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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32,186
추천수 :
7,083
글자수 :
129,493

작성
15.10.14 14:29
조회
5,090
추천
199
글자
8쪽

친구 #2

DUMMY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겁니다.”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정성립이 장주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 노는 임무 수행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와 동행하지 않을 겁니다.”


장주가 말했다.

“너희 뒤를 돌보아주라고 내가 특별히 부탁했다. 그래서 따라다니는 거야.”


정성립이 음성을 높였다.

“보모는 필요 없습니다.”


장주가 손을 저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정한운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보게 친구. 솔직하게 말해보게. 유성을 왜 풀어주었나?”

친구라는 소리에 정호림과 정성립이 오만상을 찡그렸다.


정한운이 대답했다.

“풀어준 게 아니라 막지 못한 겁니다.”

“첫 번째 말일세.”


정한운은 한동안 검게 그을린 기둥을 주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노비. 그가 노비이기 때문에 풀어줬습니다. 옛날 생각이 났고 감상에 젖었습니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벌을 내리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랬구먼.”

장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준 후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이 친구야,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았잖은가.”


장주의 누그러진 태도에 정호림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대로 용서할 겁니까?”

“물이 너무 맑으면 큰 고기가 살수 없다. 너도 부하들이 실수를 하거든 한번 정도는 너그럽게 용서해 주거라.”

“한번이 아닙니다. 신풍방에서도 보내줬습니다.”

“나도 귀가 있다. 장한림이 고수인 것은 사실로 보이더구나.”


“그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 노 이상의 고수라는 건 믿기 어렵습니다.”

“되었다. 그만 해라.”

“아버지.”

“그만 하라니까.”


정호림은 분을 삭이느라 한동안 씩씩 거렸다. 어색한 침묵을 장주가 깼다.


“물러가라.”


앙앙불락하던 두 아들이 물러가자 장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놈 다 성격이 차가워서 걱정이야.”

“수성에는 차가운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장주가 섭섭한 투로 말했다.


“둘만 있을 때는 말을 놓으라니까 항상 존댓말이군. 나는 너를 친구, 아니 형제처럼 생각하는데 너는 항상 선을 긋는구나.”

“신분이 다르니까요.”

“허어, 자네도 참. 면천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이러는가.”

“제 성격이 고루한 탓입니다.”


정한운은 허리를 깊숙이 구부리며 말을 이었다.


“한 번 더 도련님들을 따라갔다가는 큰 사달이 생기겠습니다. 이제 진짜 은퇴해야겠습니다.”

“에잉, 속 좁은 놈들. 할 수 없지.”

“고맙습니다.”

“내 곁에서 말벗이나 해주게.”


정한운이 허리를 펴고 고개를 세웠다.


“정가장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장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 떠나겠다는 겐가?”

“세상을 유람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내 곁에 있게. 내가 은퇴하는 날 같이 떠나세.”

“풀어주십시오.”


장주의 표정이 돌멩이처럼 딱딱해졌다.


“풀어 달라? 내가 너를 묶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구나.”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생각을 고쳐.”

“용서하십시오.”

“어허, 계속 고집을 피우긴가?”

“송구스럽습니다.”


장주가 그의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신경질적으로 기둥을 걷어찼다. 기둥이 부러져서 날아갔다.


“알았어. 생각해 보지.”

“장주님?”

“생각해 보겠다니까.”


장주의 음성이 갈라졌다. 정한운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물러나 있겠습니다.”


그가 떠나고 장주는 주춧돌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빌어먹을.”


그는 욕설을 뱉어낸 후 아들을 불렀다.

“정호림, 거기 있지?”


정호림은 아버지의 처사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해서 재차 설득에 나설 요량으로 담장 뒤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비의 부름에 정호림은 즉시 달려갔다.


“장로원에 가서 삼공을 모셔 와라.”


잠시 후 염소수염의 노인이 굽실거리며 다가왔다. 시중에서는 무정귀라 불릴 정도로 냉혹한 노강호인데 장주 앞에서는 봄바람처럼 부드럽다.


“장주님, 부르셨습니까?”

무정귀 뒤에는 독목귀와 백발귀가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었다.


“정한운이 떠나겠다는군.”

“그가 왜?”

“세상 구경을 하며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구먼.”


독목귀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팔자 늘어졌네.”

정호림이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장주가 말했다.


“이유는?”

“그는 우리 가문의 독문도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단혼십이도가 유출될 수 있습니다.”


장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해.”


정호림은 세 봉공을 이끌고 정한운의 거처로 달려갔다.


그리고 텅빈 침대와 마주했다. 침대 위에는 장주친전이라고 적힌 편지가 놓여 있었다. 정호림은 세 봉공에게 추적하라는 명령을 내려놓고 아버지께 돌아갔다.


장주는 장남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장남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돌아왔다는 것은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다.


“정 노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정호림이 편지를 내밀며 덧붙였다.


“이걸 남겨 두고 떠난 듯 보입니다.”

장주는 봉투를 열어 편지를 펼쳤다.



[친구 보게나.

자네는 평생 나를 친구라 칭하며 스스럼없이 굴었지.

나는 너를 친구로 대하는데 너는 어째서 나를 주인으로 대하느냐고 화도 많이 냈었고.

이제 나는 평생 처음으로 웅휘 너를 친구로 대하고 속에 담아둔 말을 할 거야.


왜냐고?

나도 이제 지쳤거든.


너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친구로 대하지 않았어. 너의 진심을 알고 있었으니까. 너는 겉으로는 나를 친구 취급했지만 속으로는 한 번도 날 친구로 여긴 적이 없었어.


여기까지 읽은 너는 분명히 아니라고, 네가 착각한 거라고 화를 내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내가 너의 의사에 반하는 말을 하면 너는 항상 화를 내고 무시했어. 조금 전처럼. 그리고 내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으면 너는 참혹한 짓을 저질렀어. 지금 하고 있는 일처럼.


너는 아마 날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을 거야? 맞지?


조금 전 너는 두 아들의 성격이 차갑다고 걱정했었어. 내가 보기에는 네가 더 차갑고 냉정해. 거기다 너는 욕심까지 많아. 나는 네가 자비를 베풀 수 있을 때 자비를 베푸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생각해 봐. 자비를 베푼 적이 있니? 없지? 항상 과하게 짓밟은 생각만 날 거야.


나는 철이 들 때부터 정가장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하지만 떠날 수가 없었지. 날 죽이려 들 테니까. 만약 날 죽이는데 실패하면 그 화풀이를 내 가족들에게 했겠지. 조부모가 죽고 부모가 죽고 아내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후에는 떠날 생각을 품을 수 있었어. 그런데 마침 그때 제자가 생겼지.


나는 제자 키우는 재미에 빠져서 떠날 생각을 접었어.


그런데 제자가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어. 네 밑에 매인 삶이 싫었던 거지. 제자는 그런 뜻을 밝히는 실수를 했고 넌 바로 응징했어.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한 임무에 투입해서 죽였지.


네가 내 제자를 죽였어.


나는 삶의 의욕을 잃고 텅 빈 그릇처럼 살았어.


한때는 널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어. 대신 네 자식을 죽여서 내가 당한 고통을 고스란히 겪게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죄 없는 아이들을 죽이는 게 내키지 않아서 참았어. 비록 냉혹한 놈들이라도 나한테 죄를 지은 적은 없으니까.


나는 이제 모든 은원을 놓고 정가장을 나갈 거야. 네가 정말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친구로 생각했다면 이대로 풀어줘.



추신-편지를 적다가 나도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어. 내가 유성을 풀어준 진짜 이유는 그 놈이 죽은 내 제자를 닮았기 때문이야]



와락, 편지가 구겨졌다.


장주가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늙은 노비 새끼를 죽여!”


작가의말

1권이 끝났네요.

출판사와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재는 2권도 꾸준히 해볼 생각입니다. 유료로의 전환도 고려의 대상이지만, 호구지책도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연재를 조금 더 즐겨볼까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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