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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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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연재수 :
2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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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8,507

작성
17.12.0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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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
11쪽

223. 다섯 개의 싸움 2

DUMMY

다섯 개의 싸움 중 세 개의 싸움이 끝나자 전장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양분되기 시작했다. 마교를 중심을 한 반反 북천회 연합의 분위기는 밝아졌고 당연히 북천회 무인들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하지만 아직 두 개의 싸움이 남아있었다.

반反 북천회 연합의 분위기도 어딘가 달랐다. 무림맹 측의 분위기는 승기를 잡았다는 측면에서는 밝았으나 아직 부맹주 허세학과 남궁이현의 싸움이 끝나지 않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허세학과 남궁이현의 싸움에 집중되었다.


그럴 즈음 당수진과 관지선의 연락을 받은 주은백이 전장에 도착했다. 주은백은 당수진과 관지선의 급한 전갈을 받았지만, 이황야 곁을 떠나지 말라는 장시랑의 요청으로 발이 묶여 있다가 이황야가 직접 전장으로 달려갈 것을 지시하고서야 경신술을 발휘해 전장으로 온 것이다. 물론 관지선과 당수진은 아직 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주은백이 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혼전은 멈춰있었고 모두 전장 중앙에서 벌어지는 몇 개의 싸움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싸움에서 남궁이현이 노인과 검을 겨루고 있었다. 주은백이 안력眼力을 돋우어 싸움을 바라봤다. 여차하면 자신이 개입할 생각까지도 하면서.

제삼자가 두 사람의 싸움에 개입하는 일은 무림에선 극히 드문 일이다. 대부분 이해관계자들의 다툼이기 때문에 제삼자가 함부로 개입하기 어려웠고 또 개입하는 것이 당사자를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자존심에 죽고 사는 것이 무인의 생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은백은 남궁이현이 위험하다 싶으면 개입할 마음이었다. 사고무친四顧無親인 자신에게 혈육 같은 친구가 남궁이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은백은 서둘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전장 중앙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남궁가의 검이 이리 매서웠단 말인가?”

등지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옷 두어 군데에서 핏물이 배어 있었다. 반면 남궁이현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을 뿐 혈흔은 없었다.

등지윤이 놀라는 이유는 남궁이현의 창궁무애검법이 분명 남궁세가의 일반적인 창궁무애검법인데도 불구하고 타개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명문가의 절기는 양면성을 가진다. 양면성은 모두 공개성公開性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명문가의 절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에도 전수된다. 비록 검법의 구결은 공개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여러 싸움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무림에 알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에 의한 대응책도 많이 나오게 된다.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익숙해진다는 뜻이고 그만큼 위협적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개성으로 인해 가지는 장점도 있다. 여러 사람에 의해 익혀지고 연구되어지면서 약점을 보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점은 더욱 극대화되고 약점은 줄어들게 되면 결과적으로 강력해지는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지만 그만큼 더욱 세련되어지고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명문가의 검법은 그런 연유로 인해 그 검법을 익히는 사람에 따라 성취도 천양지차天壤之差가 된다. 어떤 사람은 초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런 일반무사가 되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대부분 이와 같다.

등지윤이 느끼기에 남궁이현의 창궁무애검법은 무림에 알려진 창궁무애검법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능히 자신이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궁이현의 창궁무애검법은 너무나 완벽한 정석定石이었다. 한치의 덜함도 더함도 없었다. 찔러야 할 때 정확히 찔렀고 베어야 할 때 베어왔으며 방어해야 할 때 방어했다. 게다가 사람과 검이 더욱 일체화되어 그 간극을 살필 수 없었다. 틈이 없다는 말이다. 약점이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에 번뇌나 잡념이 없었다. 마치 강시가 최고의 창궁무애검법을 시전하기라도 하는 듯이 완벽한 정석 검법을 펼치고 있었다.

등지윤은 당황했다. 이러면 안되었다. 자신의 쾌검과 변검에 상대의 검이 흔들려야 한다. 그곳에 승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반대였다. 남궁이현의 정석에 자신의 검과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등지윤은 그 점을 알았다. 그래서 국면을 바꾸려고 조금 더 무리를 한다. 지금처럼 유지되면 안되기 때문에. 하지만 국면을 바꾸려고 조금 더 무리하는 것이 또한 그의 약점이 된다. 등지윤이 검에 조금 더 힘을 주고 조금 더 길게 남궁이현의 가슴을 찔러갔다.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주었고 길이를 길게 한 것이다.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과 길이가 일푼이 더 보태지자 방어가 일푼 약해졌다. 그 사이를 상대가 귀신 같이 알고 검을 찔러온다.


큭~

옆구리를 제법 깊게 찔렸다. 등지윤이 잇새로 신음을 뱉어낸다. 고통보다는 분노의 표현이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답답함의 표시였다.

옆구리에서 선혈이 터져나오면서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통증 뒤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이제 평정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번 공격에서는 이전 공격보다 확연하게 힘을 더 주고 방어를 완전 도외시한 채 더 깊게 찔러간다. 마지막 승부수다. 이기지 못한다면 동귀어진同歸於盡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등지윤이 마지막 힘을 다 끌어모아 신형을 날렸다. 초절정고수라도 무너져 내리는 절차는 일반 무인들과 똑 같은 것이다.


푹~

크윽~

두 검이 상대의 가슴을 동시에 찌르는 모양으로 두 사람이 교차한 채 멈추었다. 실제로 남궁이현의 검이 등지윤의 가슴을 관통한 채 등뒤에까지 쑥 나와있었고 등지윤의 검도 남궁이현의 등뒤에까지 뻗쳐 나와 있었다.


아~


두 사람의 마지막 일합을 바라본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안타까움이었다. 등지윤의 동귀어진 수법에 남궁이현이 당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현아~”

남궁식호가 남궁이현을 부르며 달려가려는 것을 남궁식연이 막아섰다.

“기다려보게.”

남궁식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등지윤이 무릎을 털썩 꿇으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가슴에는 여전히 남궁이현의 검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남궁이현이 검의 손잡이를 놓은 것이다.

그런데 등지윤의 검은 등지윤의 손에 그대로 잡혀 있었다. 등지윤의 검은 남궁이현의 몸에서 빠져 나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남궁이현은 쓰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서있었다.


“휴~”

남궁식연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궁이현이 등지윤의 검을 겨드랑이로 끼며 움직이지 못하게 한 채 자신의 검을 등지윤 가슴에 깊숙이 찔러 넣었던 것이다.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등지윤은 숨을 거두었다. 숨을 거둔 뒤에도 땅으로 눕지 못한 채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전대의 고수 한 명이 다시 사라져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고수검 모개였다.

허세학 부맹주와 고수검 모개의 대결은 글자 그대로 막상막하莫上莫下였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수평은 없는 법. 티끌만큼의 기울기가 모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리고 그 티끌로 인해 허세학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향후 전세를 예측하기 힘든 팽팽한 대결이 계속 이어졌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 한번 기울면 점점 경사는 가팔라진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기우뚱하다가 다시 기울기가 역전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세상일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과 함께 온 빈객청 최고 고수 넷이 명命을 달리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모개가 보았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자신이 비록 눈앞의 상대를 쓰러트린다 하더라도 자신은 이 전장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요화, 맹공위, 엄위연을 상대한 삼마존은 자신보다 윗길의 고수임이 분명했다. 자신에게로 기울던 티끌 같은 기울기가 현격하게 반대 방향으로 기울 수 밖에 없음을 직감한 것이다.

희망이 없다면 절망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모개가 그러했다.

모개가 갑자기 땅바닥을 급하게 차기 시작했다. 모개의 발차기에 따라 흙먼지가 일었고 잔돌들이 허세학에게로 날아들었다.

암수暗數라고 하기에는 너무 품격이 떨어지는 수법이었다. 허세학이 검을 쥔 손 말고 다른 손을 휘저어 날아오는 조그만 돌멩이들을 막거나 날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개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땅바닥을 차 돌멩이들을 허세학에게로 계속 날렸다. 그러다 보니 흙먼지는 더욱 일었고 점차 모개의 발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허세학은 모개의 수법을 보고 처음에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비열했기 때문이었고 비열함만큼 암수로서의 위력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흙먼지가 제법 일고 상대의 발 움직임이 흐려지자 다시 검을 고쳐 쥐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대의 보법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공격과 방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러던 차에 날카로운 금속성이 일었다.


깡~

금속성과 함께 번쩍하는 것이 허세학에게로 날아들었다. 허세학이 검으로 날아오는 것을 튕겨내자 역시 날카로운 금속성이 일었다. 모개가 전장 곳곳에 떨어져 있던 검 중 하나를 발로 튕겨 올린 뒤 자신의 검으로 튕겨져 오른 검날을 쳐서 허세학에게로 날려보낸 것이었다.

날아오는 검날은 당연히 조그마한 돌멩이보다 위협적이었다. 허세학이 위험을 감지하고 신경을 집중해 검날을 쳐낸 뒤 모개를 바라봤다. 다음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모개의 다리는 여전히 흙먼지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허세학이 더욱 안력을 돋우어 모개를 살피려 했다. 그 순간, 모개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갑자기 모개의 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모개가 뒤쪽으로 쏜살같이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허세학이 어이없음에 피식 웃고 말뿐 차마 잡으러 쫓아가지 못했다.

모개의 최선은 도망이었다. 무인은 자존심으로 살고 자존심으로 죽는다. 불리하다고 도망간다면 무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그런데도 위명이 쟁쟁한 모개 같은 고수가 숱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도망을 가고 있으니.

모개는 치욕을 감수하면서 최선을 선택했다. 절망 앞에 최선은 도망이다. 그럼 의미로 최선은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다. 또한 그런 의미로 모든 최선이 항상 최선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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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249. 용서와 응징 +5 18.03.13 1,623 41 10쪽
249 248. 형제 +5 18.03.06 1,739 42 9쪽
248 247. 유훈함遺訓函 +5 18.02.28 1,673 42 10쪽
247 246. 확대되는 삼별조 +3 18.02.24 1,703 39 10쪽
246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4 18.02.19 1,972 53 10쪽
245 244. 아침 +4 18.02.13 1,962 44 8쪽
244 243. 삼천三天의 後裔 +4 18.02.09 1,782 48 12쪽
243 242. 긴 하루 +6 18.02.06 1,749 45 10쪽
242 241. 내리 사랑 +3 18.02.03 1,692 39 10쪽
241 240. 신뢰 +3 18.01.31 1,771 42 9쪽
240 239. 삼천三天 +4 18.01.28 1,776 45 10쪽
239 238. 재격돌 +3 18.01.25 1,659 42 11쪽
238 237. 역부족力不足 +4 18.01.22 1,577 35 11쪽
237 236. 즐기는 북천 +5 18.01.19 1,661 35 10쪽
236 235. 고개를 내려오다 +4 18.01.15 1,661 41 9쪽
235 234. 아버지의 눈물 +4 18.01.12 1,843 39 10쪽
234 233. 손님들 +8 18.01.08 1,849 43 10쪽
233 232. 저력底力 +7 18.01.05 1,870 47 11쪽
232 231. 황새와 뱁새 +3 18.01.01 1,731 39 10쪽
231 230. 벽壁 +3 17.12.27 1,832 44 9쪽
230 229. 혼담婚談 +3 17.12.21 1,932 44 10쪽
229 228. 천외천天外天 +3 17.12.18 1,902 43 11쪽
228 227. 바둑 두는 노인들 +2 17.12.15 1,810 44 10쪽
227 226. 유정검有情劍 +2 17.12.12 1,763 42 11쪽
226 225. 재 진군 再進軍 +2 17.12.10 1,822 40 11쪽
225 224. 목전目前에서… +2 17.12.07 1,895 38 10쪽
» 223. 다섯 개의 싸움 2 +2 17.12.03 1,985 41 11쪽
223 222. 다섯 개의 싸움 1 +2 17.11.28 2,024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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