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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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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8.02.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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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DUMMY

사람들은 북천의 웃음소리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

아직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북천의 웃음소리는 묵진휘의 패배를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았다가 역시나 하는 비통한 심정이 되었다.


이윽고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그 자리에 서있었다. 북천 뿐만 아니라 분명 묵진휘도 그대로 서있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묵진휘가 그대로인데 왜 북천이 웃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먼지가 가라앉자 정작 눈앞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북천이었다.

“분명 묵운신공의 공간을 깨트렸거늘···”

섬광과 굉음이 공간 밖으로 새어나간 것은 분명 묵운신공이 지배하는 공간이 깨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묵진휘가 만들어 놓았던 먹구름도 사라졌다. 그런데 어떻게 동천의 후예가 그대로 서있는 것인지 북천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북천은 동천의 무예를 거의 알고 있었다. 사실 동서남북은 모두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 뿌리에서 갈려 나온 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진휘가 지하동굴에서 새로이 창안한 산기창공散氣創空은 몰랐다. 당연했다. 그것은 북천의 사부인 적대강의 말년의 깨우침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묵운신공이 창출하는 공간과 산기창공이 창출하는 공간은 성격이 달랐다. 묵운신공이 창출하는 공간은 묵운기가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이었기에 당연히 더 큰 힘에 의해 깨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기창공을 통해 창출된 공간은 새로운 차원, 새로운 법칙이 적용되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땅이 영구무변하게 사물을 끌어당기는 자연의 힘을 제거한 새로운 차원의 자연이자 세계였기에 북천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한 공간인 것이다. 그것은 힘으로 깨트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북천이 묵진휘에게 물었다. 궁금했던 것이다. 사실 어느 누구보다도 무공 자체에 관심이 많은 북천이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무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자긍심에 대한 균열이 질문으로 나타난 것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소.”

“하긴, 모르는 것은 없애버리면 될 일. 모르는 것을 없애버리면 아는 것만이 존재하게 되겠지.”

묵진휘의 대답에 북천이 스스로에게 해답을 제시하듯 말했다. 묵진휘의 새로운 공간을 무너뜨리겠다는 각오였다.

북천의 몸이 서서히 땅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즉, 허공 중으로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아~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탄성이 일었다. 아무런 도약도 없이 몸이 허공 중에 부드럽게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의붕경은 지하동굴에서 묵진휘가 앉은 채 허공 중에 떠있는 것을 봤지만, 사실 그러한 광경을 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북천이 사람 키 높이 정도로 떠오르더니 더 이상 올라가지는 않았다. 허공 중에 뒷짐을 진 채 당당히 떠있는 북천의 모습은 실로 세상을 발아래 굽어보는 천상의 신선 같은 풍모가 있었다.

“적멸신공 최고의 절기를 보여주마.”

북천의 목소리가 허공 중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멀리서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북천이 뒷짐을 진 손을 천천히 풀더니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양팔을 벌려 천천히 들어올렸다. 마치 허공 중에 무언가 있는 것을 들 듯 천천히 하늘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안개처럼, 연기처럼 북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불꽃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은 이전에 보였던 강기와는 다른, 차라리 교주가 천마참을 시전하면서 보였던 검붉은 연기와 비슷해 보이는 것이었다. 북천은 투명한 불꽃 속에서 영면하듯 눈을 감고 있었으나 불꽃이 점점 커지고 짙어짐에 따라 그 모습이 점차 보이지 않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넋을 놓고 북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로 황홀한 모습이었다.

거대한 붉은 불꽃이 공중에 뜬 채 화사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신비하고 기묘하면서도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불꽃을 마주하고 서있는 묵진휘가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묵진휘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천과 마찬가지로 묵진휘가 서서히 허공 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라졌던 먹구름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이번에도 사람들의 가느다란 탄성이 곳곳에서 일었다.

묵진휘가 딱 북천이 떠오른 만큼 허공 중에 떠올랐다. 불꽃 속에서 당당한 기운을 뽐내는 북천도 북천이지만 너무나 소박한 듯 담담하게, 아무런 기세나 기운을 내뿜지 않고 그저 무심한 듯 허공 중에 떠 있는 묵진휘도 경탄을 자아 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사실 묵진휘 머리 위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북천의 불꽃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푸른 하늘과 너무나 대조적이었지만 그 또한 너무 자연스러워 묵진휘와 조화로워 보였다. 아무튼 묵진휘의 비상飛上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두 손을 맞잡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당수진이 묵진휘가 허공 중에 떠오르자 두 손을 맞잡으며 나지막한 탄성을 터트렸다.

당수진과 관지선은 공녀 주여전을 모셔와 언덕 위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묵대협께서···”

관지선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나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무림가에서 태어나 무림인으로 자라왔다. 비록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아버지가 무림에서 발이 무척 넓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광경은 단연코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들은 적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공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공녀가 아무런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공녀에게 주었던 시선을 돌려야 했다. 공녀 주여전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 탓이다.


“형님, 도대체··· 이게 대체···”

남궁진걸의 옆에 있던 당현모가 남궁진걸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물음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앞뒤 말도 맞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이었으나 남궁진걸은 사천당가주 당현모가 무얼 묻는지 정확히 알았다. 오대세가의 가주인 자신들이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으며, 이해하기도 어려운 광경이 눈 앞에 벌어지고 있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자신의 심정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천외천天外天···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남궁진걸의 말에 당현모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하고 말았다. 사실 달리 무슨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남궁이현이 저 젊은이와 친구라지요?”

“그렇다는군.”

“좋겠소.”

“자네 딸 또한 서로 아는 사이라지 않던가?”

“친구는 아니지 않소?”

“남편의 친구면 친구라고 할 수 있겠지?”

“하하하. 형님께서 분명히 약속한 것이오.”

갑자기 당현모가 나지막하지만 뚜렷한 웃음을 날렸다. 그렇게 말해주는 남궁진걸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이현, 자네는 저 정도인 줄 알고 있었는가?”

서홍이 옆에 있던 남궁이현에게 물었다. 항상 묵진휘 곁에서 묵진휘와 함께 했던 서홍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자신이 묵진휘를 알고나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상상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짐작할 수 있었겠는가?”

남궁이현도 동일한 심정인 것이다.


“적멸폭류赤滅瀑流···”

갑자기 온 천지를 진동시키는 우렁찬 목소리가 하늘가에서 들려왔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넋놓고있던 정신을 수습해야 했다.

북천이 땅이 진동하도록 적멸신공 최고의 절기를 외친 후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화염이 되어 묵진휘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아가는 화염은 붉은 구슬이나 기검의 모양이 아니었다. 그냥 강물 같았다. 폭포를 옆으로 눕혀놓은 듯 북천에게서 묵진휘에게로 화염이 격류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실지로 화염이 쏘아져 가면서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는 듯한 소리마저 들려왔다.

적멸신공 최고의 절기, 적멸폭류였다.


적멸폭류가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던지 녹여버릴 기세로 묵진휘에게로 끝도 없이 쏘아져 가고 있었지만 묵진휘의 움직임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허공 중에 가볍게 몇 번의 손짓을 하는 정도였다. 그리곤 검을 들어 날아오는 적멸폭류를 향해 명필名筆이 단아한 획을 긋듯 검을 그어 내렸다.


콰르르릉 콰콰쾅···

찌찌찌찍···

쏴아아아~


땅이 갈라지는 소리와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차가운 물속에 잠길 때 나는 소리와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폭우가 내리 퍼붓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실로 자연에서 나는 가장 우람하고 장엄한 소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놓은 듯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맞잡은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황홀지경에 놓여 있었다.

우뢰 소리와 폭우가 쏟아지는 등의 요란한 굉음 속에 섬광이 번쩍이자 그것은 마치 현세가 종말하고 새로운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전설의 천지개벽天地開闢처럼 보였다.


아~

천지개벽이 끝나자 오직 한가지 소리만이 들려왔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울려 나오는 탄성이었다. 그것은 의식해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분명히 보았다. 천지개벽의 마지막 순간을.

맹렬한 기세로 묵진휘에게로 날아가던 적멸폭류가 토막토막 끊어지면서 순식간에 흩날려 버리고,북천이 일으킨 거대한 불꽃이 먹구름 속에서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꺼지기 시작하더니 한 줄기 섬광과 함께 한 사람이 땅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북천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훗날 오늘 두 사람의 싸움을 창주대전沧州大戰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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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50. 구속과 자유 +4 18.03.20 1,598 46 10쪽
250 249. 용서와 응징 +5 18.03.13 1,625 41 10쪽
249 248. 형제 +5 18.03.06 1,740 42 9쪽
248 247. 유훈함遺訓函 +5 18.02.28 1,674 42 10쪽
247 246. 확대되는 삼별조 +3 18.02.24 1,704 39 10쪽
»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4 18.02.19 1,974 53 10쪽
245 244. 아침 +4 18.02.13 1,963 44 8쪽
244 243. 삼천三天의 後裔 +4 18.02.09 1,783 48 12쪽
243 242. 긴 하루 +6 18.02.06 1,750 45 10쪽
242 241. 내리 사랑 +3 18.02.03 1,694 39 10쪽
241 240. 신뢰 +3 18.01.31 1,772 42 9쪽
240 239. 삼천三天 +4 18.01.28 1,777 45 10쪽
239 238. 재격돌 +3 18.01.25 1,660 42 11쪽
238 237. 역부족力不足 +4 18.01.22 1,578 35 11쪽
237 236. 즐기는 북천 +5 18.01.19 1,662 35 10쪽
236 235. 고개를 내려오다 +4 18.01.15 1,662 41 9쪽
235 234. 아버지의 눈물 +4 18.01.12 1,844 39 10쪽
234 233. 손님들 +8 18.01.08 1,850 43 10쪽
233 232. 저력底力 +7 18.01.05 1,871 47 11쪽
232 231. 황새와 뱁새 +3 18.01.01 1,732 39 10쪽
231 230. 벽壁 +3 17.12.27 1,834 44 9쪽
230 229. 혼담婚談 +3 17.12.21 1,933 44 10쪽
229 228. 천외천天外天 +3 17.12.18 1,903 43 11쪽
228 227. 바둑 두는 노인들 +2 17.12.15 1,811 44 10쪽
227 226. 유정검有情劍 +2 17.12.12 1,764 42 11쪽
226 225. 재 진군 再進軍 +2 17.12.10 1,823 40 11쪽
225 224. 목전目前에서… +2 17.12.07 1,896 38 10쪽
224 223. 다섯 개의 싸움 2 +2 17.12.03 1,986 41 11쪽
223 222. 다섯 개의 싸움 1 +2 17.11.28 2,025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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