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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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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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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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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8. 변수 인정

DUMMY

난을 치는 붓끝에는 한 치의 주저함이 없다. 애초 주저함이 있었다면 붓을 들지 않았으리라. 횡이수전주의 등 뒤 원탁에 앉아, 찻잔에서 피어 오르는 향을 맡으며 부전주 장세모는 전주의 붓 놀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주저함이 없는 붓 놀림에도 불구하고 종이에는 아직 여백이 가득하다. 오랜 신중함 뒤에 붓을 놀렸고, 붓을 놀림에 있어 주저함은 없다. 전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변수가 생긴 듯 하다는 얘긴가?”

“그렇습니다. 목걸이가 도난 당하고, 뒤쫓던 독립검수 네 명이 실종되었으며, 제가 제남에서 이곳으로 돌아 오는 길에 미행이 있었습니다. 두 놈이었는데 잡았더니 입을 열기 전에 죽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더 이상 우연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그래. 우연이 그리 잇달아 일어나면 우연이 아니지. 세 사건이 하나의 뿌리라고 생각하는가?”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렇게 간주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전주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것이 정보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다. 연속되는 우연은 없다.

“어찌할 생각인가?”

“무정도無情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유정검有情劍과 함께 삼공자를 모시고 무한으로 가 있네. 우선 목걸이를 훔쳐간 놈들의 정체부터 파악해보세. 누군지 알고 난 후 무정도를 보내도 늦지 않을 것이네. 추밀대를 동원해 우선 정체를 파악하게.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면 곤란하지”

전주는 나무람 없이 그윽하게 말했다. 전주도 부전주가 이미 자신이 걱정하는 정도는 생각했을 것임을 알았다. 다만 그는 자신보다 항상 생각이 한 끗 모자랐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허허, 아니네. 참, 변수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네. 영웅대회 참가자들 몇몇이 습격을 받아 죽었지. 우리가 준비한 것은 아니라네. 아마 마교일테지. 그런데 마교가 자신들과 상관없는 목걸이를 쫓지는 않을 터. 두 변수는 일단 다른 뿌리라고 봐야지. 그런데 만일 두 변수가 하나의 뿌리로 엮여 있다면?”

전주는 붓을 내려놓고 부전주를 향해 돌아서면서 인자하게 물었다.

“···”

부전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은 사실관계도 모르고 있는 사안이다. 자신이 제남에 파견되어 있던 동안에 발생한 사건이다. 사실관계 조차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전주도 자신의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물은 것이다.

“만일 하나의 뿌리라면 제법 긴장되는걸. 적어도 회會와 유사한 수준의 세력일 테니까 말이야. 오랜만에 황장로님이나 좀 뵈어야겠군. 자네는 정보체계 본격 가동 준비를 좀 해주시게”

“알겠습니다.”



마교의 교주는 오늘도 난향헌에서 난을 돌보고 있었다. 난을 돌보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뒷 모습은 통상 늙은 촌부의 메마른 등짝이어야 할 터인데 교주의 뒷모습은 장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모현은 날개를 접고 태풍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붕의 모습이 있다면 저러하리라 생각했다.

“허허~ 한 치 반이라.. 그들도 한 치 반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

교주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모현이 제남 장원에서 한 치 반의 목걸이를 도난 당한 후 추적자들이 파견되었으나 오히려 실종되었고, 동창 정조장이 제남 장원에 나타난 것 등을 모두 보고한 뒤였다. 보고 내용에는 당연히, 장원의 노인이 장원을 떠나자 수하들로 하여금 미행케 했었는데 그들이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동창을 감시하다가 파악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찾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했다 합니다”

“그럴 테지. 한 치여야 하니까···”

교주가 빙긋 웃었다. 교주는 제남 장원에 머물던 횡이수전의 부전주가 찾는 목걸이가 두 치 짜리라는 것까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좀 더 알아낸 것이 있는가?”

“죄송합니다. 그 장원은 제남에 있는 제길상단 소유의 장원이었는데 며칠 전 상단을 헐값에 팔고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노인은 제남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도중에 미행하던 수하들이 죽어 행방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모현이 송구스러움에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목걸이의 행방을 쫓는 세력이 동창 말고 둘 이나 더 등장한 셈이구먼. 목걸이를 도둑 맞은 세력과 훔쳐간 세력이라···”

교주가 일어서며 호미를 모현에게 넘겼다. 다시 단서를 찾아야 했다.



“뭐라? 호남성으로 나갔던 흑비쌍검이 죽어?”

마교 총군사 갈군형은 수하의 보고에 어이가 없었다.

“대상이 누구였지?”

수하가 호남일협 장기호라고 대답했다.

“그 정도에 흑비쌍검이 당해? 흑정전에서 보내준 정보가 정확하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지금 장기호는 무한으로 갔는가?”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럼 장기호에게 당한 것은 아니겠군. 흑정전에 이 사실을 알리고 흉수가 누군지 파악하여 추적하라 전하라”

“복명”

수하가 물러나자 갈군형은 이마살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 흑비쌍검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소한 실수가 언짢아진 것이다.



넓은 대청에 십 오명 정도가 둘러 앉아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흉수가 대체 누구인지 짐작이 가시오?”

성격 급한 팽보기가 좌중을 둘러보면서 빨리 대답 해달라는 듯이 큰소리로 얘기했다.

하지만 끙끙대는 소리, 혀를 차는 소리들이 산만하게 들릴 뿐 정작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선 상황을 먼저 정리해봅시다. 영웅대회 참가를 위해 각지에서 무한으로 오는 참가자들 10여 명이 기습을 당했소. 기습을 당한 사람은 대부분 개인 참가자로서 혼자 무한으로 오고 있었소. 그리고 모두 죽임을 당하였소. 당한 흔적으로 봐서 모두 대단한 고수들에 당한 듯 보인다 하오.”

무림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제갈세가 사람답게 제갈청의 차분한 상황 정리에 산만했던 좌중이 조용하게 제갈청을 쳐다 보았다.

“혹시 모두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습격을 받은 것은 아니겠소? 물론 십 여명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습격을 받았다 하니 이도 무리한 추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누가 동시에 이들을 습격했겠소? 습격한 지역이 호남성, 강서성, 섬서성 등 전 중원에 산재해 있지 않소? 당금에 누가 있어 이러한 습격을 계획적으로 실행할 수 있겠소?”

종남 유명일 장로가 난감하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현실성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남궁세가의 이공자도 습격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무사합니다만..”

제갈청이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십 여명에 대한 기습과 남궁세가에 대한 습격을 꼭 단일세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겠소? 남궁세가에 대한 기습자들은 여러 명이었고, 정황상 볼 때 그 무공 수준이 다른 기습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듯 하오”

유명일 장로가 의문점을 피력했다. 제갈청도 그 점을 계속 의문스러워하고 있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만 공교롭게도 동시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참···”

제갈청이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 마교의 소행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당의 명진도사가 불쑥 말했다. 좌중은 순간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조금씩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수십 년 이상 조용이 숨죽이고 있던 마교가 움직인다면 이건 영웅대회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마교가 준동할 때마다 무림에 피바람이 불고 울음소리가 천둥소리를 덮었지 않았던가?

“본가를 습격한 무리들은 마교로 보이진 않았소이다. 무공이 정순하지 않고 난잡한 것이 사파 성향인 듯했고 마기가 느껴지진 않았소이다”

이번에 남궁세가 이공자와 함께 온 남궁진산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습격을 당했기에 누구나 그 말을 신뢰할 수 있었고 또 믿고 싶었다. 다른 기습의 생존자가 없는 상황이니 남궁진산의 말은 유일한 현장 증언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우선 기습자들에 대한 조사는 개방에 부탁함이 어떻겠습니까? 일간 개방에서도 장로분이 오신다니 그 분께 말씀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파와 세가에서 무인들을 충원하여 영웅대회 경계에 보다 만전을 기해야겠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청성의 진운진인께서 세부 안을 다시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의견 없으시면 그 안건은 그렇게 우선 정리하고 모인 김에 영웅대회 운영에 대한 의견이나 나누시지요”

소림의 무굉대사가 조용히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현 소림 장문인 무승대사의 사제로 여기 모인 장로들의 좌장 같은 위치에 있었다. 다들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는 문제에 답답해 하던 차에 모두 그러자고 동의했다.

“아직 비무대회 운영방식을 확정하지 못하였습니다”

영웅대회 운영을 맡은 청성의 진훈이 안건을 제시했다.

이번 영웅대회에 참가하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후기지수들을 예선부터 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본선 어느 수준에서 참여시킬 것인지 아직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탓이다.

아무도 선뜻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탓이다.

“우리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후기지수들이 예선 처음부터 참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하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는 무림인이면 모두가 그 역사와 실력을 인정하지 않소?”

성질 급한 팽보기가 먼저 말했고 모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본선 몇 회차 정도부터 참여하면 되겠소?”

화산의 운중자가 예선부터의 참여는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본선 이 회차 정도부터 참여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우승까진 다섯 차례나 비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 구파와 개방, 오대세가, 그리고 해남검문은 본선 이 회차부터 참여하고 나머지 중요 문파, 세가 및 강호명숙의 제자들에게 본선 일 회차부터 참여 기회를 보장하면 달리 별말은 없을 듯 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다는 듯이 모용세가의 모용준이 안을 내놓았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도 본선 일 회차부터 출전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 회 차부터라면 다른 문파와 세가들의 불만도 제법 있을 듯 하오만···”

곤륜의 문현자가 약간 걱정스러운 듯이 좌중을 둘러봤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번 영웅대회를 위해 기금을 출연하고 인력과 물자를 지원하는 것도 모두 우리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정황을 고려하면 누가 딴소리를 하겠습니까?”

모용준이 문제없다는 듯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대부분의 장로들은 모용준의 제안에 조금 낯뜨거움을 느꼈지만 굳이 나서서 예선 참여나 본선 일 회차 참여를 주장하진 않았다. 그런 주장을 한다면 모난 돌이 정 맞듯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 뻔했고, 또 조용히 있음으로 해서 가지게 되는 실리도 컸기 때문이다. 반대가 없으니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진 셈이 되었다. 그렇게 기득권은 암묵적 동의 속에 계속 유지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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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푸른 삼각목걸이 +4 16.12.06 6,810 7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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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내기 +3 16.12.06 8,878 72 12쪽
2 1. 회동會同 +4 16.12.06 13,651 76 12쪽
1 서장 +3 16.12.06 16,970 9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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