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인타임

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32,181
추천수 :
7,083
글자수 :
129,493

작성
15.09.15 16:00
조회
7,726
추천
223
글자
11쪽

동안

DUMMY

동굴 안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유성은 밖으로 나갔다가 눈이 부셔서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이장섭이 따라 나오며 물었다.


“왜 우냐?”

“햇살이 눈부셔서.”

유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인생이 불쌍하기도 하고. 왠지 서글프네요.”

이장섭이 코웃음을 쳤다.

“젊은 놈이 인생 타령은.”


유성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한림이 안 보이네요. 물 뜨러 멀리 갔나 봐요.”


그는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가볍게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설송도 밖으로 나와서 몸을 풀었다.

유성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


“한림 그 친구 웃어른 말 잘 따르게 생겼죠?”

설송은 머릿속으로 그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글쎄, 전형적인 모범생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생각난 건데 사부와 마찬가지로 그 친구도 숫총각일 겁니다.”


이장섭이 껄껄 웃었다.

“그래, 그 친구도 숫총각이군.”

설송은 웃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숫총각인 그 친구가 누나를 사모한다면서 밤을 같이 보내자고 간청하면 마음이 동할 것 같나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이장섭이 말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설송이 말했다.

“네가 뭔데 된다, 안 된다 간섭을 하지?”


이장섭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아흔아홉 영감탱이는 싫어도 솜털 뽀송한 애송이와는 배를 맞출 수 있다, 이거냐!”


설송이 콧김을 세게 불어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면 어쩔 건데?”

“오, 그래. 숫총각이라니까 따먹어 보려고? 너 그런 여자였어?”

설송이 차갑게 말했다.

“그런 여자가 어떤 여잔데?”


“헤픈 여자.”


설송이 단검을 던졌다. 느닷없이 날아온 단검에 이장섭이 기겁을 했다. 그는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여자가 미쳤나.”

“흥.”

설송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미쳤으면 넌 죽었어.”


이장섭은 발치에 나뒹구는 단검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가 전력으로 던진 게 아니어서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유성이 말했다.

“두 분 왜 이러세요. 참으세요.”

그때 한림이 돌아왔다. 그의 등장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유성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잘 왔어. 다시 보게 되니 반갑네.”


장한림이 물통을 두 개 내밀었다.

“물이야. 나는 마시고 왔으니까 다 마셔도 돼.”


설송이 물통을 하나 차지했고 유성과 이장섭은 나머지 하나를 나눠 마셨다. 유성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제 갈까.”

한림이 말했다.

“지금은 곤란해. 저 밑에 대호방 무사들이 쫘악 깔렸어.”

“싸움은 간밤에 끝났을 텐데 왜 아직 남아있지?”

“우리가 죽였던 대호방 무사들의 시체가 발견된 모양이다. 흉수를 잡는다고 수색하고 있어.”


장한림이 뒤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의 기척이 들린다. 어서 동굴로 들어가.”

그들은 동굴로 들어가서 입구를 바위로 막았다. 장한림이 경고했다.

“조용히 있어.”

유성은 숨을 죽이고 바깥의 동태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뒤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추적자들이 등장한 후부터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일각이 여삼추 같았다.


“됐어. 안전해.”


장한림의 선언에 유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송이 말했다.

“우리에겐 장한림이 있어. 들켜도 힘으로 뚫고나갈 수 있으니까 너무 겁먹지 마.”


그렇지. 우리에겐 장한림이 있었지.


그의 존재를 의식하니 안심이 된다.


“고수가 동료로 있으니까 든든하네요.”

이장섭이 구시렁거렸다.

“고수면 뭐해. 숫총각인데.”

유성이 말했다.

“그만 이죽거리세요. 나도 숫총각입니다.”

“바보 같은 놈. 사내자식이 그 나이 처먹도록 뭐했냐.”

“그러는 이 형은 왜 그 나이 먹도록 혼잡니까?”

“나는 인마 결혼만 안 했다 뿐이지. 여자는 많았어. 내가 울린 여자가 장강 이북에만 백 명이 넘어.”


설송이 빈정거렸다.


“여자 많아서 좋겠다.”

그녀의 말에 이장섭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송 앞에서 여자 많다고 자랑해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아니, 아니, 다 큰 남자가 여자를 접하지 못했다니까 불쌍해서 위로해주려고 그냥 해본 말이야.”

“불쌍해서 자랑했다고? 3일 동안 쫄쫄 굶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고기 배터지게 먹었다고 자랑하는 게 위로냐?”


이장섭은 그녀의 힐난에 쩔쩔 맸다. 그는 화제를 돌리려고 장한림을 향해 말했다.


“장한림, 너 몇 살이냐?”

“서른여덟.”

이장섭은 믿을 수가 없었다.

“농담이지?”

“나이 가지고 농담 안 해.”


유성은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팽팽한 피부에는 주름이 별로 없고 갓 지어낸 쌀밥처럼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겉모습은 열아홉인 유성보다 서른여덟인 장한림이 더 어렸다. 다만 언행이 진중해서 유성은 그를 자신의 아래로 보지 않고 두어 살 정도 많지 않을까 짐작했을 뿐인데 짐작이 완전히 빗나갔다.


유성이 말했다.


“누나는 서른여덟이라는 게 믿겨져요?”

“그래.”

“왜요?”

“네 눈에는 장한림이 몇 살로 보이냐?”

“열여덟 정도 먹은 걸로 보이는데요.”

“바로 그거야.”

“그거라뇨?”


“그는 절정 중에서도 뛰어난 축에 들어가. 막 절정이 된 게 아니라, 절정이 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수련을 쌓았단 말이지. 그러니까 그가 겉보기대로 나이를 먹었다면 열 살 전후에 절정고수가 됐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아무리 천재라도 그건 어렵지. 서른여덟이라고 해야 말이 돼.”


이장섭이 말했다.


“그래 맞아. 태어나서 벌모세수를 받고 영약을 밥 먹듯이 퍼먹어도 열 살에 임독양맥을 타동하지는 못해. 너무 일러.”


유성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서른여덟이라는 거죠. 정말 동안이네. 내가 살다살다 너 같은 동안은 처음…….”


유성은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끝을 뭉갰다.


무림은 강자가 지배하는 세계다. 고수는 우대하고 하수는 천대한다. 유성은 삼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이 절정의 경지에 올라있는 장한림한테 반말을 하는 게 갑자기 껄끄러워졌다.


전에는 자신이 선배이고 나이도 비슷하다는 걸 감안해서 말을 놓았는데 19살이나 더 먹은 걸 알고 나니 더 이상 반말을 할 수가 없다.


“봅니다.”


유성은 은근슬쩍 말을 높였다. 설송도 따라서 말을 높였다.

“나이를 밝히지 그랬어요. 그럼 결례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곤란하게 된 건 이장섭이었다.


장한림보다 고작 1달 먼저 들어왔으니 그걸 가지고 선배 행세를 할 수도 없고, 직책이 높은 것도 아니었으며 나이가 애매하게 높아서 나이로 밀어붙이기도 어려웠다. 보통 이 정도로 무공이 차이나면 말을 높이는 게 상례인데 이장섭은 한림을 연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높이기 싫었다.


내가 4살이나 많아. 1년이 얼마나 무서운데.


이장섭이 말했다.

“한림, 네가 본 실력을 발휘해서 싸웠으면 우리가 이기지는 못했어도 이토록 처참하게 발리지는 않았을 거야. 최소한 절반 정도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겠지.”


듣고 보니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 유성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싸울 마음이 없었군요.”

그는 혹시나 한림이 화를 낼까 염려하여 급히 덧붙였다.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한림이 시인했다.


“그래, 몸을 사렸다.”

“왜요?”

“남의 싸움 같아서.”

“애초에 신풍방에는 왜 들어온 겁니까? 설송 누나 유혹하려고 가입한 건가요?”

“입방할 때는 그녀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어. 그러는 너는 왜 들어온 거냐?”

“다른 사람하고 비슷해요. 무공도 배우고 출세도 하고 싶고, 뭐 그렇죠.”


이장섭이 말했다.


“나는 떠돌이 무사 생활이 지겨워서 들어왔어. 이제 정착하고 싶었거든.”

그는 설송 쪽을 힐끗 거리며 말을 이었다.

“가정도 꾸리고.”


유성이 물었다.


“누나는요?”

“이 씨하고 비슷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니까 부평초처럼 떠도는 게 지겨워졌어.”

이장섭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씨라니, 섭섭하네. 오빠라고 불러줘.”


“오빠 좋아하시네.”


“말에 가시가 달렸네. 그래도 나는 좋아. 설 소저는 콕콕 찌르는 게 매력이라니까.”

이장섭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미 같아. 장미.”


그녀가 짜증을 내려는데 한림이 말했다.


“선택을 잘못하셨네요. 다른 방파에 들어갔어야 했어요. 신풍방은 대호방에 먹힐 겁니다.”


설송이 말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세력은 신입을 받을 때 이것저것 많이 따져요. 우리처럼 출신이나 배경이나 연줄이 보잘 것 없으면 좋은 방파에 들어가기 어려워요. 물론 장 소협처럼 실력이 뛰어나면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가 나겠지만 우리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흑도로 가면 이것보다 좋은 대우를 받겠지만 그런 쪽은 내키지 않아서…….”


이장섭이 말을 받았다.

“신풍방이 밀린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밀리니까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무사를 뽑은 거야. 유성 같은 하수를 받아들인 걸 보면 뻔하지.”


유성이 볼멘소리를 했다.

“에이, 너무 하시네.”

이장섭이 유성을 무시하고 말했다.

“위험하기 때문에 대가도 큰 거야. 신풍방이 역전해서 대호방을 꺾으면 우리 지위도 탄탄해지는 거지.”

한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유성은 워낙 무공이 낮아서 평단원인 게 이해가 가지만 둘은 수준이 향주들하고 비슷하잖아? 왜 이렇게 지위가 낮지? 혹시 나처럼 무공을 숨긴 건가?”


“마구잡이로 영입하다보니 뒷조사를 치밀하게 할 수 없고.”

설송이 말을 받았다.

“그러니 완전히 믿을 수가 없는 거죠.”

이장섭이 말했다.

“막말로 첩자가 섞여 들어올 수도 있잖아. 그러니 바로 책임있는 자리로 올릴 수는 없지. 너처럼 강하다면 몰라도.”


설송이 말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신뢰를 쌓으면 진급이 될 겁니다.”

유성이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설송이 웃었다.

“진급하고 싶은 게로구나.”

“예, 살아남은 동기는 대부분 조장으로 승진했거든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3년 정도 지나면 승진이 돼. 하지만 지금 같은 특수상황에서 너처럼 수십 차례 싸움을 가담한 경우라면 벌써 승진이 됐어야 했는데…….”


유성이 급히 물었다.

“저는 왜 안 된 거죠?”

“무위가 너무 낮아. 고생 많이 했다고 삼류도 안 되는 얘를 위로 올릴 수는 없잖아.”

“어어어, 그렇군요.”

유성은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중얼거렸다.

“젠장, 빌어먹을.”

설송의 귀에는 그의 욕이 울음소리로 들렸다.


희망적인 대답을 해줄 걸 내가 너무 현실적으로 말했나.


유성의 반응에 그녀까지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때 이장섭이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어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화제가 엉뚱한 것으로 번졌네. 우린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 한림, 신풍방에 가입한 이유가 뭐지?”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정구입니다.

이번 작품은 일단... 우려하시는 것과 달리 장편으로 기획되었고요.

연재는 매일연재, 그리고 가끔은.... 두 편...(약속하긴 어려우나)

매일 오후 4시에 연재를 할 예정입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따뜻한 질타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십장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십장생> 연재 중단 관련하여 알려드립니다. +12 15.11.10 8,711 0 -
36 산적 #1 +39 15.10.15 6,222 203 7쪽
35 친구 #2 +52 15.10.14 5,090 199 8쪽
34 친구 #1 +19 15.10.13 5,005 174 8쪽
33 재회 #2 +13 15.10.12 4,966 188 8쪽
32 재회 #1 +15 15.10.11 4,970 162 7쪽
31 좋은 날 #1 +10 15.10.10 5,036 160 7쪽
30 헤픈 여자 #2 +13 15.10.09 5,060 160 7쪽
29 헤픈 여자 #1 +14 15.10.08 5,046 174 9쪽
28 진원 #3 +10 15.10.08 5,031 154 9쪽
27 진원 #2 +22 15.10.05 5,069 173 7쪽
26 진원 #1 +10 15.10.05 5,046 170 7쪽
25 도주 #4 +17 15.10.03 5,059 198 6쪽
24 도주 #3 +6 15.10.03 5,002 157 10쪽
23 도주 #2 +12 15.10.01 5,001 174 9쪽
22 도주 #1 +27 15.09.30 5,255 186 12쪽
21 태산파 #2 +22 15.09.29 5,263 190 12쪽
20 태산파 #1 +10 15.09.28 5,282 161 8쪽
19 북경십육식 +7 15.09.27 5,380 173 8쪽
18 태평도관 #3 +10 15.09.25 5,483 172 7쪽
17 태평도관 #2 +5 15.09.24 5,377 157 8쪽
16 태평도관 #1 +9 15.09.23 5,561 171 7쪽
15 용두객잔 #2 +8 15.09.22 5,700 168 7쪽
14 용두객잔 #1 +7 15.09.21 6,217 171 7쪽
13 소문 #2 +19 15.09.20 6,550 189 8쪽
12 소문 #1 +10 15.09.19 6,676 167 8쪽
11 여인 #3 +11 15.09.18 7,043 189 8쪽
10 여인 #2 +20 15.09.17 6,865 202 8쪽
9 여인 #1 +11 15.09.16 7,380 216 8쪽
» 동안 +12 15.09.15 7,727 223 11쪽
7 인연 #3 +16 15.09.14 7,988 251 13쪽
6 인연 #2 +18 15.09.13 8,600 258 9쪽
5 은인 #1 +10 15.09.12 8,520 246 8쪽
4 까막눈 #3 +11 15.09.11 9,006 256 9쪽
3 까막눈 #2 +7 15.09.11 9,436 270 9쪽
2 까막눈 #1 +12 15.09.11 11,506 301 9쪽
1 서장 +38 15.09.11 13,520 32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