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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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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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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68
추천수 :
529
글자수 :
942,693

작성
23.10.2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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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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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왕의 길 (2)

DUMMY

100화


육십여 명의 당당한 전사들이 하지운을 둘러싼 가운데, 수십 개의 뿔피리가 일제히 굉음을 토해 냈다.

이곳이 인가라고는 그림자도 뵈지 않는 허허벌판이라 망정이었다.

야밤에 예의범절은 개나 줘 버린 정신 사나운 소음 공해의 대향연이 펼쳐졌다.


“천천히 해라. 천천히 해. 나 어디 안 간다.”


전사들의 칼끝이 미세하게나마 파르르 떨리는 것이 하지운의 눈에 들어왔다.

눈앞의 전사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다들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이제 막 성년이 된 걸로 보이는 상판들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고는 저 죽지도 않는 늙은 병신이 다 치고 다니는데, 뒈지는 건 어린 너희들도 예외가 아니구나. 심정적으로 너희 같은 애새끼들 정도는 살려서 보내 주고 싶기도 하지만, 나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구나. 그래도 날 원망하지는 말고, 가주를 잘못 만난 너희들의 운명을 탓해라.”


하지운이 어리디어린 용사들에게 매정한 사형 선고를 날리고 있는 와중에, 숲으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감시망을 형성하고 있던 틸리얼의 전사들이 속속 당도했다.


고요한 밤중이라 그런지, 뿔피리 소리가 멀리도 날아간 모양이었다.

대략 이 킬로 간격으로 배치시켜 두었던, 이인 일조의, 감시 요원 쉰여덟이 이십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전부 모여 들었다.


콘체스터종 명마들의 엄청난 주력에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끼는 하지운이었다.


기다리느라 지겨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낙서를 하고 있던 하지운이 허리를 두드리며 느릿느릿 일어섰다.


어린놈들이기는 해도 훈련이 아주 잘된 놈들이었다.

괜히 드레이시 다음 가는 정예병이라는 평을 듣던 것이 아니었다.


지루함을 못 이긴 하지운이 온갖 개소리를 다 늘어놓았지만, 꿋꿋이 참고 견디는 것을 보면 틸리얼 가문의 훈련이 보통 엄격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들의 가주의 생식기를 잘라서 일각수처럼 이마에 붙일지, 고대 야만족들의 턱수염처럼 턱 끝에 붙일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 중인 하지운을 보고서도 꾸역꾸역 버텨 내는 것을 보면 평정심이 보통이 아닌 것이었다.


감시 요원들까지 전부 합류하여 겹겹이 포위망을 형성해 갔다.

신장이 이 미터 팔십에 달하는 붉은 머리 양아치가 실실 쪼개면서 비소를 날리고 있었지만, 틸리얼의 전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아 갔다.

하지운을 중심으로 오십 보 밖부터 삼십 명씩 네 겹으로 된 인간의 원형 띠가 만들어졌다.


“잘 밤에 지랄들을 한다, 병신들.”


하지운의 칭찬이 끝나기도 전에 포위망의 한쪽이 열리며, 한 무리의 방패수들이 걸어 들어왔다.


방패라기보다는 칸막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이는, 거대한 철판때기를 짊어진 십 인의 장정들 사이로 대마법사 영감의 낯짝이 보였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쇳덩어리로 만든 칸막이들의 자리 배치가 완료된 후, 칸막이 사이의 좁은 틈으로 대마법사 거버스의 상판대기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인내심이 뭇 사람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하지운조차도 끝내 참지 못하고 대차게 뿜어 버리고 말았다.


“뭐가 우습냐? 이 죽지도 않는 악귀 놈아! 얼빠진 놈! 숲에서 기어 나올 곳이 그리 없었더냐? 다른 곳 다 놔두고, 우리 본진 앞으로 촐랑거리며 튀어나오다니. 네놈은 한 번 죽어 봐도 배우는 것이 없구나. 멍청한 놈!”


노인네의 웅변에 감명받은 하지운이 계속 지껄여 보라고 차분하게 경청해 주었다.


“로저 드레이시, 이 저주받을 악귀 놈아! 그냥 뒈진 김에 곱게 지옥에 처박혀 있지, 뭘 한다고 다시 살아 돌아왔느냐? 진정 온몸이 숯 덩어리가 되어 봐야 네 분수를 알겠느냐? 네놈 따위는 수백 번을 살아 돌아와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번에야말로 두 번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팔 한쪽이 아닌 네 몸뚱어리 전체를 새까맣게 태워 주마! 지옥에 가서 작은 불씨만 봐도, 울면서 오줌을 질질 싸도록 만들어 주지!”


백 살이 코앞인 정정한 노인네의 매서운 입담에 하지운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시월이 반이 넘게 지난 늦가을의 밤바람을 맞으며, 정신이 번쩍 든 대역 죄인이 토벌대의 진정한 우두머리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다, 이 늙은 병신아. 혹시라도 네가 노환으로 뒈지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나 정말... 오지에서 좆 빠지게 수련했다. 성심을 다해 수련한 후 세상에 뛰쳐나왔는데, 네가 그사이에 이미 팔자 좋게 세상 버렸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내 심정이 어떠했겠느냐? 건강히 잘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이건 내 순수한 본심이다.”


말 한마디를 해도 듣는 이의 가슴에 똥을 한 무더기씩 처뿌리는 것이 로저와 하지운의 공통점이다.

변함없는 로저식 화법에 친근감마저 느끼며 대마법사는 담소를 이어 갔다.


“오지에서 그 대단한 수련을 하면서, 뭘 주워 먹었기에 머리 꼬라지가 그 모양이냐? 거기에다 키까지 컸구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답게 아직도 성장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과녁이 커져서 그런지, 맞추기가 더 편해 보이는구나. 이번에는 쥐새끼처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만 네놈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 주마. 잘 가라, 역적 놈아.”


거버스의 따뜻한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포위를 하고 있던 전사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백 보 밖으로 물러선 전사들이 두 겹으로 포위망을 형성한 채 자세를 낮추었다.

하지운이 마법을 피할 경우 자신들이 불덩이를 대신 뒤집어쓰는 참극을 피하기 위해, 미리 대형을 갖추는 연습을 해 둔 모양이었다.


거버스와 방패수들도 침착하게 뒷걸음질 쳐서, 칠십 보 거리에 방패진을 갖추었다.

연습들을 열심히 한 티가 나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하지운의 조롱이 가득 담긴 박수를 받으며, 대마법사의 손에서 불덩어리들이 솟아올랐다.

거버스가 자랑하는 성명절기 ‘불의 창’이 시전된 것이다.


이번에는 무려 열여덟 개의 불덩이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노인네가 온몸을 땀으로 범벅을 한 채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위대한 이적을 행하였다.


가문의 어린 전사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경외감으로 물들어 갔다.

위대하신 가주의 압도적인 기예에 진심으로 탄복들을 한 것이다.


백삼십 명의 일족들이 토해 내는 찬사를 받으며, 거버스의 머리 위에 있던 열여덟 개의 불덩이들이 한꺼번에 쏜살같이 뻗어 나갔다.


무려 열여덟 발의 불의 창이 하지운에게 처박히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때 갑자기 하지운의 좌우에서 아홉 명씩 도합 열여덟 명의 용사들이 빛의 속도로 뛰쳐나와, 하지운의 십 보 앞에서 인의 장벽을 쳐 버렸다.


잠시 후 황무지 한복판에서, 인세에선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끔찍한 비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스러운 절규에 좌중의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그들의 눈부신 살신성인 덕에 하지운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하지운이라 해도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무지막지한 공격이었다.


인의 장벽을 친 십팔 인의 전사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뼈까지 홀랑 다 타버린 채로 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어지러이 허공에 흩날리는 재 가루를 멍하니 바라보며, 거버스와 백십이 명의 용사들은 나가 버린 넋을 찾질 못하고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동료들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뛰쳐나가, 로저 놈을 지키기 위해 육신을 바치는 정신 나간 광경을 보여 주었다.

다들 무슨 미친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설마... 우리 가문 내에... 드레이시의 간자들이 침투해 있었다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부터 암약해 오고 있었다는 말인가?’


거버스조차 말 같지도 않은 고민에 빠져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이런 어두컴컴한 야밤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 속에서, 하지운의 방정맞은 손가락 놀림을 눈치챌 만큼 침착하고 노련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말종 하지운의 요사스러운 혓바닥이 조신함을 유지할 리가 없었다.


“꼴값들을 하는구나. 제 놈들이 쏜 것을 제 놈들이 몸으로 때우고. 참 부지런한 놈들이다. 너희끼리 치고받을 거면, 난 왜 붙잡아 놓고 있었던 거냐? 나더러 너희 지랄을 관람해 달라는 거였냐? 그럴 거면 의자라도 준비해 놓던가.”


거버스의 눈알이 뒤집히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끌고 온 백 명이 훌쩍 넘는 가문의 정예들 중 몇 놈이 로저 놈의 첩자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하냐, 영감탱이야? 이번에도 졸개들더러 내 팔다리 붙잡으라고 시키지 그러냐. 설마 고작 그거 쏘고 벌써 지친 건 아니지? 고민하는 걸 보니까, 또 부하들 버리고 도망치려는 거야? 여우들 앞에서 오줌 싸면서 달아났을 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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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마왕의 길 (4) 23.10.27 54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52 2 9쪽
» 마왕의 길 (2) 23.10.24 59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8 3 9쪽
99 정진 (12) 23.10.19 52 2 10쪽
98 정진 (11) 23.10.18 53 2 9쪽
97 정진 (10) 23.10.15 59 3 10쪽
96 정진 (9) 23.10.12 58 3 9쪽
95 정진 (8) 23.10.10 66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70 3 9쪽
93 정진 (6) 23.10.06 66 4 9쪽
92 정진 (5) 23.10.04 63 3 9쪽
91 정진 (4) 23.10.02 61 4 10쪽
90 정진 (3) 23.10.01 69 3 9쪽
89 정진 (2) 23.09.29 69 3 9쪽
88 정진 (1) 23.09.27 77 3 9쪽
87 인연 (14) 23.09.25 77 3 10쪽
86 인연 (13) 23.09.23 78 3 10쪽
85 인연 (12) 23.09.21 77 3 10쪽
84 인연 (11) +2 23.09.20 81 3 10쪽
83 인연 (10) 23.09.18 91 3 9쪽
82 인연 (9) 23.09.16 79 3 10쪽
81 인연 (8) 23.09.15 76 3 10쪽
80 인연 (7) 23.09.13 79 4 10쪽
79 인연 (6) +2 23.09.11 80 3 9쪽
78 인연 (5) 23.09.09 90 2 9쪽
77 인연 (4) 23.09.08 88 3 9쪽
76 인연 (3) 23.09.06 88 3 9쪽
75 인연 (2) +2 23.09.05 94 3 9쪽
74 인연 (1) 23.09.03 95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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