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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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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2 23:40
연재수 :
219 회
조회수 :
22,749
추천수 :
527
글자수 :
933,051

작성
23.09.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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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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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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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인연 (5)

DUMMY

77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교활한 하지운은 집념의 화신의 속마음을 단숨에 알아채 버렸다.


뒤로 살살 물러나던 하지운이 양손을 슬쩍 들어 올려, 아주 살짝 휘둘렀다.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보여 주기에는, 지나치게 귀엽고 앙증맞은 손놀림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앙증맞지 않았다.


집념의 화신의 양손이 손목 부위에서 잘려 나갔다.

놈의 입에서, 듣는 사람 숨 막히게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에 구멍이 뚫려 피가 차오르는 상태에서, 죽지도 않고 버텨 내고 있는 중이었다.


팔다리가 다 잘려 나가자, 상남자 중의 상남자인 놈의 입에서도, 절망의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온몸을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죽은 네 구멍 동서와는 달리, 네놈은 처음부터 맨손으로 덤비더군. 그래서 전생에 이종 격투기 선수였나 했다. 그런데... 팔다리를 잘랐는데도, 죽어라고 달라붙네. 네 능력은 상대의 신체에 닿지 않으면, 발동이 안 되는가 보구나?”


포기를 모르던 집념의 화신도 그 순간만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악마 같은 괴수 놈이 다 눈치채고서도, 자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너같이 독한 놈이 고문 좀 당했다고, 금세 주둥이를 나불거릴 리도 없고... 쉽게 꺾이지 않는 네 마음이 눈부셨다. 잘 가라, 최상남자야.”


놈의 팔다리에 이어 머리통까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부위별로 토막 난 시신이 피 웅덩이 속을 굴러다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하지운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뭔가 다급하게 중얼중얼하며 손짓 발짓을 하던 그가 급기야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러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뭐가 괜찮아? 뭐가 그럴 수 있어? 내가 또 네 말 안 듣고, 방심하고 까불다가... 거기까지 더럽혀졌잖아! 너무 미안해서 당장 죽고 싶어! 거기도 제대로 간수 못하고... 넌 아직 손도 못 댄 건데... 웃기지 마! 뭐가 깨끗이 씻어서 쓰면 돼?”


천장을 보며 악을 쓰던 하지운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열을 해 버렸다.

하지만 정작 오열하고 싶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어느새 하지운의 살기를 견뎌 내고 제정신을 차린 미오 짱이, 바닥에 웅크린 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반쯤 벗은 속옷 차림으로 거칠고 차가운 돌바닥을 뒹굴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도저히 그 자리에서 일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약간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완전히 본격적으로 미쳐 버린 정신병자였다.

혼자서 천장을 보며 지랄 발광을 하는데, 보는 사람도 같이 미치게 만들, 희대의 메소드 연기였다.


어느새 미오 짱의 가랑이 사이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왔다.

오히려 반가웠다.

상상을 초월한 공포 속에 온몸이 굳어 버린 데다가, 돌바닥의 싸늘한 냉기까지 더해져 얼어 죽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느낀 한 줄기 따스함에, 막힌 숨통이 약간이나마 트이는 것 같았다.


미오 짱이 억눌려 있던 한 가닥 숨을 뱉어 내는 순간, 엄동설한의 칼바람을 연상시키는, 하지운의 서슬 퍼런 한마디가 있었다.


“방해된다. 조용히 해라. 손톱깎이로 발톱부터 정수리까지 깎아 줄 수 있다.”


급하게 입을 다시 틀어막은 미오 짱이 혼신의 힘을 다해 항문을 조였다.

방광에 이어 괄약근까지 풀리려 했기 때문이다.


짜증 나는 방해꾼을 조용히 시킨 하지운이 다시 여자 친구에게 빌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무 미안해, 자기야... 뭐야? 이제는 자기가 미안하다는 소리 듣기 싫다고, 화내는 거야? 내가 왜 잘못한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걸 어떡해! 자기도 저번에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면서, 미안하다고 펑펑 울었잖아! 나도 그때의 자기랑 똑같은 마음인 걸 어떡해!”


다시 얼굴을 감싸고 오열하던 하지운이 고개를 홱 돌려, 미오 짱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너 왜 자꾸 달래려고만 해? 너 진짜 하나도 화가 안 났어? 나 그럼, 원래 생각대로 안 한다! 알잖아, 내가 숟가락으로 쟬 토막 칠 생각 중이었다는걸. 그냥 쟤 고문 안 하고, 한칼에 목 잘라 버린다!”


거칠게 투정을 부리며, 눈물의 하소연을 하던 하지운이 갑자기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이거 봐! 화났네! 화났어! 양손만 자른 다음 보내 주라고? 왜? 내 거 만진 손은 도저히 용서가 안 돼? 자기야... 이 바보야... 화내도 돼... 자꾸 감싸 주고 달래 주려고만 하니까, 더 미안해서 미치겠어...”


점점 계단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높아져 갔다.

고문을 하고 있을 테니,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홀에 있던 전사들이 모조리 다 칠푼이들도 아닌데, 뭔가 이상한 낌새조차 못 느꼈을 리가 없다.

쉰이 넘는 전사들이 다급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자기야, 청소 마저 해야 할 거 같아. 아, 깜빡할 뻔했다! 자기야, 방금 강탈한 능력 있잖아. 응, 두 개 다 흡수할게. 뭐래? 자기 덕에 나 다 진정됐거든! 고마워... 걱정해 줘서. 우리 자기가 최고야! 응, 나도 많이 사랑해! 아니야, 내가 훨씬 더 사랑해!”


닭살이 터질 것 같은 구역질 나는 감성 랩을 남기고, 하지운이 고개를 돌려 침실 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문짝이 박살이 나며, 전사들이 침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진풍경을 보고, 당당한 전사들조차 기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브리갠트 최강의 만능 살육마 앞에서는, 찰나의 당황도 사치였다.

앞장서 뛰어든 전사들의 무릎이 눈 깜짝할 사이에 폭발해 버렸다.


뒤를 따르던 수십의 전사들이 일순간 굳어 버렸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침실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의자에 자신들의 꽃사슴이 쭈그리고 앉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 옆에는 살육의 제왕이 의자 등받이에 허벅지를 살짝 기댄 채로, 불량하게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자신들과 변태 살육마 놈 사이에는 삼십 보가 넘는 길이의 공간이 있었다.

살육마 놈은 삼십 보 밖에서 아무 짓도 안 하고, 자신들의 꽃사슴에게 흉측한 비소만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랑의 경쟁자였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불구가 되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살육마 놈이 한 짓이라고는 왼손으로, 허공에 노크질 몇 번 한 것이 다였다.


“야, 네 장난감들 겁먹었다. 비명 좀 질러 줘라. 애들 힘 좀 내게.”

“예?”

“비명 지르라고. 어렵냐? 손가락 하나 잘라 줄까? 비명 잘 나오게.”

“아, 알겠습니다! 바로 지르겠습니다! 제발 자르지 마세요! 제발...”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시원하게 질러.”

“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흐어억! 흐으윽! 끄윽!”


울면서 목이 터져라 괴성을 지르던 미오 짱이 결국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미친 악마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다 만 미오 짱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악마를 올려다보았다.

다행히도 악마의 낯짝엔 흡족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짧은 비명에도 효과는 충분했다.

망설이던 전사들이 가련한 꽃사슴의 자지러지는 비명에, 모두 울음을 터뜨리며 몸을 던졌다.

청순가련하면서도 요염한, 자신들의 보물이 처절한 울음을 토해 내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더 이상 그들에게 이성적인 사고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온 상판대기에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하지운이 다정하게 허공을 두드렸다.

허공에 대고 대충 휘두르는 하지운의 앙증맞은 냥냥 펀치에, 비장한 표정의 전사들이 아무것도 못 해 보고 맥없이 허물어져 갔다.


미오 짱의 눈에서 대량의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자신의 마력을 아낌없이 투자해 론칭한,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보이 그룹 멤버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미오 씨, 네가 아주 복덩이야. 너와는 달리, ‘사랑들’ 멤버들이 이렇게 쓸모 있는 능력을 골라 왔을 줄은... 난 진짜 꿈에도 몰랐네. 네가 내 소중한 그곳만 안 만졌어도... 기특해서라도 단숨에 고통 없이 죽여줬을 텐데... 그러니까... 이 씨발아! 내가 아무 것도 하지 말랬지! 왜 그 애 거를 네가 만지고 지랄이야! 그 애가 개시도 안 한 걸! 아오, 씨발! 확 그냥 손모가지에 불을 싸질러 버릴까 보다!”


하지운의 지극히 상스러운 훈계질에, 미오 짱의 울음 섞인 딸꾹질이 더해져만 갔다.


이제 하지운을 제외하고, 할링튼의 내성 안에서, 두 발로 서 있는 존재는 없다.

귀엽고 깜찍한 미오 짱의 남은 생에는, 지옥이 펼쳐질 일만 남았다.

작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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