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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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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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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0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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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글자
11쪽

9. 빛과 그늘

DUMMY

묵진휘 일행은 합비를 거쳐 무한으로 들어왔다. 합비에서 본 남궁세가는 오대세가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남궁세가의 장원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을 묵으면서 오대세가로 발돋움해온 역사와 전통이 고색창연하게 녹아 있는 듯 아늑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자랑했다. 건물이 차마 역사를 담았을까 마는 묵진휘 일행은 역시 남궁세가로군 하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합비 전체가 남궁세가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합비를 둘러싼 농토 중 상당부분이 남궁세가 소유인지라 남궁세가 땅을 밟지 않고는 합비에 들어갈 수도 합비를 나갈 수도 없다는 말이 있고, 소작농들 대부분이 남궁세가의 땅을 붙여 먹고 산다는 안정감을 역설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남궁세가는 표국과 객잔 등 많은 영리사업체와 학교 등 비영리 기관을 설립, 운영함으로써 합비 전체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영향력만큼이나 많은 기여를 함으로써 또다시 영향력을 강화하는 역사를 다져왔었다. 합비로 부임하는 지방행정관은 남궁세가로 인해 아무런 걱정 없이 쉬어가는 부임지로 여길 만큼 합비에서 남궁세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남태혼이 서홍에게 남궁세가도 털어보라고 놀렸지만 서홍도 남궁세가만큼은 어렵다는 듯 아니면 그래선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묵진휘 일행은 무한으로 들어와 비로소 영웅대회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영웅대회 참여와 구경을 위해 찾아온 무인들로 인해 무한은 글자 그대로 도시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셋은 식사를 위해 객잔을 찾아 들었다. 남태혼이 복거유에게 동행을 제안했으나 복거유는 말없이 고개를 저어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묵진휘 등도 복거유의 습성이 사람과의 부대낌을 불편하게 여길 거라 판단해 더 이상 강요하진 않았기에, 여행길은 여전히 세 사람만이 동행이었다.

식사시간을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객잔 실내는 붐볐다. 셋은 점소이의 안내로 이층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운 좋게 정말 좋은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저기 보이는 선남선녀善男善女분들이 바로 오대세가의 자제분들이십니다. 이번 영웅대회 성공을 축원하는 오대세가 자제분들간의 축하자리입니다. 저런 분들을 한꺼번에 다 뵙는 기회는 일생에 다시 없을 겁니다. 저희 객잔에서만 가질 수 있는 그런 기회입니다. 헤헤. 최고의 술과 안주를 대령하겠습니다. 헤헤”

점소이는 고갯짓으로 창가 쪽의 젊은 남녀들을 가리키며 잽싸게 말하고는 자신이 주문은 알아서 하겠다는 듯이 곧장 일층으로 내려가버렸다. 셋은 점소이의 너스레에 뒤늦게 당했음을 깨달았으나 이미 점소이는 사라진 뒤였다. 간단한 소면과 만두로 식사를 때우려던 셋은 졸지에 최고급 술과 안주로 포식을 하게 되었기에 서로를 바라보며 자조하듯이 웃었다.

“내친김에 우리도 무한 입성을 축하 하자구. 하하. 어디 오대세가 자제들은 어떻게 생겼나?”

서홍이 웃으며 고개를 빼쭉 내밀어 창가 자리의 남녀들을 살폈다. 창가 쪽 큰 식탁에는 일곱 명의 남녀들이 앉아 있었으며, 그 식탁을 둘러싸고 다시 몇 개의 식탁이 놓여 있었는데 호위무사들을 위한 식탁이었다. 호위무사들의 식탁에도 기름진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으나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 음식은 그대로였다.

“확실히 때깔이 달라 보이는 구만 그래. 귀한 티가 줄줄 흘려. 아~ 저기 소저들 좀 보게. 꽃이 따로 없구먼 하하”

서홍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아마 합비를 거쳐 오면서 느꼈던 남궁세가의 위용이 그 자제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 했다. 그 사이 점소이가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자~ 우리도 한잔하세”

남태혼이 묵진휘와 서홍의 잔에 술을 따랐다.

“친구가 된 것을 기념하며···”

서홍이 잔을 들며 낮게 외쳤고 두 사람도 따라 자그맣게 외쳤다. 그렇게 셋이 술과 안주로 객고를 다스리며 친구가 된 정을 나누고 있는 중에 갑자기 창가자리에서 조금 큰 소리가 들려왔다. 큰 소리는 금방 평소 어조처럼 낮아져 서홍과 남태혼은 귀를 기울여도 들을 수 없게 되었으나 묵진휘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맑은 기상의 강직한 목소리가 묵진휘의 귀를 계속 잡았기 때문이다.

“난 동의할 수 없소. 우리 오대세가를 일으켜 세우신 조상님들은 역경과 고난을 뚫고 가문을 일으키셨소. 오늘의 오대세가는 그런 역경과 고난의 결과요. 이제 우리가 안일에 젖어 기득권을 내세우고 편안함을 쫓는다면 더 이상 오대세가가 아니게 될 것이요. 주위에서 우리를 뭐라고 보겠소? 난 예선부터 참여하겠소”

묵진휘쪽으로 등을 진 젊은 청년이 말했다.

“남궁공자,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 남궁공자의 소신과 결의에는 감복해 마지 않소. 나 역시도 나 한 사람만이면 예선부터 시작할 것이오. 허나 이미 우리는 오대세가의 후계자들이오. 나 혼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세가의 후계자인 것이오. 선조들은 남궁 형兄 말대로 고난과 역경으로 세가를 일으켜 세우셨소. 하지만 이제 세가가 반석 위에 선 이상 그 운영방법은 달라야 될 것이오. 창업과 수성은 다른 것이오. 섣부르게 예선부터 시작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요. 그리고 우리가 본선부터 시작하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오. 그건 조상님들이 만들어 주신 당연한 우리의 권리요. 오히려 우리가 예선부터 시작하면 그것을 더 이상하게 볼 것이오. 그래서 장로분들께서도 그와 같이 운영방안을 정하시려는 것이 아니오? 처지와 상황을 살펴 행동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오”

남궁공자라고 불린 젊은이의 맞은편에 앉은 준수한 용모의 젊은이가 장황하게 남궁공자를 설득했고 다른 젊은이들도 이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감언이설일 뿐이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소. 무인의 길에 지름길은 없다고 배웠소. 만일 모용 형兄께서 말씀하신 그 길이 세가의 길이라면 난 세가의 길을 버리고 무인의 길을 가겠소. 미안하지만 이만 일어나겠소”

남궁세가의 젊은 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묵진휘 일행을 지나쳐 일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고집불통은 여전하구만. 쯧쯧. 하지만 그는 결국 본선부터 참여할 것이오. 이미 장로회의에서 결정되었을 터, 그가 예선부터 참여하려면 그 고집스러운 숙부부터 설득해야 할거요. 하하. 자, 우리라도 즐겁게 한잔합시다.”

모용 형이라 불린 젊은이가 자리를 떠나는 남궁세가 공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웃듯이 말하곤 다시 좌중을 돌아보며 건배를 제의하자 남아있던 남녀들이 모두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술잔을 들고서도 술은 마시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남궁세가 공자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듯 서글픈 듯 바라보는 아름다운 한 쌍의 눈이 있었으니···



다음날, 묵진휘 일행은 무한에서 다시 동정호 구경을 위해 악양으로 나왔다.

동정호 악양루가 어찌 시인묵객만의 마음의 고향이겠는가? 무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저마다 가슴에 품은 야망과 꿈을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 크기와 비교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다지곤 했다.

명산구경도 식후경이란 서홍의 말에 셋은 우선 요기부터 한 후 동정호를 구경하기로 하고, 식사를 위해 인근 객잔에 들렀다.

주문을 마친 남태혼이 서홍을 보며 한마디 했다.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목걸이 팔아서 술이니 먹음세. 괜히 가지고 있어 본들 분란거리밖에 더 되던가? 목걸이 이리 줘 보게”

평소 그렇게 실없지 않던 남태혼도 가끔씩은 서홍에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곤 했다. 묵진휘는 어눌한 남태혼의 농담이 나쁘지 않아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래, 자네가 팔아 호의호식 하시게”

서홍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는 듯 품에서 비단주머니를 꺼내 남태혼에게 주었다.

남태혼이 비단주머니에서 푸른 삼각 목걸이를 꺼내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손님, 삼각 목걸이가 무척 기이하면서 귀해 보입니다. 삼각 목걸이는 드문 법인데 말입니다. 여자분께 선물하시면 무척 좋아하시겠습니다. 헤헤”

점소이가 주문한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목걸이를 보고 큰소리로 한마디 했다.

“자네가 신경 쓸 것 없네”

서홍이 점소이에게 퉁주며 남태혼에게서 목걸이를 받아 묵진휘에게 건넸다.

“이것 자네가 가지고 있게. 우리가 친구가 된 증표로 자네에게 줌세. 훔친 거라 거절하지 말게. 내 마음만은 진심일세”

묵진휘가 괜찮다고 손을 내밀어 사양하려 하자 남태혼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진휘 자네가 가지고 있게. 저 서가 놈이 그 분란거리 가지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친구 핑계 삼아 자네에게 건네고 걱정을 덜려고 하는 속셈이니 자네가 도와주시게. 우리가 돕지 않으면 저 친구 어디 제명에 살겠는가?”

남태혼이 떠는 너스레에 서홍이 익살맞게 얼굴을 찌푸렸다. 묵진휘도 마지못해 목걸이를 비단주머니에 넣어 품속에 갈무리했다.


호남성에 있는 신흥상단의 단주는 오늘도 손님들을 모시고 악양루로 나왔다. 호남성에 있다 보니 다른 성에서 오는 손님들을 종종 악양루로 모셔 접대를 하곤 했다. 그가 손님들을 모시고 객잔에서 시끌벅적하게 식사를 하는 중에 옆 식탁에서 삼각목걸이라는 점소이의 말이 흘러 나왔다. 삼각목걸이라면 횡이수전에서 애타고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손님들에게 급히 양해를 구하곤 상단으로 돌아가 전서구를 날렸다.


또 다른 식탁에는 할머니와 손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손祖孫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호호깔깔거리며 얘기꽃을 피워대고 있었다. 순간 옆 식탁에서 삼각목걸이라는 점소이의 말이 흘러 나왔다. 할머니의 눈이 빛났다. 삼각목걸이라면 교주가 그토록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파파~ 갑자기 왜 그러세요?”

손녀가 물었다.

“아니다. 내 배가 아파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할머니는 손녀를 남겨놓고 객잔 문을 열고 나갔다.



저녁 무렵 악양루에서 바라보는 동정호는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절경이었다. 서홍과 남태혼은 탄성을 연발하고 있었다. 묵진휘는 할아버지로부터 동정호와 악양루에 얽힌 시인 묵객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 악양루 옆에 있는 삼취정三醉亭이란 곳에서 학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 여동빈呂洞賓 그리고 그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의 범중엄范仲淹···

어찌 악양루와 관련된 모든 이를 다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침에 북해를 떠나 저녁에 창오蒼悟에 이르고

소매 속에 청사靑蛇 넣어 담력과 기백은 거친데

삼취정에 오르니 악양 사람들은 나를 몰라보네

시나 읊조리며 동정호로 날아오르리···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주자 악양루에서 지었다는 여동빈의 시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여동빈의 시를 배울 당시 묵진휘는 생각했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고 몰라주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저런 생각에 한참을 잠겨 있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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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첫대결 +3 16.12.06 7,239 81 11쪽
3 2. 내기 +3 16.12.06 8,878 72 12쪽
2 1. 회동會同 +4 16.12.06 13,651 76 12쪽
1 서장 +3 16.12.06 16,970 9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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