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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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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1
글자수 :
1,158,507

작성
18.03.2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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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50. 구속과 자유

DUMMY

따뜻하다기에는 조금 더 강렬하고, 따갑다기에는 아직은 부드러운 초여름의 태양이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조그마한 초옥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열어 놓은 창문과 방문을 통해 화사한 초여름 햇살이 싱그럽게 방안으로 밀려들어왔지만 방안에서 들려오는 옅은 흐느낌 소리로 인해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사방으로 어지러이 비산하고 있었다.

“진정하시오.”

평범한 용모에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 옆에서 아주 옅은 흐느낌을 내뱉고 있는 노파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젊은 사람 셋이 예의 바른 자세로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준수한 용모의 사내와 그 옆에 있어 평범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을 듯한 사내, 그리고 경국지색의 여인이었다.

“서천이···”

조그마한 소리로 흐느끼던 노파가 울음을 진정하면서 한마디를 뱉었지만 아직은 그것 밖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작은 초옥에 앉아 흐느끼는 노파는 남천이었고 그녀를 다독이는 사람은 동천이었다. 당연히 그들 앞에 있는 세 젊은이는 묵진휘, 주은백 그리고 서설란이었다.

세 사람은 북경에서 이황야 일행과 헤어져 함께 노산으로 온 것이다. 주은백은 애초 유혜연과 함께 청해로 가려했으나 서설란의 권고를 받아들여 함께 노산으로 왔고, 지금 동천과 남천에게 서천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중이었다.

“휴~ 진작 찾았어야 했을 것을··· 허허.”

동천이 열어놓은 방문을 통해 싱그러운 초목들을 바라보며 탄식과 함께 헛헛한 한마디를 뱉었다.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으로 인해 보고 싶은 친구들도 찾지 못한 채 쓸쓸히 여생을 마감한 서천을 찾지 않은 것에 대한 동천의 후회였다.

주은백의 얘기 속에서, 동천과 남천은 서천이 자신들을 보고 싶어했지만 부끄러움으로 인해 찾지 못한 채 외로워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동천은 탄식하는 것이고 남천은 흐느끼는 것이다.

“그래, 잘 묻어 드렸느냐?”

남천이 젖은 눈길로 주은백을 바라보며 물었고 주은백이 고개를 숙여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되었다. 곧 만나게 되겠지.”

주은백의 고개짓을 따라 하는 듯 동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뇌었다.


방안의 다섯 사람들은 동천의 말을 끝으로 잠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서천에 대한 상념을 갈무리하려는 것이고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감정을 완전히 갈무리한 남천이 입을 열었다. 입가에는 어느덧 옅은 웃음까지 머금고 있었다.

“마지막 초식이 무엇이었느냐?”, “그것이 묵운신공이었소?”

남천의 질문은 처음에는 묵진휘를 향한 것이었는데, 바로 이어 동천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다소 급한 남천의 성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소. 내가 묵운신공을 대성한 것이 아니라 그 끝을 모르니 진휘가 펼친 것이 묵운신공인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겠구려. 허허허”

동천이 먼저 남천의 물음에 답했지만, 제삼자가 들으면 실로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자신이 사부이면서 제자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체면이 서겠는가? 하지만 동천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사람 좋게 웃고 있었다. 실로 속마음도 그러한 것이다. 그러면서 묵진휘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서 대답해보라고···

“제가 펼친 것은 적대강 사숙조께서 남기신 깨달음에 기대어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일 뿐이기에 저도 그것이 묵운신공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적대강 사숙조께서 묵운신공을 거론하시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남기신다고 하셨고, 제가 펼쳐본 바에도 그것이 애초 묵운신공인 듯 자연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묵진휘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묵운신공에 틀림없다. 다만, 어떻게 북천의 전인인 적대강 사숙께서 그런 깨달음을 얻으신 것인지 알 수 없구나.”

남천이 확신에 찬 듯 말하면서도 고개는 갸웃했다.

“그렇게 된 것도 우리 선조들의 안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오. 애초 동서남북은 한 뿌리였소.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인거지. 그것은 상호 협력하면서 상호 견제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소. 동천의 무공 정수가 북천 무공에 숨겨져 있었던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오. 만일 동서남북 각각의 무공에 그 자체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 서로는 상호관계 없이 점점 별도의 무공으로 변해갈 것이고 종내 한 뿌리임을 잊게 될 것이 아니겠소?”

동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객관적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관적으로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천의 얘기에 남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천의 말이 가슴을 무겁게 울렸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동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참, 일전에 마교가 같은 뿌리라 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이오?”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 일이오. 다만, 스승님께서 언뜻 지나가는 말씀으로 천마의 무공도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것이란 말씀이 계셨소.”

동천이 확신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마 그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묵진휘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 묵진휘를 바라보았다. 스승인 동천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얘기가 묵진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적대강 사숙조께서 지하동굴에 남기신 글에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동서남북과 천마를 포함해서 다섯 갈래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셨습니다.”

“왜 천마가 갈라져 나갔다고 하더냐? 다른 얘기는 없었느냐?”

남천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천마가 갈라져 나간 이유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유훈에서 벗어나란 말씀이 계셨습니다. 유훈을 내리신 것도 창시조의 뜻이지만 유훈을 거두는 것도 또한 창시조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적대강 사숙조께서는 우연히 창시조께서 남기신 책을 얻게 되어 그런 내용을 아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묵진휘의 말에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동천이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서천이 유훈의 굴레에서 은백이를 자유롭게 해주었다고 들었다. 나도 진휘에게 유훈을 굴레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 다만, 선조의 뜻을 어긴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다행히 그것이 창시조의 뜻이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나.”

“유훈을 거두는 것이 또한 창시조의 뜻이라니, 그것이 무슨 말이오?”

남천이 궁금한 듯 동천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찌 알겠소? 다만, 동천 무공의 정수가 북천 무공에 있었음을 근거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삶의 정수는 자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他者인 세상 속에 있다는 말씀 아니겠소? 그러니 세상 속으로 들어가란 말씀이겠지.”

“그럼 처음에는 왜 그런 유훈을 남기신 게요?”

역시 남천이 물었다.

“어디 처음부터 계곡이 있었겠소? 산이 있으니 계곡이 있는 게지? 구속이 있으니 자유가 있는 게고···”

동천이 씩 웃으며 알 수 없는 얘기를 했지만 모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동천의 말에 희미하지만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고, 더 이상 묻는다고 다른 특별한 대답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창시조께서 남기신 책은 어디에?”

다시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남천이 묵진휘에게 물었다.

“그 말씀은 없었습니다. 지하동굴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구나···”

묵진휘의 대답에 남천이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었다.



정점을 지났건만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따가웠다. 하지만 짚불 꺼지듯 그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갈 것이고 그럼으로써 낮의 생명이 다할 것이며, 이 여름이 다해갈 것이다.

수많은 종류의 난들이 풍겨내는 그윽한 향기가 사나운 여름 열기를 밀어낸 듯 온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곳에 장년인 듯 초로인 듯한 사내가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고 있었다. 호리한 체격이지만 그가 내뿜는 무언無言의 힘은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향기마저도 범접치 못할 것 같았다.

그 사내 뒤로 초로의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각 성 지부장들이 모두 출발했습니다.”

“···”

나타난 초로 사내의 말에도 호미질을 하는 사내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고 다른 말도 없었다. 초로의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미 기초 준비는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지부 설립은 곧 마무리될 것입니다.”

“수고했네.”

초로 사내의 말이 끝나자 호미질 하는 남자가 간단히 한마디 했다. 아무런 감정이 들어 있지 않은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초로 사내, 갈군청은 속으로 울컥하는 심정이었다. 감동한 것이다. 자신을 향한 칭찬에 대한 감동이었고, 교의 숙원인 중원 진출의 사명감을 이루었다는 것에 스스로 감동한 탓이다.

자신이 이처럼 감동스러운데 교주의 감동은 어떠할 것인가?


편견과 멸시 속에 변방 청해에 자리 잡은 지 얼마의 세월이 흘렀던가?

그 세월 동안 숙원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과 피가 흘렀던가?

그러나 이제, 태산처럼 높고 장강처럼 긴 눈물과 피와 땀을 넘고 건너 마침내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중원 진출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북천이 헤집고 유린한 본산 그 대연무장에서 교주가 중원 진출을 공식 선언한 날, 대연무장에 모인 수만 교도가 흘린 감동의 눈물은 청해 옥련산에 한 줄기 시냇물을 만들 정도였었다.

하물며 선대의 유훈함까지 열었고, 천마께서 남긴 마지막 무공인 파천무를 얻기 위해 소교주가 다시 폐관에 들지 않았는가?

이제 모든 숙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히 총군사 갈군청의 감동과 감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호미질을 하는 교주에게서는 얕은 감동의 기운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갈군청은 호미질 하는 사내 뒤에서 조용히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태산 같은 주군에 대한 경배敬拜였다.

태산은 사나운 북풍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고 거친 폭우에도 쉬이 젖지 않음으로써 천년만년의 세월 동안 그 깊고 숭고한 뜻을 지켜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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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251. 십 년 후 +19 18.03.30 1,614 56 18쪽
» 250. 구속과 자유 +4 18.03.20 1,602 46 10쪽
250 249. 용서와 응징 +5 18.03.13 1,632 41 10쪽
249 248. 형제 +5 18.03.06 1,744 42 9쪽
248 247. 유훈함遺訓函 +5 18.02.28 1,678 42 10쪽
247 246. 확대되는 삼별조 +3 18.02.24 1,709 39 10쪽
246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4 18.02.19 1,979 53 10쪽
245 244. 아침 +4 18.02.13 1,966 44 8쪽
244 243. 삼천三天의 後裔 +4 18.02.09 1,786 48 12쪽
243 242. 긴 하루 +6 18.02.06 1,754 45 10쪽
242 241. 내리 사랑 +3 18.02.03 1,698 39 10쪽
241 240. 신뢰 +3 18.01.31 1,775 42 9쪽
240 239. 삼천三天 +4 18.01.28 1,781 45 10쪽
239 238. 재격돌 +3 18.01.25 1,663 42 11쪽
238 237. 역부족力不足 +4 18.01.22 1,580 35 11쪽
237 236. 즐기는 북천 +5 18.01.19 1,664 35 10쪽
236 235. 고개를 내려오다 +4 18.01.15 1,665 41 9쪽
235 234. 아버지의 눈물 +4 18.01.12 1,848 39 10쪽
234 233. 손님들 +8 18.01.08 1,852 43 10쪽
233 232. 저력底力 +7 18.01.05 1,873 47 11쪽
232 231. 황새와 뱁새 +3 18.01.01 1,735 39 10쪽
231 230. 벽壁 +3 17.12.27 1,838 44 9쪽
230 229. 혼담婚談 +3 17.12.21 1,937 44 10쪽
229 228. 천외천天外天 +3 17.12.18 1,906 43 11쪽
228 227. 바둑 두는 노인들 +2 17.12.15 1,816 44 10쪽
227 226. 유정검有情劍 +2 17.12.12 1,766 42 11쪽
226 225. 재 진군 再進軍 +2 17.12.10 1,825 40 11쪽
225 224. 목전目前에서… +2 17.12.07 1,899 38 10쪽
224 223. 다섯 개의 싸움 2 +2 17.12.03 1,990 41 11쪽
223 222. 다섯 개의 싸움 1 +2 17.11.28 2,027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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