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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trah의 몽상.

오르비스 플랜 (Orbis Plan)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Nitrah.
작품등록일 :
2016.01.14 00:41
최근연재일 :
2016.02.03 16:4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6,553
추천수 :
3
글자수 :
122,105

작성
16.01.1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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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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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프롤로그 - 1

DUMMY

#. 프롤로그 - 1




창세 2689년



초록빛이 넘실거리는 드 넓은 초원. 그 한복판에 외롭게 오랜 세월을 견뎌낸 고목. 그리고 고목을 등받이 삼아 앉아있는 한 남자. 쪽빛 하늘에 군데군데 하얀 구름들이 떠다니는 풍경과 꽤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 주변을 뛰어 다니는 주인을 닮은 개 한 마리. 그 개도 이런 날씨가 무척이나 맘에 드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다 혼자 노는게 심심했던지 남자에게 다가와 팔 소매를 물고 당기기 시작했다.


“메리~ 잠깐 기다려~ 딱 서른페이지만 더 읽고 놀아줄게!”


적당히 늘어뜨린 긴 머리는 구름을 떼어다 붙인 듯한 백발, 남자치고는 너무 큰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눈, 머리칼을 따라 날렵하게 떨어지는 턱선. 회색의 목이 넓은 니트를 입은 남자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참으로 변화 무쌍하기가 그지없다. 어떨 때는 키득키득 연신 웃기만 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다소 진중한 표정으로 손을 턱에 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런 남자는 메리의 놀이 요청을 턱 밑을 긁어 주는 걸로 떼어 놓은 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을리는 만무하지만 뾰로통한 표정의 메리는 다시금 초원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나비를 향해 다시 뛰어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책을 읽던 남자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독서 삼매경이었는지 책을 뒤집어 엎어놓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넓은 초원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하아암~ 역시 책은 이런 날씨에 읽어야지!”



긴 독서가 끝이 난 모양인지 남자는 엎어놓았던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메리를 불러 살가운 미소와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초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솔길을 걷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량.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미풍을 느끼며 시선은 저 먼 곳으로 휘적휘적 던지고 있었다. 초원을 벗어나 숲을 걸을 때는 지저귀는 새들과 인사를 나누고 조막만한 몸으로 자신의 길을 가로 막고 있던 다람쥐와 눈싸움도 하며 걸었다. 한참 걷던 남자는 아까 메리와 놀아주지 못한게 마음에 걸렸는지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메리의 눈앞에서 흔들더니 싱긋 웃어주고는 나뭇가지를 멀리 던져 버렸다. 메리는 그제서야 놀아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풀렸는지 신나게 나뭇가지를 쫓아 달렸다. 그러기를 두세번 하다보니 한켠에 나무로 만들어진 그네가 인상적인 넓은 정원이 나왔는데 그 뒤엔 나무로 지어진 아담한 오두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자는 쓴웃음을 한번 짓고는 걸음을 계속 옮겨 오두막의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문을 열었다.



“나 왔......”



콰직!


남자는 문을 열자마자 자신의 고개 옆을 스쳐 지나가는 물체에 기겁을 하며 자신에게 날아온 물체를 살폈다. 분명 주방에 있어야 할 물건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딜 싸돌아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오는거야!! 오늘 내가 같이 저녁 준비 하자고 했어 안했어!! 도대체 지금이 몇시야!!”


물체를 보며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왜 여기 있을까라는 생각을 이어가던 남자는 성난 목소리에 그 생각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초정도 생각을 하는 듯 싶더니......


“아하하...... 미안미안. 금방 돌아오려는데 메리녀석이 갑자기 도망가지 뭐야~ 그래서 늦었지~ 절대! 절대!


내가 책에빠져 시간 가는줄 모르다가 이제 돌아온건 아니라구! 메리! 맞지!? 이게 다 네녀석 때문이다! 내가 그리 도망가지 말라고 일렀거늘!!”


역시 1초란 시간은 변명을 지어내기에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남자는 몸소 증명하며 메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계속 윽박을 질러댔다. 물론 바닥에 떨어진 냄비뚜껑을 조심스레 줍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그의 안절부절하는 심리상태를 어찌할 순 없었다. 냄비뚜껑을 주워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목소리의 주인공, 냄비뚜껑을 괴물같이 던져낸 여자를 식은땀 흘리며 쳐다봤다.


“테미스 네놈은...... 대체 날 뭘로 생각하는거야!! 내가 네놈 동생이지 가정부냐! 앙? 식모야!? 이게 꼬박꼬박 끼니 챙겨주니까 아주 내말을 껌 씹듯 씹고있어 아주!”


“미안 리리스. 잘못했어...... 근데 진짜 메리가......”


“닥쳐!!”



쨍그랑!



테미스는 냄비뚜껑에 이어 자신의 여동생 리리스가 던진 접시를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메리를 부둥켜 안았다.


“메리야~ 나 좀 살려줘~ 저 무식한 여동생이 하늘같은 오빠를 죽이려 한다구~ 빨리 말 좀 해줘! 니가 계속 도망다니는 바람에 늦었다구. 응?”


테미스는 어지간히 급했던지 말 못하는 짐승인 메리에게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짐승이 말을 할리는 만무하지만......


“에잉~ 변명을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좀 해! 짐승인 나도 그런 변명은 안하겠다. 나보다 64살이나 많은게...... 쯧쯧.”


신기한 일이었다. 개가...... 짐승이...... 말을 하고 있었다. 더 웃긴건 복종의 상징. 충성심에 있어선 관우, 장비도 명함을 못 내밀 개가 주인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음해하고 있었다. 테미스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슬픈 눈으로 메리를 바라봤다.


“메리야...... 너마저 이 형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단 말이냐...... 이 형은 참으로 슬프도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이러한 관계는 없었다! 감히 개.주.제.에 주인을 음해하다니...... 저기 어딘가에 플란다스란 동네에서는 개들이 주인과 같이 수레도 끌고 죽음도 같이 한다는데...... 말세구나 말세야......”


“에휴...... 그럼 거기 가서 살어!!”


메리는 앞발로 테미스의 머리를 툭 치더니 슬렁슬렁 걸어 자신의 보금자리인 메리하우스로 들어가 앞발을 괴고 편안히 엎드리고는 눈을 감았다. 테미스는 망연자실한 듯 고개를 떨궜지만 무시무시한 살기를 느끼고는 이내 일어나서 차려자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리리스가 아직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리리스...... 내가 잘못했다! 이 오빠가 잘못했어!! 그러니 밥만 굶지 않게 해다오!”


“네놈한테 줄 밥 없어!!”


식사란 인간의 생계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써 요즘엔 먹는 걸 인생 최고의 낙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특히나 테미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보였다. 하지만 단단히 화가 난 리리스를 보고는 풀이 죽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더니 거실을 가로질러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밟았다.


“거실 치우고 가!!”


“......옙!”


테미스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이 집안 내에서의 자신의 위상에 대해 생각을 하며 냄비뚜껑을 닦고 또 닦기 시작했다.


바닥에 늘어진 깨진 접시와 냄비뚜껑을 말끔하게 정리해낸 테미스는 잘못을 인정하는지 쭈뼛쭈뼛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중인 리리스에게 다가갔다.


“사랑하는 동생아! 이 오빠가 도와줄건 없니?”


동생의 화를 좀 풀어보려는 듯 과한 제스쳐와 과한 톤으로 리리스에게 말을 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찌릿한 그녀의 눈빛.


“텃밭에 가서 야채랑 채소 좀 가져와.”


“옙! 분부 받들겠나이다!”


90도로 꺽인 허리로 상징되는 정중한 인사로 리리스에게 답한 뒤 슬렁슬렁 집 뒤편의 텃밭으로 향했다. 집안의 가장이신 아버님의 소소한 취미 생활로 시작된 텃밭 가꾸기는 50년이 넘게 이어져 오다보니 이제는 집안의 중요한 식재료 공급처가 되어버렸다. 물론 여기엔 아버님과 리리스의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근도 하나~ 조림이니까 무도 하나 뽑아가면 좋겠지~ 오옷!!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한 고추도 있구만!! 좋아 좋아!”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테미스는 털털한 성격이었는지 방금 전 호되게 야단맞은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콧소리와 함께 이것저것 챙겨 정원으로 나오는데 다부진 인상의 중년 남자가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랏? 아버지! 벌써 오셨어요?”


“그래. 꽤나 오랜 산책이 될 듯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났구나.”


“오호라~ 산책이 일찍 끝나셨다는건 고민거리가 잘 풀리셨나봐요?”


“글세...... 그런셈이지 뭐.”


“다행이네요. 같이 들어가셔요~ 리리스가 솜씨 발휘 하고 있어요.”


“허허~ 그래. 들어가자꾸나.”


아버지라 불린 중년 남자와 테미스는 함께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문 여는 소리에 잠을 깼는지 메리가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를 확인하자 큰소리로 외쳤다.



“리리스~ 아버지 오셨어~”


메리의 외침에 리리스는 닭고기를 손질하다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 오셨어요~?”


“음...... 오랜만에 딸내미가 요리한다고 하니 일찍 들어올 수 밖에 없지 않겠니?”


“어머!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 평소엔 그런 살가운 말씀도 잘 안하시는 분이...... 후훗”


“커흠! 이 애비는 늘 우리딸을 사랑한단다.”


“됐어요!! 얼른 씻고 오셔요~ 저녁준비 다 되가요.”


아버지는 수줍게 리리스를 향해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그들만의 애정표현을 한 뒤 메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테미스는 흐뭇한 얼굴로 텃밭에서 수확해온 야채와 채소를 리리스에게 건냈다.


“리리스~ 야채랑 채소 가져왔어.”


“야이 멍청아! 가져왔으면 씻어야지!! 흙투성이로 먹을래!!”


“아하......? 조금만 기다리렴. 사랑스럽다 못해 깨물고 싶은 동생아.”


“이걸 콱!!”


테미스는 알 수 없는 소리로 궁시렁 대며 야채와 채소를 씻으러 갔다.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되자 향긋한 요리의 냄새로 오두막이 가득 들어찼다. 리리스는 집안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답게 꽤나 요리솜씨가 있는 편이었다. 그 덕에 세명과 한견(?) 가족은 늘 맛있는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 식사하러 내려오세요~”


리리스가 아버지를 부르러 간 사이 테미스는 식탁에 음식들을 가지런히 올려놓기 시작했고 메리는 식탁 주위를 멤돌며 배고프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테미스는 메리 몫의 접시도 식탁 옆 바닥에 내려놓는걸 잊지 않았다. 접시를 확인한 메리는 코를 박고 냄새를 먼저 맡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리리스의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메리의 만족스러운 시향(?)평에 이어 테미스가 말을 받았다.


“그렇지? 정말 복 받은 거야~ 리리스까지도 요리를 못했어봐! 어떻게 됐겠어! 아버지가 하실까? 그렇다고 미각바보인 내가 하리? 그것도 아니면 메리 네 앞발로 했겠어? 보나마나 우린 다 굶어 죽었을거라구!”


“이봐 형. 안 먹어도 안 죽으니까 걱정 마셔! 지가 무슨......”


“아니지! 내가 아무리 미각 바보라지만 리리스의 음식은 맛있다구!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바엔 죽는게 나아...... 윽.”


못말린다는 표정의 메리는 고개를 좌우로 휘젓고는 마침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리리스와 아버지에게 뛰어갔다. 아버지는 메리를 번쩍 들어서 가벼운 애정표현을 해주고는 메리의 접시 앞에 내려놓고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어진 리리스의 요리소개.


“오늘의 저녁메뉴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구운 닭고기와 생선 조림, 그리고 레몬과 라임즙을 곁들인 샐러드입니다!”


“오호! 좋구만. 닭고기는 언제나 사랑이지. 얼른 드세요~ 아버지.”


“그래 그래. 얼른 먹자꾸나.”


그렇게 식사가 한참을 이어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중 테미스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고민하고 계신건 정리가 좀 되셨어요?”


테미스의 질문에 아버지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다. 요즘 인간들이 좀 이상하긴 하구나. 분명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쥐어주긴 했지만 그 의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들은 없어. 뭐랄까. 농사를 지으라고 농기구를 줬는데 그것을 사용하기는커녕 남의 농작물을 뺏으려 하니까.”


“그거야 늘 있어왔던 일들 아닌가요? 인간들은 늘 아버지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잖아요. 물론 인간이 아버지의 의중을 헤아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긴 하지만...... 그래도 발톱의 때 만큼이라도 알아채면 좋을텐데.”

리리스가 인간들을 비아냥 거리듯 말했다. 물론 그랬다. 창세 이후 인간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 헐뜯고 싸우기를 반복해왔다. 그 결과 힘 있는 자들은 힘 없는 자들의 위에 군림하게 되었고 피해자인 힘 없는 자들은 어디까지나 힘 있는 자들을 욕하면서 함께 신을 비난했다.


“리리스. 너무 그렇게 말하지마. 난 아버지를 믿어. 그러니 물론 아버지가 만드신 인간들도 믿는거야. 그들을 좀 더 믿어 보자구.”


테미스가 리리스를 진정시키듯 말했다. 하지만 테미스의 표정에도 수심이 자리잡는건 어쩔 수가 없었다. 세상의 조화란 신이 나선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신의 개입은 결국 피조물들인 인간의 존재 자체를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태초에 계획된 조화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일이기도 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너무 걱정 말거라. 그들은 결국 조화를 찾아가게 될거야.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될거란걸 믿고 있으니까”


“으그~ 아버지는 너무 자상하셔서 탈이에요! 가끔은 말 안듣는 테미스에게 제가 화를 내듯 아버지도 한번 지엄한 권위를 보여주셔야 해요!”


“리리스! 거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내가 얼마나 말 잘 듣...... 지는 않지만 노력중입니다. 동생님.”


거칠게 항의 하려던 테미스는 낮의 일이 떠올랐는지 자신을 노려보는 리리스의 도끼눈에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랬다. 이들의 아버지는 바로 신이었다.



이 세상의 근원.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


자애로우며 지엄한 만물의 아버지.



먹물을 부어 놓은 듯한 숏컷의 흑발을 가진 리리스는 지금 따스한 햇살을 이불 삼아 수면이라는 달콤하고도 진한 맛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창세 이후 만고 불변의 진리 중 하나는 잠은 낮잠이 최고라는 사실이다. 그녀 또한 그러한 진리를 맹렬히 신봉하는 여성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진리를 행함에 있어 단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테미스였다.


테미스는 실프(바람계열 하급 정령)를 불러 수면의 노예가 되어버린 리리스의 머리카락을 미세한 조절을 통해 코 끝을 귀찮게 하는 작업을 킥킥거리며 한참을 진행중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누군가에게 핍박을 받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이 책을 펼치세요!’ 라는 단호한 제목의 책에서 본 기초 기술 중의 하나로써 시술자는 굉장히 간편하지만 당하는 상대에게는 상당한 짜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머리칼이 코 끝을 건드릴 때마다 살짝씩 벌렁거리는 그녀의 코를 보며 테미스는 오랜만의 희열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참을 실프의 컨트롤에 심혈을 기울이던 테미스는 느닷없이 달려와 안기는 메리 덕에 집중을 흐트릴 수 밖에 없었다.



“메리! 안돼! 조금만 더 하면 리리스가 재채기를 할 것 같단말야!! 저리 가 있어!”


“형도 참...... 니가 애냐? 뭔 이런 장난을 치냐?”


“메리여.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나. 나에겐 이 시간이 굉장히 흥미롭고 건설적인 시간이라네.”



메리를 뿌리치고 다시금 실프를 컨트롤하기 위해 리리스의 얼굴을 바라본 테미스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깨어난 것이다.



“너 뭐하냐?”


“아니...... 리리스...... 그게...... 네 얼굴에 먼지가 묻어서 털어주는 중이었지! 하하하하하하하핫......”


“네놈이 정녕 죽고 싶구나......”


“아하하...... 죽고 싶다니...... 이 오빠는 영원토록 오래오래 살고싶단다...... 하하하......”


“일루왓!!!!”


결국 테미스는 메리의 방해로 인해 리리스의 코브라 트위스트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절규하던 테미스의 눈에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자신의 배를 핥고 있는 개 메리의 표정이 그리도 얄미울 수가 없었다.



쿠당탕탕!!


코브라 트위스트에 이어 암바를 걸기 위해 몸을 움직이던 리리스는 난데없는 둔탁한 소리에 동작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순간 고통에서 벗어난 테미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그녀의 사정거리에서 빠져나와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의 방심을 틈타 그녀에게서 벗어난 게 꽤나 뿌듯했는지 테미스는 서사시에서나 나올 법한 영웅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후후...... 아직 나의 운이 다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안 그래? 이 마귀할......”


하지만 테미스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리리스가 후다닥 소리가 난 2층으로 뛰어갔기 때문이다. 테미스는 그녀의 반응이 조금 심상치 않았던지 뒤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올라온 그녀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문을 열다 아버지의 서재 앞에 멈춰 섰다. 2층의 마지막 방. 그녀는 노크를 하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대답이 없자 뒤따라 올라온 테미스가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 저 테미스입니다. 아버지?”


테미스가 재차 불러도 아버지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아버지~ 들어갈게요~”


테미스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테미스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리리스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고 테미스는 망연히 서있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신이 쓰러진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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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공작가 살인사건 - 3 16.02.03 248 0 14쪽
22 공작가 살인사건 - 2 16.01.31 267 0 13쪽
21 공작가 살인사건 - 1 16.01.29 245 0 13쪽
20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4 16.01.27 280 0 11쪽
19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3 16.01.26 274 0 10쪽
18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2 16.01.25 202 0 12쪽
17 클레멘타인 자작의 입궁 - 1 16.01.23 243 0 13쪽
16 팔찌와 작업의 상관 관계 - 2 16.01.22 331 0 12쪽
15 팔찌와 작업의 상관 관계 - 1 16.01.21 245 0 11쪽
14 세픽스의 꼬마 숙녀 - 6 16.01.21 280 0 8쪽
13 세픽스의 꼬마 숙녀 - 5 16.01.21 289 0 10쪽
12 세픽스의 꼬마 숙녀 - 4 16.01.20 252 0 9쪽
11 세픽스의 꼬마 숙녀 - 3 16.01.20 283 0 11쪽
10 세픽스의 꼬마 숙녀 - 2 16.01.17 245 0 10쪽
9 세픽스의 꼬마 숙녀 - 1 16.01.17 313 0 13쪽
8 서신 전달 - 6 16.01.16 204 0 11쪽
7 서신 전달 - 5 16.01.16 265 0 12쪽
6 서신 전달 - 4 16.01.16 252 0 9쪽
5 서신 전달 - 3 16.01.15 311 0 9쪽
4 서신 전달 - 2 16.01.15 306 0 13쪽
3 서신 전달 - 1 16.01.14 240 0 16쪽
2 프롤로그 - 2 16.01.14 413 1 14쪽
» 프롤로그 - 1 16.01.14 565 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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