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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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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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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9,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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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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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도주 #3

DUMMY

“아니, 돌아가야 한다. 도관에 조명이 있다.”


정호림이 물었다.


“뭐라는 거냐?”

“태평도관에 제 작은 주인이 계십니다. 싸움에 휘말릴까 두렵다고 합니다.”


“네 작은 주인은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조선 사람입니다. 태산파와 상관이 없습니다.”

“태산파 무공을 배웠으면 태산파 사람이다.”


말은 몰랐지만 정호림의 어투와 표정에서 그 뜻을 읽어낸 박건동은 뒤돌아서 뛰었다.


“거기 서라.”


정호림이 비호처럼 움직였다.

그는 잠깐 사이에 개동을 지나쳐 박건동의 등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개동은 그가 도를 뽑는 것도 보지 못했다.


박건동은 즉시 돌아서서 검을 그어 내렸다.


깡.

불똥이 튀었다.


박건동이 말했다.

“돌아가서 공자만 모시고 나올 것이오. 태산파와 당신들 사이에는 끼어들지 않겠소.”


개동이 즉시 통역했다.


“내 입장도 이해해 주시오. 태산파 뿌리를 뽑으려고 5년 동안 공을 들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작은 인정을 베풀었다가 일을 그르칠 수는 없지 않겠소. 나는 티끌만 한 불안요소도 없애고 싶소.”


개동의 통역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건동이 몸을 날렸다.

태평도관 쪽이 아닌 정호림에게로. 박건동은 정호림을 인질로 잡아 김조명을 구할 생각이었다. 그는 눈 깜빡할 사이에 검을 앞세우고 쇄도했다.


정호림은 직선으로 찔러오는 박건동의 검을 사선으로 쳐올렸다.


“제법이구나.”


도와 부딪친 검이 위쪽으로 들렸다.

그 결과 박건동의 배가 훤히 드러났다. 그의 배를 노리고 정호림이 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박건동은 도를 막아내기 위해서 검을 수직으로 떨어뜨렸다.


깡.

힘과 힘이 에두르지 않고 정면에서 충돌했다. 그 지점을 중심으로 바람이 불었다.


팡.


공기가 진동하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검과 도가 아래위로 튕겨졌다가 다시 부딪쳤고 이번에는 떨어지지 않고 지남철처럼 딱 들러붙었다.


검이 도를 짓눌렀다. 얼핏 보면 검이 선공의 묘로 우위를 차지한 것 같은데 사정은 겉보기와 조금 달랐다. 정호림이 딱 붙은 검을 통해서 기를 흘려보냈다.


박건동은 상대의 기가 검을 따라 올라오는 걸 느꼈다. 손이 저릿했다. 하지만 박건동은 검을 물리지 않고 버텼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검을 내리자 도가 눌려서 칼끝이 점점 지면과 가까워졌다.


정호림은 칼끝이 내려가는 걸 감수하면서 계속 기를 보내 상대의 손을 공격했다. 박건동의 손아귀가 찢어지고 피가 손잡이를 따라 흘렀다. 검격에 가로막힌 피가 뚝뚝, 방울져 떨어졌다. 바싹 마른 땅은 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피는 스며들지 못하고 마치 익은 계란처럼 대지 위에 떠 있었다.


손아귀가 저 정도 찢어지면 대개 물러서기 마련인데 박건동은 부상을 감수하고 버텼다. 마음이 절박했던 것이다.


박건동은 이를 악물고 검에 힘을 실었다. 정호림의 칼끝이 곧 땅에 처박힐 것처럼 내려갔다.

박건동이 강력한 힘으로 물이붙이는 동안 정호림은 왼손에 기를 모으고 있었다. 정호림이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외쳤다.


지금이다!


정호림이 왼손에 운집된 기를 몰래 뿌렸다. 박건동은 그 순간 정호림의 눈이 빛나는 걸 보았다.


수작을 부리고 있구나.


위험을 직감한 박건동은 물러서려다가 마지막 순간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검을 상대의 도에서 떼어내 들어올렸다. 검봉이 순식간에 고개를 들어 정호림의 목젖을 물어갔다. 마치 뱀이 독니를 들이대는 것 같았다. 박건동이 정호림의 노림수를 정면에서 받아친 것이다.


박건동의 수법은 위험했다.

정호림이 몰래 뿌린 장력을 막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위험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검이 정호림의 목을 공격한 순간 도가 자유롭게 풀려난 것이다.


정호림은 자유롭게 풀려난 도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잠깐 고민했다.


상대가 위험을 무릅쓰고 검을 찔러온 것처럼 그도 위험을 감수하고 적을 향해 휘두를 것인지, 아니면 급히 회수해서 검의 진격을 막을 것인지.


전자는 양패구상의 위험한 수였는데 이걸 선택하면 정호림 쪽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적의 검이 그의 도보다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정호림이 더 깊숙이 찔리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신중한 자라면 분명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정호림은 그 방법이 내키지 않았다.


한 발을 뒤로 빼고 상체를 젖히면서 도를 올리면 검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기껏 뿌려낸 장력이 흔들려서 적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다. 그 결과 기세를 빼앗기게 되고 수세에 몰리게 된다.


다시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한참동안 씨름해야 한다.


정호림이 전자를 택하면 대결은 단기간에 끝난다. 반대로 후자를 택하면 싸움은 장기전으로 흘러간다.


곁에서 관전하던 노인, 정한운은 소장주가 장기전을 택하길 바랐다. 박건동은 혼자고 이쪽은 다수다. 게다가 박건동은 태평도관에 있는 김조명을 구해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장기전이 소장주한테 유리한 것이다.


정호림은 전자를 택했다.


오랑캐한테 몰려서 후퇴하는 게 자존심이 상했고 믿는 구석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장력을 믿었다. 장력이 적중되는 순간 박건동의 검에서 힘이 빠질 것이다. 정호림은 물러서지 않고 도를 그어갔다.


조선 무사가 장력에 두들겨 맞고 그 여파로 검이 멈칫할 때 도가 적의 목을 날리리라.


초심자의 눈에는 병기를 쥐지 않은 손으로 암습을 가하는 것이 훌륭한 수법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일장일단이 분명했다.


암습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에 내기와 신경이 분산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위험해질 수도 있다. 정호림이 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박건동이 도에서 검을 떼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결이 결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호림의 장력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그리고 박건동이 맷집이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서 승패가 갈라질 것이다.


퍽.

장력이 박건동의 배를 후려쳤다.


됐어.


정호림이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러나 미소는 오래가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력이 내부로 파고들어 적의 내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야하는데 경력의 일부가 피부를 타고 확산되는 게 느껴진 것이다.


내부로 들어간 경력의 일부도 창자에 닿지 못하고 근육에 흡수되었다.


창자에 부딪친 장력은 처음 손바닥을 출발했을 때의 1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부상을 입힐 수는 있지만 검을 저지할 정도는 아니다.


검을 막을 수가 없어.


정호림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그의 발을 황천에 담그게 만들었다. 보통 이런 경우 죽음을 예감하고 얼어붙는다. 그 결과 상대에게 더 이상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러나 정호림은 얼어붙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


오랫동안 착실하게 닦은 수련이 효과를 발휘했다. 정호림은 그대로 도를 움직였다.


장력이 검을 멈추지 못한 순간 승패는 결정 났다. 검이 정호림의 숨통을 꿰뚫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휘둘러진 도는 박건동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다.


박건동은 정호림을 사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크지 않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욕심이었나?


박건동은 생각했다.

이 자를 죽이고 얼른 몸을 뺀다.


이제는 그 수밖에 없다. 재빨리 달려가서 김조명을 구한 후 조선으로 돌아가리라. 박건동은 검을 찔러가며 몸을 뺄 궁리를 했다.


검봉이 정호림의 목에 닿기 전에 검기가 먼저 도착했다. 피부가 갈라지면서 피가 배어나왔다. 곧 검이 목을 뚫을 것이다. 그 순간 정한운이 개입했다.


파앗.

정한운의 도가 박건동의 오른쪽 허리로 들어가서 왼쪽 허리로 빠져나갔다.


쿵.

박건동의 상체가 하체에서 떨어져나가 뒤로 떨어졌다. 하체를 잃은 상체에서 피가 뿜어졌다.


“으악!”

개동이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정호림이 화를 냈다.


“일대일 비무에 개입하다니!”

그는 모욕감에 몸을 떨었다.

“정 노 이게 무슨 짓인가!”


정한운이 말했다.


“소장주가 죽는 걸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죽더라도 개입하지 말았어야지.”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박건동은 죽어가고 있었다. 부릅뜬 그의 눈에 핏발이 가득하다.


“어어.”


그가 입을 달싹거렸다. 개동은 급히 뛰어가서 박건동의 입술에 귀를 가져갔다.

정 노인이 물었다.


“그가 무어라 하느냐?”


정한운에게 호통을 치던 정호림도 궁금해서 입을 닫고 귀를 기울였다.


“어서 달려가서 네 주인을 구하라 했습니다.”

“그럴 생각이냐?”


개동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왜?”

“아까 말했잖습니까. 도망친 노비가 뭐 하러 주인한테 돌아갑니까.”


“흐음, 그렇군. 너는 우리가 주인을 죽여주길 바라겠구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굳이 말릴 생각도 없습니다.”


개동은 박건동의 눈을 감겨 주었다.


“부디 극락왕생 하십시오.”


개동은 박건동을 착잡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고 정한운은 그런 개동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호림은 노인을 화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삼각형을 이루는 시선 속에서 묘한 침묵이 피어올랐다.


두두두두두.


정가장 후발대의 말발굽 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정호림이 손짓하자 부하가 말을 대령했다.


“지금부터 태산파를 치러 간다. 반드시 섬전을 찾아야 한다.”


정호림이 말을 올라타며 말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살려두지 마라.”


정호림은 후발대의 합류를 지켜본 후 차갑게 명령했다.

“정 노 당신은 여기서 대기하시오.”


정한운은 도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정가장 무사들이 용두객잔을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꺽다리 무사가 노인의 귀에 몇 마디를 속삭인 후 말의 옆구리를 찼다.


“이랴.”


유성은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예감이 무척 나빴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노인이 웃었다.


“널 죽이라는 구나.”

“웃는 낯으로 흉악한 말을 하시는군요.”

“좀 그렇지.”


개동은 처량한 얼굴로 코를 들이마셨다.


“객잔주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딘가에 있겠지.”

“그 어딘가가 저승입니까?”


“아니다. 잘 살아있다.”

“그를 살려줬군요.”


작가의말

어제 못 올려서 오늘 두 편 올립니다.

가능하면 연재는 오후 4시에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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