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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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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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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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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 내기

DUMMY

제남과 합비 사이에 있는 서주徐州 부근의 산길은 고도가 그리 높지 않으나 제법 초목이 무성해 나뭇가지 사이로 봄볕이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걷기엔 무척 좋은 날씨였다.

여행객처럼 보이는 젊은 사내 하나가 그 호젓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호리한 체격으로 키는 조금 큰 편이었지만 싱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원래 검은색이었던 것이 분명했을 그의 무복은 지금 흐릿한 회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화사한 원색의 봄 꽃, 싱그러운 초록의 나무들과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흐릿한 회색이 원래 봄의 한가지 색깔이나 되는 것처럼 그 속에 동화되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것이 옷의 색감 때문에 그러한 것인지, 젊은이가 풍기는 기운 때문에 그러한 것인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누군가 산속에서 그 젊은이를 봤다면 분명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가 사람을 만난 것은 호젓한 산속이 아니었다.

산속의 봄 기운과 무척 잘 어울리던 젊은 사내가 산길을 막 벗어나 남경과 합비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다다를 무렵 멀리서 언성 높은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니 두 남자가 다투는 소리다.

“남경으로 가세. 일찍이 손권이 도읍으로 정해 나라를 건국한 곳이 아닌가? 명승고적과 구경거리가 어디 합비와 비할 것인가?”

“어허, 무슨 소리··· 우리가 누군가? 그래도 칼밥을 먹으며 도산검림刀山劍林에서 살기를 바라는 강호인 아닌가? 어찌 남궁세가가 있는 합비를 두고 고리타분한 관리들 냄새나는 남경을 주장하는가?”

중키의 호리한 남자와 조금 작지만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우리 둘이 다투어본들 양보는 없을 터인바, 운에 맡겨봄세. 저기 걸어오는 젊은 여행객이 가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게 어떻겠는가?”

호리한 남자가 단단한 체구의 남자에게 제안했다. 멀리서 보니 남루한 행색에 검劍이나 도刀를 지니고 있지 않은걸 보니 강호인은 아닌 듯해 보인다. 일반인이라면 합비보단 문물이 풍부하고 볼거리가 많은 남경방향으로 가리라 생각한 탓이다. 물론 여기서 남경이나 합비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았으니 이 부근을 지난다고 그 사람의 목적지가 합비나 남경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호리한 남자는 나름의 생각이 무척 논리적이라고 스스로 칭찬하는 마음이었다.

“좋네. 대신 저 사람에게 어떠한 신호나 말로 의중를 표시하기도 없기네. 그리고 그냥 승부하는 것은 싱거우니 은10냥 정도 내기를 거는 것은 어떻겠나?”

체구가 단단한 남자가 호리한 남자의 제안을 흔쾌히 받으며 오히려 승부에 불을 질렀다. 은 10냥은 그들 각각이 수중에 가지고 있는 전재산이나 다름 없었다.

“좋은 생각이네. 딴 소리하기 없기네”

둘은 갈림길의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걸어오는 젊은 여행객을 기다렸다.

하지만 젊은 여행객은 그들이 서있는 곳으로부터 십장 정도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짊어지고 있던 행낭을 풀어 육포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사실 젊은 여행객은 이미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들이 왜 자기를 기다리는지 알고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거리였지만 젊은 여행객은 쉽게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여행객은 따분하던 여행 중에 그들의 내기에 재미를 느꼈는지 갑자기 치기稚氣가 올라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두 남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조금 기다리면 저 젊은 여행객이 일어나 움직일 거라 생각한 탓이다. 그렇게 한 식경 가량이 지나갔다.

‘이제 일어서려는 모양이구나’

호리한 남자가 속으로 웃으며 곧 그들의 승부가 판가름 나려니 여길 때 갑자기 행낭을 여미던 젊은 여행객이 행낭을 베게 삼아 바위에 드러눕는 것이 아닌가?

‘저 미친놈이 우리 복장을 뒤집을 심산인가? 아예 드러누워 자려고 해?’

부지불식간에 호리한 남자가 바위에 누워있는 묵진휘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때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호리한 남자의 팔을 잡으며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저 놈이 아예 잘 모양일세. 가서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고 우리 승부를 결정짓기로 하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아무런 말과 표시를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먼저 가서 말을 거는 사람이 지는 걸세]

호리한 남자의 전음에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끝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드디어 이놈이 자기 장기를 살리려는 모양이구나. 좋다. 나도 한 끈기 하지. 어디 두고 보자’

호리한 남자도 질세라 입을 꾹 다물고 팔짱을 끼며 바위 위의 젊은 여행객을 죽일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흐흐.. 네놈이 얼마나 가만히 있는지 보자. 끈기라곤 새발의 피만큼도 없는 놈이..’

단단한 체구의 남자는 속으로 이미 승부는 자신이 이긴 것과 진배없다는 생각에 흐뭇한 표정으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나고 있었다. 호리한 체격의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태어나서 가만히 한 시진을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있었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더듬어봤지만 없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곤. 그런데 옆의 남자를 보니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마치 자는 듯 미동도 없이 있는 것이 운기 조식하는 듯한 모양새다.

‘아~포기할까? 그냥 합비로 가? 안돼~~. 은10냥도 문제지만 저 놈한테 지면 대대손손 우려먹고 고아먹어 후손들 마저 나를 원망할거야. 내가 그 원성에 구천九泉에서도 편치 못하지. 에그~’

호리한 남자는 옆의 남자를 한번 흘끗 본 후 조용히 바닥에 있는 조그만 자갈 하나를 발로 톡 차서 바위로 날려보냈다. 발의 움직임이 얼마나 민첩하고 조용했는지 메마른 흙바닥에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자갈을 날려보냈다. 그런데 바위로 날아가던 자갈은 곧 톡 소리와 함께 바위를 피해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풀숲에 떨어져 버렸다. 옆에 있는 미련 곰퉁이 같은 놈이 발로 또 다른 자갈을 날려 호리한 남자의 자갈을 쳐내버린 것이다. 그리자 호리한 남자는 실망했는지 옆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렇게 또 반 시진이 지나가고 있었다. 호리한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옆의 남자에게 막 뭐라고 말을 할 찰나 얼굴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소나기를 내릴 모양이었다.

‘야호~.. 하늘이 날 돕는구나. 저 놈이 이 빗속에 그대로 누워있지는 않겠지?’


벌써 어둑한 가운데 비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사당이지만 비를 피해 하룻밤 지낼만하다. 젖은 나무 탓에 모닥불은 불꽃보다 많은 흰 연기를 토해내고 있고 토끼 한 마리가 꼬챙이에 꿰어져 흰 연기를 마시듯 올려져 있다. 모닥불 주위의 세 남자는 흰 연기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흰 연기 속의 토끼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이제 다 익은 듯 하니 먹읍시다”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뒷다리 하나를 뜯어 젊은 여행객에게 넘겨주고는 나머지 뒷다리 하나를 뜯어 얌전하니 먹기 시작했다.

“왜 너 놈이 뒷다리를 먹는 게야? 내가 잡은 토낀데..”

호리한 체구의 남자가 단단한 체구의 남자를 흘겨보면서 앞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네 놈이 먼저 움직였으니 진 게지. 졌으면서 웬 말이 그리 많누?”

“무슨 소릴.. 여기 묵형이 남경으로 간다 질 않느냐? 네놈이 진 거지. 잔말 말고 은 10냥을 내놓아라”

둘은 아직도 승패를 두고 장작불 타듯이 계속 토닥대고 있었다.

내기 와중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젊은 여행객, 묵진휘墨珍輝는 얼마 전에 지나온 사당을 생각해내곤 지나온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고 뒤이어 호리한 체구의 서홍이 묵진휘를 잡을 듯 따라 뛰자 단단한 체구의 남태혼도 따라와 사당에 들어온 것이다. 사당에 들어온 서홍은 묵진휘에게 어디로 갈 계획이었는지, 왜 바위에서 누워버렸는지 물었고 묵진휘는 남경으로 갈 계획이며 그냥 졸려 누운 것이라고 대답했다. 서홍은 묵진휘의 대답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노려봤지만 자기들끼리 내기한 얘기를 그 먼 곳에 있었던 묵진휘가 들었을 리 없다 여기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남태혼이 이왕 이렇게 된 것 서로 통성명하고 여기서 하룻밤을 묵은 후 같이 남경으로 동행하자는 제안에 서로 그러자고 한 뒤였다.


“또 다른 일행이 있소?”

한참 토끼고기를 먹던 묵진휘가 갑자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아니오. 우리 둘 뿐이요. 왜 그러시오?”

서홍이 빠르게 대답하며 되물었다.

묵진휘는 대답 없이 토끼 고기를 마저 뜯었다. 좀 전부터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살기殺氣라고 하기엔 약했고 긴장감이라 하기엔 훨씬 짙은 것이었는데 아무튼 우호적이진 않은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강하진 않지만 주위에 넓게 퍼져있었다.

“잠깐 자리를 피합시다”

뒷다리를 다 먹은 묵진휘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흙을 덮어 불을 끈 후 위로 손짓을 하더니 사당 창문을 넘어 나무위로 순식간에 도약해버렸다. 묵진휘의 움직임이 어찌나 표홀하고 현묘한지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바라본채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묵진휘의 움직임은 어깨를 약간 움찔한 것밖에 없었는데, 몸은 어느 순간 창문을 넘어 칠팔 장에 이르는 나무위로 순식간에 올라가버렸기 때문이었다.

[빨리..]

묵진휘의 전음에 둘은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통해 묵진휘 옆의 나무로 간신히 올라갔다.

그리고, 세 사람이 나무 위로 올라가자 마자 검붉은 무복武服의 사내 여러 명이 사당으로 들이닥쳤다.

“막 도주한 듯 합니다”

“흔적을 찾아라. 급히..”

소매에 한 줄의 검은 선이 수 놓인 검붉은 무복의 사내가 수하들에게 급히 지시했다. 한 쪽 뺨에 깊은 자상을 가진 그는 무척 다급한 표정이었다.

얼마 후 주위를 뒤진 수하 서너 명이 사당으로 돌아왔다

“대주님, 흔적이 없습니다. 빗속이라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소리냐? 흔적이 없을 리가 있느냐? 추살대 인원까지 다 풀어 주위를 좀 더 넓게 다시 뒤져라. 그 분이 오시기전에 흔적을 찾아야 한다. 빨리..”

흔적을 찾는 데는 동원되지 않던 추살대 인원까지 동원하라는 다급한 지시가 내려졌다

얼마 후 사당으로 조용히 한 인영이 어둠처럼 내려앉았다.

“흔적은?”

내리치는 빗소리보다 작고 낮은 음성이건만 귓가에 또렷이 들리는 소리에 추흔대 대주는 헉, 하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언제 왔는지 그가 등뒤에 서있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빗속이라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모닥불 온기가 가득한데 주위에 흔적이 없다?”

순간 그가 창문을 통해 북쪽으로 쏜살같이 날아 올랐다. 나뭇가지 탄성을 이용해 공간을 날아가는 모습은 시위를 떠난 화살에 다름없었다. 그가 어떤 흔적을 찾은 것이리라. 추흔대주 고경석은 한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좀 전 그가 흔적을 찾아 떠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는 말보다 칼이 빠른 사람이라 했고 그 행동을 추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 했다.

“모두 북쪽으로 간다”

고경석은 수하들에게 소리 높여 지시한 후 그가 향한 북쪽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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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푸른 삼각목걸이 +4 16.12.06 6,810 74 11쪽
4 3. 첫대결 +3 16.12.06 7,239 81 11쪽
» 2. 내기 +3 16.12.06 8,879 72 12쪽
2 1. 회동會同 +4 16.12.06 13,651 7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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