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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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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8.01.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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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239. 삼천三天

DUMMY

“이제 끝내도록 하지.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저번 한번으로 족하지 않겠나?”

땅바닥에 앉아 있던 서설란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는 주은백을 향해 북천이 말했다.

주은백이 고개를 돌려 북천을 바라보았다. 서설란이라도 피할 수 있게 사정을 말해볼까 했지만 그걸 받아 들일 서설란도 아니었고 북천이 용인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주은백이 다시 서설란을 바라보았다. 서설란의 눈이 싸울 뜻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인물이 주은백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도 함께 하겠네.”

유긍연이었다. 비록 내상을 입었지만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유긍연의 뒤에는 두 영주와 삼마존이 서있었다.

“아니오. 나로 충분하오. 교주께서 당신이 오시기 전까지 함부로 나서지 말라 했다 하지 않았소? 교주 말씀을 따르시오.”

주은백이 유긍연을 돌려 보내려 했다. 지금 북천과 맞선다면 죽음은 기정 사실이었다. 굳이 많은 사람들이 상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네. 자네가 나서는데 내가 그대로 있는다면 동생 혜연이를 어찌 볼 낯이 있겠는가?”

유긍연이 단호한 입장을 드러내었다.

“네놈들이 기어이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하는 것이냐?”

그때 북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소 노한 음성이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어 목숨을 살려줬는데 유긍연 등이 다시 덤비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남궁진걸과 당현모, 운월자 등의 무림맹 원로들도 그 뒤에 나타났다. 남궁이현은 아버지의 만류로 나서지 못했다.

북천은 화가 나다 못해 가소롭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 오냐, 네놈들 뜻을 받아 모조리 저승으로 보내주마.”

북천이 다시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공격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했다. 보아온 북천의 무위로 볼 때 그가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은백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지금은 무인으로서 마지막 승부인 셈이었다. 다들 비장한 각오로 검을 고쳐 잡았다.

북천이 막 기합성을 내지르며 공격을 하려 할 때, 허공 중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잠깐 기다리시게.”

목소리와 함께 두 인영이 허공 중에서 사뿐히 내려 앉았다. 노인들이었다. 한 사람은 남자였고 한 사람은 여자였다.

“스승님···”

나타난 노인을 보자 서설란이 감격에 겨운 듯 외쳤다. 나타난 노인 중 여자는 남천南天이었던 것이다.

“북천, 오랜 만이에요.”

남천이 한 손으론 다가온 서설란의 어깨를 부여 잡으며 북천에게 말했다.

“오랜 말일세. 동천東天이네.”

남자 노인이 말했다. 그는 묵진휘의 스승인 동천이었다.

“자네들이 여긴 어떻게?”

나타난 두 노인을 바라보며 북천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천하가 거꾸로 뒤집어져도 눈썹 하나 깜빡하지 않을 북천이 동천과 남천의 등장에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다.

“제자 녀석이 있는데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남천이 가볍게 대답했다. 실로 수십 년 만의 해후邂逅일 텐데 오랜 세월이 주는 긴장감이라곤 한 톨도 느낄 수 없는 담백한 목소리였다. 서천이 좋아했던 남천의 매력이었다.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동천이 북천에게 물었고 북천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물러들 가시게. 너도 물러나거라.”

남천이 뒤를 돌아보며 모두 물러나라 했고 서설란에게도 물러서라 일렀다. 남천의 말에 먼저 움직인 사람은 주은백이었다. 주은백이 서설란을 부축해 뒤로 물러났고 유긍연 이하 마교 인물들과 무림맹 인물들이 모두 물러났다.


삼천은 길에서 벗어나 야트막한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큼직한 바위들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먼저 남천이 한 바위에 걸터앉자 동천과 북천이 각자 바위 하나씩을 골라 앉았다. 셋은 삼각형 모양으로 그렇게 마주 보며 앉았다.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남천이었다.

“북천, 그만 하시는 게 어때요? 우리도 많이 늙었잖아요? 이제 무얼 그리 바라겠어요?”

남천이 늙음을 핑계로 북천을 설득했다. 사실 북천도 가장 주저하는 게 자신의 나이였다. 이제 칠십을 넘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많은 욕심을 내려 놓을 나이였다.

“내가 좀 더 젊었다면 당신 말대로 그만두었을 것이요. 하나 너무 먼 길을 왔고 나는 늙었소. 이제 돌아갈 곳이 없구려.”

북천이 나이를 핑계로 점잖게 거절했다. 늙음은 이쪽 저쪽으로 모두에게 핑계거리가 되고 있었다.

“내가 노산에 터를 잡았네. 풍광과 경치가 좋다네. 마침 술도 담은 것이 알맞게 익었네. 함께 가서 술이나 한잔 하세.”

동천이 어제도 한잔한 친구처럼 허물없이 말했다.

“자네는 내가 밉지 않나? 내게 원망이 없는가?”

북천이 불쑥 물었다.

“원망도 했었지. 그런데 자네 덕분에 아주 마음에 드는 제자 놈을 만날 수 있었네. 그 놈과 노산에서 사는 이십여 년 동안 무척 행복했다네. 그 행복 덕분에 원망을 지울 수 있었네. 지금은 오히려 천지신명께 감사하지. 그러니 어찌 자네가 밉겠는가?”

동천의 해맑은 얼굴에서 북천은 동천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자네 제자 놈은 보질 못했네.”

“곧 보게 될 테지.”

북천의 말에 동천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인 묵진휘를 생각하자 저절로 웃음이 나는 동천이었다.

“저도 옛일은 이제 잊었어요. 서천을 생각하면 아직도 당신에 대한 원망이 솟구치지만 하늘에 계신 서천이 당신을 용서하라 말해요.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려요.”

남천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북천은 남천이나 동천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거짓을 말하는 친구들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돌아간다면 지난 세월은 헛된 세월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북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임을 북천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북천의 한계였다. 북천의 강함이 그 알량한 자존심을 너무 강하게 만들었다.

“셋이 노산으로 가세나.”

동천이 다시 한번 권했다.

“아닐세. 자네들이나 가게. 나는 이미 다른 길을 걸었네.”

“당신 사부께서도 당신의 그 알량한 자존심을 지적했잖아요? 늙어서까지도 그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단 말이에요?”

북천의 고집에 남천이 버럭 화를 낸다. 그러면서 북천의 사부를 언급했다. 그것이 북천의 마음에서 다시 분노의 불씨를 지피고 말았다.

“적대강 사부···”

북천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구박을 받았는지 아는가? 자네들은 사부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을 게야. 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꾸중을 듣고 자랐지. 사부는 내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 내 앞에서 그 영감 얘기는 하지도 말게.”

“그래도 사부잖아요? 내 사부님께 들었어요. 당신 사부는 항상 당신을 걱정했다구요. 당신을 사랑했지만 당신의 그 야망과 자존심을 걱정하신 거예요. 지금 당신이 계속 고집을 부리면 결국 당신 사부의 걱정대로 되고 마는 거라구요.”

남천이 다시 북천의 사부 얘기를 계속하자 북천이 갑자기 바위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자신이 앉았던 바위를 손으로 눌렀다. 그러자 바위가 마치 생물처럼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금이 가면서 부서졌고 종내 거의 가루가 되어 버렸다. 북천의 분노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게. 자네들에게 다시 손을 쓰고 싶지 않네.”

말을 마친 북천이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뒤돌아서더니 옷자락을 휘적이면서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에게 사부 얘기를 하면 어떡하자는 게요. 쯧쯧”

동천이 남천을 가볍게 나무란다. 북천이 사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계속 고집을 피우는데 그럼 어떡해요? 사부 얘기라도 꺼내면 혹시 마음이 달라질까 싶었죠. 하지만 결국 안되는 거예요. 이미 저 사람은 오래 전부터 우리 길을 거부하고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이에요. 어쩔 수 없죠.”

“나도 이제 선대의 유훈은 내려 놓을 참이요. 내 제자 녀석에게 그 유훈을 짊어 지울 생각은 없다는 말이오. 그 녀석은 굴레 없이 살았으면 하오.”

“당신도 서천을 닮아가는 거예요?”

“선대의 유훈은 너무 오래 되었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소. 유훈은 이미 굴레가 되어 우릴 옭아매고 있소. 벗어날 때가 되었소. 만일 유훈이 없었다면 북천이 저리 삐딱하게 세상에 나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서천이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동천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나도 제자 녀석을 보면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길 바래요. 그것은 세상 속에서, 사람 속에서만이 가능하죠. 우린 그동안 너무 벗어나 있었어요. 하지만 북천은 막아야지 않겠어요?”

남천이 동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이나 나는 이미 그를 막을 수 없소. 당신도 이미 큰 무공은 사용할 수 없지 않소? 그때의 상처가 너무 깊었소. 세상에 맡겨 볼 수 밖에.”

“세상에 누가 있다고 세상에 맡겨요?”

“지금 없다면 언젠가 나타나겠지. 그 동안의 고통도 세상에 맡겨야 할 것이고, 치유도 세상에 맡겨야 할 것이오. 허허”

“그 동안 무공 수련은 하지 않고 도道만 닦으셨나 보군요.”

남천이 동천을 바라보며 빈정대듯 말했지만 바라보는 눈은 따뜻했다. 사실 자신의 생각도 똑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고통을 제자가 겪게 하고 싶진 않았을 뿐이다.

“도를 닦기는 무슨 도··· 다만 사랑을 배웠을 뿐이외다.”

“사랑?”

동천의 말에 남천이 되물었다. 도道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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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50. 구속과 자유 +4 18.03.20 1,602 46 10쪽
250 249. 용서와 응징 +5 18.03.13 1,632 41 10쪽
249 248. 형제 +5 18.03.06 1,744 42 9쪽
248 247. 유훈함遺訓函 +5 18.02.28 1,678 42 10쪽
247 246. 확대되는 삼별조 +3 18.02.24 1,709 39 10쪽
246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4 18.02.19 1,979 53 10쪽
245 244. 아침 +4 18.02.13 1,966 44 8쪽
244 243. 삼천三天의 後裔 +4 18.02.09 1,786 48 12쪽
243 242. 긴 하루 +6 18.02.06 1,754 45 10쪽
242 241. 내리 사랑 +3 18.02.03 1,698 39 10쪽
241 240. 신뢰 +3 18.01.31 1,775 42 9쪽
» 239. 삼천三天 +4 18.01.28 1,782 45 10쪽
239 238. 재격돌 +3 18.01.25 1,663 42 11쪽
238 237. 역부족力不足 +4 18.01.22 1,580 35 11쪽
237 236. 즐기는 북천 +5 18.01.19 1,664 35 10쪽
236 235. 고개를 내려오다 +4 18.01.15 1,665 41 9쪽
235 234. 아버지의 눈물 +4 18.01.12 1,848 39 10쪽
234 233. 손님들 +8 18.01.08 1,852 43 10쪽
233 232. 저력底力 +7 18.01.05 1,873 47 11쪽
232 231. 황새와 뱁새 +3 18.01.01 1,735 39 10쪽
231 230. 벽壁 +3 17.12.27 1,838 44 9쪽
230 229. 혼담婚談 +3 17.12.21 1,937 44 10쪽
229 228. 천외천天外天 +3 17.12.18 1,906 43 11쪽
228 227. 바둑 두는 노인들 +2 17.12.15 1,816 44 10쪽
227 226. 유정검有情劍 +2 17.12.12 1,766 42 11쪽
226 225. 재 진군 再進軍 +2 17.12.10 1,825 40 11쪽
225 224. 목전目前에서… +2 17.12.07 1,899 38 10쪽
224 223. 다섯 개의 싸움 2 +2 17.12.03 1,990 4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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