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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정구
작품등록일 :
2015.09.10 13:27
최근연재일 :
2015.10.15 14:38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31,986
추천수 :
7,047
글자수 :
129,493

작성
15.10.01 17:56
조회
4,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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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글자
9쪽

도주 #2

DUMMY

“너 미쳤냐?”

“그래, 미쳤다.”


개동은 문까지 물러섰다가 달려오며 그의 안면을 걷어찼다.


퍽.

김조명의 코뼈가 내려앉았다.

기절했는지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개동은 손을 탈탈 털고 방에서 나갔다. 그러고는 밤 산책을 나온 것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걸어서 산문을 나섰다. 그는 태평도관이 멀어지자 뛰었다.


잘 있어라. 개새끼야. 나는 간다.


개동은 자유를 느꼈다.


뭐 대대손손 노비로 부릴 거라고. 누구 맘대로.


개동은 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진즉에 도망칠 걸, 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는 경고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탓이리라.


“명나라까지 추노하지는 못하겠지.”


풀려났다고 생각하니 이 황량한 땅이 별안간 풍요롭게 느껴졌다. 개동은 양팔을 벌리고 숨이 막히도록 달렸다. 그러다 지치면 천천히 걷다가 체력이 회복되면 다시 뛰었다.

걷고 뛰고 걷고 뛰고.

개동은 계속 태평도관과 멀어졌다.


아스라이 용두객잔이 보였다.

개동은 객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래는 객잔에 들를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에 음식과 물을 구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라 방향을 튼 것이다.


속도를 높이는데 착 가라앉은 음성이 그를 끌어당겼다.


“더 이상 가지 마라.”

개동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서 있었다. 착잡했다.


“나리.”

개동은 박건동과 마주보고 섰다. 박건동이 말했다.


“설마 했는데 도망을 치고 있구나.”

“못 본 척 해주십시오.”

“어르신께 받은 은혜가 있어서 방관할 수 없다.”

“그동안 절 감시하고 계셨습니까?”


“아니다. 오늘 우연히 본 네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랐는데…….”

“못 본 척 해주십시오.”

“안 된다.”


“조명이 저를 어찌 다루는지 보셨지 않습니까?”

“조선 노비들의 처지가 원래 그런 것을, 네 주인이 특히 너를 학대한 것은 아니다.”

“그럼 조선이 뒤집어져야겠네요.”


“이놈! 이 무슨 망발이냐.”

“제도적으로 백성을 학대하는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그런 나라는 일찌감치 망해야지요.”


박건동은 개동을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조명이 못된 놈이라서 널 심하게 학대한 것으로 치자. 차라리 그게 낫겠다. 하지만 널 보낼 수는 없어.”

“전 가겠습니다.”


개동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용두객잔이 그를 구원해주리라 확신하는 것처럼 힘차고 단호하게.


박건동은 잠시 개동을 지켜보다가 달려들어 어깨를 잡아챘다.


“이놈. 내 말 안 들을 거냐.”

개동은 어깨에 힘을 주고 버텼다.


“제 아비도 노비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금슬이 좋았지요. 아니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박건동은 예감이 불길했다.


“갑자기 아버지 이야기는 왜 하느냐?”


개동은 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장가가던 날 그렇게 좋아했다더군요. 하루 종일 웃고 다녀서 사람들이 실성한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예뻤다고 하더군요.”

“왜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박건동이 세게 당겼지만 개동은 돌아서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종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여염집에서 누가 딸을 노비한테 주겠습니까. 종은 종끼리 결혼하는 거죠.”


박건동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종이 예쁘면 대개 손을 탑니다. 누가 손을 대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죠?”

“어허, 듣기 싫다.”


박건동이 짜증을 냈다.


“큰 주인이 우리 어머니를 범했습니다.”

“듣기 싫대도.”

“매일 밤, 매일 밤, 매일 밤.”

“허허, 이것 참.”


“아버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제가 태어났습니다. 곤란했죠. 누구 아들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우리 아버지는, 주인에게 마누라를 빼앗긴 불쌍한 우리 아버지는 하루 종일 말도 없이 앉아만 있었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쇠꼬챙이처럼 말라서, 사람들이 저러다 굶어 죽겠다고 혀를 찼죠.”


“안 됐구나.”

“아버지는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구나.”

“맞아 죽었죠.”


“이런.”


“매일 밤 어머니가 불려나가는 걸 더 이상 보다 못한 아버지는 집을 떠났습니다. 사연이 어떻든 노비가 도망쳤으니 잡아와야죠. 추노가 시작되었고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아버지는 멀리 가지 못하고 잡혀왔습니다. 멍석말이를 당했고 죽었죠. 아버지는 죽고 싶어서 도망을 쳤던 겁니다.”


박건동이 혀를 찼다.


“아버지가 죽던 날 어머니가 목을 맸습니다.”

박건동이 움찔했다. 차가운 침묵이 둘 사이를 배회했다.


“큰 주인이 저에게 대륙의 말과 글을 가르친 건 미안했기 때문일 겁니다. 갓난아기에게 아비와 어미를 빼앗아버린 죄책감이 보상심리로 변해서 표출된 거죠. 어쩌면 제가 아들일 수도 있어서 돌봐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조명이 절 학대한 것도 그 소문이 일정 부분 작용을 했을 겁니다. 다른 노비 대하는 것도 저한테 하는 것과 비슷한 걸 보면 원래 개차반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지금은 상관없습니다. 다시는 보지 않을 테니까요.”


박건동이 말했다.


“어르신이 조명과 널 묶어서 명으로 보낸 것은 두 아들을 살리기 위한 거였을 수도 있겠구나.”

“전 큰 주인 아들이 아닙니다.”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만약 제가 큰 주인 아들이면 죽은 아비가 너무 불쌍합니다.”


개동은 그의 손에서 어깨를 빼내고 걸음을 옮겼다. 박건동이 손을 내밀었다가 움츠렸다.


잡아야 하는데. 도망가게 두면 안 되는데.


박건동이 입술을 깨물었다. 차마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대대로 노비로 부리겠다는 조명의 말을 들어서 더욱 그러했다.


개동이 용두객잔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박건동은 문을 연 개동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가 급히 뛰어서 개동을 잡았다.


“무슨 일이냐?”


개동이 말없이 객잔 안을 가리켰다. 객잔 안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불을 켜라.”


늙수그레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객잔 안이 환해졌다. 그들은 모두 병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개동이 중얼거렸다.


“북직례에서는 병기 휴대를 금한다고 들었는데.”

조선말로 중얼거려서 노인은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말로 해라.”

“오랜만입니다.”


개동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벌레가 들었다는 이유로 찻값을 떼먹었던 노인이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노인이 물었다.


“여기는 웬일이냐?”

“도망치는 중입니다. 음식을 조금 구입하려고 왔는데…….”


개동은 그들의 면면을 죽 훑어보았다.


“몇몇은 낯이 익네요. 노인장 정체가 뭡니까?”

노인은 개동의 질문을 묵살했다.


“누구한테서 도망치는 길이냐?”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당연히 주인이죠.”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나. 너는 노비였지.”


개동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문을 연 순간부터 알아봐 놓고 의뭉 떨기는. 이 양반 보기보다 음흉하네.


노인이 말했다.


“네 뒤의 분은?”

“절 잡으러 오신 분입니다.”

“쯧쯧쯧. 바보같이 도주를 들켰구나.”


노인은 광목 조각을 꺼내 정성스럽게 칼날을 닦았다. 조만간 사용하기 위해서 손질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한운이다.”

개동은 그의 칼이 마음에 걸렸다.


“그 칼로 무얼 하실 겁니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남색 장삼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30대 중반의 사내가 노인 옆으로 오며 입을 열었다.


“태산파를 칠거다.”

개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태산파? 그게 뭐죠?”

“우리의 적이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눌려 있던 박건동이 개동의 어깨를 찔렀다.


“저 사람들 누구냐?”

개동은 이때까지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개동 통역해라.”

박건동이 말했다.


“태산파를 치겠다는 사람이 왜 여기로 온 거요?”

개동이 통역을 했고 남색 장삼이 답했다.


“태산파가 숨어든 곳이 태평도관이다.”


박건동이 상체를 젖히고 턱을 들었다. 많이 놀란 눈치다.

하는 짓이 도사 같지 않더니 역시 가짜 도사였어.


“당신은 누구요?”

“정가장의 소장주 정호림이다.”


개동이 박건동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그만 가죠.”

한 발 뒤로 빼는데 정호림이 말했다.


“갈 수 없다.”

“왜 갈 수 없습니까?”

“내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우리를 잡아두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이유가 뭐죠?”

“네가 돌아가서 우리의 출현을 알리면 그들이 도망칠 테고 그럼 우린 다시 그들이 숨은 곳을 찾아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제가 왜 태평도관으로 갑니까?”

“거기서 나왔으니까.”

“도관을 정탐했군요.”


정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노비입니다.”

“조금 전에 들었다.”

“도망치는 중입니다. 저는 도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너는 그렇지만 네 뒤의 분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개동은 대화를 빠르게 통역해 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리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세요.”

박건동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돌아가야 한다. 도관에 조명이 있다.”

정호림이 물었다.


“뭐라는 거냐?”

“태평도관에 제 작은 주인이 계십니다. 싸움에 휘말릴까 두렵다고 합니다.”

“네 작은 주인은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조선 사람입니다. 태산파와 상관이 없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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