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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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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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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8.02.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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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글자
10쪽

242. 긴 하루

DUMMY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자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고, 한 인영이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것과 두 인영이 각자의 자리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님”

유긍연이 먼저 교주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교주 유태준은 혼자 힘으로 꼿꼿이 서있었지만 입가로 조그맣게 흘러내리는 핏물까지 막지는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운기를 천마참에 실어 보내기 전에 갑작스레 다른 방향으로 운기하면서 내공이 실타래처럼 엉켜버려 진탕되었고, 북천의 붉은 강기와 충돌하면서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교주”

두 영주와 삼마존이 유긍연 뒤에서 역시 신형을 날려 교주에게로 날아들었다. 그들은 교주가 마지막 운기를 다른 방향으로 날리는 것을 보곤 속으로 안타까운 신음을 토했지만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다.

“아빠, 흑흑~”

한편 저 멀리서 늙은 노파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젊은 소저 하나가 있었다. 유혜연이었다. 그녀도 불측은비 서은후와 함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와 주은백이 북천과 싸우는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무공에 정통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아버지가 주은백을 살리기 위해 운기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어찌 눈물이 솟지 않겠는가?


“은백···”

역시 뒤에서 싸움을 관전하고 있던 남궁이현이 유긍연과 거의 동시에 주은백에게로 신형을 날렸다. 주은백은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제법 많은 피를 게워내고 있었다. 큰 내상을 입은 것이다.

남궁이현이 역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은백의 어깨를 가만히 만졌다.

주은백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속으로 오열嗚咽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어찌 교주의 마음과 움직임을 알지 못하겠는가?

어리석었다. 한 순간 한눈을 판 것이다. 북천이 야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라도 그러했을지 몰랐다. 자신이 어리석었다. 경험 미숙이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이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북천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을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막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주가 다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통했다.


북천의 곁으로 태상호법이 천천히 걸어갔다. 태상호법은 이미 지혈을 했기에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으나 오른 팔에는 옷을 찢어서 어깨를 동여맨 천이 흔들리 있었다.

그토록 많은 싸움에서도 먼지 하나 묻지 않았던 하얀 무복이 군데군데 찢어져 약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실낱 같은 피가 베어 나온 곳도 있었다. 하지만 내상은 없는 듯했다.

“대단하군. 온전한 천마참이었다면··· 글쎄, 어떠했을까? 내가 야비한 짓을 해버린 셈이 되었군. 허허”

태상호법이 다가오자 북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천마참의 여운이 진하게 남은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짓이 야비한 것으로 작용해버린 것에 대한 허탈함이 묻어 있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북천과 교주, 주은백이 각기 그 자리에 서서 나름의 여운에 잠겨있을 때. 교주와 유긍연, 두 영주와 삼마존 뒤로 마교의 천주대가 다가와 대열을 이루어 섰다. 혹시 북천이 공격해온다면 몸으로라도 막아 교주를 지키고자 함이었다.

당연히 남궁진걸과 당현모를 선두로 운월자를 비롯한 무림맹 무인들과 개방도들도 주은백의 뒤에 대열을 형성하고 섰다.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비록 북천이 두려웠지만 싸움을 관전하는 사이에 한 목숨 바칠 각오도 훌쩍 커져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북천과 대열을 지어선 두 진영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도 가까웠다. 어느 누가 먼저 공격이라도 한다면 한 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는 않았다.

마주선 공간은 정적으로 채워졌고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공기는 정적과 긴장이 무거운 듯 안개처럼 땅으로 내려앉아 스스로를 무거워했다.


“허허, 어찌할꼬~”

언덕 위에서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던 동천이 나지막하게 탄식했다. 만일 북천이 공격한다면 앞에 있는 무림맹과 마교 대열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었고, 수많은 목숨들이 비 온 뒤의 봄꽃처럼 떨어져 내릴 것이었다.

“우리라도 온전했다면···”

남천 역시 근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동천과 남천은 과거 북천의 공격으로 인한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큰 무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당연히 지금 북천과 맞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 주은백을 부축해 무림맹 대열을 뚫고 뒤로 빠져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남궁이현이었다. 남궁이현은 주은백을 부축한 채 북천을 등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걱정스런 눈으로 북천을 바라보았다. 혹시 북천이 남궁이현을 공격할까 봐서였다. 하지만 북천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북천이 움직이지 않자 운월자가 먼저 몸을 돌려 남궁이현을 따르기 시작했고 무림맹 대열이 운월자를 따르기 시작했다. 남궁진걸과 당현모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무림맹 대열이 몸을 돌려 북천과 멀어지기 시작하자 유긍연이 교주를 부축해 몸을 돌려 북천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마교 대열도 그들 뒤를 따랐다. 그렇게 두 대열이 멀어져 가도록 북천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내일 다시 내려오겠다. 그때는 아무도 내 앞을 막지 못할 것이다. 부디 이곳을 떠나라.”

북천이 멀어지는 두 대열을 향해 내공을 싶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에 대한 선전포고였고 오늘의 야비함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오늘은 우리도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두 대열이 모두 멀어져 가자 북천이 태상호법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몸을 뒤로 돌려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고 태상호법도 뒤따랐다. 도수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를 담아 고개를 내려온 북천과 태상호법이 다시 고개를 올라감으로써 기나긴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수고했구나.”

임시 천막에서 묵진휘의 보고를 들은 후 이황야가 싱그러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천진에서 있었던 일과 약재상을 북경 인근의 안가安家에 보호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 묵진휘가 소상하게 말한 뒤였다.

“도수라?”

“얼마 전 시랑이 되어 태자를 가장 가까운 데서 보필하는 최측근입니다. 사승상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황야의 물음에 장시랑이 대신 답했다.

“어쩌면 사승상의 오른팔이 아니라 반대로 사승상이 꼭두각시였을지도 모르지.”

이황야가 잠시 생각하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실로 날카로운 안목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북천이 앞길을 막고 있는 것과 사승상, 도수와의 관계를 한 눈에 꿰뚫어 보는 것이다.

그리곤 다시 묵진휘를 바라보며 묻는다.

“이 곳 상황은 들었느냐?”

“아직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구나. 먼 길 온다고 피곤할 테니 물러나 쉬면서 듣도록 해라.”

이황야가 웃으며 묵진휘를 내쫓는다. 나가서 딸과의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였다.

묵진휘가 이황야의 마음을 알곤 예를 마친 후 일어나 임시 천막을 나왔다. 임시 천막 밖에서 공녀 주여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네요.”

주여전이 약간 쌜쭉한 표정으로 묵진휘를 반겼고 묵진휘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바람이나 쐴까요?”

주여전이 묵진휘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앞장서 관도 옆의 조그만 오솔길로 들어가자 묵진휘가 뒤따랐다. 이 오솔길은 행렬이 멈춘 후로 공녀 주여전이 산책로를 찾다 발견한 길이었다. 오솔길은 야트막한 언덕까지 뻗어 있었고 언덕에서는 맑은 밤의 봄 하늘이 활짝 열린 채로 두 눈에 들어왔다.

“보고 싶었소.”

묵진휘가 가볍게 주여전을 끌어 안으며 소곤거렸다.

“많이 늘었군요. 이곳 상황이 더 궁금할 텐데도 먼저 묻지도 않으시는 것을 보니.”

묵진휘에게 안긴 채로 주여전이 얼굴을 들어 묵진휘를 바라본다. 목소리에는 앙탈 같은 것이 조금 묻어 있었지만 두 눈에는 깊은 사랑이 배어있다.

“아니오. 당신을 보고 싶은 것이 먼저였소.”

“표정관리도 배우셔야 완전한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두 눈은 말씀과 다른 걸요?”

“아니오.”

묵진휘가 허둥대기 시작하자 주여전이 호호거리며 웃는다.

“이곳은 북천이 딱 버티고 서 있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주여전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제법 상세하게 설명했다. 비록 몸은 본대에 있지만 앞쪽 상황은 오의붕경 등을 통해 충분히 듣고 있었다.

“주은백과 교주까지 그렇게 다치셨다니 큰일이군요.”

주여전의 얘기를 모두 들은 묵진휘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주대협이 계신 곳으로 가보도록 하세요.”

주여전이 먼저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신도 오랜만에 만난 묵진휘와 더 있고 싶었지만 주은백에게로 보내주려는 것이다. 묵진휘가 주여전을 마음을 알곤 뒤에서 다시 한번 주여전을 끌어 앉았다.

“당신, 많이 늘었어요.”

주여전이 묵진휘에게 안긴 채 고개를 뒤로 돌려 묵진휘를 바라보았다. 그때 묵진휘의 고개가 숙여졌고 주여전의 얼굴을 덮었다. 자연스레 주여전의 몸이 다시 돌아 묵진휘와 마주보게 되었고 둘은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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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50. 구속과 자유 +4 18.03.20 1,601 46 10쪽
250 249. 용서와 응징 +5 18.03.13 1,632 41 10쪽
249 248. 형제 +5 18.03.06 1,744 42 9쪽
248 247. 유훈함遺訓函 +5 18.02.28 1,678 42 10쪽
247 246. 확대되는 삼별조 +3 18.02.24 1,709 39 10쪽
246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4 18.02.19 1,979 53 10쪽
245 244. 아침 +4 18.02.13 1,966 44 8쪽
244 243. 삼천三天의 後裔 +4 18.02.09 1,786 48 12쪽
» 242. 긴 하루 +6 18.02.06 1,754 45 10쪽
242 241. 내리 사랑 +3 18.02.03 1,698 39 10쪽
241 240. 신뢰 +3 18.01.31 1,775 42 9쪽
240 239. 삼천三天 +4 18.01.28 1,781 45 10쪽
239 238. 재격돌 +3 18.01.25 1,663 42 11쪽
238 237. 역부족力不足 +4 18.01.22 1,580 35 11쪽
237 236. 즐기는 북천 +5 18.01.19 1,664 35 10쪽
236 235. 고개를 내려오다 +4 18.01.15 1,664 41 9쪽
235 234. 아버지의 눈물 +4 18.01.12 1,848 39 10쪽
234 233. 손님들 +8 18.01.08 1,852 43 10쪽
233 232. 저력底力 +7 18.01.05 1,873 47 11쪽
232 231. 황새와 뱁새 +3 18.01.01 1,735 39 10쪽
231 230. 벽壁 +3 17.12.27 1,838 44 9쪽
230 229. 혼담婚談 +3 17.12.21 1,936 44 10쪽
229 228. 천외천天外天 +3 17.12.18 1,906 43 11쪽
228 227. 바둑 두는 노인들 +2 17.12.15 1,815 44 10쪽
227 226. 유정검有情劍 +2 17.12.12 1,766 42 11쪽
226 225. 재 진군 再進軍 +2 17.12.10 1,825 40 11쪽
225 224. 목전目前에서… +2 17.12.07 1,899 38 10쪽
224 223. 다섯 개의 싸움 2 +2 17.12.03 1,990 41 11쪽
223 222. 다섯 개의 싸움 1 +2 17.11.28 2,027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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