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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4,856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6.0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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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8. 재능개화(才能開化)(2)

DUMMY

수년간 함께 했던 철가장의 제자들도 등을 돌려서 떠난 마당에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인 방숙이 힘든 노구를 이끌고 찾아오자 철무진은 감동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쩐 일이긴 이 녀석아! 너 같은 어린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다는데 남 몰라라 할 만큼 이 방숙이 매몰차지는 않다.”


이가장의 뒤를 봐주는 무당이 두려울 만도 했지만 방숙은 평소의 모습대로 담담하게 말하며 철무진에게 다가섰다.


“흠... 그래도 다친 곳 없이 성한 걸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방숙은 이제 열다섯 나이인 철무진이 아버지와 형을 잃고 얼마나 큰 상심에 빠졌을지 안타까워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철무진은 방숙이 자신을 걱정하는 진심어린 마음을 느끼고는 천천히 포권을 말아 쥐며 고개를 숙였다.


“어려운 걸음이셨을 텐데...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며칠 새에 큰일을 겪더니 제법 성숙해졌어. 암! 그래야지.”


철무진의 진중한 모습에 방숙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숙의 이런 기꺼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철무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방 노야! 한데 어쩐 일로 여길 찾아오신 겁니까?”


“왜? 노부가 못 올 곳이라도 온 것이더냐?”


“그건 아닙니다만... 혹여나 괜히 저와 만나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가장이나 그 뒤를 봐주고 있는 무당에서 노야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걱정되어서 그럽니다.”


철무진이 신중하게 말했지만 방숙은 코웃음만 쳤다.


“흥!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무진아... 노부는 겨우 그자들의 해코지가 무서워서 너를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소인배는 아니다. 이미 살 만큼 살았는데 내 무엇이 두려워 너를 찾지 못할까?”


평소 늙고 볼품없어 보이던 노인 방숙이 광명정대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철무진은 순간 그에게서 알 수 없는 박력을 느끼며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노야의 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해서 사죄드립니다. 또한 철가장을 방문해주신데 다신 한번 감사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크흠! 오냐. 그새 좀 더 어른스러워졌어.”


철무진이 이제 미안해하기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하자 방숙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어린 네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당했음에도 이토록 침착한 걸 보니 참으로 대견스럽다.”


“과찬입니다.”


“아니다. 결코 과찬이 아니야. 그러나 세상은 너 같은 어린 아이가 홀로 헤쳐 나가기에 만만치가 않은 곳이지. 혹여나 노부가 도와줄 것이 있느냐?”


방숙은 정말 큰마음을 먹은 듯 철무진이 원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무엇이든 들어줄 요량으로 물었다.


이에 철무진 역시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방숙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아채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그리 고심을 하느냐?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내 즉시 북경에서 크게 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친우에게 보내줄 수도 있음이야.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고 학문에 열중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방숙은 철무진이 어린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혹여나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한다고 날뛸까봐 노심초사하는 표정으로 넌지시 좋은 제안을 건넸다.


괜히 복수 때문에 철무진이 이가장이나 무당의 무인들에게 목숨을 잃기라도 한다면 그것만큼 천추의 한을 남길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숙의 마음을 알면서도 철무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노야.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가의 자식으로서 제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해야 앞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라? 이 녀석아! 상대가 이가장뿐이었다면 노부도 이곳까지 찾아와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만에 하나 네가 이가장에 복수를 성공하더라도 그 후에는 전날처럼 무당이 다시 찾아올 것은 분명한 일인데 두렵지도 않은 것이더냐?”


철무진이 설마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 방숙은 평소의 침착함을 잃고 버럭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철무진은 요지부동이었다.


“물론 두렵습니다. 말씀처럼 이가장뿐 아니라 그 뒤의 무당까지 생각하니 당장이라도 노야의 제안을 받아들여 북경으로 떠나고 싶기도 합니다. 허나 제 마음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아버지와 형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 이상 도망친다면 저는 앞으로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철무진이 울분을 참아내며 원한어린 소리를 뱉어내자, 방숙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경험상 이제 더 이상 만류해보아야 소용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크흐...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노부도 더는 너를 설득하지 못하겠구나. 대신 조심해야한다. 목숨은 하나뿐이라, 실력을 갈고 닦되 정말 제대로 된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복수할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여기까지 귀한 걸음을 해주셨는데 정말 죄송할 뿐입니다.”


“아니다. 남자가 뜻을 세웠으면 마음먹은 대로 살아야지. 네 심지가 이리 굳건한 것을 보면 평소 네 아버지인 철유량 대협이 너를 잘 가르쳤기 때문일 거라 생각된다. 후... 더 말해서 무엇 하리? 받아라.”


한숨을 내쉰 방숙은 노란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철무진에게 건넸다.


“이게 무엇입니까?”


“별거 아니다. 그저 노부의 마지막 노파심에서 의술서와 진법서 몇 권을 챙겨왔느니라. 네 앞날이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익혀보라고 말이다.”


방숙이 주름진 얼굴에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자, 철무진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보자기를 받아들었다.


“방 노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냐! 그럼 노부는 이만 가보마. 혹여나 의술서와 진법서가 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마을로 내려와 책을 빌려가거라.”


방숙이 등을 돌려 자리에서 떠나가자 철무진은 그의 왜소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포권을 말아 쥐고 허리를 숙였다.


잠시 후...


방숙이 정문 밖으로 멀리 사라져버리자 금만재와 유영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으로 철무진에게 다가섰다.


“무진아! 왜 방 노인의 제안을 거절했느냐? 내 일부러 훔쳐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방 노인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넌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을 텐데.”


“만재 말이 맞다. 언제 이가장 놈들이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방 노인의 제안을 거절하다니 너무 섣불렀어.”


두 녀석이 자신을 걱정하며 바라보았지만 철무진은 잔잔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 분 사형들이 절 얼마나 걱정하는 줄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형들도 우리 철가장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 남아 있는데 제가 어찌 저 혼자 살자고 도망치듯 떠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런 기회는 흔치가 않은데...”


“아니에요! 이런 기회가 아닌 그 어떤 기연이 찾아오더라도 저는 떠나지 않아요. 그렇지 않는다면 저는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비겁하게 도망쳤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부끄러워 차마 하늘을 올려 보지 못하고 평생 후회하며 살지도 모르니까요.”


철무진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자 금만재와 유영은 안타까워하는 와중에도 그 진심을 느끼고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도 맞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후회를 남겨서야 쓰겠느냐?”


“좋아! 그렇다면 우리 어디 한번 끝까지 함께 가보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두 녀석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자 철무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사형들...”


.

.

.


다음날...


금만재의 조언대로 철무진은 철가장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뒤뜰로 향했다.


오래되고 낡은 철가장이었지만 역대 장주들이 홀로 무공을 연성해왔던 뒤뜰만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 높은 벽이 굳건하게 둘러쳐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철무진은 잠시지만 그 어떤 외부의 시선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난날 아버지와 형이 이곳에서 함께 수련하던 모습을 떠올리던 철무진은 그 그리움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형...”


반경 5장 정도의 뒤뜰 곳곳에 아버지와 형의 흔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아련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남겨놓은 수련의 흔적들을 손으로 매만졌다.


삼운보를 익히기 위해서 철유량이 남겨놓은 족적과 팔괘장을 수련하기 위해서 철무신이 항시 이용하던 목각인형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이 흔적들을 살펴보던 철무진은 빠르게 감상적이던 마음을 가다듬으며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이신... 이관재... 이 새끼들 모조리 죽여주마!”


급속하게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자 철무진은 이를 해소하기라도 하듯 빠르게 발을 놀려 철유량이 남겨놓은 족적을 밟으며 삼운보를 밟았다.


스스스슥!


그간 홀로 수련했음에도 철무진은 살아생전의 철유량보다 더 완벽하게 삼운보를 펼치며 뒤뜰 한구석에 세워져있는 목각인형 앞으로 다가섰다.


제법 낡은 목각인형은 지난날 철무신의 전륜팔괘장 수련으로 인한 흠집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낭권과 팔괘장에 얻어맞아 군데군데 파여 있는 목각인형을 바라보며 철무진은 호흡을 빠르게 가다듬으며 가볍게 우장을 내뻗었다.


쿠릉~

펑!


철무진이 전날 창안한 폭혈장을 펼치자 놀랍게도 그 단단하던 목각인형은 가슴부분이 움푹 함몰되는 것과 동시에 그 반대편 등 부분이 강한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터져나가고 말았다.


투두두둑~


터져 나간 나무파편들이 이리저리 비산하며 단단한 벽에까지 날아가 박혀들자 철무진은 폭혈장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으음... 이 폭혈장이라면 반드시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


무당면장을 펼치던 이신의 무위가 여전히 부담스러웠지만 철무진은 당장이라도 놈을 일장에 쳐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가지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복수를 성공하더라도 지난날의 행태를 보면 무당파가 나를 가만두지 않겠지.”


이신이 무당파 장로인 현성진인의 제자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철무진인 빠르게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신과 이관재를 죽여도 내가 다치거나 죽는다면 아버지와 형은 그건 진정한 복수라고 볼 수 없다며 나를 꾸짖을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빠져있던 철무진은 방숙의 말대로 먼 곳에서 힘을 키워 복수를 해야했나하는 생각에 잠시 후회하기도 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자. 놈들이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쓴다면 평생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할 거야. 차라리 죽을 때 죽더라도 당당하게 이신과 이관재를 쳐 죽이고, 뒷일은 그때 생각하자.”


혈기왕성한 나이답게 철무신은 복잡해지려던 머릿속을 빠르게 정리하고 다시금 폭혈장을 완숙하게 익히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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