. 요한묵시록 24.03.27 10 0 13쪽
80 80화. 종말 24.03.25 1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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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안녕하세요 24.03.15 1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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