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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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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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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6.12.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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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11쪽

12. 조우遭遇

DUMMY

황궁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를 잡은 동창의 전각들은 그 크기가 다른 건물에 비해 크진 않았으나 내부만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조부태감이 맞은 편에 앉은 정조장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찻잔 속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무한으로 가 봐”

밑도 끝도 없는 조부태감의 지시다. 정조장은 가만히 있었다. 다시 설명이 이어질 것이다. 조부태감은 항상 결론부터 먼저 말하고 다음에 보충하는 형식으로 말을 한다. 어떤 땐 명쾌해서 좋고 어떤 땐 당혹스럽기도 하다. 오늘 같은 경우는 당혹스러운 날이다.

“회에서 목걸이 회수가 늦어지고 있어.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야. 용의자가 무한에 있다는 첩보다. 조원들을 데리고 가서 사태를 관망하다 목걸이를 직접 회수할 수 있으면 직접 회수해. 목걸이를 훔쳐간 이유도 밝히고. 다급하게 행동할 건 없어. 목걸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우선은 회에서 회수의 책임이 있으니까”

조부태감은 정조장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정조장은 이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자신의 출세가 보장됨을 잘 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인정받지 못한다. 덤으로 결과를 가질 때 더욱 빛나는 법이다. 정조장은 오늘도 조부태감의 뱃속에 능구렁이가 몇 마리쯤 들어 있을지 헤아리면서 자리를 물러났다. 저런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고 헐뜯는 윗자리는 자신이 도저히 들어갈 수도, 견뎌낼 수 없는 신세계처럼 여겨지다가도 언젠가는 반드시 진입하고 말리라는 꿈을 버리진 못했다. 아니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파파~ 악양루의 노을 진 풍경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노을이었어요. 황학루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 설레요.”

이미 성숙한 미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뽐내고 있는 젊은 여인은 어리광 부리듯이 파파의 팔짱을 끼고 파파의 팔을 흔들어 댔다.

“알았다. 이제 일각이면 황학루이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일전 악양루에서 묵진휘 일행 곁에 있던 조손이었다.

할머니는 목걸이를 가진 젊은이와 무정도의 대결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중원으로 내려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어디서 그런 절정고수들의 대결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자신이 직접 보진 않았지만 목전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처럼 실감 있게 보고를 받았다. 보고를 받을 때 자신도 무인으로서 현장을 활보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이 나이에 무슨 주책 맞은 생각인가 싶어 욕심으로 치부하고 지워 버렸다. 그저 저 녀석 잘 지켜서 시집가고 얘 낳고 오손도손 사는 모습 보는 것으로 족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눈앞에 황학루가 보였다. 악양루, 남창의 등왕각과 함께 강남 삼루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백이 최호의 시를 보고 붓을 던졌다는 고사가 유명한 곳이다.

“파파~ 이 곳에서의 노을도 꼭 보고 가요. 악양루의 노을과 비교해보고 싶어요”

젊은 여인이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그러자꾸나. 곧 있으면 해가 저물겠구나”

할머니는 손녀가 얘기하는 것을 어찌 해주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사랑스럽게 젊은 여인을 바라봤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곤 황학루 인근에는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할머니와 손녀는 황학루 최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는 젊은 남자 하나가 지는 노을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파파. 여기 노을도 너무 아름다워요”

여인이 낮게 환호성을 질렀다. 할머니 눈에도 노을은 아직은 서글픔보다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구나, 우리 혜연이처럼 정말 예쁘구나”

그렇게 조손이 노을을 구경하고 있는 중에 또 다른 젊은 남자 하나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왔다.

“캬~ 죽이는구나. 내 이런 곳을 왜 이제야 와 보는고~”

늦게 꼭대기 층으로 올라온 젊은 남자가 연신 캬~캬~그러면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조용히 보는 게 좋겠군”

먼저 와서 심각하게 노을을 보고 있던 젊은 남자가 뒤에 올라온 또 다른 젊은 남자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는 숙부처럼 여기던 무정도가 죽었다는 얘기에 씁쓸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 황학루를 찾은 삼공자였다.

“거슬렸다면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나만의 감상법인걸 어쩌겠나. 정히 거슬리면 자네가 내려가거나 아니면 조금만 기다리게. 내 곧 내려갈 터이니. 이 좋은 경치에 한 잔 술이 빠질 수 없지? 참, 같이 내려가서 술 한잔 할 텐가? 보아하니 자네도 한 잔 술로 마음을 달래야 할 이유가 있는 듯하니. 하하하”

뒤에 올라온 젊은이가 넉살 좋게 시비인지 양해를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안인지 모를 소리로 삼공자의 말을 흘려 넘겼다.

순간 삼공자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지면서 사나운 기파가 젊은이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자 꼭대기 층의 공기가 순간 팽팽해지면서 싸늘해졌다.

‘아니, 젊은 나이에 대단한 기파구나. 중원에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과연 허언이 아니구나. 그리고 저런 기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한 저 젊은이도 못지않구’

할머니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급히 손녀의 팔을 끌며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꾸나. 이 할미 다리가 아프다”

늙은 할머니의 이 한마디는 너무나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음율을 지니고 있어서 싸늘하게 냉기가 흐르던 꼭대기 층의 공기를 흩트렸다.

삼공자도 할머니의 소리에 머쓱해져 기파를 거두었다. 그러자 꼭대기 층의 공기가 다시 따뜻한 본래의 것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할머니 아니었으면 이 좋은 노을 빛이 더욱 붉어졌을 거예요. 감사의 보답으로 계단 내려가는 동안 제가 모시겠습니다”

늦게 올라온 젊은이가 공기의 변화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능청스럽게 할머니에게 다가와 까닭 모를 인사를 하면서 할머니의 팔을 부축했다.

“젊은이가 내게 고마울 게 뭐가 있는가?”

할머니가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받았다.

“그냥 고맙습니다. 자, 그럼 내가 먼저 갈 테니 계속 노을 구경하시게~”

할머니의 팔을 부축한 젊은이는 내려가면서까지도 삼공자에게 끝까지 능청을 부렸고 삼공자는 냉막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기묘하구나. 기파에 태연한 저놈도 예사롭지 않았고, 그 순간에 끼어든 노파도 예사롭지 않아. 무정숙부가 무명의 젊은 고수에게 당하더니, 또 다른 고수들을 내가 직접 만났구나. 이 중원에는 얼마나 많은 고수가 있단 말인가?’

삼공자는 지는 노을 속에 생각에 잠겨 오래도록 꼭대기 층에 서있었다.


황학루를 내려온 할머니와 손녀는 젊은이에게 인사하고 돌아서 가려 했으나 젊은이가 먼저 선수를 쳤다.

“할머니, 제가 술 한잔 사겠습니다. 술을 못하시면 식사하시구요. 혼자 밥 먹기 청승스러워 그럽니다. 젊은 아가씨께서도 양해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젊은이의 애절하고 간곡한 눈빛과 밉지 않은 너스레에 할머니가 동석을 허락했고, 셋은 객잔을 골라 들었다.

“저는 주은백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 집안이 몰락하고 할아버지랑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는데 이제 할아버지 마저 돌아가셔서 천상천하에 홀몸입니다. 떼쓴 것 너그러이 양해해 주십시오”

객잔에 앉아 주문을 마친 후 주은백이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니네. 나도 이렇게 젊은 남자와 같이 식사를 하니 좋기만 하구먼~. 오히려 내 쪽에서 감사해야지. 헐헐~”

“유혜연이예요”

젊은 여인이 주은백에게 인사를 했다.

“미인이십니다.”

주은백의 칭찬에 유혜연이 얼굴을 조금 붉혔지만 이내 주은백의 너스레가 시작되자 어색한 분위기는 금방 자연스러워졌다.

셋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했다. 주은백의 사교성은 타고난 듯 했다. 어떤 땐 진지하게 속내를 밝혀 공감을 끌어내고 어떤 땐 능청스러움으로 좌중을 웃기고 어떤 땐 조용히 다른 사람을 말을 경청했다. 아직 젊은 남자와의 식사자리가 익숙하지 않아 어색해하던 유혜연마저 식사가 끝날 무렵엔 주은백의 능청에 깔깔거리기까지 했다.

“자네도 영웅대회에 참가하러 무한엘 왔는가?”

할머니가 주은백의 옆구리에 있는 검을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전 그냥 구경이나 왔습니다. 허리에 검을 두르고 있지만 제가 감히 영웅대회에 참여할 깜냥이나 있겠습니까?”

주은백은 할머니의 물음에 손사래까지 치며 부인했다.

“오늘 식사 즐거웠네. 그럼 또 보세”

“또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또 보게 되면 그땐 할머니가 밥 사주세요. 하하”

“그럼세”

아쉬워하는 주은백을 뒤로하고 할머니와 유혜연은 돌아섰다.


“주은백이라는 젊은이는 무서운 고수다. 아까 황학루에서 만난 젊은이도 대단한 고수고. 중원에는 젊은 고수가 즐비하구나.”

주은백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유혜연에게 일러주었다.

“파파가 놀랄 정도로 고수에요? 아무튼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능청스러운 게 밉지 않던걸요. 새로운 것도 많이 보고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고··· 구경 잘 나왔어요. 파파 그렇죠?”

유혜연이 자신이 주장한 것이 맞지 라는 표정으로 할머니의 동의를 구하자 할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스러운 손자의 말이니 어찌 고개를 가로 저으랴.

“아빠도 같이 계시면 좋을 텐데.”

유혜연이 어느덧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버지는 바쁘신 분이란다. 네가 이해하거라.”

파파가 유혜연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손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해하지만 섭섭하기도 해요. 우린 가족이 많지도 않잖아요? 오빠를 본지도 오래되었고요. 남들처럼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해 본적이 언젠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아요.”

“오빠도 좀 있으면 출관하지 않겠느냐? 그때 같이 식사하면 되지?”

파파가 싱긋 웃으며 유혜연의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고, 유혜연도 그런 파파의 마음을 알았기에 곧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식사도 같이 하고, 구경도 같이 가자고 조를 거예요.”

“혜연이가 돌아가면 아빠가 힘드시겠구나. 끌끌.”

유혜연의 말에 파파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유혜연이 떼를 부리면 아버지가 얼마나 곤혹스러워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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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푸른 삼각목걸이 +4 16.12.06 6,813 74 11쪽
4 3. 첫대결 +3 16.12.06 7,240 81 11쪽
3 2. 내기 +3 16.12.06 8,879 72 12쪽
2 1. 회동會同 +4 16.12.06 13,651 76 12쪽
1 서장 +3 16.12.06 16,971 9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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