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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trah의 몽상.

오르비스 플랜 (Orbis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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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trah.
작품등록일 :
2016.01.14 00:41
최근연재일 :
2016.02.03 16:4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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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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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3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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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공작가 살인사건 - 2

DUMMY

#6. 공작가 살인사건 - 2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주인마님.”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위해 화려한 칼질로 당근을 괴롭히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주인마님의 방문에 화들짝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내가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던 식칼이 당근이 아니라 나의 손가락을 괴롭힐 뻔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메이핀 공작가에서 시녀 서열 2위이자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식(食)’을 담당하고 있는 몸 아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두 분의 도련님들이 나의 손을 거친 음식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나는 흔들리는 식칼을 안전하게 잡아냄과 동시에 깜짝 놀란 마음을 순식간에 다잡았고 이어 밝은 미소로 주인마님께 인사를 올렸다.


“오늘 아침 메뉴는 뭐지?”


휴..... 저 목소리. 듣기 싫어 죽겠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대륙에서 거지 다음으로 ‘을’의 입장에 있는 시녀가 아닌가? 짬이 아무리 차봐야 그것도 이 공작가 내에서만 그런 것이니 차라리 길에 사는 거지들보다 나을게 뭐란 말인가.


“예. 오늘 아침은 우올로 산맥의 청정지역에서 자란 소의 안심을 얇게 저민 고기와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샐러드, 그리고 유기농으로 재배된 당근주스입니다.”


“좋아. 그리고 식후 티타임에는 홍차를 좀 진하게 내려줘.”


“그리하겠습니다. 주인마님.”


대답을 하고 고개를 들자 언제 있었냐는 듯 주인마님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긴, 한 달에 한번 들어오실까 마실까 한 분이시니.... 당근이나 마저 손질해야지.


“아얏!”


나는 칼을 잡자마자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얏!!”


나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에 새로 들어온 아이가 또 사고를 쳤나보다. 손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칼질을 하다 손을 베었으리라.


“시녀님. 죄송합니다. 칼질하다 그만.....”


피를 줄줄 흐르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나를 향해 연신 허리를 숙이는 막내를 보니 애초에 품었던 혼찌검을 내주리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않고!”


어쩌겠는가. 어디든 신입의 생활은 고달픈 것을. 나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자 어느새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얼른 처치하고 와!”


내가 다시 한 번 소리를 치자 막내아이는 부리나케 주방을 벗어났다. 아마도 약상자가 있는 시녀 전용 창고로 가는 것일 테지.


“저... 시녀님. 이것은 어떻게 할까요?”


막내아이가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도마로 시선을 옮기려던 찰나에 다른 시녀가 다시 나에게 물어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막내아이가 손질하던 것이었는지 피범벅이 된 소고기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특상품의.


“그걸 어디다 쓴단 말이냐. 그냥 버려.”


“예. 시녀님.”


휴. 여기 있는 것들은 도대체가 내가 없으면 뭐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지! 내가 못살아 정말!


아침 준비를 마치고 시녀들과 함께 모여 조촐한 아침 식사를 했다. 사실 말이 조촐하다는 것이지만 이 저택의 모든 음식을 관장하는 내가 먹는 식사이니 다른 쪽의 시녀들의 식사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다. 거기다 케룸 왕국의 권세가 중 하나인 메이핀 공작가의 식자재들은 차고 넘쳤고, 또 훌륭했다. 그렇기에 평민들의 생일상 정도의 품질은 보증하고도 남았다.


“시녀님. 오늘 저녁에 있을 파티에 쓸 와인이 좀 부족합니다만, 어찌할까요?”


이런. 오늘 저녁에 파티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물론 한 달에 열두 번도 더 하는 파티이긴 했지만 큰 도련님의 로터스 나이츠 입단 기념 파티인지라 오늘의 파티는 중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마님이 아침부터 주방에 오셨구나....’


단순히 아침 메뉴를 물어보고 나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오늘 있을 파티를 신경 써서 준비하라는 무언의 압박인 듯 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내가 직접 상단에 다녀오겠네. 자네도 함께 가지.”


“알겠습니다. 시녀님.”


상단에 사람을 시켜 가져오라고 해도 될 일이었지만 특별한 파티에는 특별한 술이 필요한 법. 내가 직접 가서 가져오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큰 도련님의 음주 스타일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나머지는 주방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마. 일손이 부족하니 파티가 시작되고 난 후에도 계속 음식을 해야 할 거야.”


“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시녀 하나를 데리고 저택을 나섰다. 여기서 스미스 상단까지는 얼추 십오 분 정도.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거리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덕분에 상점마다 붐비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함께 나온 시녀와 수다를 떨며 걷다보니 어느새 스미스상단 입구에 도착했고 덩치가 우람한 경비원이 칼 같은 목소리로 용건을 물었다.


“여기는 스미스 상단의 본관입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매번 오는 스미스 상단이지만 이곳은 참 신기한 곳이었다. 매번 똑같은 대사도 그렇거니와, 돈을 많이 받는지 경비를 포함한 직원들도 쉽사리 교체되는 법을 몰랐다.


“저희는 메이핀 공작가의 시녀들입니다. 오늘 큰 파티가 있어 술을 몇 병구할까 하고....”


역시 반응도 똑같다. 메이핀 공작가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하긴, 우리 공작님께서 세긴 세시지.


“아, 알겠습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경비원이 앞장서자 나와 시녀가 뒤를 따랐다. 내가 길을 알기에 우리끼리 가도 되었겠지만 상대가 베푸는 호의를 그저 마다하기에는 그런 호의에 너무 목말랐다.


‘그렇지. 정원을 지나가는 게 빨라. 저번에는 건물 밖으로 빙 둘러가서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 생각나는군.’


정원을 지나 조금 걷자 본관에 딸린 한 층짜리 건물이 하나 나왔다.


‘오! 역시 화려하다니까! 돈을 얼마나 들이 부었으면.... 그래도 케룸시티에 있는 모든 귀족들을 상대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겠지.’


건물 앞에 도착하자 경비원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한정품 판매소입니다. 부디 만족하시길....”


우웩.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경비원의 기막힌 윙크를 나는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구역질이 올라오려 했지만 겉으로는 쓴웃음이나 그 비슷한 종류의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아무리 시녀라도 저택을 나온 순간 공작가의 얼굴이었으니까.


끼익.


“어머! 이게 누구세요? 메이핀 공작가의 메리 시녀님 아니신가요?”


“어머! 오거스트 자작가의 줄리 시녀님! 참 오랜만이군요!”


나는 이런 거추장스러운 대화들이 싫었다. 왜냐하면 시녀들이란 존재들은 어차피 거대한 저택의 톱니바퀴와도 같은 존재. 도대체 톱니바퀴들끼리 인사가 왜 필요한 건지...... 하지만 반갑게 걸어오는 인사를 피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요. 참 오랜만이군요! 그나저나 오늘 큰 파티가 있으시다 던데.....? 그 때문에 오신건가봐요?”


“네. 큰 도련님께서 로터스 나이츠에 입단 하셨거든요. 그 축하 파티랍니다.”


순간 나는 얼른 필요한 것들을 사서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역시나 이런 무의미한 대화들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축하드려요! 메이핀 공작님의 위세가 더욱 더 높아지시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저흰 바빠서 이만....”


나는 빠르게 인사를 하고는 판매소로 들어섰다. 나의 연기력으로 봤을 때 정말 바빠서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였을 테지. 그런데 이 년은 표정이 왜이래? 같이 나온 시녀의 표정이 슬금슬금 문 밖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라도 흘린 건가?


“너는 가서 포도주를 가져오너라. 프레센티아가 좋겠어. 빈티지별로 한 병씩 가져오너라. 난 이쪽을 둘러보겠다.”


나는 함께 온 시녀에게 포도주를 가져오라 시키고는 주변을 차근차근 살피기 시작했다. 큰 도련님은 어차피 포도주를 제외하고는 별로 드시지 않으시는 편이라 독한 술은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병 정도는 준비하고 싶었다.


한정품 판매소에는 주류 말고도 다양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각종 세공품이며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특산품들, 그리고 타국에서 들어오는 값비싼 물건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그중에 단연 인기 있는 품목이라면 바로 장신구였다. 하지만 나 같은 천것들은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비싼 가격을 자랑하고 있어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중에 반대편 진열대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릴 적에 같은 동네에서 살던 푸린이었다.


“얘! 푸린!”


내가 푸린을 부르자 그녀의 고개가 획하고 나를 향해 돌아왔다.


“어머! 메리! 너도 왔구나?”


“그럼~ 우리 큰 도련님 축하 파틴데 당연히 내가 직접 술을 골라 가야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미 없는 대화에 지쳐있었던 나는 푸린의 푸짐한 얼굴을 보자 금세 웃음이 나왔다. 열 살의 나이에 서로 팔려가 소식 없이 지내다가 불과 몇 년 전에 이곳에서 만났었다. 무려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그랬구나. 하긴, 나도 비슷한 이유니까.”


푸린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비슷한 이유?”


“응. 후작님께서도 오늘 파티에 참석하시잖니. 그래서 가지고 가실 선물을 사오라고 하시더라구.”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푸린이 속해 있는 곳은 플래밍 후작가. 메이핀 공작가 만큼은 아니었지만 케룸왕국에서도 손꼽는 명문가였다. 푸린의 말이 이해가 되자 나는 다시 밝게 웃었다. 그런데 순간 나의 시선을 잡아 끈 무언가가 있었다.


“얘!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니?”


나는 푸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물었고 푸린은 이해한다는 듯 나의 귀에 속삭여주었다.


“후작가에 오신 손님인데, 아리엔스 백작가의 도련님이셔.”


“아리엔스 백작가? 그 8년 전의?”


“응. 이번에 일이 있어서 아드님을 보내셨나봐.”


밝은 금발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그리고 날렵한 턱선을 가진 아리엔스 백작가의 도련님은 너무나도 미남이었다.


“어헛! 그만 좀 봐! 눈치 채실라!”


“응?”


내가 꽤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는지 푸린이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푸린의 핀잔에도 나의 시선은 멈출 줄 몰랐다.


“아서라, 아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 꿈 깨셔!”


나에게 더 이상 푸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푸린의 말과는 다르게 오르지 못할 나무니까 쳐다보기라도 실컷 해야 한다는 게 내 신조였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오래가지 않아 멈추고 말았다.


“시녀님. 포도주 다 챙겨 왔습니다.”


이 년은 하필 이럴 때!


“흠흠.... 잘 보고 가져 왔겠지? 혹시라도 잘못 가져왔을 땐 경을 칠 줄 알거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의 조망권(?)을 침해한 시녀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고 좋던 느낌이 깨지자 나는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푸린. 독한 술 좀 추천해줘. 큰 도련님이 독한 술을 즐기시지 않으니 뭐가 나을지 몰라서 말이야.”


“독한 술? 음.... 그건 나도 잘....”


그때였다. 금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인지, 엘프의 하프연주에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인지 모를 만큼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내 귀를 녹였다.


“독한 술을 찾으세요? 그럼 이 녀석이 좋을 겁니다. 바로 이프리트 21년산이죠!”


방금까지만 해도 나의 시선을 독점했던 아리엔스 백작가의 도련님이었다.


“어머! 도련님께서 추천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아마 저희 큰 도련님께서도 기뻐하실 듯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술인데 지방에서는 잘 보기가 힘든 녀석이라..... 하지만 맛 하나는 끝내주니 걱정 마시고 추천하셔도 될 듯해요.”


아아. 저 밝은 미소. 어찌 웃을 때 보이는 치아까지 아름답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마 내가 시녀로 산 18년 인생 중 가장 정중한 인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자 여전히 밝게 웃는 도련님의 모습이 보였다.


“별말씀을.... 그나저나 시녀장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예. 필요한 것은 다 샀으니 돌아가도 될 듯합니다.”


이런. 이렇게 빠른 이별이 찾아 올 줄은 몰랐다. 나는 얼굴에 아쉬움을 한가득 머금을 수밖에 없었고 푸린은 웃음을 참는지 입가를 씰룩이며 나에게 인사하고는 판매소를 나갔다. 도련님과 함께.


나는 도련님이 사뿐히 걸어 지나간 입구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나, 사랑에 빠진 걸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어딜가나 경비원들은 딱딱한 듯 합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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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공작가 살인사건 - 3 16.02.03 248 0 14쪽
» 공작가 살인사건 - 2 16.01.31 268 0 13쪽
21 공작가 살인사건 - 1 16.01.29 245 0 13쪽
20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4 16.01.27 280 0 11쪽
19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3 16.01.26 274 0 10쪽
18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2 16.01.25 202 0 12쪽
17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1 16.01.23 243 0 13쪽
16 팔찌와 작업의 상관 관계 - 2 16.01.22 331 0 12쪽
15 팔찌와 작업의 상관 관계 - 1 16.01.21 246 0 11쪽
14 세픽스의 꼬마 숙녀 - 6 16.01.21 280 0 8쪽
13 세픽스의 꼬마 숙녀 - 5 16.01.21 290 0 10쪽
12 세픽스의 꼬마 숙녀 - 4 16.01.20 252 0 9쪽
11 세픽스의 꼬마 숙녀 - 3 16.01.20 285 0 11쪽
10 세픽스의 꼬마 숙녀 - 2 16.01.17 245 0 10쪽
9 세픽스의 꼬마 숙녀 - 1 16.01.17 314 0 13쪽
8 서신 전달 - 6 16.01.16 204 0 11쪽
7 서신 전달 - 5 16.01.16 266 0 12쪽
6 서신 전달 - 4 16.01.16 252 0 9쪽
5 서신 전달 - 3 16.01.15 313 0 9쪽
4 서신 전달 - 2 16.01.15 307 0 13쪽
3 서신 전달 - 1 16.01.14 240 0 16쪽
2 프롤로그 - 2 16.01.14 413 1 14쪽
1 프롤로그 - 1 16.01.14 565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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