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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4,606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5.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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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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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1쪽

14. 불구대천(不俱戴天)(1)

DUMMY

“그렇소! 나 철유량은 결코 오늘 이 싸움을 피하지 않을 것이외다.”


철유량이 자신의 눈빛을 마주하고도 꿋꿋하게 버텨내자 현성진인은 감탄성을 터트렸다.


“허어... 이런 상황에서도 싸움을 택하다니 철 장주는 과연 소문처럼 대가 있는 사람이었군.”


“과찬이오. 다만 오늘 싸움의 결과가 어찌되었든 진인께서는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시면 좋겠소.”


“약속? 무슨 약속 말인가?”


철유량의 뜬금없는 말에 현성진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철유량은 다시 입을 열었다.


“현성진인께선 정도 무림의 명숙이시니, 지금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알고 계실 것이오. 그렇지 않소?”


정도무림의 태산북두인 무당이 중소문파의 다툼에 끼어든 것 자체가 큰 오점이 될 수 있는 만큼 철유량이 이를 지적해 말하자 현성진인은 민망함을 느꼈는지 헛기침을 터트렸다.


“커흠! 말도 안 되긴 무엇이 말도 안 된다는 건가? 철 장주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나본데 나는 그저 이 자리에 참관인 자격으로 온 것뿐이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말게.”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인지 현성진인은 재빨리 변명하듯 소리치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좋소! 그렇다면 진인의 그 말씀을 믿고, 오늘 이 싸움은 나 철유량이 홀로 나서서 해결할 테니 설령 내가 싸움에 패배하여 목숨을 잃더라도 여기 철가장의 어린 제자들에게까지는 손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시오.”


철유량이 철무신과 철무진, 그리고 금만재, 유영을 차례대로 훑어보며 말하자 현성진인은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다.


“뭣이? 우리 무당이 중소문파의 후사를 삭초제근하는 사파 무리도 아니고, 대무당을 뭐로 보고 그딴 말을 하는 건가?”


체면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현성진인은 대로한 표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철유량은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현성진인은 믿소. 허나 저기 이 장주를 믿지 못하여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오. 대무당의 체면에 맞지 않게 이런 중소문파의 다툼에 관여했으니 그 정도의 중재는 약속해 주시오.”


자신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도 철유량이 꿋꿋한 모습을 보이자 현성진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 철 장주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이 장주! 철가장은 사파도 아닌데 최소한의 피로 이번 일을 결착 지는 게 어떻겠소?”


“어흠! 알겠습니다. 진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는데 따라야지요.”


중소문파를 핍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명성에 흠이 생길지도 몰랐기 때문에 현성진인이 성가시다는 투로 말하자, 이관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훗날 현성진인과 그 제자들이 태을촌에서 떠난다면 철유량의 남은 자식과 제자들은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러자 이번에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철무신이 원망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철유량에게 다가섰다.


“아버지! 왜 홀로 나서시는 겁니까? 우리 철가장의 제자들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고 항시 가르치셨으면서 왜...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만! 무신아. 내가 없으면 너라도 남아서 동생과 사제들을 돌봐야 할 것이 아니더냐.”


“하... 하지만...”


철유량은 무언가 항변하려는 철무신의 어깨를 빠르게 다독였다.


“네 마음은 다 안다. 허나 무당의 현성진인이 약속한 만큼 설령 이 아비가 큰 화를 당하더라도 뒤를 잘 부탁하마.”


말을 마친 철유량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섰다.


“그럼 이 장주 당신이 나를 또 상대할 것이오?”


철유량이 노한 눈빛으로 이관재를 노려보자 두 사람 사이로 이신이 끼어들었다.


“이신이라고 합니다. 소문에 저희 삼촌과 동수를 이루셨다고 하던데 제가 한수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이관재가 개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친 사실은 태을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었지만 이신은 이관재의 체면을 세워주며 포권을 말아 쥐었다.


이에 철유량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 장주는 자신이 없나보군. 좋소! 이 소협은 이 장주의 조카이니 이번 대결에 낄 자격이 있지. 어디 무당에서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지 한번 겨뤄봅시다.”


이신의 외모가 약관에 불과할 만큼 어려 보였기 때문에 철유량은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런 철유량의 진지한 모습에도 이신은 방금 앞으로 나선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서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에 철유량은 어린 후배가 자신을 업신여기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리고는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소협! 두 문파의 미래가 걸려있는 신성한 대결이오. 어서 검을 뽑고 기수식을 취하시오.”


철유량이 크게 소리쳤으나 이신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듣자하니 철가장의 무공은 적수공권이라 하던데 굳이 검을 뽑을 필요 없이 저도 적수공권으로 상대해드리죠.”


“뭐라?”


삼촌인 이관재조차 검을 뽑아들고도 자신을 상대하기 버거워했는데 그 조카인 이신이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이자 철유량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는 걸 느꼈다.


하지만 철유량은 빠르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보기엔 약관에 불과해 보이는 이신이 실은 지난 10년 이상을 무당산에서 수련해왔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당파 장로의 속가제자라는 신분으로...


생각이 그에 이르자 철유량은 가만히 서있는 이신의 모습이 태산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좋소! 그리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면 아무리 후배라지만 선공을 양보하진 않으리다. 챠핫!”


침음성을 흘리며 이신의 빈틈을 찾아보던 철유량은 선배의 체면이고 뭐고 일단 놈을 이기고 보자는 마음으로 곧장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디 비룡선풍각을 맞이하고도 그리 여유를 유지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소.”


살짝 도약한 철유량의 신형이 가볍게 회전하며 연달아 발차기를 내뻗자 이신은 빠르게 뒤로 보법을 밟으며 이를 회피하려 했다.


허나 문파의 존망이 걸려있는 만큼 철유량은 평소 공중 3회전을 하며 3차례에 걸쳐 발차기를 하던 것이 한계이던 비룡선풍각에 혼신의 힘을 더하여 회전을 추가하였다.


추추추축!


회전력이 더해진 만큼 철유량의 비룡선풍각은 이신의 옆구리를 집요하게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에 이신은 처음 3차례의 발차기를 회피해낸 것과 마찬가지로 추가된 발차기마저 빠르게 뒤로 물러서 피해내려 했으나, 순간 따갑게 느껴지는 현성진인의 눈초리를 느끼더니 가볍게 좌장을 내뻗었다.


이런 중소문파의 무공에 물러서는 모습만 보인다면 현성진인의 눈 밖에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개처럼 날아든 철유량의 비룡선풍각과 이신의 좌장은 빠른 속도로 맞부딪쳤다. 그러자...


퍽!


놀랍게도 누가 보아도 훨씬 위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철유량의 비룡선풍각이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이신의 좌장에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앞으로 도약해 들어가던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튕겨나간 철유량은 직전의 충격으로 제대로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크흑!”


“아버지!”

“사부님!”


놀란 철무신과 금만재, 유영이 자신에게 다가오려 하자 철유량은 다리가 마비되는 고통 속에서도 빠르게 손을 들어올렸다.


“멈춰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결연한 철유량의 모습에 세 사람은 차마 더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신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철 대협! 이번 한수로 서로의 역량을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정말로 더 해보실 작정입니까?”


“그렇소. 정말 대단하구려. 약관에 불과한 나이처럼 보이는데 이토록 대단한 장법을 펼치다니... 설마 이것이 무당이 자랑하는 무당면장(武當綿掌)인 것이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그런데도 대결을 이어가겠다고 하시니 설령 목숨을 잃더라도 원망은 마시길!”


현성진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인지 이신은 본심을 드러내며 철유량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아버지! 그냥 10년간 봉문하면 안 되나요?”


지금껏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철무진이 크게 소리쳤다.


두 사람의 움직임만 보아도 철유량이 이신의 공격을 채 몇 수 받아내지도 못하고 크게 다칠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무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유량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우리 둘째가 이 아비가 걱정되었나 보구나.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봉문을 하게 되면 죽어서 조상님들을 어찌 뵐 것이며, 너와 형의 앞날에 얼마나 많은 오욕이 따라붙겠느냐? 나는 우리 가문의 무공을 믿는다!”


철유량의 결연한 모습에 철무진은 빠르게 달려가 그를 만류하려다 멈춰서고 말았다.


평소 때로는 목숨보다 명예가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더는 그를 만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무진이 주춤거리는 사이 철유량은 빠르게 삼운보를 밟으며 이신에게 다가섰다.


“무당면장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지만 우리 가문의 팔괘장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오. 어디 한번 어울려봅시다.”


쉬쉬쉭~


철유량은 사십 평생을 익힌 팔괘장을 호쾌하게 내뻗으며 이신을 압박해 들어갔다.


허나 가문의 무공을 완숙하게 익히며 이미 어느 정도 개안을 한 철무진의 눈에는 모든 면에서 이신이 확연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철유량의 저런 모습은 그저 발악에 가깝게 보일 뿐이었다.


쾅!


“큭!”


이신의 경동맥을 노리고 날아든 철유량의 좌장이 무당면장에 가로막혀 튕겨나가며 그의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자식들과 제자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에 철유량은 내장이 진탕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빠르게 우장을 내뻗어 이신의 복부를 노렸다.


쉭!


번개처럼 날아든 팔괘장이 이신의 복부에 틀어박힐 찰나였다.


허나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이신은 침착하게 뱀 같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이미 이관재와 상의하여 철유량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만큼 이신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좌장을 내뻗었다.


슉!


놀랍게도 한참 늦게 출수한 이신의 좌장이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가 철유량의 가슴에 먼저 적중했다.


퍽!


“크아악!”


가슴 한복판이 움푹 파인 철유량은 처절한 비명성과 함께 입으로 피화살을 뿜어내며 이신에게 다가선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뒤로 튕겨 날아갔다.


쿠당탕탕


멀리 날아간 철유량의 신형은 바닥에 떨어져 한참이나 뒤로 나뒹굴었다.


이에 깜짝 놀란 철무진은 철무신, 금재력, 유영과 함께 쓰러져 미동도 없는 철유량에게로 급히 달려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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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불구대천(不俱戴天)(1) 23.05.29 1,210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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