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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31,866
추천수 :
7,047
글자수 :
129,493

작성
15.09.12 16:00
조회
8,511
추천
245
글자
8쪽

은인 #1

DUMMY

그들은 산을 내려가지 못했다.


대호방 무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위망을 뚫지 못한 그들은 협곡 안쪽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포위가 풀리면 그때 도망칠 생각이었다.


장한림이 바위를 움직여 동굴 입구를 막아버렸기 때문에 주변이 어두웠다. 넷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았다.

유성이 말했다.


“대호방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나 봐요.”


동굴 속이라 말이 울렸다. 유성은 벽에 등을 기댔다가 물기를 느끼고 몸을 웅크렸다.


“어우, 추워.”

“사내자식이 조금 서늘한 거 가지고 엄살은.”


이장섭이 가볍게 지청구를 준 후에 고개를 돌리고 부드럽게 물었다.


“설 소저, 추운데 불 피울까?”

이장섭은 기분이 좋았다. 설송이 장한림 대신 그의 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설송이 대답했다.

“불 피우면 연기기 나서 숨이 막힐 거야.”

동굴은 뒤가 막혀 있어서 연기가 빠질 구멍이 없다.


“바위 치우면 되지.”

“불빛을 보고 적이 몰려올 거야.”

“아, 그렇군.”


유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 형은 장 형이 힘 자랑 하느라고 입구를 막았다고 생각한 겁니까?”


이장섭이 무안해서 헛기침을 했다.

장한림이 바위를 옮길 때 설송한테 잘 보이려고 별 짓을 다한다고 속으로 욕을 했던 것이다.


유성은 연적을 너무 의식하지 말라고 놀리려다가 그의 산만 한 덩치와 울퉁불퉁한 근육을 떠올리고 참았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에서 밤새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고 목도 말랐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허기가 더 심해진다. 유성은 허기를 잊으려고 말문을 열었다.


“장 형, 아까 싸울 때 구해줘서 고마웠어. 그런데 왜 실력을 숨기고 있었지?”

장한림이 대꾸했다.


“닷새 전에 입방해서 실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 특별히 숨긴 건 아니다.”

“낭중지추라 결국 실력이 드러났군. 입문하면서 고수라고 말을 하지 그랬어. 그럼 훨씬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갔을 텐데.”

“출세에는 관심 없다.”


이장섭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출세에 관심이 없다는 놈이 신풍방에는 왜 들어왔담.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설마! 설송 꼬시려고?


설송은 유성이 운을 뗀 후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말이 끊긴 틈에 감사를 표했다.

“나도 구해줘서 고마웠어. 이 은혜는 언젠가 갚을 게.”


유성의 감사는 한 귀로 흘렸던 장한림이 그녀의 감사에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입니까?”

“응? 뭐가?”

“은혜를 갚겠다는 말 말입니다.”


단순히 인사치레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각골명심으로 한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빈말은 아니야. 기회가 되면 은혜를 갚을 거야.”

“그렇군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장한림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동굴 안을 맴돌았다. 설송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있나?”

“음, 저기, 음, 그러니까 정말 은혜를 갚을 생각이라면…….”

“뭔데?”

“음, 음, 그러니까.”

“답답하네. 변죽만 울리지 말고 시원하게 말해 봐.”

“저기 말입니다. 한번만…….”


그녀는 답답해서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한 번?”

유성도 답답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번 만나달라는 거죠? 밥 먹고 차 마시고 대화도 나누고, 뭐 그런 거?”


장한림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두워서 일행이 보지 못하자 그는 입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무산에 구름이 몰려와서 비가 오고 정이 오가고, 뭐 그런 거 있잖아.”

유성이 손뼉을 짝 쳤다.

“아, 알았다. 운우!”


유성은 말을 하다말고 뺨을 붉혔다.

다른 사람은 어두워서 유성의 안색 변화를 보지 못했지만, 장한림은 무위가 높아서 그것을 보았고 곧 그도 뺨을 붉혔다.


이장섭이 말했다.

“운우? 그게 뭔데?”

유성이 말했다.

“구름하고 비가 그러니까…….”


유성은 옆에 앉아 있는 설송 때문에 말을 제대로 맺지 못했다. 이장섭은 너무 답답해서 화를 냈다.


“구름하고 비가 어쨌는데?”

설송은 그제야 운우가 뭔지 깨달았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운우지정을 말하는 거군.”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운우지정이라…….”


이장섭은 마지막까지 알아듣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뒤늦게 깨닫고 소리쳤다.


“이런, 나쁜 새끼!”

이장섭이 주먹으로 땅을 내려치고 벌떡 일어섰다.

“장한림, 내 손에 죽고 싶냐?”

“넌 빠져!”


설송의 음성에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이장섭은 찔끔해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하고 하고 싶다고?”


장한림의 볼이 홍시처럼 빨개졌다. 너무 익어서 살짝 찌르면 속이 줄줄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한번이면 됩니다.”

장한림은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마침 컴컴해서 좋은데 여기서 대줄까?”

그녀가 팔뚝에 댄 부목을 검지로 툭툭 두들겼다.


“환한 데서 하는 걸 선호하면 날이 샐 때까지 기다리고.”

이장섭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안 돼! 이 미친 중놈의 새끼.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설송이 말했다.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장한림이 중얼거렸다.

“중 아닌데.”

설송이 물었다.

“뭐라고?”

“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장섭이 말했다.


“나도 알아.”

이번에는 유성이 끼어들었다.

“이 형, 알면서 왜 중이라고 한 겁니까?”


“파계를 하고 속세로 내려왔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더 이상 중은 아니지. 그렇지만 그래도 중이었으니까, 한번 중은 영원한 중이라고, 아 시발 말이 자꾸 엉키네. 어쨌든 배움은 남아 있을 거 아니야. 이봐, 장한림,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봐. 음행을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 오계를 어기겠다는 거야?”


유성이 중얼거렸다.

“불살생도 어겼는데 불사음 정도야.”


장한림이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불문에 몸을 담은 적이 없어.”

이장섭이 언성을 높였다.

“그런데 왜 삭발을 하고 다녀 이 미친놈아! 사람 오해하게.”


설송이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러다 일행이 보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단검으로 바닥을 그었다.


까앙.

불똥이 튀면서 그녀의 차가운 얼굴이 잠깐 드러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번만 더 끼어들면 목을 그어버리겠어.”

막 입을 열려던 이장섭은 찔끔해서 입을 닫았다. 둘의 입을 틀어막은 설송이 단검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 할까?”


장한림은 난처해서 민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지금은 곤란합니다.”

“왜 보는 눈이 옆에 있어서? 아니, 컴컴해서 보지는 못하겠군. 소리 때문에 신경 쓰여? 괜찮아. 내가 입을 꼭 닫고 있을 게. 너하고 하면서 흥분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어렵진 않을 거야.”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고자냐? 그런 놈이 왜 몸을 요구하지?”

“오해를 바로 잡아야겠군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네가 아니라고? 너 혹시 포주냐? 중 행세를 하는 변태 포주?”


장한림이 펄쩍 뛰었다.


“변태 소리 많이 듣기는 했는데 저 정말 변태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이장섭은 설송 때문에 감히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삭였다.


“거짓말.”

장한림이 말했다.

“거짓말 아니다. 사부님이…….”

설송이 말했다.

“여기서 사부가 왜 나와?”


장한림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 하려면 깁니다.”


“시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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