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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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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6.19 19:30
연재수 :
26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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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68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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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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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4

DUMMY

“자, 이제 씻으러 가자”

“네. 얼른 가도록해요.”


마음이 급했던 리아는 필리아의 손을 잡고 욕실로 이끌었다.


욕실이라 부르긴 하지만 집이 작기에 따로 존재하진 않았고, 화장실도 겸하는 올인원의 형태였다.


내부는 목조로 만들어진 이 집에서 유일하게 바닥과 벽면이 리아의 신장만큼 되는 돌로 지어져있었다.


그런 욕조를 슥, 훑어본 리아는 익숙하게 신발을 벗어 입구 근처에 뒀다.


맨발로 디딛는 바닥은 제법 서늘함을 품고 있었는데, 리아는 허벅지 근처까지 오는 약간 밝은 흰 잠옷을 훌러덩 목 위로 벗어 선반 옆에 있는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이어서 속옷의 끈도 풀어 넣었는데······


손 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필리아를 바라봤다.



“응? 왜 그러니.”

“잠시만요, 어머니.”


필리아는 홀딱 벗은 자신이 다가오는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딱히 만류하진 않았다.


그렇게 욕실 안쪽에 서 있는 필리아에게 다가온 리아는 그대로 그녀의 치마를 살짝 만져보았다.


역시······ 생각대로 질감이 별로였다.


방금 막 자신이 집어넣은 옷과는 급이 나뉠 정도의 차이가 느껴진다.


당연히 필리아의 것이 밑이다.


물론 자신의 옷도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좋은 옷들이 수두룩한 지구와 비교한다면 별 볼일도 없는 물건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옷에 준하는 부드러운 촉감을 지니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그런 옷들 위주로만 입은 리아였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그 차이를 몰랐지만, 속옷만큼은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명백하게 품질이 달랐다.


덕분에 알게 됐다.


그리 많지 않은 필리아의 옷들은 겉보기와 다르지 않다면 전부 이 정도의 옷밖에 없을 거라고.


속옷만큼은 다를 수도 있고, 만져본 적도 없다. 그러나 평소의 필리아를 생각해보면 왠지 그것도 아닐 거 같다.


‘아마 가장 좋은 옷감은 전부 내 옷에 사용했겠지. 부모님들은 내걸 만들고 남은 옷감들로 옷을 지은 거고.’


필리아나 이스카르에겐 딸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반대로 자신이 이들의 상황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자식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 건 좀 더 나이를 먹고 철이든 이후다.


그러나 전생의 기억을 찾은 리아로서는 알아챌 수밖에 없었고, 딸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아껴주는 부모님의 마음에 살짝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 순간 리아는 처음으로 전생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옷을 만지고 있는 딸이 걱정됐는지 필리아가 허리를 숙인다.


리아는 지금 표정을 보이기 싫어 재빨리 필리아의 품에 파고들어 얼굴을 묻었다.



“리아?”

“고마워요, 엄마.”

“으응?”


필리아는 조금 당혹스러운 듯도 했지만, 이내 상냥하게 머리를 쓸어주며 진정하기를 기다려주었다.


리아는 속으로 다시 감사를 전했고, 잠시 후 진정한 걸 느꼈는지 필리아는 살짝 떨어져 앉아 눈높이를 맞춰줬다.



“알몸으로 있으면 감기 걸린단다. 얼른 씻자.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됐어.”


농민 같지 않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살며시 리아의 눈가를 쓸어줬다.



“네. 죄송해요.”

“뭘~ 후훗. 얼른 끝내볼까?”


활기차게 웃은 필리아는 곧바로 리아를 씻기기 위한 준비를 했다.


빈 통에 들어가 있던 작은 바가지를 한손에 들고, 다른 손은 통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곧 식수마법을 사용하여 물을 채우기 시작했는데, 물은 바닥에서 차올라 금방 다 차올랐다.


그 후 가득 담긴 물 속에서 불씨마법으로 생긴 작은 불꽃이 솟아올랐다.


성냥이나 라이터 같은 이 마법은 물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화력도 조절이 가능해 필리아는 평범하게 요리할 때도 사용하고 있었다.


물속에 불꽃이 타오르는 일 같은 요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건 지구의 상식이다. 오엘문리아에서는 평범한 일로, 리아도 씻을 때 매일 보아왔다.


얼핏 악행이나 악용에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나, 마법이 있는 곳이니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뭐, 내가 알고 있는 마법은 생활마법 뿐이고, 들어본 마법은 아버지가 해준 장황한 사냥 활극에 나오는 꿈과 같은 마법 밖에 없어 장담은 못하지만······.’


사설로 이 불씨마법은 리아도 사용할 수 있었으나, 집에서는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금 당하였다.


위험하고 하니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겠다만,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실은 전과가 있던 것이다.


처음 불씨마법을 사용하게 됐을 때의 일이다. 신난 리아는 이스카르에게 자랑하러 달려가 그대로 식탁 밑바닥을 약간 태워먹었었다.


그을린 자국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고, 이 일로 인해 필리아에게 엄금과 더불어 엉덩이를 맞으며 혼도 났었다.


‘맨손이셨지만······ 엄청 아팠었지.’


떠오른 당시의 기억에 리아는 무심코 엉덩이를 만졌다.


쓰라린 추억을 회상하는 사이 준비가 끝났나 보다. 필리아는 손을 살짝 넣어 온도를 확인하고는 뒤에 있던 리아를 불렀다.



“자 춥지? 이리오렴”

“네~”


촤악.


필리아는 들고 있던 바가지로 물을 퍼서 작은 욕실의자에 뿌려 따듯하게 덥혔다.


리아는 지정석처럼 느껴지는 그곳에 앉았다.


아니, 지정석이 맞을 것이다. 이 욕실 의자는 이스카르가 만든 것으로, 어딜 어떻게 봐도 성인이 앉을 사이즈가 아니었으니.


‘옷도 그렇지만 식탁의자에 하물며 욕실의자까지도······’


딸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의 사랑을 재확인한 리아는 적잖이 감동했다.


미소를 지은 리아는 필리아에게 건네받은 바가지를 목 근처로 가져가 가볍게 물을 끼얹었다.


따듯한 온기가 몸에 퍼져가고 기분이 좋아진다.


입에도 한 모금 물을 머금고 부글부글 가글하고는 손을 입가에 댔다. 그리고 청결마법을 사용했다.


조금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고, 리아는 배수구 쪽에 물을 뱉었다.


팔과 다리도 물을 뿌려 골고루 물기에 젖도록 하고, 마지막은 머리위에서 얼굴로 물을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리아, 눈을 감으렴.”


얌전히 시키는대로 눈을 감고 기다리니, 필리아가 아직 물이 제법 남은 통을 통째로 들어 머리 위로 물을 부어 주었다.


물의 양을 보아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하지만 필리아는 빈 통을 드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쉽게 들어 올렸다.


이 광경을 가늘게 뜬 눈으로 목격했던 리아는 확신했다.


‘내 착각 같은 게 아니었어. 어머니는 진짜 무지하게 힘이 세신 거야!’


이전에 맞은 엉덩이가 괜히 생각나거 그런 건 아니다. 그러나 필리아의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겠다고 리아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됐다. 이제 일어나자”

“넵!”


조금은 기합이 들어간 대답을 하고 리아는 벌떡 일어났다.


씻는 것은 이걸로 끝이다.


꼼꼼히 물에 적신 것으로 끝난 이 간단한 씻기는 이 마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똑같았다. 소꿉친구인 루데릭과 숲속에서 놀다가, 정확히는 리아가 끌려 다니며 더러워진 몸을 그쪽 집에서 씻을 때도 똑같이 했었다.


이쪽의 위생인식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청결마법이 우수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리고 4살의 아이라고는 하지만 전생을 아는 리아가 혼자서 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겨우 씻는 것에 마법을 쓴다는 게 참으로 묘하지만.’


방금처럼 양치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괜찮은 듯하다. 큰 이상은 아직까지 느낀적이 없다.


그렇지만 다른 곳―― 약간 범위를 넓히기만 해도 비실거리며 졸음이 쏟아지는 퉁에 몸 전체를 씻는다는 건 불가능하였다.

만약 물을 준비하고 데우는 거까지 한다면 한 부위만으로도 바로 잘 자신까지 있었다.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마법 이외엔 어떠한 세정제도 없는데. 평생 제대로 씻지 않을 게 아니라면 마법밖엔 답이 없다.


리아가 한탄하는 동안 필리아는 머리부터 청결마법을 사용해줬다.


마법의 효과로 적셔져 있던 물들이 쑥 빠지듯 몸을 타고 흘러내린다.


어제는 자고 있던 자신을 옷만 갈아입히고 재웠는지, 자는 동안 나온 땀도 합쳐져 배수로로 빠지는 물은 그렇게까지 더럽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탁했다.


다음으로 팔과 몸, 다리 순으로, 위에서 밑으로 내려갔다.


가만히 있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던 리아는 신기한 눈치로 구경을 하였다.

그러다, 마법을 사용하는 필리아의 몸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마법의 효과―― 비누는커녕 수건조차 필요 없이 뽀송해진 몸으로 탈바꿈 한 것에 잊혀졌다.


‘대단해··· 이게 청결마법이었어? 당연해서 몰랐었는데 진짜 엄청나네. 때는 물론이고 물기까지 뺀다고? 마, 마법 굉장해···’



“마법 쩔어······”

“뭐라고 했니?”

“앗?! 아, 아뇨. 어머니는 대단하세요!”

“그러니? 고맙구나.”


‘쩔어’라고, 손녀가 자주하던 말버릇이 무심코 튀어나와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필리아는 잘 듣지 못하였나 보다.


서둘러 둘러댔던 리아는 살짝 안도했다.


막 떳떳한 건 아니었지만 둘러댄 말들은 딱히 거짓은 없다.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너무 쫀 게 아닌가도 싶었다. 쩔어는 이곳에서 쓰지 않는 말이거나, 혹은 있어도 평범히 사용하는 단어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자신은 손녀를 혼냈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아무래도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달까,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단 기분이었다.


‘손녀는 혼나도 계속 썼었는데, 막상 말해보니 묘하게 입에 착착 감기기는 하네.’


그런 동병상련의 기분을 맛보며 리아는 조용히 속으로 손녀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슬쩍 필리아의 눈치를 보았다.


만약 혼낸다면 저 엄청난 힘을 소유한 필리아에게 엉덩이팡팡이다.


리아만한 그 나이대의 말썽꾸러기를 한방으로 다시는 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위력이다.


사설이 길었지만 실은 이 사실 하나 때문에 마음이 꺾여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 무지하게 아팠으니······’


이스카르가 조심스레 구원으로 나서겠지만 결국 말리진 못할 거다. 즉 애당초 걸리면 필리아의 손에서 빠져 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금 다시 혼난다면······ 아마 아픔보단 부끄러움으로 죽을 거 같아.’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리아는 슬쩍 필리아를 봤다.


다행인지 무수한 걱정과 달리 부드럽게 미소 짓는 필리아에게선 험악한 기류가 흐르고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리아는 숨을 크게 토해내며 남몰래 안도했다.



“이제 얼른 옷 입고, 밥 먹으러 가자.”

“네에~”


걱정을 던 리아는 늘어진 대답을 하고, 바닥에 조금 남은 물기를 피해 자신의 키보다 높은 선반에 손을 뻗었다.


거기서 방금 벗어 놓은 속옷과 동일하게 펑퍼짐한 속옷을 꺼내 보니, 역시 이것도 촉감이 부드러웠다.


다시 한 번 부모님의 사랑에 감동하고 있자니 필리아 곁으로 왔다. 찔리는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리아는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는지, 필리아는 아까 벗어서 넣었던 잠옷과 속옷을 빨래 바구니에서 무심히 꺼내기만 하였다. 그리고는 아까 씻고 남은 물에 그대로 담가 버렸다.


아마 지금 옷을 빨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응? 그러고 보면 난 어머니가 세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지?’


평소 옷을 다 입고 언제나 식탁으로 달려갔기에 당연히 볼 수 없는 뒷면이라고 할까.

언제나 먼저 식탁에 앉아 있으면 거의 곧바로 필리아가 가지런히 접힌 옷들을 침실에 있는 옷장에 넣고는 식탁으로 돌아왔었다.


더 어렸을 때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한 번도 세탁하는 모습을 일절 못 본다는 게 가당키나 하려나?


조금은 이상함을 느낀 리아는 속옷만 입은 채로 필리아의 뒤로 다가가 고개만 쑥 내밀었다.


빨랫감은 아까 벗은 잠옷과 속옷, 두 개 뿐이라 적은 물에도 충분히 다 잠겼다.


필리아는 그것을 손으로 꾹 누르고 저어 물을 충분히 머금도록 했다. 그러더니 살짝 들어올리더니 양옆으로 펼쳤다.


뚝뚝 물이 떨어지는 잠옷.


여기까진 평범했다. 이제 꺼내서 빨래판에 벅벅 문지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오엘문리아. 이세계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세탁조차도 마법을 썼다.


저항이 없는 것처럼 쭈욱 물이 흘러내려 가는 것을 보니 아마 청결마법을 사용한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몸을 씻겨줄 때와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잠옷은 다 말랐다.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니 굉장한 광경이다.


놀랄틈도 없이 필리아는 마른 잠옷을 어깨에 걸치고는 뒤이어 속옷도 똑같이 펼쳤다.


그리고 주르륵.


그것으로 세탁은 끝나버렸다······. 잠옷과 속옷 모두 뽀송뽀송하다.


하지만 필리아에겐 아직 끝이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마른 속옷을 쥐고선 어깨 위에 있던 잠옷이 흘러내리지 않게 누르더니, 다른 한 손으론 더러워진 물이 든 통의 끝 쪽을 잡고 들어 배수구에 들이부었다.


넋이 나간 와중에도 리아는 이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세탁과 뒷정리까지 모두 끝났다. 실로 경이로운 속도가 아닐 수 없다.


리아는 필리아에게서 씻겨 줄 때 보다도 더 선명히 뭔가 보이는 듯했지만, 경악으로 가득하여 뽀송 마른 옷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게 뭐야······.’


자신의 정체성은 오엘문리아에 사는 이스피리아로 확고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건 지금도 변함없다.


그렇지만 세탁이라는 일의 귀찮음과 중요성을 전생에서 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감화된 듯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회사를 다니며 날씨가 흐려 마르지 않은 옷과 속옷을 얼마나 입었던가!’


모든 양말이 덜 말랐지만 어쩔 수 없이 신고 출근하여 찝찝함이 최고조에 달하는 기분을 맛본다거나, “내일 세탁하지”라고 안일하게 넘어간 자신을 얼마나 욕한지 모르겠다.


결혼하고 나서는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몇 번은 덜 마른 셔츠를 입고 다녔었다.


몸 쓰는 일하던 젊은 시절의 상황은 그래도 좀 나았다. 걸어가면서 마르기도 했고, 당시 시대에는 다들 살기 바빠서 위생이나 청결에 대한 인식이 느슨했으니.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청결에 대한 중요성이 널리 전파되어 깔끔함을 맛 본 이후엔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습기가 가득한 속옷은 정말 최악이었지.’


기술이 발전하여 건조기라는 물건이 나왔을 때는 쾌재를 부르짖었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개발자를 만나 진심으로 직접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만날 수도 없었고,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런데 인생의 황혼기에 접할 무렵에 만난, 그 굉장한 건조기조차도 이리 빠르게 뽀송뽀송 마르게 하진 못했다.


사기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끓어오른다.


충격을 받고 멍하니 필리아의 어깨에 있는―― 기적의 산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리아.


그런 모습이 묘했는지 필리아는 쿡쿡 웃으며 리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우리 리아, 속옷만 입고 뭐하니. 그렇게 재밌었어?”


다정하게 말하는 필리아의 목소리에 벌리고 있던 리아의 입이 움직였다.



“와········· 사기다······”

“으응? 엄마가 뭔가 잘못했니?”

“······사기······다아아, 앗!”


보기 드문 필리아의 놀란 얼굴과 묻는 말에 살짝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인식하게 됐다.


오해하면 안 된다.


리아는 다급히 변명의 말을 쏟아냈다.



“아뇨, 아니에요! 너무 어머니가 쩔······아니, 굉장해서 놀란거예요! 마법이요. 정말 대단해요, 어머니!”


“그렇구나. 고마운데 그렇게 여성이 속옷 차림으로 흥분하면 안 된단다. 감기 걸릴 수도 있으니 얼른 옷 입고 나가자꾸나.”


마법을 칭찬하는 건지 모를 말임에도 필리아는 웃으며 대꾸해줬다.


이에 다시금 흥분한 리아는 묘하게 입에 착착 감기는 말이 나올 뻔 했지만, 무시무시한 엉덩이팡팡이 떠올라 급히 삼켰다.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리아를 이끌고 필리아는 선반으로 가 옷을 입혀줬다.


발을 들어 치마를 넣어 왼쪽 끈을 묶어주고는 아직까지 조잘조잘 떠드는 리아에게 적당히 대답하면서도 배를 안고 들어 올려 양말을 신기고, 내려서 신발도 신겨줬다.


스스로 전혀 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마음껏 응석부리는, 나이 대의 어울리는 훈훈한 모습이다.


결코 전생을 아는 아이 같진 않았다.


리아는 그런 줄도 모르고 거실로 향하면서도 필리아를 올려다보며 물이 흐르는 모습이라든지, 옷이 마른 모습을 열심히 떠들어댔다.


작가의말

세탁에 한이 맺힌 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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