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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4,855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5.3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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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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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0쪽

16. 불구대천(不俱戴天)(3)

DUMMY

금만재와 유영이 자신을 걱정하자 철무진은 분노를 빠르게 삭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들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저 그렇게 무모한 놈은 아니니까요.”


철무진이 평소의 담담한 모습을 회복하자 금만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래. 잘 생각했다. 하필 이럴 때 아버지께서 장기 출타 중이시라니... 당장은 나도 네게 큰 도움은 되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에요. 사형은 무당이라는 이름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의리를 지켜줬잖아요.”


“야! 그건 당연한 일이지. 사부님과의 의리를 저버린다면 그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냐?”


금만재가 큰소리를 치자 이번에는 유영이 이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만재 말이 맞아. 사문의 명운이 경각에 달했는데 도망을 친다면 그거야 말로 패륜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지.”


“옳은 소리다. 하여튼 의리를 저버리고 도망친 놈들은 아마도 오늘 일로 인해 평생을 후회하며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할 거야. 버러지 같은 놈들!”


지난 몇 년간 함께 했었기에 더더욱 큰 배신감을 느꼈는지 금만재는 씩씩거리며 욕지거리까지 뱉어냈다.


이에 철무진은 금만재와 유영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과장되게 말과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크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였기 때문에 철무진은 단호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까지 철가장에 남아준 사형들을 보면 아버지께서도 분명 고마워하실 거예요. 허나 이가장의 뒤에는 무당이 있으니 사형들도 이제 더는 우리 철가장의 일에는 나서지 말아주세요.”


“그게 무슨 뜻이냐? 이 금만재가 무당이 무서워서 너와 사문을 저버리기라도 할까봐 그러냐?”


금만재가 버럭 화를 내자 철무진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요! 다만 저는 사형과 금 대인께도 화가 미칠까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에요.”


“뭐야? 이 녀석이...”


철무진을 꾸짖으려던 금만재는 호북제일상단인 금화상단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무림의 태산북두인 무당의 이름에 비하면 크게 손색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제대로 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철가장과의 의리를 지키다가 자신 혼자만 화를 입으면 그뿐이지만, 아버지 금재력과 금화상단에까지 화가 미친다면 그건 정말로 천추의 한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큭... 그래. 네 말이 맞다. 무당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렇게까지 무거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나도 의리는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무진아!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라도 우리 집에서 머무는 게 어떻겠냐?”


“그게 좋겠다. 비열하고 잔악한 이관재의 습성 상, 이가장에서 혹시 모를 습격을 가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놈들의 마수에서 그나마 안전하려면 만재의 집에서 머무르는 게 최선일 것 같아.”


가만히 금만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영마저 걱정을 숨기지 못하고 철무진을 설득하려했다.


그러나 철무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형들의 말도 일리는 있어요. 허나 저는 이 철가장의 마지막 생존자에요. 그런 제가 어딜 가겠어요?”


“하지만...”


금만재가 다시금 자신을 설득하려하자 철무진은 급히 손을 들어 올려 녀석의 말을 끊었다.


“더는 권하지 마세요. 저는 철가장에 머물며 그간 등한시했던 무공수련에 매진할 생각이니까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철무진이 눈에 독기를 품은 채로 말하자 그 박력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린 금만재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나도 더는 권하지 않으마. 하지만 네 생사가 걱정되니 우리 가문의 호위 무사 몇을 철가장 정문에 배치하도록 할게. 비록 현성진인이 더는 철가장에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이관재가 섣불리 네게 암수를 쓰지 못할 테니까.”


“흠...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어허! 내 말 들어라.”


철무진이 천애고아가 됐다는 생각에 금만재는 자신이 보호자 노릇을 해야 죽은 철유량도 안심할 거라 생각하며 이것만은 양보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이에 철무진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형의 뜻에 따를게요.”


“잘 생각했다. 네가 이것마저 거절하면 이 사형은 매일 밤마다 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무진이가 만재의 말을 따른다니까 이제는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인다. 하지만 이걸로는 완전히 안심이 안 되는데... 나도 무진이 너와 철가장에서 함께 머물며 수련 상대라도 되어줄까?”


무당과 이가장의 암수가 두려울 만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금만재와 함께 의리를 지켜주었던 유영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하며 철무진을 바라보았다.


이에 유영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된 철무진은 더 이상 그의 성의를 무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고마워요. 유 사형! 그렇지 않아도 철가장에 혼자 머물 생각을 하니까 조금 외로울 거 같았는데 이제 든든해졌네요.”


“그러냐? 네가 그리 말해주니 나도 고맙다. 이렇게라도 사부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어서 말이지.”


유영이 밝은 표정으로 말하자 금만재도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유영! 그래도 너무 생색내지는 말라고. 나도 평소처럼 꾸준히 철가장에 나와서 함께 수련을 할 테니까.”


“큭! 생색은 무슨... 어쨌거나 우리 셋이서 사부님의 유지대로 철가장을 태을촌 최고의 문파로 다시 일으켜 세워 보자고.”


.

.

.


이가장...


모두가 잠이 든 야심한 시각이었으나 이가장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이관재의 서재는 불이 켜 진 채 사람들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신아! 아무래도 철가장의 마지막 혈육을 살려둔 게 마음에 걸리는구나.”


이관재가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삼촌... 사부님께서는 대무당의 장로이신 당신께서 이런 소규모 문파의 분쟁에 끼어든 것만으로도 크게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시는 터라, 더 이상 철가장에 손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신이 차분하게 말하자 이관재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며 할 수 없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다면 별 수 없겠군. 기왕이면 철유량과 그의 큰 아들을 정리하는 김에 그 되바라진 꼬맹이 놈도 해치웠으면 금상첨화였으련만.”


“뭐 어쩌겠습니까? 허나 너무 실망하진 마십시오. 사부님께서는 대략 한 달 정도만 이가장에서 머물고 떠나실 테니, 그 후에 놈을 처리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이신은 뱀 같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크흠! 알겠다. 하긴 이제 열다섯이라고 했었나? 그까짓 어린 놈 하나 때문에 현성진인의 진노를 살 수는 없는 일이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 어린놈은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으니까 삼촌은 그저 사부님께서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이가장의 평판이 좋아지도록 신경만 쓰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야 이를 말이더냐? 철가장 때문에 우리 이가장의 평판이 많이 실추됐다지만, 현성진인이 이곳에 머물고 있으며 그의 제자가 내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예전보다 더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하하.”


이관재는 곧 이가장이 태을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부와 명예를 얻을 거라 여기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진중해보였던 이신도 금세 표정을 풀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부님이 저를 언제쯤 본산제자로 들일지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 삼촌이 이가장의 세를 불려 더 많은 상납금을 바친다면 조만간 저도 무당의 본산제자가 되어 도명을 받을 수 있겠지요.”


이관재의 기부를 통해 운 좋게 현성진인의 속가제자가 되었던 만큼 이신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야망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오냐! 이 삼촌만 믿어라. 잘 키운 조카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더니, 네게 투자한 덕을 이제야 톡톡히 보는구나. 정말 든든하다.”


“흐흐. 그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제 사부이지만 현성진인은 재물에 대한 탐심이 끝이 없어서 얼마나 더 많은 상납금을 바쳐야 그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예상하기가 어렵거든요.”


“네 말이 맞다. 그간 10년이 넘도록 수많은 재물을 바쳤는데도 더 많은 재물을 바라다니! 정도무림의 태산북두라는 무당파의 장로답지 않게 참으로 게걸스럽기 짝이 없어. 에잉~ 더러운 놈!”


현성진인이나 자신이나 탐욕스럽긴 마찬가지였으나 이관재는 스스로에 대한 자아성찰은 못하는지 그저 앞으로 상납해야할 재물의 양만을 생각하며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에 이신은 급히 손을 뻗어 이관재의 입을 막았다.


“쉿!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사부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크흡! 읍읍!”


이관재가 당황하여 두 눈을 깜빡이자 이신은 천천히 그의 입에서 손을 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삼촌! 사부는 무당의 장로라는 신분답게 내공이 높아 귀가 밝으니 그가 여기 머무르는 동안은 입조심을 해야 합니다. 혹여나 뒷담화를 하는 소리가 사부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게 분명하니까요.”


“그... 그건 안 될 일이지! 앞으로는 조심하마.”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저도 이제 삼촌만 믿고 무당의 본산제자가 되어 좀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 이 삼촌만 믿어라. 내 어떻게든 네가 무당에서 한자리 차지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비열한 이관재이지만 그는 조카인 이신이 높게 비상한다면 자신 또한 크게 비상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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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불구대천(不俱戴天)(3) 23.05.31 1,194 2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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