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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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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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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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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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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 새로운 국면

DUMMY

무한 외곽의 한 장원.

한 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장원의 오후는 서늘했다. 산 속이라 바람이 서늘하기도 했지만 하나의 경악이 장원의 공기를 더욱 서늘하게 했다.

가냘픈 체격의 한 중년 사내가 꺼이꺼이 울고 있고 옆에서 젊은이가 그를 다독이고 있다.

“유정숙부, 진정하십시오”

“어젯밤에 본 그 놈 얼굴이 마지막이라니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꺼이꺼이. 내 그러길래 같이 가자 하지 않았더냐 이 놈아~ 꺼이꺼이”

유정숙부라 불린 중년인은 젊은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삼공자, 전서구 편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시오. 내가 잘못 읽었겠지. 커억커억~”

젊은이가 편지를 다시 중년인에게 건네 주었다. 편지에는 무정도와 삼각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용의자와의 대결이 제법 소상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는 용의자가 무정도의 무덤을 정성껏 만들고 그의 애병愛兵 무정도를 무덤 앞 바위에 비석처럼 박아 놓았다 했다.

“내 반드시 그 놈의 목을 베어 무정숙부 무덤 앞에 놓고 한 잔 술을 올려 숙부의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삼공자라 불린 젊은이가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아니오, 삼공자. 그 놈은 행복하게 갔을 것이오”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행색마저 정돈한 중년인이 젊은이에게 말했다.

“편지에 보면 무정도 그 놈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절초를 처음부터 펼쳤소. 상대가 대단한 고수임을 느낀 것이오. 승부는 단 일합에 끝났소. 무정도는 자격이 없는 상대에게 죽은 것이 아니오. 그 놈은 그런 고수와의 단 일수를 꿈꾸어 왔소. 그 놈 꿈대로 된 거요. 상대가 그 놈 무너지던 순간에 고개 숙이고 무덤까지 만들어 준걸 보면 둘간에는 승부를 앞두고 많은 교감이 있었던 듯 하오. 그만 하면 행복하게 갔을 것이오. 상대도 젊다 하니 난 그 놈이 살았으면 상대를 무척 아꼈을 거라고 생각하오. 아마 삼공자 대하 듯 하였을 것이오. 난 상대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소. 본 회會가 상대에게 원한에 찬 복수를 한다면 본 회는 무정도 그 놈을 잘 모르는 것이요”

중년인이 젊은이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젊은이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젊은이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듯 눈물을 숨기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숙부님 말씀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하지만 횡이수전주에게는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상대에 대해 정확히 파악도 하지 못한 채 감히 무정숙부를 동원하다니요.”

젊은이의 분노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정도의 죽음은 횡이수전으로도 알려졌다.

횡이수전주 방에서 전주와 부전주가 원탁에 앉아 있다. 오늘은 탁자에 찻잔도 놓여 있지 않았다. 탁자에는 전서구로 보내온 편지 한 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전주는 신중하게 용의자들에게 접근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부전주에게도 우선 용의자들의 정체부터 파악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용의자들과 삼각목걸이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무정도를 바로 동원했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용의자들이 젊다는 말에 신중함을 풀어버린 것인가? 아니다. 신중함을 풀었다면 감히 무정도를 동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삼공자를 보필중인 이때. 하지만 젊다는 말에 긴장의 끈이 약간 느슨해진 것도 맞을 것이다. 젊은 놈이 감히 무정도를 쓰러뜨릴 거라 누가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장담컨대 본 회 누구도 그런 상황이었으면 자신처럼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그 약간이 문제다. 그 약간이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용의자가 중년 이상이었다면 유정검을 동시에 동원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다. 우선 생각을 끊고 벗어나야 한다.

부전주를 바라본다.

“어떻게 생각하나?”

추상적이다. 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묻는다. 묻는 자의 특권이다.

“전주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용의자들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목걸이의 크기도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르니 당장 목걸이 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무정도의 복수보단 인내를 가지고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대책은 그 후에 세워도 될 것입니다. 이제 놈의 얼굴을 정확히 알았으니 추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보 체계를 적극 가동하겠습니다.”

부전주는 평소와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했다. 이럴 때는 자신이 적극 나서야 한다. 조직에서 질책의 눈길을 보낼 때, 눈길을 받는 전주가 소극적인 대응안을 피력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위기라는 압박 때문에 합리적인 대응을 벗어나는 순간 정말 주체할 수 없는 큰 위기가 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부전주다. 일보 후퇴다. 지금 전주는 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허헛, 다시 기본부터 시작하는 게 맞겠지?”

전주가 한숨 쉬 듯 부전주를 바라봤다.



오늘은 난향헌이 아니라 교주 집무실에서 교주가 모현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무정도가 나타났다?”

교주가 약간 놀란 듯 보고 내내 감고 있던 눈을 뜨며 모현을 쳐다보았다.

무정도는 일찍이 진경의 수준에 오른 초절정 고수였다. 진경에 접어든지 이미 오래이니 지금쯤 그 성취가 상당하리라. 교에서는 중원 고수들의 동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암살을 위해서도 회유를 위해서도 필요했었다. 일찍이 오래 전에 교敎에서도 무정도를 접촉한 적이 있었다. 입교入敎를 권유했다. 그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정도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자신은 떠돌이일 뿐이라고. 실제 무정도는 구파나 세가 출신이 아니었고 어디에도 몸담지 않았었다. 홀로 불현듯 무림에 나타났다가 십여 년 전에 불현듯 사려졌었다.

“그런데 그 무정도가 삼각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허허, 그 정도인가? 그가 누군지는 아직 모른단 말이지? 그를 건들지 말고 우선 계속 주시하도록. 그리고 목걸이를 쫓는 세력들을 더욱 자세히 살펴봐라. 원하는 목걸이가 아닌데 목걸이를 쫓는 이유는 무엇인지, 목걸이는 왜 가져간 것인지 밝힐 필요가 있어. 무정도를 끌어들일 정도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리라. 점점 재미있어지는군. 무정도를 끌어들일 수 있는 세력에 그 무정도를 꺾을 수 있는 젊은 고수를 보유한 세력이라···하하하”

교주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큰소리로 웃었다.

“참,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삼마존을 무한으로 보내 대기시키도록”

“복명”

‘삼마존이라···’

모현이 삼마존을 떠올리며 뒤돌아서 집무실을 나갔다.



무정도를 묻고 객잔으로 돌아온 묵진휘는 자기 방에서 생각에 잠겼다.

‘능히 화경에 이른 고수였다. 그는 왜 기쁘고 고맙다고 했을까? 나는 왜 그 싸움을 피하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에 생각이 거듭 피어 올랐다. 느낌으로서는 알 듯도 하다. 하지만 말로서 말하긴 어려웠다. 묵진휘는 스스로의 말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문득 할아버지가 그리워졌다.


“휘야~”

할아버지는 언제나 자애롭게 묵진휘를 불렀다. 근래에는 목검으로 바위를 가르는 수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위 베기가 재미있느냐?”

“될 듯한데 되지 않으니 답답해서 자꾸 하게 되요. 조금만 더 수련하면 될 것 같기도 해요”

아직 목소리도 변하지 않은 묵진휘가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 고비를 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들어볼 테냐?”

묵진휘는 당장에 목검을 거두고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 툇마루로 달려갔다. 할아버지께서 가르침을 주려는 것이다. 이 때는 만사 제쳐 놓고 할아버지에게 달려 들었다. 깨닫는 재미가 있었다. 어렸지만 그 재미를 알 수 있었다. 묵진휘가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첫 번째 방법은 익숙하게 됨으로써 넘는 것이다. 습習이다. 수많은 반복을 통해 몸에 익히고 칼에 익히는 것이다. 양을 축적하여 질을 바꾸는 것이다. 무릇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여기 댓돌에 구멍을 내지 않느냐? 아무런 힘도 없는 물방울이 지속되면서 단단한 바위를 뚫는 것이다. 조금만 물줄기들이 모여 도도한 강물을 이루고 장엄한 바다를 이루는 것이다. 지속함으로써 익숙하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변하는 것이다. 지금 휘가 하는 목검으로 바위 베기가 그것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이다.”

묵진휘는 나머지 한 가지 방법이 뭔지 궁금해 할아버지를 추궁하듯이 쳐다봤다. 어서 빨리 말씀해달라고.

“두 번째 방법은 생각하는 것이다. 각覺이다. 지속하여 익숙해지기 보단 생각으로 모든 사물의 이치理致를 깨우치는 것이다. 모든 자연은 각각의 법칙이 있다. 그 법칙을 궁리窮理하여 깨우치면 길이 보인다.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한 순간에 고비를 넘을 수 있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묵진휘가 당돌하게 물었다.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는 거예요?”

“수레 바퀴가 하나만 있으면 어떨 것 같으냐? 넘어지기 쉽단다. 두 개의 수레바퀴가 있어야 안정감 있게 많은 짐을 나를 수 있지. 수레 본연의 역할에 걸맞게 되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란다. 두 바퀴는 함께 가는 것이지. 어느 한 바퀴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레가 나아가지 못한다. 습習과 覺은 수레의 두 바퀴란다.”

영특한 묵진휘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이해했다. 자신이 궁리는 하지 않고 목검으로 바위만 자르는 습習만 하고 있기에 하신 말씀일 것이다.

“그럼 할아버지가 궁리한 바를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

묵진휘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習도 覺도 스스로가 하는 것이란다. 자기 몸으로 행할 수 있어야 습이고, 생각을 자기 말로 말할 수 있어야 각이란다. 물론 다른 사람의 습을 보는 관觀도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각을 배우는 학學도 중요하지. 그래서 두 바퀴 수레보단 네 바퀴 수레가 더욱 안정감이 있고 더 많은 짐을 나를 수 있단다. 하지만 스스로 행하는 습과 각을 관과 학이 대신해주진 못한단다. 각이 없는 세 바퀴 수레는 오히려 두 바퀴 수레보다 못하겠지?”

알아 들었다는 듯이 묵진휘가 바위 앞으로 가더니 쪼그리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그런 묵진휘를 쳐다 보고 있었다.


회상에서 벗어난 묵진휘는 조용히 무정도를 떠 올리며 피어 오르는 생각들을 자신의 말로 가슴 속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정리가 다 끝날 즈음 하나의 얼굴이 무정도의 얼굴에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 얼굴은 얼마 전 무한 객잔에서 본 남궁세가의 젊은 공자였다. 진정한 무인의 길을 가겠다던 남궁세가의 젊은 공자와 무정도는 그렇게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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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푸른 삼각목걸이 +4 16.12.06 6,810 74 11쪽
4 3. 첫대결 +3 16.12.06 7,239 81 11쪽
3 2. 내기 +3 16.12.06 8,878 72 12쪽
2 1. 회동會同 +4 16.12.06 13,651 76 12쪽
1 서장 +3 16.12.06 16,970 9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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