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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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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96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5.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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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 금재력(金財力)

DUMMY

철유량이 텅 비어있는 이관재의 옆구리를 향해 팔괘장을 내뻗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철무진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버지는 왜 저기서 공격을 쉽사리 회피하거나 막아낼 수 있는 옆구리로 팔괘장을 펼친 거지? 나라면 옆구리보다 회피하기 힘든 목을 향해 팔괘장을 내뻗든지 아니면 빠르게 이 보를 더 움직여 저 자의 뒤를 점해 제압하든지 했을 텐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철가장에서 대련하던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좀 더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왔던 철무진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결을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지금만 하여도 철유량이 내뻗은 팔괘장이 곧이라도 적중될 것 같았지만 이를 급히 인지한 이관재가 대경하는 표정으로 뇌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을 펼쳐 바닥을 구르며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하... 또 왜 머뭇거리시는 거야? 저자가 뇌려타곤의 수법으로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지만 삼운보를 펼쳐 큼직하게 한 걸음만 이동하면 곧장 무릎으로 저자의 턱을 가격하고도 남을 텐데.’


지금 눈앞에서 크게 유리한 상황임에도 그 기회를 놓치고 있는 아버지 철유량을 바라보며 철무진은 답답한 마음에 훈수라도 둬야 하나 고민했다.


허나 철무진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평소 스스로의 동체 시력과 반응 속도가 남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철무진은 그런 재능을 물려준 아버지인 철유량에게도 비슷한 재능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만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철유량은 현재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하여 이관재를 상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그가 철무진의 생각처럼 당장 이관재에게 삼운보를 펼쳐 접근하려 했다면 급박한 상황에서 기혈이 꼬여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습을 당할 가능성이 더 컸기에 신중함을 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철무진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철유량은 방금 전의 허용 범위를 넘어선 순간 가속 운신으로 인하여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흡사 게으른 당나귀가 땅을 구르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구를 수밖에 없었던 이관재는 겨우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시발! 좆 될 뻔 했군.”


팔괘장에 얻어맞아 못 보일 꼴을 보일 뻔했기 때문인지 이관재는 평소의 경박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철유량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방금 전 철유량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인지 처음처럼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대신 상황이 이리되자 이관재는 자신이 끌고 온 제자들에게 눈치를 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철 장주 덕분에 개안을 하는군. 허나 우리 두 사람의 대결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가 않구려. 어떻소? 이제부터라도 제자들을 동원하여 정면 승부를 보는 것이 말이오.”


“큭... 그게 무슨 말이지? 아직 손을 나눈 것이 채 몇 수 되지도 않았건만!”


갑작스럽게 이관재가 말을 건네자 겨우 숨을 고르고 있던 철유량이 약간 창백해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철유량과의 일대일 대결을 피하고 싶었던 이관재는 비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 뭘 그리 따지시오? 누가 보아도 나와 그대의 대결은 무승부나 마찬가지이거늘... 그냥 약육강식이라는 무림의 생리대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집시다.”


와아아아~

챠챠챵!


이관재가 말을 끝마치고 수신호를 보내자 그를 따라온 이가장의 제자들은 즉시 함성을 내지르며 검을 빼내들었다.


이에 철가장의 제자들은 대경하여 움찔거리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무던하게 수련을 해왔기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도래해온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 잠시 기세가 밀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대로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 철무신이 곧장 사형제들 앞으로 나섰다.


“다들 아버지 아니... 사부님께서 저자를 몰아붙이는 걸 보았겠지? 비록 우리가 수에서는 밀린다지만 모두들 평소 수련해왔던 대로만 싸워줘!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는 이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인 철유량이 이관재보다 한 수 앞서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철무신은 그것을 들먹이며 철가장 제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고 하였다.


그리하자 자신들의 대사형이나 마찬가지인 철무신의 모습에 든든함을 느낀 철가장의 제자들은 젊은 혈기를 숨기지 않고 급히 기수식을 취했다.


“무신 사형의 말이 맞아. 겁먹지 말자.”

“그래. 오늘 저들을 물리치고 태을촌의 전설이 되어보는 거야!”

“그거 좋지. 사부님! 저희도 돕겠습니다.”


제자들은 의리를 지키려 애써 큰소리까지 쳐가며 스승인 철유량의 뒤를 받쳐주려 하였다.


십 대 이십...


비록 수적 열세가 심하였지만 물러서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에 철유량은 기꺼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육강식이라는 무림의 생리라... 좋소! 누가 강하고 약한지는 겨뤄봐야 아는 법. 나와 우리 철가장은 그대와 같은 협잡꾼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


이미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기에 철유량은 결연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이관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가 극으로 치 닫자 양측의 제자들은 곧이라도 서로를 향해 뛰어들어 싸움을 벌이려 했다.


이에 철무진은 자신 역시 이제는 아버지와 형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한 손 거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떻게 움직여야 최대한 효율적으로 상대방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였다.


“멈추시오!”


적막한 분위기를 깨는 큰 목소리와 함께 제법 준수한 얼굴에 풍채가 좋은 중년인 한 명이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을 거느리고 장내에 나타났다.


이에 오늘 철가장을 접수하고 좀 더 세력을 넓히리라 마음먹었던 이관재는 큰 방해를 받았다고 여기며 잔뜩 찌푸린 얼굴로 중년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으음... 그대들은 누구요?”


장내에 나타난 인물들의 행색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부유해 보였기 때문에 이관재는 침음성을 터트리며 신중하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무인들의 앞에 서있던 중년인은 금만재를 향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더니 곧 노한 표정으로 이관재를 바라보았다.


“내가 누구냐고? 이걸 보고도 내가 누구냐고 묻다니 이가장의 장주께서는 보기보다 우둔하시구려.”


“뭐라? 감히...”


상대의 도발에 크게 역정을 내려던 이관재는 곧 중년인의 가슴팍에 금실로 수가 놓인 금화(金花)라는 글자를 발견하고는 대경실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감히 뭐요?”


“큭! 아니오. 설마 당신이 이 태을촌의 최고 유지인 금재력... 금 대인이란 말이오?”


평소 상단 일이 바빠 금재력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의 선행은 마을 전체에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에 이관재는 오늘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 판단하며 급히 성질을 죽이고 물었다.


“후후. 그렇소. 내가 바로 금재력이라오. 한데 들어보니 그대의 제자들이 내 아들을 돼지새끼라 모욕하고 음식과 돈을 갈취하려 했다던데... 그러면 나는 돼지새끼의 아비이니 돼지가 되는 건가?”


뒤에는 무력을 갖춘 무인들이 자리했고, 본인에게는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는 재력이 있었기 때문인지 금재력은 스스로를 모욕하는 말도 장난스럽게 말하며 이관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관재는 대경하여 손을 저었다.


“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내 제자들이 금 대인의 자제를 모욕하고 금전까지 갈취하려 했다니! 난 금시초문이오.”


이관재가 발뺌하려 했지만 금재력은 느긋한 표정으로 금만재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 아들이 나에게 거짓을 고했단 말이오? 그런 것이냐? 만재야!”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평화주의자인건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찌 이가장의 제자들에게 먼저 시비를 걸 수 있겠어요?”


든든한 아비가 찾아왔기 때문인지 지금껏 허옇게 얼굴이 질려있던 금만재는 빠르게 안색을 회복하고 평소의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다는군. 그러면 이거 더 이상은 대화가 불가할 거 같은데... 가주께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무림의 약육강식 생리가 그러하니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데려온 무인들까지 상대하여 한판 시원하게 붙어볼 생각이 여전할지 모르겠소.”


금재력이 능청스럽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자 이관재는 잠시간 우물쭈물 거리기만 할 뿐 어떠한 답변도 하지 못하였다.


“허어... 방금까지 자신감이 넘치던 분이 어이하여 말이 없어진 것이오?”


쥐새끼처럼 눈알을 굴리며 자신의 뒤에 서있는 호위무사들을 훑어보는 이관재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금재력은 비꼬는 어투로 그를 도발했다.


하지만 이관재는 상황판단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 덕택에 짧은 시간 내에 지금의 위치까지 이가장을 키워올 수 있었던 이관재는 빠르게 그 수완을 발휘하여 애써 안색을 회복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면 저 돼지 새... 아니 저 아이가 금 대인의 아들이란 말씀이구려.”


“그렇다면?”


“크흠! 정말이오?”


“하!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농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나 보오?”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관재는 위풍당당하게 철가장에 쳐들어왔던 모습과 달리 급하게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외다. 금 대인의 말씀을 믿소. 소문대로 금 대인의 훤앙한 모습을 닮은 걸 보면 저 아이도 커서 큰 덕을 쌓을 것이 분명할 듯하오. 그럼 오늘은 이 이 모가 금 대인의 얼굴을 봐서 그냥 물러서고 싶은데... 이대로 보내주시겠소?”


불리한 상황에서 이관재가 자리를 빠져나가려했지만 금재력은 느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리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으리다. 허나 이곳은 철가장이니 이 장주께서는 나보다 저기 계신 철 장주께 먼저 그러한 물음을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지 않으시오?”


“그... 그건 그렇지요.”


금재력의 말이 옳았기 때문에 이관재는 잠시 표정을 구겼지만 금세 수긍하는 표정으로 철유량을 바라보았다.


“철 장주! 보아하니 그대뿐 아니라 나도 제자의 말만 듣고 오해가 깊어진 듯한데, 오늘은 이만하는 것이 어떻겠소? 어찌되었든 무작정 철가장까지 찾아온 내 잘못도 있으니 이 이 모가 먼저 사과를 하리다.”


체면 상하는 일이었지만 처세에 능한 이관재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말아 쥐었다.


그러자 철유량은 잠시 울컥하는 마음에 이관재를 향해 무언가 훈계를 하려다가 겨우 화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더 이상의 소란으로 인해 아끼는 제자들이 다치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소! 그대의 행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먼저 사과를 하니 중재를 해주신 금 대인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리하리다.”


철유량은 곧 떨떠름한 얼굴로 마주 포권을 말아 쥐었다.


“이익... 고맙소! 얘들아. 가자!”


누가 보아도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이 분명했기에 이관재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잠시 이를 갈았으나 빠르게 안색을 회복하고 제자들과 함께 장내에서 떠나갔다.


곧 장내에 평화가 찾아오자 철유량은 빠르게 금재력에게로 다가갔다.


“금 대인! 오늘 큰 신세를 졌군요. 감사합니다.”


가문에 찾아온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기 때문에 철유량은 진심을 다한 표정으로 포권을 말아 쥐며 금재력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이에 금재력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평소 아들이 철가장에 큰 신세를 지고 있음에도 이제야 철 장주를 찾아뵙게 되었군요. 겁 많던 우리 만재를 훌륭하게 성장시켜주어 오히려 제가 고맙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아.. 과찬이십니다! 저야 다른 제자와 차별 없이 가르쳤을 뿐인데 만재가 뛰어나서 이가장의 제자들을 물리칠 정도로 성장한 것이지요.”


그렇게 포권을 말아 쥐고 서로 겸양을 떨던 철유량과 금재력이 자신을 바라보자 금만재는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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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불구대천(不俱戴天)(1) 23.05.29 1,213 17 11쪽
13 13. 악연(惡緣)(2) 23.05.23 1,322 21 12쪽
12 12. 악연(惡緣)(1) 23.05.22 1,347 19 13쪽
11 11. 주련야독(晝鍊夜讀)(4) 23.05.21 1,385 17 11쪽
10 10. 주련야독(晝鍊夜讀)(3) +2 23.05.20 1,430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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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강호의 생리를 느끼다. 23.05.15 1,673 24 12쪽
» 6. 금재력(金財力) 23.05.14 1,714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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