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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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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8.01.1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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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34. 아버지의 눈물

DUMMY

오늘도 봄볕 양지바른 정자에서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북천과 태상호법이었다.

바둑 두는 손길은 그런대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으나 두 사람의 입은 무겁게 닫혀있었다.

그때 막 바둑돌을 바둑판에 놓으려던 한 노인의 손이 우뚝 그대로 멈추었다.

“무슨 일이냐?”

바둑돌을 그대로 쥔 채 태상호법이 바둑판에서 눈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자, 허공에서 한 인영이 떨어져 내리며 두 노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俯伏했다.

태상호법을 음지에서 보필하던 은균이었다.

“보고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은균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회주인 북천마저 바둑판에서 고개를 돌려 은균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일이라면 자신이 있는 앞에 나타나지 않을 은균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나타났다면 중대한 소식이리라.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음울한 것을 보니 좋지 않을 소식일 터였다.

그런 예감은 태상호법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말하라.”

“이공자께서···주검으로 발견되셨습니다.”

은균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의 결론부터 꺼냈다. 보고자는 이래야 한다. 보고 받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에둘러 보고한다면 분노를 부채질할 뿐이다.


툭···

바둑돌 하나가 바둑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태상호법이 쥐고 있던 바둑돌을 떨어뜨린 것이다. 그러나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회주가 은균에게 물었다. 태상호법 대신 회주가 물은 것이다.

“천진 외곽의 금의위 장원에서 발견되셨습니다. 옆에는 토호법의 시신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공자께서는 가슴에 검을 맞은 상처가 있었고, 토호법도 검에 의해 죽었습니다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인물에 의해 당하신 것 같다는 것이 감식한 자들의 진술이었습니다.”

“황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천진에는 왜 갔는가?”

회주가 계속 물었다.

“사승상의 요청으로 도망간 약재상을 잡으러 가셨습니다.”

“흉수가 누군지 아느냐?”

“아직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현장에는 금의위 무사들도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은균의 말을 끝으로 회주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번에는 태상호법이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담담한 목소리에 팽팽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황궁으로 모셔갔습니다.”

“알겠다. 이만 물러가라.”

태상호법의 말이 끝나자 은균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은균이 사라지자 잠시 두 노인은 말이 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놈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태상호법이 회주에게 말했다. 놈들이란 동천, 서천, 남천의 후예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의미였다. 말하는 태상호법의 눈에 점점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태상호법의 말에 회주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태상호법의 추측은 당연했다. 그들이 아니라면 자신의 제자인 도수를 죽일 사람은 이 강호에 없을 것이었다.

“어느 놈인지 확인해야겠습니다.”

태상호법이 잇새로 말을 뱉었다. 점점 분노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 그의 눈은 불꽃과 물기가 뒤섞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곳에 없는 놈이 그 놈일 테지.”

북천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고개 너머 이황야의 대열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놈이 이공자를 죽인 흉수일 것이었다.

“당장 확인해야겠습니다.”

태상호법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처음의 차분했던 감정이 결국에는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태연할 것처럼 보였던 냉철한 태상호법이 점점 이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천은 태상호법을 제지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 자식이 있지는 않지만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까지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도수가 사실 정이 가는 제자는 아니었다. 성정이 냉정하고 교활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천은 마음 속으로 대제자 차시천을 자신의 진정한 제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그런 마음을 밝힌 적은 없다. 심지어 차시천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말년의 차시천은 그런 말을 한다고 알아 들을 상태도 아니었지만.


북천은 태상호법이 자신의 아들을 제자로 받아 들여 달라는 요청을 할 때 잠시 머뭇거렸다. 동서남북은 일인전승 문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이미 제자 차시천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동서남북의 유훈遺訓을 무시하기로 한 마당에 그런 법칙 또한 신경 쓸 것이 없었다. 그래서 도수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커서는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때 북천은 태상호법의 복안腹案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황궁과 무림을 동시에 장악하겠다는 야망을.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 자신은 정치나 황궁에 관심이 없었다. 권력을 태상호법이나 그 아들 도수가 틀어쥐든 아니든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말렸어야 했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 탈이 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 모든 것도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한 것이다.

북천이 태상호법을 따라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럼 가보세. 여기서 기다리거나, 내가 찾아가거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때 왜 기권하셨소?”

소림의 청우 스님이 남궁이현에게 물었다. 망중한忙中閑이라고, 대치 상태였지만 싸움이 없으니 시간이 남았던 청우가 남궁이현을 찾아 온 것이다.

둘은 몇 년 전 무한에서 열린 영웅대회에서 알게 되었는데, 그때 청우가 우승을 차지했고 남궁이현은 중도에 기권했는데, 지금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청우 옆에는 잘생겼으나 선이 가늘어 조금 교활해 보이는 젊은이가 함께 있었는데, 그는 모용세가의 모용기였다. 그 역시 영웅대회에 참여했었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출신은 본선부터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남궁이현과 약간의 언쟁을 벌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몸이 좋지 않았소.”

남궁이현이 담담하게 답했다.

“허허. 사실대로 말해보시오. 남궁 형 같은 강골이 몸이 아팠다니 누가 곧이 믿겠소?”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물러 서지 않을 듯 집요하게 묻는 청우였다.

사실 청우는 영웅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동년배 중에서는 자신의 무공이 가장 낫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몸과 마음을 닦는 소림에서 그런 자부심이 용납되지 않았고, 자신 스스로도 그런 마음을 비우려 하였으나 아직 젊다 보니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도승 이전에 무인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자부심 때문에 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몸이 아팠소.”

그럼에도 여전히 몸이 아팠다고 핑계를 대는 남궁이현이었다. 남궁이현으로서도 청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보여준 남궁 형의 무위라면 나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수준이었소. 나는 남궁 형이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는다면 남궁 형이 나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겠소.”

언제나 어른스러운 태도를 취하던 청우였다. 소림사 내에서도 또래 중에서는 무공이 강할뿐더러 반듯하기로 이름났지만 오늘 남궁이현에게 만큼은 떼쟁이처럼 굴고 있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고 싶은 것이다.

남궁이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입을 뗐다.

“알겠소. 사실대로 얘기하겠소. 혹시 영웅대회 기간 중에 연속된 습격 사건이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시오?”

남궁이현이 청우에게 묻자 옆에 있던 모용기가 먼저 답했다.

“기억하오. 그때 영웅대회 참가자 중에 여럿 사람이 괴한의 습격으로 명을 달리 했소. 또한 영웅대회 참가를 위해 각 곳에서 무한으로 오던 사람들 몇도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 들었소. 분명히 기억하오.”

“나도 기억하오. 그런데 그게 왜?”

청우가 모용기의 말을 받았다.

“나도 영웅대회 비무 중 누군가의 기습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다행히 위기를 피할 수 있었소. 그것을 계기로 도움을 준 사람과 친구가 되는 인연을 맺었는데, 우연히 그 친구가 다른 사람과 겨루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소. 그때 본 그 친구의 무공은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소. 당연히 내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소. 그러다 보니 솔직히 영웅대회 비무가 시시하게 여겨졌고 흥미를 잃게 되어 기권했던 거요. 그때 습격을 한 괴한들이 바로 지금 우리가 맞서고 있는 북천회요. 그때부터 놈들의 꼬리를 잡는데 집중하다 보니 또한 영웅대회에 집중하기 어려웠소.”

남궁이현이 당시의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랬구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영웅대회에서 우승했다고 속으로 으스대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몸 둘 바를 모르겠구려.”

청우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부끄러워했다.

“아니오. 당시 내가 영웅대회에 참여했다 해도 청우 스님의 우승은 변함이 없었을 것이오. 내 장담하오.”

“나를 위로하려 애쓰지 마시오. 이미 얘기한대로 남궁 형의 무공은 내가 필적할 바가 아니오.”

청우가 남궁이현의 말이 단지 자신을 위로하는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이오. 그때 내 실력은 정말 초라했소. 다만 그때 그 친구의 무위를 보고 받은 충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 약이 된 듯하오. 그리고 그 친구의 도움도 무척 컸소. 그래서 그나마 지금 정도 된 것이오.”

남궁이현이 청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고 청우는 남궁이현의 말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좋은 친구를 만났구려. 그 친구가 도대체 누구요?”

청우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근자近者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바로 동천의 후예였소.”

남궁이현의 대답을 듣자 모용기는 속으로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이 그 당시 동천의 후예를 만났다면 지금 남궁이현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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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50. 구속과 자유 +4 18.03.20 1,598 46 10쪽
250 249. 용서와 응징 +5 18.03.13 1,625 41 10쪽
249 248. 형제 +5 18.03.06 1,740 42 9쪽
248 247. 유훈함遺訓函 +5 18.02.28 1,674 42 10쪽
247 246. 확대되는 삼별조 +3 18.02.24 1,704 39 10쪽
246 245. 먹구름 속에 가리고 +4 18.02.19 1,974 53 10쪽
245 244. 아침 +4 18.02.13 1,963 44 8쪽
244 243. 삼천三天의 後裔 +4 18.02.09 1,783 48 12쪽
243 242. 긴 하루 +6 18.02.06 1,750 45 10쪽
242 241. 내리 사랑 +3 18.02.03 1,694 39 10쪽
241 240. 신뢰 +3 18.01.31 1,772 42 9쪽
240 239. 삼천三天 +4 18.01.28 1,777 45 10쪽
239 238. 재격돌 +3 18.01.25 1,660 42 11쪽
238 237. 역부족力不足 +4 18.01.22 1,578 35 11쪽
237 236. 즐기는 북천 +5 18.01.19 1,662 35 10쪽
236 235. 고개를 내려오다 +4 18.01.15 1,662 41 9쪽
» 234. 아버지의 눈물 +4 18.01.12 1,845 39 10쪽
234 233. 손님들 +8 18.01.08 1,850 43 10쪽
233 232. 저력底力 +7 18.01.05 1,871 47 11쪽
232 231. 황새와 뱁새 +3 18.01.01 1,732 39 10쪽
231 230. 벽壁 +3 17.12.27 1,834 44 9쪽
230 229. 혼담婚談 +3 17.12.21 1,933 44 10쪽
229 228. 천외천天外天 +3 17.12.18 1,903 43 11쪽
228 227. 바둑 두는 노인들 +2 17.12.15 1,811 44 10쪽
227 226. 유정검有情劍 +2 17.12.12 1,764 42 11쪽
226 225. 재 진군 再進軍 +2 17.12.10 1,823 40 11쪽
225 224. 목전目前에서… +2 17.12.07 1,896 38 10쪽
224 223. 다섯 개의 싸움 2 +2 17.12.03 1,986 41 11쪽
223 222. 다섯 개의 싸움 1 +2 17.11.28 2,025 4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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