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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32,185
추천수 :
7,083
글자수 :
129,493

작성
15.09.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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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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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글자
9쪽

인연 #2

DUMMY

장한림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 하려면 깁니다.”

“시간 많아.”


그녀는 단검을 집어넣고 팔짱을 꼈다. 그러다 부러진 팔뚝이 울려서 신음을 흘렸다.


“어차피 당분간 여기서 머물러야 해.”



4개월 전.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깊은 계곡에 제법 번듯한 저택이 서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 먼지를 날리는 해질녘, 다람쥐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지르더니 풀쩍 뛰어올라 장한림의 정강이에 매달렸다. 그 모양이 흡사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다.


한림은 다람쥐를 평상 위에 올리고 겨우내 보관해두었던 밤과 도토리를 꺼내주었다.


찍찍.

다람쥐는 밤을 앞발로 쥐고 까먹었다. 한림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거기서 뭐 하는 게냐?”


안방에서 사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질문과는 달리 뭘 하는지 알고 있었던 듯 한림이 대답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다람쥐하고 그만 노닥거리고 냉큼 들어 와.”

사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한림이 들어와서 고개를 숙이자 사마단은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차 마실래?”


차를 끓이라는 소리다. 한림이 얼른 탁자 위에 다기를 올려놓고 부엌에서 물을 끓여왔다. 찻잎을 잔에 넣고 물을 붓자 그윽한 다향이 풍겼다.


사마단이 말했다.

“사부가 다녀가셨다.”

“아, 사조님이! 사조님은 제가 없을 때만 방문하시는군요.”

“일부러 널 피하는 거다.”


한림은 검지로 찻잔 둘레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한번이라도 봤으면 좋을 텐데, 사조님은 어째서 제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시는 거죠?”

“본 적 있어.”

“예? 언제?”

“네가 어릴 때.”

“어떻게?”

“널 데려온 게 사부님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깥출입을 못하는 내가 어떻게 널 제자로 삼을 수 있었겠냐.”


한림은 사조에 대해서 궁금한 게 정말 많았다. 막 입을 열어 의문을 토하려는데 사부가 손을 흔들어 막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사마단은 말을 하다가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그는 기침을 진정시키려고 차를 두어 모금 마시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림이 물었다.

“몸이 안 좋으십니까?”


사마단은 시무룩해서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죽을 때가 된 게지.”

“아직 정정하신데요.”

“정정은 개뿔, 요즘은 하루 종일 자도 피곤하다.”

“엄살이 심하십니다.”


“엄살이 아니야. 6개월 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 확실해졌어.”

“그 연세에 피곤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아니다. 사부가 내 몸을 점검하고 확언했어. 사부 왈, 나는 1년 후에 죽는다는군.”


한림은 당혹스러워서 이마를 긁었다.


“사조님이 잘못 보셨습니다.”

“네가 사부를 보지 못해서 잘 모르는구나. 사부를 봤다면 그런 말은 못했을 게다.”

“아무리 사조가 뛰어나더라도 사람이 죽는 날을 맞추지는 못합니다.”

“아니, 사부는 할 수 있어.”

“농담이시죠?”

“아니, 진담이다. 물론 사부도 신은 아니어서 정확한 일시를 맞추지는 못해. 하지만 대강의 날짜는 맞출 수 있어.”


한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부님, 노망 나셨습니까?”

“떽끼!”


사마단이 꿀밤을 먹이며 호통을 쳤다.


“이놈아! 진지하게 들어.”

한림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

“내 나이 아흔아홉이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


사마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가 눈을 깜빡이자 주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주름살이 깊어서 눈물은 볼을 타고 흐르지 못하고 주름살을 따라 옆으로 번졌다.


“죽기 싫다.”

“사부!”

“정말 죽기 싫다.”


“약을 써보면 어떨까요? 사조님께 부탁해 보세요. 사조님이 사부님 죽는 날짜를 안다면 죽음을 미루는 방법도 알지 않을까요?”


사마단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벼 눈물을 닦아내고 선반 위의 상자를 가져와서 찻잔 옆에 놓았다.


“사부가 해준 약이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다는 가정 하에 1년이라는 시간이 나왔어.”

한림은 그제야 사부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였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사부가 죽는다고?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사지에서 힘이 빠졌다.


사마단은 상자를 매만지다가 한림의 손을 잡았다.

“한림아, 나한테 마지막 소원이 있다.”


한림은 비감에 젖어 소리쳤다.

“뭡니까? 이 제자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사부의 소원을 이뤄드리겠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사마단은 제자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한림도 그를 안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사부님, 사부님 소원이 무엇입니까?”

“하고 싶다.”

“예?”


한림은 멍한 얼굴로 사부를 밀어냈다.


하고 싶다고? 뭘?

“여자랑 하고 싶어.”


여자랑?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


“제자가 감정이 격앙되어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해주십시오.”

“운우지락을 나누고 싶다고.”

“사부님!”


한림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눈물이 말라붙어 자국조차 사라졌다.


“노망드셨습니까?”

“노망들었으면 그런 요구를 하겠냐. 정신이 말짱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그가 두 손으로 한림의 손을 잡았다.


“하고 싶다. 정말 하고 싶다.”

“그게 왜 하고 싶습니까?”


“내 평생의 소원이 그거야. 여자와 응응응 하는 거.”

“아니 될 말씀입니다. 제발 망발을 거두어 주십시오.”

“제자야, 내 나이 아흔아홉이다. 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니? 시발, 아흔아홉 숫총각이라니.”


사마단이 울음을 터트렸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는 하면 안 되냐고!”

“사부님 우리 문파의 철칙을 잊으셨습니까?”

“남자는 여자를 멀리해야 무병장수한다. 사부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인데 내가 잊을 리가 있겠냐.”


“그런데 왜?”

“너는 여자 몸이 궁금하지 않니? 음부에 음경을 넣고 싶은 적 없었어?”


“가끔 궁금하기는 했지만 문파의 제1철칙을 어길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간절해. 1년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뼈에 사무칠 정도로 간절해져서 몸살이 날 지경이다. 부탁하마.”


한림은 승낙하지 못했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떠올랐다. 그가 주저하자 사마단이 불같이 화를 냈다.


“곧 죽을 사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겠다는 거냐?”


“들어주고 싶어도 못합니다. 저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사부 소원을 들어주려면 여기까지 여자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여자를 본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제가 어떻게, 어떻게…….”


“나보단 낫잖아. 날 봐라. 쭈글쭈글 영감탱이가 여자한테 가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하룻밤 같이 보냅시다.’ 그러면 노망난 늙은이가 날뛴다고 관아에 신고할 게다.”


한림은 사부의 모습을 물끄러미 살폈다.

눈가를 중심으로 온 얼굴에 거미줄처럼 뿌리를 내린 주름살과 그 사이사이에 가득 피어난 저승꽃, 그리고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뚝이 참으로 볼품없었다. 확실히 저 몰골로 여자한테 다가서긴 힘들다.


“그래도 저 같은 숙맥보다는 나을 겁니다. 사부만의 매력을 발산해 보세요.”

“안 돼. 내가 나가면 늙은 여자만 걸릴 거야. 아흔아홉 동정을 할망구한테 바칠 순 없지.”


사마단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내 소중한 순결을 쭈글쭈글 할망구한테 바치라고. 안 돼! 절대 안 돼!”

찻잔이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다. 한림은 손등에 튄 찻물을 검지로 문질러 닦았다.


“사부는 젊은 여자를 원하는 군요.”

“당연하지. 그렇다고 내가 20대 미녀를 원하는 건 아니다. 나도 양심이 있으니까. 30대 과부 정도면 만족한다.”

“40대는?”

“가급적 30대로 알아봐 주라. 내가 늙긴 했어도 숫총각이잖아.”


한림은 피부에 벌건 줄이 생길 정도로 거칠게 머리를 긁었다. 삭발을 하지 않았다면 머리털을 쥐어뜯었을 것이다.


“어려워요. 어려워.”

“어려운 소원이라는 건 나도 안다.”

사마단은 축 늘어져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숫총각으로 죽기는 싫어.”

사부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하지만 한림은 겁이 났다.


“사부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요. 하지만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사부, 마을로 내려가서 한번 부딪쳐 보세요.”


“말했잖니, 나는 죽어가고 있다고. 사부가 영약을 제조해준 덕에 겨우 1년의 여유가 생긴 거야. 집에서 편한 마음으로 정양을 해야 한다고. 여자 구한답시고 세상을 돌아다니면 심신이 피곤해서 금방 죽을 거다.”


나가면 죽을 거라는데 사부를 세상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 한림은 마음을 굳게 먹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몸조리 잘하고 계십시오.”


“고맙다, 제자야. 정말 고맙다.”


사마단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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