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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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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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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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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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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동會同

DUMMY

화산華山 장문인실 탁자 위 두 개의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그윽한 차향茶香이 실내를 조금씩 메워가기 시작했다. 향으로 보건대 맛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차향이 무척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차를 즐기시니 얼굴빛이 예전보다 오히려 좋아지셨습니다”

학자풍의 초로인이 장문인에게 의례적인 덕담을 건넸다.

“제갈가주께서야 말로 아직도 청춘이십니다 그려. 허허”

화산 장문인이 받았다. 선풍도골이 있다면 본래 이런 모습이다 라는 듯한 외양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이 화산을 손수 방문하셨는지···”

“제가 아무리 에둘러 얘기한들 장문인의 안목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갈가주가 호흡을 한번 고른 뒤 얘기를 시작했다.

“무림이 태평성세를 누린지 제법 되었습니다. 저도 선대들의 노고로 이렇듯 평화로운 홍복洪福을 누린다 여기고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본가 총관의 보고를 받고 이상하다 여겨 다른 세가들의 사정도 넌지시 알아봤습니다. 본가와 대동소이하더군요.”

서두序頭를 꺼낸 제갈가주가 얼핏 화산 장문인의 안색을 살피더니 말을 계속 이었다.

“본가 총관 왈, 신입 무인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재정수입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런 사정이 계속된다면 본가의 규모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얘기였습니다. 혹자는 혹시 평화시기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무인지망생이 줄고 수입도 줄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만 이전 평화시기에는 오히려 더욱 큰 성세를 누렸습니다. 다른 세가에서도 이상하게 여기고 있더군요. 혹시 구파九派의 사정은 어떠신지요?”

제갈가주는 세가의 살림살이를 누설한다는 부끄러움도 없지 않았지만 태생적으로 머리가 좋고 감각이 뛰어난 탓에 현재의 상황이 위기임을 직감하고, 가감 없이 세가勢家 사정을 얘기한 것이다. 그리고 화산 장문인의 성품이 솔직하고 담백하여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부담감이 덜하기도 했다.

“어허~그렇구려. 가주시기에 저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본 파의 사정도 세가와 크게 다르지 않소이다. 아시다시피 본 파는 속가문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소. 그런데 근래에 속가문에서 운영하는 상단들이 조금씩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합니다. 신흥상단이 많이 생겨난 탓이지요. 예전에는 화산 속가문이라는 이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그리 큰 이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허허 참~”

제갈가주인 제갈군의 짐작대로 화산 장문인은 솔직하게 화산의 사정을 그대로 털어 놓았다.

“짐작대로군요. 장문인께서는 이대로 두고 보실 작정이십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대책을 가질 수 있겠소? 힘으로 신흥 상단을 제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상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화산 장문인은 세상이 그러한데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겠냐는 투였다. 하긴, 깊은 산속에 묻혀 세속의 일은 잊은 채 도를 닦는 일에 주력하는 화산 장문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 인식이기도 했다. 반면에 세상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각종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오대세가는 구대문파와 달리 실리實利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세상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리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제갈가주가 은근한 눈빛으로 화산 장문인을 바라본다.

“누가 무엇을 만들고 있다는 말씀이오?”

화산 장문인은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제갈가주가 화산을 방문한 본론에 이르렀다 생각했고, 깜짝 놀라는 것은 본론을 말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무림이었으며 무림이 곧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상이 많이 약해진 것이죠. 더불어 수입도 줄고. 세상이 자연히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 그리 만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제갈가주가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은 피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본론으로 점점 들어갔다. 제갈가주의 말에 화산 장문인의 놀란 눈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누군가의 소행이라기 보다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노력 부족을 말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갈가주의 본론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말없이 눈빛으로 가만히 제갈가주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본론은 뒤에 나오기 마련이었지만, 정파에서 그런 경향은 훨씬 더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비무比武를 중심으로 공개적인 영웅대회를 개최하는 겁니다. 구파와 세가에서 중견과 후기지수를 중심으로 실력자들을 출전시켜 위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추한 명예와 위상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갈세가주가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상체를 화산 장문인 쪽으로 기울여 눈을 맞춘 채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오호~그것 좋은 생각이요. 그렇지 않아도 젊은 제자들이 배운 바를 확인하고픈 생각이 강한데 마땅한 방안이 없어 내심 답답해 한다는 장로들의 말이 있었소. 영웅대회가 열린다면 두루 좋은 대안이 될 듯하오”

화산 장문인, 운월자가 흔쾌히 제갈가주의 제안을 반겼다.

지금 무림은 오랜 세월 동안 평화시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늙은 자신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젊은 후기지수들에게는 평화의 시대가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것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평화의 진가를 젊은 시절에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무인에게는.

그런 의미로 보자면 운월자가 영웅대회에 동의하는 중점은 제갈가주와는 조금 달랐지만 그것이 지금 시기에 중요한 차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 구파와 세가를 설득하기로 하고 가을 초입에 무한에서 영웅대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키로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늦겨울 어느 날에 이루어진 회동으로 무림은 각자의 움직임을 조금씩 태동시키고 있었다. 한 겨울 언 땅속에 있던 새싹들이 봄을 맞아 싹을 피우듯이···



한겨울 동안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부지런히 서로를 오가면서 영웅대회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결과, 따뜻한 봄바람이 세상을 휘감을 즈음에는 가을 무한에서의 영웅대회는 기정사실이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강호는 오랜 만에 활기에 가득 찼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어디 활기만 있을 것인가?


“이번 영웅대회에는 남궁세가에서 이공자가 출전할 것이오. 그 일행이 무한으로 갈 때 기습하여 제거할 수 있도록 준비 해주시오”

안휘성 상계에 갑자기 나타나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안흥상단의 장선석 단주는 품에서 두툼한 봉투를 빼내 흑갈색 탁자위로 내려놓으며 맞은편 장년인들을 차례로 응시했다.

“이공자는 그 무공이 나이에 비해 낮지 않다 들었소”

“아직 남궁세가를 공격하는 것은 시기상조 아니겠소?”

맞은편에 앉은 장년인 중 두 명이 차례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탁자 위 봉투의 두께를 가늠하느라 장선석 단주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그럼 언제나 그 때가 오리라 생각하시오? 아무런 도전 없이 그 날이 저절로 그냥 오리라 생각하오?”

장선석 단주는 시기상조론을 피력하고 있는 석곤방주 강흥기를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며 되물었다.

“나는 장단주의 말씀에 동의하오. 우리가 남궁세가에 눌려 보낸 세월이 수십 년이오. 우리 세 사람이 언제 편하게 만나 술 한잔 나눠본 일이 있소? 우리가 모이기만 해도 어느새 남궁세가에서는 흑도방파의 통합을 도모한다고 압력을 행사하고 우릴 감시하지 않았소? 우린 이대로 있으면 서서히 말라 죽을 것이오. 이러나 저라나 죽기 매한가진데 지금이 최적 아니오? 그 동안 여기 계신 장단주의 지원으로 비밀리에 제법 세력을 키워왔지 않았소?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 것이오?”

적의방주 최대수는 스스로 비장한 듯 석곤방주와 흑철방주를 쳐다보며 나름 지난날의 응어리를 풀어놓고 있었다. 최대수는 다른 두 방주와 달리 아버지로부터 적의방주 자리를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남궁세가와 이권 충돌 과정에서 죽음을 당한 후 복수의 나날을 벼르고 있던 차였다.

“그건 그렇소만···내 말은 우리측 위험이 너무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석곤방주 강흥기는 슬며시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만일 우리 소행이라고 발각되는 날에는 우리 모두 이곳 안휘성에서 두 번 다시 편안한 잠을 청해볼 수 없을 것이오”

흑철방주도 위험의 크기를 표현하듯 양팔을 크게 좌우로 벌리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건 다 방법이 있소. 우리 세 방파에서 고수 몇 명을 차출하고 외부 고수도 초빙하여 동일복색하에 단일지휘체계로 공격하면 남궁세가에서도 쉽사리 우리를 짐작키 어려울 것이오. 남궁세가는 꿈에서도 감히 우리가 자기들을 공격하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 이번에 그 놈의 오만을 납작하게 눌러 봅시다”

적의방주 최대수는 모임 전에 미리 장선석 단주가 일러준 방책을 자신의 생각인 양 태연하게 말했다.

“이번일 만 잘 처리해주신다면 본 상단에서는 결코 그 보은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오”

장선석 단주는 조용히 품에서 봉투 두 개를 더 꺼내 놓으며 이번 협상은 이 정도로 끝내자는 눈빛을 세 방주에게 전달했다.



“적의방주가 역할을 잘 수행했습니다. 안휘성 흑도방파 통합수장 자리에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하하”

세 방주가 자리를 뜬 후 장선석 단주와 함께 협상자리에 있었던 안흥상단의 삼행수 호극봉이 웃으며 말했다. 회의 전날 호극봉이 적의방주를 방문해 안휘성 흑도방파 통합수장이 될 수 있도록 안흥상단이 지원할 것이란 약속과 함께 나머지 두 방주들의 우려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알려주었던 것이 그대로 먹혀 들자 스스로 뿌듯한 심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호극봉이 장단주의 안색을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장단주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놈들로서 남궁세가에 대응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장단주는 고저高低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전 세 방주와의 회의 때 보여주었던 상인의 모습은 어느덧 없어지고 차갑고 과묵한 본래의 성격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럼 또 다른 대책을 마련하셔야···”

호극봉은 의문스러운 듯 되물었다. 자신의 상관이 대화를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되물은 것이다.

“필요 없다. 그리고 요청인력은?”

“예, 추적에 특화된 20명을 골라 보냈습니다”

장선석 단주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다.

그는 상부에서 이번 영웅대회를 적극 활용하려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삼세력을 이용해 남궁세가 일행을 기습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영웅대회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과 상충되는 것이었다. 좀 전 호극봉이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자신이 이미 명령 전달자에게 물었었다.

“회會에서는 기습하라고 하셨소”

명령 전달자의 짤막한 대답이었다. 기습을 하라고 하지 기습을 성공시키란 말은 없는 것이다.

그것으로 장선석은 충분히 이해했다. 이번 기습은 성공과 실패가 관건이 아님을···

그러나 장선석은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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