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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시 님의 서재입니다.

혈해마록(血海魔錄)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차연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20:18
최근연재일 :
2023.06.23 23:37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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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02
추천수 :
639
글자수 :
170,638

작성
23.06.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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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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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3. 구사일생(3)

DUMMY

장내에 나타난 흑의인들은 곧장 검을 빼들고 철무진을 포위하고 있던 정도문과 태극문의 무인들을 향해서 살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스걱! 스걱!


“끄아아악~”

“아니 우릴 왜...”

“이게 무슨 짓이오? 남궁 공자!”


남궁천이 데려온 흑의인들이 설마 자신들을 공격할 줄은 몰랐는지 정도문과 태극문의 무인들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살해당하고 말았다.


털썩 털썩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그 두 배나 되는 정도문과 태극문의 무인들을 도륙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되지 못했다.


그러자 철무진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에도 앞서 하가현을 상대할 때 나타났던 흑의인들을 떠올리며 그들 역시 남궁천이 데려온 무인이라고 확신했다.


“으음... 명망 높은 남궁세가에서 나오신 분 같은데 무슨 연유로 나를 도와준 거죠?”


정도문과 태극문의 무인들을 모두 쓰러트렸지만 남궁천을 비롯한 흑의인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자 철무진은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이에 남궁천은 오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린 녀석이 참으로 경계심이 많군.”


“그럴 수밖에요. 제 나이가 이제 겨우 열다섯에 불과한데 그간 겪은 무림은 저에게 너무 가혹하기만 해서요.”


한시가 아까운 상황이었지만 남궁천이 마음을 바꿔먹고 당장이라도 흑의인들을 시켜 공격을 감행한다면 이를 막아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철무진은 최대한 침착하게 답했다.


“그런가? 하긴 어린 나이에 험한 꼴을 많이 본 것 같더군. 손에 피도 많이 뭍인 것 같고. 쯔쯧!”


남궁천은 동정심이라도 생겼는지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신분을 숨긴 흑의인들을 사주하여 정도문과 태극문의 무인들을 몰살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한 철무진은 남궁천의 심계가 보통이 아니라고 여겼다.


분명 자신에게 이용할 건덕지가 있으니 이런 도움을 준 것이지, 거저 도움을 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자 철무진은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값싼 동정은 받지 않겠습니다. 허나 저를 도와주신 건 분명하니 감사인사는 드려야겠죠.”


철무진이 가볍게 고개 숙이며 포권을 쥐어 보이자 남궁천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뭐? 하하하! 어린 녀석이 정말 담대하군.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물론입니다. 저를 살려주신 건 분명 어떤 이유가 있어서겠죠. 그게 아니라면 같은 정도무림의 무인들을 이토록 처참하게 살해하지는 않았을 테니.”


“오호! 싸움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까지 깊은 녀석이었나? 하... 참으로 아까운 인재야.”


남궁천이 자신을 칭찬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철무진은 예상한 대로 그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도움을 줬다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원하는 게 뭐죠?”


철무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남궁천은 마음에 든다는 듯 근엄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돌려 말하지 않겠다. 혹시 너... 북방 군문에 투신할 생각이 있느냐?”


“북방 군문요?”


“그렇다. 허락한다면 내 당장 이곳에서 너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주지.”


의아해하는 철무진을 바라보며 남궁천은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건넸다.


이에 철무진은 그가 무슨 꿍꿍이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잠시 고심을 해보았지만 아무런 연유도 알 수 없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철무진은 남궁천의 제안을 결코 거부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상태에서는 설령 남궁천이 내미는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일지라도 일단은 붙잡고 현재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계산이 서자 철무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어 준다는 건, 무당조차 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해준다는 뜻입니까?”


“물론이다. 너 같은 어린 녀석 하나를 아무도 모르게 이곳에서 빼내는 건 내게 정말로 쉬운 일이니까.”


남궁천이 확답하자 철무진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저를 도와주는 겁니까?”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건가?”


“음... 그건 아니지만 궁금증은 반드시 해소하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죠.”


“역시 소문대로 당찬 놈이었군.”


“하하. 칭찬으로 듣죠. 그럼 경청하겠습니다.”


철무진이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남궁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훗! 좋아. 말 못해줄 것도 없지. 사실 나는 무당이 싫어. 그것도 매우 많이.”


“네? 겨우 그런 이유로 나를 돕는다고요?”


말문이 막힌 철무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지만 남궁천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겨우 그런 이유라니! 무림에는 이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도 사람들이 죽어나가거늘... 아직 어려서 그런지 이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그럴 지도요. 저를 돕기 위해서 같은 정파의 무인들을 이리 학살했다는 게 밝혀지면 아무리 남궁세가라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위험 부담을 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철무진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하자 남궁천은 조금 흥분한 듯 붉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야. 그보다는 무당이 너 같은 어린 촌놈 하나를 놓쳤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그럼 설마... 무당을 망신주기 위해서 절 돕는다는 말입니까?”


철무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남궁천은 그제야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지! 이제 내가 너를 도와주는 이유를 이해하겠나?”


“음... 조금은요. 구파와 팔대세가는 경쟁관계에 있어서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더니 정말이었나 보군요.”


“그걸 몰랐나? 제법 악명을 떨치기에 강호 사정에도 해박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그럴 수밖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무림에 그리 관심이 없던 중소문파의 차남이었을 뿐이니까요.”


“흠! 그런가? 하지만 네 사정 따위는 관심 없다. 다만 앞으로 말을 할 땐 신경을 써서 해라. 구파와 팔대세가가 아니라, 팔대세가와 구파니라!”


남궁천은 구파에 열등감이라도 가졌는지 버럭 성을 내며 철무진을 노려보았다. 이에 철무진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를 환기하려했다.


“큭! 알겠어요. 한데 군문에 투신하게 되면 그곳에서 평생 썩어야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10년! 10년만 버텨라. 그러면 제대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놓을 테니.”


“정말인가요?”


“날 못 믿나?”


남궁천이 큰소리를 치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았지만 철무진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놈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일을 벌일 것 같았기에 철무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한번 믿어보죠.”


“하하. 잘 생각했다. 이곳에서 너를 증발하듯 사라지게 만드는 만큼, 향후 그 누구도 너를 찾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그래야 무당의 체면이 확 구겨질 테니.”


기분이 좋아진 남궁천은 흑의인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더니 곧장 철무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쉬익~

쉬이익~


잠시 후...


짧은 시간 동안 제법 많은 거리를 이동했다.


그러는 동안 철무진은 남궁천의 옆구리에 안긴 채로 그가 펼치는 경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호쾌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빠른 움직임을 보면 남궁천이 익힌 경공은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천풍신법(天風身法)이 확실했다.


강호의 소식에 문외한인 자신도 들어보았을 만큼 유명한 명문대파의 절기를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그 운용원리를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자 철무진은 큰 만족감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느낀 거지만 상대방이 펼치는 무공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원리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재능은 정말 사기적인 거 같아.’


비록 하가현과 대결할 때에는 매순간이 급박하여 이토록 느긋하게 화산파 무공의 운용원리를 살펴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컸지만, 그간 가문의 경공에 아쉬움을 느끼던 철무진은 가뭄에 단비라도 맞은 듯 천풍신법의 묘리를 삼운보에 섞어 새로운 경신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좀 더 많은 욕심이 생긴 철무진은 앞으로 명문대파의 무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그들의 무공을 견식해보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그 묘리를 습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처럼 타인의 힘에 기대어 위기를 모면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빠르게 나 스스로가 강해져야한다.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면 말이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지금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철무진은 울분을 참으며 굳게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한참 더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천풍신법을 볼 만큼 살펴보고, 남궁천이 운용하는 내공심법까지 어느 정도 훔쳐보게 된 철무진은 문뜩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뒤를 쫓는 무인들의 기척이 몇 차례나 느껴졌지만 남궁천이 어떻게 그들과 단 한 차례도 조우하지 않고 이동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이내 구파와 팔대세가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린 철무진은 지금 상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궁 공자! 이 산은 무당이 저를 잡기 위해서 덫을 놓은 일종의 함정 같은 곳인데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인가요?”


“흥! 아까는 그리 당차더니 이제야 겁이 나는 것이냐?”


남궁천은 오만하게 입 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제 말은 남궁 공자와 남궁세가가 아무리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무당이나 다른 구파의 정예들과 조우하게 되면, 그땐 저를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서 드리는 말씀입죠!”


철무진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자 오만했던 남궁천의 얼굴이 똥을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이 새끼가...”


잠시 발끈했지만 남궁천은 금세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도발해도 소용없다. 아직까지 나와 우리 가문은 구파와 대놓고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오만한 남궁천을 부추겨 뒤를 쫓는 구파와 상잔시킬 생각이었던 철무진은 역시 세상엔 쉬운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설마 제가 그럴 의도로 말했겠어요? 저는 다만 지금껏 뒤를 쫓는 무인들과 한 번도 조우하지 않은 게 이상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뿐이니까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쯧! 여우같은 놈. 잘도 말을 돌리는구나. 하지만 그리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다. 지금 너를 쫓고 있는 무인들 중엔 팔대세가의 사람들도 제법 많아, 그들이 우리가 아무런 제지 없이 길을 갈 수 있도록 표식을 남겨두어 그런 것이니까.”


“아하! 그랬군요.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우릴 추격하는 사람들과 벌써 몇 번은 충돌이 있고도 남았을 테죠.”


팔대세가의 사람들이 은연중 자신이 도망치는 걸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철무진은 더 이상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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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궁지(3) +1 23.06.17 803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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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 궁지(1) 23.06.14 863 14 12쪽
27 27.허공(虛空) +1 23.06.14 843 15 12쪽
26 26. 살행(3) 23.06.12 917 15 12쪽
25 25. 살행(2) 23.06.11 946 13 12쪽
24 24. 살행(1) +2 23.06.11 1,012 15 12쪽
23 23. 도주 +1 23.06.09 1,076 21 11쪽
22 22. 복수(3) +1 23.06.08 1,120 16 11쪽
21 21. 복수(2) +3 23.06.06 1,149 21 11쪽
20 20. 복수(1) +2 23.06.06 1,193 19 11쪽
19 19. 재능개화(才能開化)(3) +1 23.06.03 1,225 21 11쪽
18 18. 재능개화(才能開化)(2) +1 23.06.02 1,187 19 11쪽
17 17. 재능개화(才能開化)(1) +1 23.06.02 1,247 21 12쪽
16 16. 불구대천(不俱戴天)(3) 23.05.31 1,189 20 10쪽
15 15. 불구대천(不俱戴天)(2) 23.05.30 1,177 15 12쪽
14 14. 불구대천(不俱戴天)(1) 23.05.29 1,213 17 11쪽
13 13. 악연(惡緣)(2) 23.05.23 1,322 21 12쪽
12 12. 악연(惡緣)(1) 23.05.22 1,347 19 13쪽
11 11. 주련야독(晝鍊夜讀)(4) 23.05.21 1,385 17 11쪽
10 10. 주련야독(晝鍊夜讀)(3) +2 23.05.20 1,430 19 11쪽
9 9. 주련야독(晝鍊夜讀)(2) +1 23.05.18 1,457 24 11쪽
8 8. 주련야경(晝鍊夜讀)(1) 23.05.16 1,629 19 11쪽
7 7. 강호의 생리를 느끼다. 23.05.15 1,673 24 12쪽
6 6. 금재력(金財力) 23.05.14 1,714 24 12쪽
5 5. 충돌 23.05.13 1,850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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