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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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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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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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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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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길 (7)

DUMMY

105화


하지운이 브리갠트로 넘어온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올 8월 4일, 왕국 전체가 발칵 뒤집힐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졌었다.


왕국 서남부에 위치한 테머싯주에는 글래스턴버리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주도인 테머튼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지 나오는 변두리 촌구석인데, 이 근방에서는 꽤나 잘 나가는 드레이콧 가문이 소유한 장원들 중 하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이 시작될 무렵,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예배당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모두 뻑하면 마주치는 낯익은 동네 애새끼들이었다.

예배당에 속한 일꾼이 달려 나와 조용히 하라고 꾸지람을 하려는 순간, 아이들의 입에서 일제히 경천동지할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어젯밤 꿈에서 ‘그분’의 종이라는 천사님이 나왔어요. 서쪽 숲의 지배자 로저 드레이시가 부활했대요. 예배당에 가서 꼭 전하라고 그랬어요.”

“저도요! 제 꿈에도 나왔어요.”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도 부활시켜서 보내 줄 거라고 했어요. 몇 명은 이미 부활했대요. 그 사람들이, 로저한테서 험프리라는 사람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래요.”

“꼭 신부님한테 말해 줘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마을 사람들을 전부 불지옥에 던져 버리겠다고 했어요.”

“아! 랜들이라는 할아버지도 끓는 기름 솥에 집어넣어 버리겠다고 했어요.”

“맞아요! 빅터라는 아저씨도 같이 발가벗겨서 집어넣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빅터가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바보야! 우리 영주님이잖아!”

“아, 맞다! 그러네!”

“그런데 우리 영주님 끊는 기름 솥에 들어가도 돼? 그러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애들 장난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살벌했다.

겁 많은 일꾼이 지옥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화들짝 놀라, 황급히 신부에게 달려갔다.


잠시 후 뛰쳐나온 신부가, 몇 분 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장원 영주의 저택으로 돌진했다.

그 뒤에는 일꾼들의 손에 잡혀 끌려오다시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드레이콧 가문의 가신이자, 이곳 글래스턴버리의 영주인 빅터 매리스 경이 자신의 애마를 때려죽일 기세로 거칠게 다그치며 저택을 빠져나갔다.


그날 정오 자신의 침실에서, 세상 느긋한 자세로 늦은 아침을 먹던, 드레이콧 가문의 가주 랜들 경이 빵이 목에 걸려 사망할 뻔했다.


그리고 이틀 후 최종 목적지인 험프리의 귓구녕에 이 뉴스가 전달되었다.


단지 글래스턴버리 한곳에서만 올라온 보고였다면, 그 동네 애새끼들과 신부는 왕성의 지하 감옥에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보고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줄을 지어 올라와 버렸다.

단 이틀 만에 일곱 지역에서 거의 흡사한 내용의 보고가 잇따라 도착하니 왕성이 발칵 뒤집히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험프리와 거버스 그리고 친왕파 귀족들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로저 드레이시 추포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왕국 전체를 이 잡듯 뒤져도, 로저 놈의 티끌만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어 다들 지쳐 가고 있을 때였다.

대략 보름 전부터, 정보 길드와 줄이 닿아 있던, 친왕파 귀족들에게 쓸 만한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로저 놈이 쥐새끼같이 숨어 다니면서 왕에게 협조할 위험이 있는, 다른 부활자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을 죽이고 다니는 것 같다는 보고였다.

괴상한 소문이 돌고 있던 루지먼트 가문의 영애와 루즐리 가문의 장자 그리고 크랜필드의 영주가 한날한시에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괴이한 능력을 사용한다는 괴담이 돌고 있던 인물들이라는 것이 정보 길드의 보고 내용이었다.


그리고 친왕파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있는 자들에게 천금 같은 정보가 전달되었다.

로저 놈이 그동안 대습지에 처박혀 있었으며, 놈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수발을 들어야 했던 사 인의 생존자들을 확보했다는 반가운 보고였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만 마리의 불사신을 죽인 로저 놈이 괴물들의 능력을 빼앗아 자신의 잘린 팔을 복구했다는 것이다.

금세 반갑지 않은 보고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정말 반가운 내용도 섞여 있었는데, 로저로 추정되는, 거구의 괴한이 탤머스주 인근의 숲에서 자주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올 초에 탤머스주에서 시체가 설쳐 댄다는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보고된 적이 있긴 했었다.

헛소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괴한의 신장이 무려 이 미터 칠팔십 정도는 되어 보였다고 하니, 십중팔구 로저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큰 놈이 로저가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단숨에 토벌대가 조직되었다.

왕실에서 애지중지 키운 백 명의 근위대 전사들 중 절반의 인원과 드레이시 가문에 지은 죄가 있는 친왕파 귀족 백오십 명이 참여했다.

거기에다 틸리얼 가문의 정예 백삼십 명까지 가세했다.


이 정도면 타국에 선전 포고 날리고, 당장 쳐들어가도 될 전력이다.

물론 대지진 때문에 육로가 끊겨서 딱히 쳐들어갈 곳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저주받을 악귀 놈을 반드시 태워 죽이겠다는 각오로 굳게 뭉쳤다.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그분'의 곁에서 오늘날까지도 충실하게 봉사하고 있는, ‘최초의 전사’ 위드링튼의 로저 경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 후손인 로저 놈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신 것이라고 한다.


놈을 죽이기 위해 근위대 전사 삼십 명이 이미 크레인데일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이 단숨에 개죽음이 되어 버렸지만, 아무리 험프리라도 감히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분’께서 하신 일에 함부로 주둥아리를 처놀렸다가는, 왕이고 나발이고, 대번에 파문시킨 후 화형에 처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험프리나 거버스나 당장 로저 놈을 잡아 죽인 후, 놈의 시체를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짓뭉개 버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고작 열흘 만에 무려 삼백삼십일 명의 전사로 구성된 대규모 토벌대가 이곳 탤머스주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변경 지역의 몇몇 방관자들을 제외하면, 불러올 수 있는 전력은 웬만하면 다 긁어 온 것이다.


왕성의 그 누구도 토벌대가 질 것이란 예측은 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결국 악귀 놈의 목이 잘리면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게 추밀원의 중론이었다.


하루가 다 끝나 가는 시간에 황무지 한복판에서 늦은 만찬을 즐기고 있는 하지운이었다.

와인을 곁들인 오리구이 두 마리를 음미하고 있는 하가 놈의 주위에는, 꽤 많은 수의 신사들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 곱게 자란 금쪽이의 버릇없음을 지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지운의 등 뒤 이십 보 거리에 박혀 있는 거대한 쇠기둥 두 개를 힐끔거리느라,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기둥들에는 무려 백작이 둘이나 매달려 있었다.

시월의 밤바람이 찬데, 존귀하신 분들이 옷 한 벌 걸치지 못하고 곤죽이 된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황무지 한가운데서 쇠사슬 철컥거리는 소리, 하지운의 쩝쩝거리는 소리 그리고 뭇 신사들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쥐똥만큼도 조화가 되지 않는 불협화음으로, 항상 잔잔함을 유지하고 있던 이곳의 고요가 난잡하게 깨뜨려지고 있었다.


“아오, 조용히 좀 해! 이 돼지 새끼들아!”


하지운의 염동력을 이용한 원거리 싸대기가 두 백작의 볼때기에 작렬했다.

두 고귀한 신사가 가냘픈 신음을 흘리며 선지를 게워 냈다.


사실 가장 시끄러운 것은 하지운의 쩝쩝거리는 소리였지만, 이곳의 그 누구도 감히 지적할 엄두를 못 냈다.

그저 자신들의 옷매무새만 더욱 방정하게 가다듬을 뿐이었다.

물론 숨 쉬는 소리도 더욱 정숙하게 내야겠다는 반성 또한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정보 길드 요원들의 절도 있는 식사 시중과 함께 하지운의 만찬이 간신히 끝마쳐졌다.

기다리느라 눈깔이 빠질 것 같았던 신사들을 대신해, 두 지체 높은 신사가 인사를 건넸다.


탤머스주의 수장인 백작 휴버트 도일리와 이웃한 록스버리주의 왕초인 백작 터스틴 먼프레빌이었다.


"로저 공 오랜만이오. 무탈하셔서 참으로 다행이오. 저... 우리가 공의 가문의 일에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은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하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특한 마음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요. 그저 역도로 몰릴 것이 두려워 몸을 숙이고 있었던 것뿐이오. 지금이라도 힘을 보태라 하시면 기꺼이 따르겠소.”

“물론이오, 로저 공. 지금이라도 우리 주의 모든 역량을 다 바쳐서 드레이시 가문의 재건을 돕겠소. 같이 온 영주들도 모두 동의한 바요. 열과 성을 다할 것을 선친의 존함을 걸고 맹세하겠소.”


하지운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두 고귀한 중년 신사 앞에, 날건달 같은 하지운이 껄렁거리며 다가섰다.

잠시 후 건네진 하가 놈의 다정한 말 한 마디가 그들의 초조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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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마왕의 길 (8) 23.11.06 52 2 11쪽
» 마왕의 길 (7) 23.11.04 50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55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54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6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54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61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9 3 9쪽
99 정진 (12) 23.10.19 53 2 10쪽
98 정진 (11) 23.10.18 56 2 9쪽
97 정진 (10) 23.10.15 61 3 10쪽
96 정진 (9) 23.10.12 60 3 9쪽
95 정진 (8) 23.10.10 68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72 3 9쪽
93 정진 (6) 23.10.06 69 4 9쪽
92 정진 (5) 23.10.04 64 3 9쪽
91 정진 (4) 23.10.02 62 4 10쪽
90 정진 (3) 23.10.01 70 3 9쪽
89 정진 (2) 23.09.29 71 3 9쪽
88 정진 (1) 23.09.27 81 3 9쪽
87 인연 (14) 23.09.25 79 3 10쪽
86 인연 (13) 23.09.23 79 3 10쪽
85 인연 (12) 23.09.21 80 3 10쪽
84 인연 (11) +2 23.09.20 82 3 10쪽
83 인연 (10) 23.09.18 92 3 9쪽
82 인연 (9) 23.09.16 81 3 10쪽
81 인연 (8) 23.09.15 79 3 10쪽
80 인연 (7) 23.09.13 82 4 10쪽
79 인연 (6) +2 23.09.11 83 3 9쪽
78 인연 (5) 23.09.09 9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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