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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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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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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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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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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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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마왕의 길 (3)

DUMMY

101화


거버스의 인내심이 흔적도 없이 쓸려 가 버렸다.

백 년에 가까운 삶을 통해 축적해 온 평정심과 자제력이 백사장의 고운 모래처럼 갈려 버린 것이다.


노인네의 면상이, 흉신악살이라는 말이 찰떡일 만큼, 흉측하게 짓뭉개져 버렸다.

분노가 인간의 낯짝에, 얼마만큼의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몸소 보여 주고 있는 대마법사였다.


지금 이 순간 격렬하게 끓어 넘치고 있던 분노의 감정 못지않게, 거버스의 마음속에 미친 듯이 용솟음치고 있는 또 다른 감정은 바로 공포였다.

로저 놈이 자신의 가문에 간자를 심은 것으로도 부족해서, 거버스 자신의 끔찍한 치부까지 파악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놈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어떻게 해야 놈의 주둥이를 틀어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급박함이 더 컸다.

거버스의 양손으로 마력이 물밀 듯 쏟아져 내렸다.

노구에 무리가 오는 것 따위를 염려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노인네의 손에서 다시 불덩어리가 튀어나오려 할 때쯤, 거버스보다 한발 앞서 선수를 치는 이들이 있었다.

아무리 엄격한 훈련을 시켜 놔도 애새끼들은 애새끼들이었다.

자신들이 하늘처럼 추앙하는 가주를, 쉴 새 없이 중상모략하고, 모욕을 주는 버릇없는 역적 놈의 행태에 피 끓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폭발해 버린 것이다.


여우 피를 먹고 강화된 젊은 전사들에게 백 보의 거리는, 고작 두어 걸음이면 다다를, 짧디짧은 틈새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하지운의 지척까지 접근한 십 인의 용사들이 힘차게 검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허공에 멈춰 버렸다.

용사들의 공중 부양과 함께 찾아온 을씨년스러운 밤바람이 좌중을 한차례 스치고 지나갔다.


틸리얼 가문의 전사들은 오늘 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기묘한 광경들을 거듭해서 목격하고 있다.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소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다들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눈을 껌뻑이며 동료들의 비범한 퍼포먼스를 감상 중이던 전사들의 입에서 갑자기 자지러지는 비명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허공을 날고 있던 젊은이들이 하지운을 중심으로 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운을 등진 채 바깥을 바라보며, 동일한 간격으로 차렷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용사들의 비행은 멈추질 않았다.


잠시 후 대형을 다 갖춘 용사들이 손에 쥐고 있던 검을 거꾸로 잡더니,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고 나서는 검을 자신들의 머리 위로 힘차게 추켜올리는 것이었다.


좌중의 동료들이 어어 하면서 말리려 나서려는데, 그새를 못 참고, 십 인의 용사들이 자신들의 복부에 검을 가차 없이 손수 때려 박아 버렸다.


다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더럽게 끈적거리는 지저분한 악몽을 말이다.


그 꿈은 금세 깨어져 버리고 말았다.

복부에 자신들의 검을 박은 채, 허공을 날고 있던 용사들의 가슴 한가운데를 난데없이 웬 꼬챙이들이 한 자루씩 뚫고 나온 것이다.


그제야 비행 중이던 용사들이, 자신들의 몸통을 내려다보며,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손잡이만 남기고 복부에 박힌 장검과 가슴팍을 뚫고 나온 피범벅이 된 꼬챙이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에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이 흥건하게 고여 들었다.


“으아아악! 제발, 나 좀 살려 줘! 몸이 말을 안 들어!”

“끄으윽! 제발!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젊은이들의 절규는 오래가지 못했다.

금세 그들의 온몸이 쪼그라들더니, 이내 피골이 상접한 회색빛의 반송장이 되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복부에 박힌 채 위태롭게 덜렁거리던 검들이 사타구니를 가르면서, 바닥에 내팽개쳐져 버렸다.

그 직후 젊은이들의 몸뚱어리가 부스러지면서, 가루가 되어 밤하늘에 흩어져 갔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거버스의 양쪽 귓구녕에 하지운의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영감탱이야, 나 정말 친절하지 않아? 방금 전에 나더러 뭘 처먹고 키가 컸냐고 물었잖아? 뭐 먹었는지 이제는 알겠어?”


가시를 털로 되돌린 하지운이 자신의 몸을 툭툭 털어 냈다.

결벽증 환자답게 한 번 주사 바늘로 사용한 털들은 지체 없이 떨궈 내버리는 것이었다.


“아, 씨발! 조루 같은 능력이 벌써 풀리고 지랄이야! 변신 능력인지 병신 능력인지, 지속 시간 한번 더럽게 짧네. 아니, 레벨이 육십이나 되는데, 지속 시간 오십 분이 말이 돼?”


갑자기 혼자 승질내면서 구시렁거리던 하지운이, 뼈 부서지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 미터 팔십이나 되던 거인이, 삼 미터를 넘어, 삼 미터 삼십에 달하는 대괴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덩치 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소머리 족장도 이 정도는 아니다.


신체 사이즈만 해도 차마 눈 뜨고 봐 주기가 괴로울 지경인데, 심지어 상판대기마저 마귀처럼 탈바꿈해 버렸다.

시커멓게 물들어 버린 머리털은 덤이었다.


이쯤 되니 아무리 틸리얼의 정예 용사들이라 해도,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을 찾는 놈부터 죽은 제 어미를 찾는 놈까지 다양한 멘탈 붕괴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지랄이 날 것 같아서, 게으른 하지운이 굳이 3.0버전의 과거 용모로 변신을 하고 등장했던 것이다.


정보 길드 놈들에게 자신의 용모가 바뀌었다는 것을 소문내라고 이미 지시해 두었기에, 원래의 2.0버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지운으로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외모지만, 다시 애용하는 건 힘들 것 같아 보였다.


지금 현재 4.0버전의 외모는 뭇 사람들이 너그러이 수용하기에, 거부감이 지나치게 컸다.

괴물들이 판치고 마법이 난무하는 이 판타지 세상에서조차도, 도저히 받아들여지기 힘든 괴이하기 짝이 없는 용모였다.


그렇기에 하지운은 변신 능력을 가지고 제 발로 굴러 들어온 남수단 출신의 하미스 군을 처음 목도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싸 버릴 뻔했던 것이다.

너무 좋아서, 그 어떤 사전 행위도 없이, 바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뻔했다.


기쁜 마음으로 하미스 군의 능력을 강탈하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적들과 마주했다.

자신의 외모에 지랄 발광하지 않는 적들을 바라보며, 재성형에 크나 큰 만족감을 느끼던 하지운이었다.


한데 그 놈의 지속 시간이 문제였다.

사무치도록 반가운 거버스의 낯짝을 보며, 웃고 떠들고 즐기는 와중에 타이머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승아가 대신 시간을 체크해 주었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홀로서기를 시작하자, 곳곳에서 자잘한 실수가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모성애가 강한 여친의 존재가 오히려 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여친에게 기대고 응석 부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하지운이다.


자신을 둘러싼 어린 양들의 빗발치는 아우성에 몸서리를 치고 있던 하지운이 갑자기 빙긋이 웃었다.

어느새 불의 창 열 자루가 코앞까지 날아와 있던 것이다.


벌레를 쫓듯 성의 없이 휘두른 하지운의 오른손에, 열 무리의 불의 원소들이 덜미가 잡힌 채로 격렬하게 몸부림을 쳐 댔다.

허공을 움켜쥔 하지운의 오른손을 둘러싸고, 열 가닥의 불의 띠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정신없이 기어 다녔다.


하지만 반항은 얼마 가지 못하고 진압되었다.

압도적인 하지운의 통제력에, 금세 주인을 갈아탄, 불의 원소들이 고분고분해져 버린 것이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던 거버스 틸리얼의 벌어진 입에서 걸쭉한 액체가 몇 가닥 흘러내렸다.

위대한 대마법사께서 너무도 놀라 버린 나머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자신의 주둥이 상황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오, 이 더러운 영감탱이야! 침 좀 닦아라! 진짜 더러워 죽겠네. 아니, 잠깐! 아... 그럴 나이인가? 하긴 치매가 올 시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겠네. 미안해, 영감. 계속 질질 흘려. 그 나이엔 그럴 수 있어. 내가 말이 심했네.”


화들짝 놀란 거버스가 다급하게 입가를 훔쳤다.

그러다가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대마법사의 낯짝이 극도의 수치심에 시뻘겋게 물들어 갔다.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이 점점 수그러드는 대신, 미칠 듯한 살인 욕구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하지만 그 욕구는 타오르기가 무섭게, 살벌한 기세로 얼어붙어 버렸다.


하지운의 머리 위에서 인세에 다시없을 이적이 시작된 것이다.

그 기적을 경험한, 거버스를 포함한, 이곳의 모든 용사들의 양물이 미칠 듯한 기세로 커피땅콩만 하게 쪼그라들었다.


실물 사이즈의 화염의 거버스가 거대한 불기둥을 양손으로 쥐고, 현란하게 폴댄스를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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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마왕의 길 (5) 23.10.31 53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4 2 10쪽
» 마왕의 길 (3) 23.10.25 52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61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9 3 9쪽
99 정진 (12) 23.10.19 52 2 10쪽
98 정진 (11) 23.10.18 54 2 9쪽
97 정진 (10) 23.10.15 60 3 10쪽
96 정진 (9) 23.10.12 59 3 9쪽
95 정진 (8) 23.10.10 67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70 3 9쪽
93 정진 (6) 23.10.06 66 4 9쪽
92 정진 (5) 23.10.04 63 3 9쪽
91 정진 (4) 23.10.02 6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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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인연 (6) +2 23.09.11 8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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