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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4,602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6.16 01:00
조회
841
추천
15
글자
11쪽

29. 궁지(2)

DUMMY

다섯 명의 낭인을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철무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냇가에 앉아 세수를 했다.


어푸 어푸


찬물로 얼굴을 씻자 낭인들을 죽이며 치솟았던 살심이 어는 정도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으음... 이래서 허공 대사께서 내게 금강경을 주신 건가?”


사실 폭혈장을 익힌 후로 적을 격살할 때마다 무언가 또 다른 존재가 자신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점점 무뎌지는 스스로의 살인 행각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노리고 달려드는 적들에게 인정을 베풀 만큼 내가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고...”


지난날 유유자적한 삶을 꿈꾸었던 자신이 점점 살인귀로 변해가는 현실에 철무진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금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푸후... 그래. 일단은 안전한 곳에 숨는 게 우선이니까 금강경은 그 후에 읽으면 되겠지. 설마 그 전에 내가 인성이 파괴된 악귀가 되지는 않을 거야.”


어찌되었든 복수를 위하여 만들었던 폭혈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사박 사박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근처의 수풀을 헤치고 무복을 걸친 단정한 인상의 일남일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약관의 나이에 조금 사나운 인상을 가졌고, 여자 역시도 그보다는 조금 어려 보였으나 눈매가 신경질적으로 찢어져서 평범한 사람이 보았다면 위압감을 느낄 만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막 세수를 마친 철무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으나, 곧 주변에 쓰러져있는 낭인들의 모습을 일별하고는 급히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빼내들었다.


챵~


“이놈! 네가 바로 그 소악귀로구나.”


하찮은 낭인에 불과했지만 다섯이나 되는 장한들을 살해하고도 태연하게 서있는 철무진을 노려보며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철무진의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보고 무당의 청수 도사를 죽였다는 소문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건 철무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상대했던 이가장이나 태산파의 제자들과 달리 눈앞의 일남일녀에게서 이신과 비슷한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급함을 느끼게 된 철무진은 더 이상 시간을 끌게 된다면 지금 자신을 뒤쫓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엄청나게 몰릴 거라 생각하며 빠르게 기수식을 취했다.


“쓰읍! 당신들도 현상금을 노리고 찾아온 사람들이오?”


낭인들처럼 손쉽게 일장에 쳐 죽일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물음을 건네며 상대의 빈틈을 찾으려 했다.


이에 일남일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우리가 저깟 하찮은 낭인 나부랭이로 보인단 말이더냐?”


“그럼 아니란 말이오?”


“물론이다. 종남산(綜南山)에서 내려온 나 손현(孫玄)을 알아보지 못한 것도 큰 죄이거늘... 감히 낭인 취급을 해? 챠핫!”


종남파의 제자라는 게 큰 자부심이라도 되는 냥, 철무진이 각광받는 후기지수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손현은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정으로 곧장 자세를 낮춘 채 바닥을 박찼다.


스스슷!


잠영보(潛影步)를 펼쳐 발바닥이 지면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는 손현의 신형이 금세 거리를 좁혀오자 철무진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몸을 틀었다. 그러자...


쉭!


손현의 손에 들린 중검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귀 옆을 지나가며 잘게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손현의 공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하하! 무당의 체면을 구겨줬다는 소문이 과연 거짓은 아니었나보구나. 허나 언제까지 내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을 피할 수 있을까?”


철무진이 수세에 몰리자 손현은 자신감이 상승했는지 호기롭게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쉬쉭! 쉬쉬쉭~


순간 검광이 다섯 차례나 번뜩였다.


그러나 철무진은 자신의 전신을 유린하려 날아드는 손현의 천하심십육검을 재빠른 몸놀림으로 피해내며 부드럽게 우수를 내뻗었다.


“흡!”


굳은 살 박인 철무진의 손바닥이 천하삼십육검의 검로를 꿰뚫고 시야를 가득 채우자, 손현은 깜짝 놀라 크게 숨을 들이켜며 자신의 애검을 들어 얼굴 앞을 가로막았다.


쩡!


“크흑!”


팔괘장이 검면을 두드리자 큰 충격음과 함께 손현의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손현이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나자, 지금껏 구경만 하고 있던 신경질적인 인상의 여인이 급히 그의 뒤를 붙잡아주었다.


“사형! 괜찮아요?”


“크흑... 사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충격이 컸는지 입가로 한줄기 붉은 피를 흘리던 손현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중심을 잡자, 여인은 조금 심각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저놈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합공하자고 했잖아요.”


“미... 미안해. 저 소악귀의 순박해 보이는 어린 모습에 속아 순간 방심하고 말았어. 지금부터라도 함께 합공하자.”


이렇게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욕심을 부렸던 것이지만, 손현은 철무진의 무공이 생각보다 대단하자 단번에 합공 제안을 받아들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에 철무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구대문파의 일원이라고 한껏 허세를 떨더니 결국은 이럴 거였나? 명망 높은 종남파도 별거 없었군.”


“뭐야?”


철무진이 비웃는 표정으로 말하자 손현은 발끈했지만 더는 경거망동하여 날뛰지 못하고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소악귀야! 마공을 익힌 주제에 뭘 그리 큰소리를 치느냐?”


“그래! 그런 식으로 우리를 모욕해도 소용없다. 마공을 익힌 대가를 치러라!”


자신보다 몇 살이나 어린 소년을 상대로 합공한다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두 사람은 당당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철무진은 더 이상 이들과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문답무용이라는 듯 바닥을 박찼다.


탓!

스스슥~


철무진의 신형이 급히 거리를 좁혀오자 두 사람은 빠르게 좌우로 거리를 벌려 유리한 방위를 점하려고 했다.


하지만 철무진은 여인이 자신의 뒤를 점하려 해도 이미 전력을 어느 정도 파악한 손현에게로 달려들 뿐이었다.


“이익!”


자신이 얕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손현은 붉게 얼굴을 물들이며 다시금 천하삼십육검을 펼쳤다.


쉬쉭!


검광이 날카롭게 번뜩이며 놈의 중검이 철무진의 어깨와 허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허나 허리를 노리는 검초가 허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철무진은 급히 몸을 틀어 사선으로 날아드는 손현의 검을 피해내며, 그와 동시에 힘껏 내력을 실어 좌수를 내뻗었다.


퍽!


“크아아악!”


왼쪽 옆구리에 폭혈장을 적중당한 손현은 오른쪽 옆구리가 터진 채, 처참하게 비명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훨훨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러자 그 사이 어느 샌가 등 뒤를 점한 여인이 날카롭게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이놈! 감히 사형을...”


핏!


등 뒤의 살기를 느끼고 빠르게 다시 한 번 몸을 틀었으나 여인의 검은 가차 없이 철무진의 오른쪽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큭!”


눈이 번쩍거릴 만큼 화끈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지자 철무진은 무거운 신음성을 터트리며 급히 여인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에 여인은 강호 경험이 적은지 철무진을 쫓아 다음 일격을 가하기기보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손현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미 숨이 멎어있는 손현의 모습을 일별하고는 이를 갈며 철무진을 노려보았다.


“이 살인귀 놈! 너를 죽여 사형의 원수를 갚겠다.”


악에 받친 여인의 모습에 철무진은 기가 차는 걸 느꼈다.


“살인귀? 이보쇼. 나이 많은 누님! 그러게 누가 남의 은원에 함부로 끼어들라고 했소?”


“너! 이익...”


계속해서 매도당한 철무진이 기분이 상하여 불량배처럼 유들유들하게 말하자, 혼자 달려들 자신이 없었던 여인은 말문이 막혀 분해하며 부들부들 어깨만 떨 뿐이었다.


그러자 철무진 역시 강호의 은원은 끝없이 얽히고설킨다는 말을 떠올리며, 무당에 이어 종남에까지 예기치 않게 원한을 사게 되어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하나 하는 걱정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곧 가만히 있는 자신을 세상이 무엇 때문에 괴롭히나 하는 분노로 화했다.


“씨발! 내가 뭘 잘못했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자 철무진은 당장 여인을 해하여 살인멸구하고 싶은 살심이 샘솟았다.


하지만 당장은 화끈거리는 어깨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현천신공을 운용하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인과 눈싸움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는 사이에 어깨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다.


그러자 철무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뛰어난 공능을 보이는 현천신공에 큰 만족감을 느끼며 눈앞의 여인을 어찌할까 고민했다.


상처가 회복되며 평정심을 회복하자 살심이 수그러들기도 했지만 살기 짙은 폭혈장 때문에 인성이 파괴된 악귀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던 허공 대사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철무진의 모습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긴 여인은 원독어린 눈빛으로 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이 악적!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


“뭐? 악적? 가만히 있는 나를 먼저 건든 주제에 잘도 그런 말을 계속해서 내뱉는군.”


악에 받친 여인의 모습에 다시 살심이 치솟은 철무진은 허공 대사의 조언이고 뭐고 간에 당장 여인을 쳐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살심이 치솟으며 기감이 예민해졌기 때문인지 수풀 건너편 먼 거리에서부터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지자 철무진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하... 쯧! 누님. 운 좋은 줄 아시오.”


“닥쳐! 내가 왜 너 같은 악적의 누님이냐? 난 종남의 강초희(姜招熙)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강초희는 버럭 성을 내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하지만 철무진은 굳이 이곳에서 더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를 듣는 듯 마는 듯 다시 혀를 차고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안장에 매달아둔 음식을 빼내 품에 넣었다.


“살려준대도 지랄이야! 누님... 앞으로 장수하고 싶으면 그 성깔 좀 죽이쇼. 오늘 같은 행운이 또 다시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히익!”


살기를 일으키자 강초희가 창백해진 얼굴로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게 된 철무진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경공을 펼쳐 장내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철무진이 자리를 떠나자 그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었던 강초희는 저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살기어린 철무진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속 하의가 조금 젖어버렸다는 걸 느끼게 된 강초희는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으득! 이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 내 이번 일을 아버지께 고해 반드시 널 잡아 족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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