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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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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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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6.12.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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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글자
11쪽

3. 첫대결

DUMMY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묵진휘는 검붉은 무복의 무인들이 사당으로 들어간 후 또 다른 인영 하나가 사당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좀 전에 나타난 검붉은 무복의 무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묵진휘가 옆 나무에 몸을 숨기고 있는 두 사람을 가만히 살폈다. 그들은 새로 사당으로 들어간 사내의 기감氣感을 오랫동안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자가 주위에서 다른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면 필경 나무 위를 조사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자라면 충분히 그러할 것이다. 묵진휘는 옆의 두 사람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있으라는 전음을 보낸 후 의도적으로 기척이 나게끔 나무를 박차고 북쪽으로 내달렸다. 묵진휘가 북쪽으로 사라지자 곧 사당 창문을 통해 한 인영이 북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조금 더 있다 사당으로 들어온 일단의 검붉은 무복인들이 모두 북쪽으로 사라졌다.


십리 정도를 달린 묵진휘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거세게 내리던 비는 어느덧 부슬거릴 뿐이다. 곧 그자가 옆의 나뭇가지로 내려 앉았다

“그걸 가져간 이유는?”

그가 냉막하게 물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우리가 누군지 아는가?”

“아니오.”

“다른 일행이 있었던가?”

“나뿐이오.”

“네 놈은 그걸 가져간 놈이 아닌 모양이군. 왜 달아났지?”

“기세가 너무 험악해서 일단 피하려 했을 뿐이오.”

“그럼 왜 나를 기다린 거지.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럴까 했지만 무슨 일인지 궁금해졌소. 또 당신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아 보였소”

“자네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은 없네”

“그럼 이만 헤어져도 되겠소?”

묵진휘가 더 이상 얘기할게 없다는 듯이 다시 움직이려 했다.

“잠깐, 이대로 가면 경우가 아니지? 난 이미 자네에게 관심이 생겼거든”

“굳이 은원恩怨도 없는데 승부를 볼 필요는 없지 않소?”

사내는 대답 없이 손을 검으로 가져갔다.

둘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묵진휘도 대화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상대의 기도氣道가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검을 뽑았다. 발검이 유려하다. 단순해 보이는 발검 자체가 이미 많은 수련을 말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군더더기가 없다. 상대의 성격을 보여준다. 형形이나 식式보다는 언제나 본질에 바로 다가선다. 나무를 박차더니 곧바로 묵진휘의 심장을 향해 찔러온다. 간결함만큼이나 빠른 속도다. 묵진휘는 발을 움직이지 않은 채 상체만 조금 비틀어 검끝을 피하면서 우수로 상대의 우측 팔을 밀어쳤으나 상대는 좌수로 맞받아쳤다.

팡~하는 소리와 함께 둘은 모두 반탄력에 의지해 각자의 측면 나무가지로 날아 내렸다.

상대가 다시 나뭇가지를 박차고 찔러 들어온다. 첫 번째와 같은 듯 하지만 다르다. 검에 푸른 기운이 유막처럼 덮여있다. 검기처럼 보이지만 검강이다. 검강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검과 또 다르게 운용될 수 있다. 검끝을 섣불리 피하려다 확장되거나 폭사되는 검강에 치명적 피해를 당한다. 상대는 검강을 앞으로 뽑아내지 않고 검신에 유막처럼 두르고 있다. 어느 순간 어떤 형태로 운용될지 알기 어렵다. 묵진휘가 날아오는 상대를 향해 우수 검지로 지환指丸을 두 번 날렸다. 상대는 묵진휘로부터 뭔가가 쏘아져 온다는 느낌을 가졌으나 기감으로 포착할 수 없었다. 잠시 뒤, 깡~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두 동강 나더니 오른쪽 어깨가 따끔했다. 공격을 계속할 수 없었다. 상대는 곧바로 신형을 뒤집어 역회전해서 본래의 나뭇가지로 내려앉았다. 본래의 냉막한 표정 대신 허탈한 표정이다.

“지환을 날려보냈단 말인가? 그것도 아무런 기척 없이.. 허허~”

“···”

상대의 물음에 묵진휘는 대답이 없었다.

“왜 살려주었지?”

상대는 묵진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난 당신과 아무런 은원恩怨이 없소. 수하들이 더 이상 쫓아 오지 않았으면 하오.”

묵진휘는 나무를 박차고 남쪽으로 날아 올랐다. 묵진휘가 나무를 박차고 올랐음에도 서있던 나뭇가지는 한 점 흔들림 없이 그대로다.

폭청검 복거유는 나뭇가지에 우두커니 서서 날아가는 묵진휘를 쳐다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어렸을 때부터 검을 잡았으니 이미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났다. 검을 잡은 지 십 년 후부터 자심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성취의 속도를 더욱 빨리 해주었다. 그래서 당당했고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곤 조직의 독립검수, 그 중에서도 별검대別劍隊로서 살아올 수 있었다. 오늘 그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압도적 차이, 무력감은 그의 것이어서는 안될 것들이다. 검으로 수모를 받는다면 주저 없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이란 평소의 다짐도 이 무력감 앞에서는 실종되었다. 다시 굵어지기 시작하는 빗속에서 복거유는 그렇게 굳은 듯 서있었다.



사당에서 다시 세 사람이 모였다. 하지만 누구도 다시 모닥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누구였소? 우리를 쫓는 것이요? 왜?”

남태혼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연발적으로 물었다. 묵진휘도 사실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중이었소. 정확히 우리들을 찾는지도 모르겠소. 다만 따돌리고 왔을 뿐이요”

묵진휘는 복거유와의 일전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찾는 것은 우리 맞소. 아니 나요”

서홍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느낌이 왔던 것이다. 깜깜한 밤에 굳은 표정이 보일 리 없으나 두 사람은 음성으로 서홍의 표정이 어떠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남태혼이 웬 말이냐는 듯이 서홍을 쳐다봤다.

“며칠 전 우리가 제남에 있었잖나?”

서홍이 남태혼을 마주보며 말을 시작했다. 제남 저자거리에서 준수하나 얄팍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자신의 옷을 거지소년이 잡았다는 이유로 소년의 동냥그릇을 깨고 발길질까지 하는 것을 보고 서홍이 이를 괘씸하게 여겨 몰래 청년을 미행한 후 밤에 그 집 담을 넘었다. 서홍은 부자들의 금고를 털어 어려운 사람들을 몰래 도와주는 거창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네도 알지 않나? 내 취미.. 그렇치 않아도 어디를 취미 대상으로 할까 고민하던 차에 아 그 놈의 행패를 목격하게 되었지 뭐야.. 그래서 그날 밤 그 집 담을 넘었지. 그런데 바깥 기색과는 달리 제법 경계가 삼엄한 거야. 내 그냥 돌아 나올까 하다가 자존심에 기회를 봐서 가장 큰 전각으로 침입해 금고를 찾아 열었지. 그랬더니 금고에 은자와 함께 조그만 비단주머니가 있길래 은자 조금과 함께 그 주머니를 가져왔지”

그런데 나오다 기척을 들켜 급히 도망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히 제남을 떠나자고 나를 닦달했던 것이군”

남태혼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서홍은 사실 크게 개념치 않았다고 했다. 은자는 조금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통상 다른 지방에서도 그 정도 집에 사는 부자들은 은자 조금 잃어버렸다고 대대적으로 추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집은 느낌이 조금 이상했어. 좀 전의 검붉은 무복이 그 집 경계무사들의 복장과 똑같아. 일반 부자집 치곤 경계가 삼엄하다고 생각했으나 제남을 벗어나면 큰 문제 없으리라 여겼지”

그러면서 서홍이 품에서 비단주머니를 꺼내려 하자, 남태홍이 제지했다.

“일단 여기를 벗어난 후 다시 얘기하지”

남태혼의 얘기에 셋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으나 길을 재촉해 떠났다. 그나마 비는 그쳐 있었다.


밤새 길을 걸었지만 어느 누구도 피곤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 온 뒤의 아침은 언제나 그렇듯 햇살이 눈부셨다.

세 사람은 남경 방향의 관도를 걷고 있었는데, 뒤쫓는 무리들이 북쪽으로 갔다는 묵진휘의 얘기에 더 이상의 큰 긴장은 없었다.

“이봐, 자네 취미 좀 바꾸면 안될까? 좋은 취미 많잖아? 고상한 걸로 내가 하나 골라줘?

남태혼이 서홍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서홍의 월담 취미를 비꼬는 것이다. 남태혼은 서홍이 월담을 취미로 하고 있는 배경을 알고 있었다.


서홍은 어려서 정말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나라 부역에 끌려가셨다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석에 계셨다. 어린 서홍이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서홍은 동네 파락호에게 이끌려 도둑질을 배웠다. 그러던 중 산 기슭 근처 한적한 장원에 들어갔다 나오는 중에 그만 집주인에게 들켜버렸다. 집 주인은 어린 서홍을 유심히 보더니 집안 사정을 듣고는 서홍을 그냥 보내주었다. 대신 자신에게 매일 오라는 조건을 붙였다. 서홍은 그날 이후로 그에게서 10여 년 넘게 무공을 배웠다. 주로 경신술과 은신술, 잠입술, 위장술 등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서홍을 가리치던 스승이 노환으로 영면하기 전에 서홍에게 일렀다.

“월담을 해도 좋다. 대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 그게 내게 신세를 갚는 길이다”

서홍은 눈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스승 또한 서홍과 비슷하게 가난하게 자라 월담으로 이웃을 도와왔던 것이다. 서홍의 월담에는 큰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부자집을 털되 그리 큰 금액을 가져오지 않으며, 둘째는 가져온 돈의 팔 할 이상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서홍은 우스개 소리로 자신이 나라를 대신하여 부의 재분배를 시행하는 것이라 했다.


남태혼도 물론 진짜로 서홍의 취미를 말리려 하는 것은 아니다. 서홍의 취미는 스승의 유지가 포함된 것이었기에 서홍에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서홍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려 그러한 것이다.

묵진휘도 남태혼을 통해 서홍의 얘기를 듣곤 서홍을 다시 보게 되었다.

“자네나 고상한 취미 많이 개발하시게”

서홍의 대꾸에 남태혼이 묵진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묵형은 취미가 있으시오?”

“특별히 말씀드릴만한 게 없습니다.”

묵진휘가 정중히 대답했다. 묵진휘가 처음 두 사람의 실랑이를 들었을 땐, 악의는 없지만 두 사람이 실없이 싱거운 사람들이라고 조금 가볍게 봤었다. 그래서 바위에 누워 짐짓 두 사람을 놀리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길을 걸으며 조금 겪어보고 배경도 듣고 보니 자신이 선입견을 가졌다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의 속마음에서 진중하고 묵직한 뭔가를 느낀 것이다.

‘이런 것을 배우라고 할아버지께서 나를 산 아래로 보내신 것이구나.’

묵진휘가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선입견을 반성했다.

“남가南家야, 묵형 생긴걸 보면 모르겠니. 취미 없게 생겼잖아?”

서홍이 너스레를 떨었고 남태혼은 흐흐 웃었다. 묵진휘는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농담에 약했던 것이다. 할아버지께 많은걸 배웠지만 농담은 많이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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