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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32,183
추천수 :
7,083
글자수 :
129,493

작성
15.10.0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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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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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헤픈 여자 #1

DUMMY

신풍방 방주 방종후의 집무실에는 당송 시대의 도자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방주는 손님이 올 때마다 뒷벽 선반에 시대별로 진열된 도자기를 소개하며 자랑했다.


방현기는 선반 중앙에 놓인 청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국화 덩굴무늬가 참으로 아름다운 항아리였는데 애석하게도 중간에 금이 가 있었다. 방현기가 어릴 때 뛰어놀다가 깨뜨린 걸 붙여놓은 탓이다. 방현기는 그 금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방종후는 침묵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아들을 무시했다.


철딱서니 없는 놈.

계속 무시하려고 했는데 속에서 천불이 치솟아서 참을 수가 없다.


“가문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있는데 네 고집만 피워서 어쩌자는 게냐!”


방종후의 노성이 살내를 뒤흔들었다. 선반의 도자기가 깨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소리가 컸다.

방현기의 음성도 그에 못지않았다.


“저는 결혼하지 않을 겁니다.”

“이놈! 네 놈 때문에 수많은 방도들이 죽었는데 아직도 그 소리냐.”

“방도들이 죽은 게 왜 제 책임입니까? 아버님이 대호방과 불화를 빚어서 이리 된 것 아닙니까?”


“대호방과는 아버지 대부터 사이가 나빴다. 언제고 터질 싸움이었어.”


그는 서류를 구겨서 아들의 얼굴에 던졌다.


“네가 삼 년 전에 목우방 딸과 혼사만 치렀어도 우리가 이겼을 거다. 네 놈이 어깃장을 놓는 바람에 목우방과 사이가 틀어져서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다.”


“우현지는 정말 싫습니다.”

“도대체 걔가 왜 싫다는 거냐?”


“아버지도 아시잖습니까. 걔는……걔는……정말 못생겼어요.”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다.”

“그래도 최소한 같이 다녔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돼야죠.”


“그 정도면 박색은 아니다.”


“아버지, 저도 우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 잘 압니다. 박색 정도만 되었어도 눈 딱 감고 결혼했을 겁니다. 하지만 걔는 꿈에 볼까 무서운 얼굴이라고요.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아버지한테 우현지하고 결혼하라면 하시겠어요?”


방종후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한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 아니다.”

“눈을 감고 말하면 믿을 수가 없잖아요.”


방종후가 눈을 크게 떴다.


“다시 말하지. 거짓말 아니다. 열흘 후 결혼식을 올릴 테니 그리 알아라.”

“싫습니다.”


방종후가 책상을 후려쳤다.



책상이 쪼개지면서 송나라 때 만들어진 값비싼 벼루가 떨어져 깨졌다. 방종후는 화가 나서 벼루가 깨진 것도 몰랐다.


“목우방의 지원을 얻지 못하면 우린 진다. 나도, 너도, 네 어머니도, 네 동생들도, 모두 죽는다. 어릴 때부터 널 귀여워했던 할머니도. 그리고 일가친척도 모조리 도륙된다. 그래도 좋으냐?”


방현기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아우!”


그는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누구냐?”


방현기가 날선 음성을 발했다.

총관이 헛기침을 하고 실내로 들어섰다. 그는 상기된 부자의 표정을 보고 쪼개진 책상을 보고 깨진 벼루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가 입을 닫고 있자 방현기가 짜증을 냈다.


“무슨 일이냐니까?”

“흑풍단의 생존자가 귀환했습니다.”


방주가 말했다.


“전멸했다고 보고했잖아?”

“동굴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방현기가 말했다.


“제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가 나가자 총관이 근심스런 얼굴로 방주 곁으로 갔다.


“단주님이 완강한가 보네요.”

“결혼할 거다.”


“3년 전처럼 날 잡아놓고 결혼을 깨면 목우방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 당시 신부가 너무 궁금해서 몰래 담을 넘었던 방현기는 신부의 얼굴을 보고 기겁해서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방현기는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고 신부가 너무 못생겨서 신랑이 도망쳤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우현지는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었다.


방현기가 목우방에 똥칠을 한 셈이었다.


“또 달아나면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다.”

“감시를 붙일까요?”

“감시가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어. 일단은 가만히 두게. 밖으로 나가면 즉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귀환한 자는 몇 명인가?”


“네 명입니다. 이장섭, 설송, 장한림, 유성.”


이름이 귀에 익지 않을 걸 보면 실력이 뛰어난 자들은 아니다. 방주의 눈빛이 흐려졌다.


“고수가 돌아왔으면 좋았을 걸.”


총관이 탄식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방현기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정말 결혼하기 싫은데 피할 방법이 없었다. 이게 다 대호방 놈들 때문이다. 신풍방이 대호방과 싸우지 않았으면 목우방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고 그랬으면 싫은 결혼을 할 이유가 없다.


“빌어먹을.”


그가 등장하자 흑풍각 계단에 앉아있던 네 명의 무사가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단주님을 뵈옵니다.”


방현기는 생존자의 면면을 훑어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장한림은 새로 들어온 초짜였고 유성은 삼류도 안 되는 자였다. 그나마 이장섭, 설송의 무위가 쓸 만했는데 그렇다고 고수라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쭉정이들만 돌아왔군.


방현기는 흑풍각으로 들어가다가 도로 나왔다. 답답해서 실내로 들어가기 싫었다. 그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어떻게 살아왔냐?”


네가 대답하라는 뜻으로 이장섭, 설송, 유성이 서로의 옆구리를 찔렀다. 설송의 눈빛에 떠밀려 이장섭이 나섰다.


“동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동료들은 죽어 나가는데, 비겁하게 숨어 있었어?”


기분이 나쁜 탓에 말이 퉁명하게 나갔다.


“처음부터 숨은 건 아닙니다. 적이 너무 많았습니다.”


방현기의 눈빛이 곱지 않다. 이장섭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부단주님이 죽고 모두 도망치는 분위기였습니다.”

“너희들만 도주에 성공했구나?”

“그들은 막무가내로 도주하는 쪽을 택해서 성공하지 못했고 저희는 숨어 있어서 성공했습니다.”


“귀환이 늦은 건?”

“포위망이 느슨해질 때가지 기다렸습니다.”


방현기는 계단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그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넷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일류고수들은 다 죽었는데 어떻게 이류와 삼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귀환하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을까?”


이장섭이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 운이란 말이지.”


방현기가 갑자기 몸을 날려 유성의 어깨를 잡아챘다.


“니들 첩자냐?”

“아닙니다.”

“우리 작전이 자꾸 새어나가는 게 이상해. 너는 이상하지 않냐?”


유성은 ‘그건 네가 멍청한 탓이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감히 내뱉진 못했다. 그가 둘러댔다.


“대호방에 뛰어난 책사가 있나 봅니다.”


설송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평무사입니다. 대호방이 욕심낼 만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번 작전도 출발하고 나서 들었습니다. 만약 첩자가 있다면 고위직에 있을 겁니다.”

“의심스러워.”


그녀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우리를 믿지 못하겠다면 떠나겠습니다.”

어차피 떠나고 싶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방현기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들어오는 건 네 마음이어도 나가는 건 네 마음대로 되지 않아. 차후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합숙소에서 대기해.”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합숙소는 일자형의 길쭉한 건물이다.

앞에 작은 툇마루가 딸린 방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방주인이 대부분 죽어서 빈방이 많이 생겼다. 유성은 한림의 방으로 짐을 옮겼고 이장섭은 설송의 옆방으로 짐을 옮겼다. 유성이 이장섭을 보고 중얼거렸다.


“본격적으로 꼬셔볼 모양입니다.”

그러고는 펄쩍 뛰어 마당으로 내려섰다. 한림이 물었다.


“어딜 가는 거냐?”

“주방에 헤픈 하녀가 있습니다. 하녀한테 운을 떼어 보겠습니다. 사조님 소원 풀어드려야죠.”


성공해야 할 텐데.

한림은 주방으로 달려가는 그의 등을 보며 건투를 빌었다.


힘내라.

유성은 문지방 너머에서 주방을 기웃거렸다. 허리가 날씬한 하녀가 물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왼쪽은 차를 끓을 때 쓰는 물이고 오른쪽은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물이다.


“저기요.”

유성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에이그머니나.”

하녀가 놀라서 경기를 일으켰다.


“진정하세요. 접니다.”


하녀는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놀란 탓일까 말투가 몹시 퉁명스럽다.



“네가 누군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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