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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44,851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6.1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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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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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27.허공(虛空)

DUMMY

잠시간 몽롱함을 느끼던 철무진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온화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철유량의 모습이 철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아... 아버지!”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철유량의 손을 붙잡은 철무진은 지난 불행했던 일들이 모두 악몽이라고 치부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철무진이 그렇게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철유량은 이와 반대로 온화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무진아! 어서 잠에서 깨어나라. 눈을 뜨란 말이다!”


철유량이 급기야 피눈물까지 흘리며 크게 소리를 지르자 철무진은 화들짝 놀라 몽롱해진 의식이 점점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학! 하악... 학... 학...”


저도 모르게 침상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운 철무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철무진은 심한 갈증을 느끼며 침상에서 내려섰다.


“젠장! 이게 무슨 징조지?”


침상 옆에 비치된 찻잔에 물을 따른 후, 급하게 입을 적신 철무진은 꿈에서 아버지 철유량이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깨운 연유가 무엇인지 께름칙하게 여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어둡던 창밖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뭐야? 반나절만 자고 초저녁에 길을 떠나려고 했는데... 하루를 꼬박 자고 말았잖아!”


지난 며칠간 많은 일을 겪으며 큰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숙면에 빠져버렸던 철무진은 크게 자책하며 당장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고 좀 더 시간을 보낸다면 크게 낭패를 보게 될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으... 이렇게 마음 놓고 푹 자버리다니 너무 안일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꿈에 나오신 건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해가 중천에 떴을 때까지 잤을지도 몰랐기에 철무진은 아버지가 자신을 보살피기 위해서 꿈에 나온 거라 여기며, 그대로 객실에서 나와 객잔 1층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행스럽게도 객잔 안에는 일찍 일을 나온 점소이 외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마침 철무진을 알아본 어제의 그 어린 점소이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공자! 밤새 편히 쉬셨나요?”


“그래. 덕분에 피로가 다 풀린 거 같아. 내가 타고 온 말은 잘 돌보았겠지?”


“헤헤. 물론입죠! 식사를 준비해드릴까요?”


“아니. 지금 떠날 생각이니까 대신 간단하게 요기할 걸 준비해줄 수 있을까?”


“앗! 이렇게 이른 시간에 퇴실하시려고요?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철무진이 방을 일찍 뺀다는 소리에 점소이는 반색하며 주방으로 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주먹밥과 삶은 닭다리를 얇은 천에 포장해주자, 철무진은 이를 만족스럽게 받아든 후 객잔 밖으로 나섰다.


푸르르르~


지난 며칠간 함께했다고 철무진을 알아본 말이 투레질을 하며 반가운 눈빛을 보냈다.


이에 철무진은 녀석의 머리를 잠시간 쓰다듬어준 후, 고삐를 쥐고 마을 밖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또각 또각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어제 그리도 사람이 붐비던 대로에는 몇몇 상인들만이 장사를 준비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모습에 철무진은 내심 안도하며 하루 빨리 개봉으로 이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철무진이 마을 초입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아미타불! 시주... 잠시 멈추시게.”


중년으로 보이는 승려 하나가 불호를 외며 철무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철무진은 무공을 잘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소림의 명성을 떠올리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허나 이곳에서 사로잡혀 인생이 끝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스님 왜 그러십니까? 제게 무슨 볼 일이라도...”


태연한 철무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년 승려는 잠시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철무진의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승려는 곧 차분해진 표정을 지었다.


“시주! 빈승은 소림에 적을 두고 있는 허공(虛空)이라고 한다네.”


“아... 허공 대사님이셨군요. 아미타불!”


사실 허공 대사는 다음 대 소림 방장으로 내정되어 있는 명성이 높은 무림의 명숙이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철무진은 그 덕분에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며 그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이에 더더욱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허공 대사는 곧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보면 시주는 평범하게 자란 청년 같군. 내가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인가? 미안하네. 그냥 가던 길을 가게나.”


무당에서 이르길 지금 추적 중인 소악귀는 마공을 익혔다고 했는데, 철무진이 광명정대한 자신의 기세를 받고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담담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허공 대사는 빠르게 합장하여 사과한 후 길 옆으로 비켜섰다.


만약 눈앞의 청년이 진실로 마공을 익혔다면 정심한 불가의 무공을 익힌 자신 앞에서 어떻게든 위축된 모습을 보여야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철무진은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허공 대사의 앞을 지나쳐 걸음을 걸었다.


허나 운이 좋은 것은 거기까지였다.


눈앞으로 지나가던 철무진을 유심히 살펴보던 허공 대사가 철무진이 입고 있는 의복 곳곳이 말라붙은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금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시주! 그대가 정녕 무당이 쫓고 있는 그 소악귀란 말인가?”


반신반의했지만 이제 확신하게 된 허공 대사는 적의를 보이며 철무진을 바라보았다.


이에 철무진은 다시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지만 스스로 당당하지 않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악귀라니... 억울합니다. 대사!”


허공 대사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철무진은 그를 기습한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여기며, 소문처럼 소림의 광명정대함을 믿기로 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 진심이 통해서 일까?


곧장 손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허공 대사는 철무진에게서 어떠한 마기도 느끼지 못하자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렇지 않아도 시주 같은 어린 아이를 상대로 손을 쓰기가 꺼려졌었는데 어디 한 번 할 말이 있다면 해보게.”


철무진이 달아나더라도 어차피 부처님 손바닥 위라고 여겼기 때문인지 허공 대사는 전보다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자 철무진은 한 가닥 살아날 희망을 품게 되었다.


“대사! 저는 그저 제 가문을 풍비박산 낸 원수에게 복수를 했을 뿐입니다. 무림에서 부모형제의 원한을 갚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고 들었는데... 무당은 이가장이 자신들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저를 소악귀라 칭하며 척살하려고 하니, 그 처사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사께서 공명정대하시다면 제가 살기 위해서 여기까지 쫓겨 왔다는 걸 분명 알 수 있을 테니 저를 그냥 이대로 보내주십시오.”


그간 자신의 신세를 하소연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구구절절하게 자신의 사연을 말했다.


그러자 허공 대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불호를 외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미타불!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거늘... 시주의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군. 또한 무림의 태산북두인 무당이 이런 세속적인 일에 끼어들어 어린 시주를 핍박한다는 게 참로 부끄럽기도 하고.”


무림에 공명정대하다고 정평이 나있던 허공 대사였기에 그는 잠시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철무진은 자신을 두고 고심하는 허공 대사를 바라보며 이대로 경공을 펼쳐 그에게서 도망칠까 갈등했다.


하지만 허공 대사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현성 진인을 한참이나 초월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자 철무진은 급히 마음을 고쳐먹었다.


도망쳐봐야 그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지도 모르는 허공 대사의 마음을 배신하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읽어서일까?


고심을 끝냈는지 허공 대사는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철무진을 바라보았다.


“시주! 소림은 이번 일에서 빠지겠네.”


“지... 진심이십니까?”


철무진은 허공 대사가 이런 중차대한 일을 홀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도망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크게 밝아진 표정을 보였다.


“물론이네. 하지만 이대로 시주를 보내줄 수는 없음이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른 게 아니라네. 시주가 여기까지 도망쳐 오며 사용했던 무공이 마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게. 그리만 한다면 내 방금했던 말을 반드시 지킬 터이니.”


말을 마친 허공 대사는 그대로 합장을 하며 철무진을 향해서 정심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으읏!”


소림에서 수십 년을 적공했던 허공 대사의 무형지기가 전신을 옭아매자, 철무진은 엄청난 압력이 전신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으며 신음성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대로 쓰러진다면 허공 대사는 분명 자신을 그 소문이 무성한 소림의 금마옥(禁魔獄)에 잡아넣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철무진은 애써 현천신공을 끌어올려 이에 대항했다.


그러자 금세 전신에서 느껴지던 압력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듯했다.


한결 숨쉬기가 편해진 철무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 말씀 반드시 지키십시오!”


철무진은 기세를 피워 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이에 허공 대사는 철무진의 전신에서 발해지는 정심한 기운이 마공이라기보다 오히려 도가의 내공심법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허공 대사의 표정이 좀 더 풀어지자 철무진은 곧장 삼운보를 밟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순식간에 허공 대사의 품으로 파고든 철무진은 그 즉시 양손을 내뻗으며 폭혈장을 펼쳤다.


쿠르릉~


전력을 다했기 때문인지 폭혈장이 용트림을 하듯 큰 소리를 내며 곧이라도 허공 대사의 양쪽 가슴에 적중될 것 같았다.


허나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합장하고 있던 허공 대사는 냉철한 얼굴로 폭혈장이 펼쳐지는 그 모든 과정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허공 대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히려 당황한 것은 철무진이었다.


폭혈장의 위력을 알고 있는 만큼, 이대로 자신이 공격에 성공하게 된다면 허공 대사가 큰 부상을 입을 게 분명하다고 여긴 철무진은 할 수 없이 급히 내력을 거두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크흑!”


한껏 끌어올린 내력을 급속도로 흩어버리는 게 큰 무리가 되었는지, 철무진은 속이 진탕되는 걸 느끼며 신음성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던 허공 대사가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왜 공격을 멈춘 겐가?”


허공 대사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으나 철무진은 엉킨 기혈을 진정시키느라 곧장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천신공의 공능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속을 진정시킨 철무진은 화가 난 표정으로 허공 대사를 노려보았다.


“아니... 스님! 제가 익힌 무공이 마공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라더니 왜 폭혈장을 몸으로 받아내려고 그럽니까? 자칫했으면 죽을 뻔했잖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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