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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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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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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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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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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마왕의 길 (6)

DUMMY

104화


“졸개 백삼십 명이 다 죽어 버렸네. 영감 혼자 남아 버렸어. 우리 마법사 영감, 외로워서 어쩌지? 혼자서 나랑 오붓하게 놀아나야 할 텐데, 각오는 됐는가? 영감은 나한테 정말 특별한 새끼야. 진짜로 최선을 다해서 아껴 줄 거야. 절대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아오,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


구십팔 세의 노약자를 발 앞에 둔, 신장 삼 미터 삼십의, 젊은 날건달이 온몸을 배배 꼬면서 한량없는 기쁨을 표출했다.


초로의 대마법사는, 백 살이 정말 목전에 다가온 지긋한 나이가 돼서, 이렇게 몸서리쳐지는 끔찍한 꼴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질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사실 거버스의 처신 따위는 별 의미가 없는 실정이다.

노인네가 무슨 노력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하지운의 인성부터가 글러 먹었다.

그의 골통은, 타인의 갸륵한 마음을 수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 자체가 부실한 상태로 평생을 유지되어 왔다.


그런 미친놈에게 저승에서는 재갈을 물릴 생각 따위는 안 하고, 임무 목록을 통해 폭력성을 발산할 명분만 차곡차곡 쌓아 주고 있다.


고로 험프리와 거버스 그리고 그들의 동지들은 사실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자빠져 있다.

단지 실감을 할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뿐이다.


이제 거버스가 한발 먼저 체험할 시간이 다가왔다.

반드시 맞이해야만 하는 죽음에 대한 절망감, 앞으로 푸짐하게 목도해야만 하는 세상인심, 자신의 실책으로 야기된 피붙이들이 겪게 될 고난 등등.


정상인과 원수를 져도 보통 뒤가 좋지 않은데, 사서에 필히 기술될 상또라이와 철천지원수가 되어 버렸다.

칠십 년이 넘도록 대마법사로 칭송받아 오던 지체 높은 노인네가, 흙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덜덜 떨고 있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있잖아,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조금 부끄럽지만, 사실은 내가 약간 관대해. 몰랐지? 내가 관대하다는 거. 너 혼자 나랑 있으면 금세 미쳐 버릴까 봐, 말동무를 준비해 놨어. 잠깐만 기다려 봐.”


다정한 속삭임과 함께 하지운의 양 눈깔이 요망하게 반짝거렸다.

잠시 후 저 멀리 숲의 끝자락에서 건장한 사내 둘이 걸어 나왔다.

어두컴컴한 오밤중에, 꽤 멀리서부터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꼴을 보니, 뭐 하는 종자들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내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거버스도 명색이 마법사인데, 아무리 노안에 고생할 나이가 지났다 해도, 다른 평범한 노인네들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

봐선 안 될 걸 봐 버렸다.


두 거구의 사내는 죽은 시체였다.

그것도 그냥 시체도 아닌 소머리 괴물의 시체였다.

분명히 꼬라지는 시체인데, 걷는 모양새가 활기차기 이를 데 없었다.


심지어 빈손도 아니었다.

두 소머리 시체의 사이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내가 한 명 존재하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두 사내가 커다란 보따리 하나를 사이좋게 함께 끌고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한 사내의 모발을, 앞가르마를 경계로, 반씩 움켜쥔 좀비들이 짐짝처럼 그를 잡아끌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내가 보따리처럼 보인 이유가 있었다.

사내의 몸통에 팔다리가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천 쪼가리 하나 걸쳐 놓지도 않았다.


팔다리가 없는 알몸의 산송장을 목격한 거버스의 염통이 미친년 널뛰듯 펄떡거렸다.

언제가 되었든 가까운 미래에 자신도 겪게 될 일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순간 거버스의 인내력이 한계에 봉착했다.

잠시 후 대마법사의 체내에 남아 있던 모든 음식물 찌꺼기가 폭풍 같은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바닥에 찌그러진 채 격렬한 기세로 구토를 시작한 노인네를 내려다보며, 하지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쳐 주었다.


대마법사 영감을 응시하는 하지운의 눈에 다양한 종류의 감정이 교차했다.

거버스의 존재는 하지운의 마음속에 매우 복잡한 의미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감탱이가 타이밍 좋게 적시에 로저를 죽여 준 덕에 하지운은, 최고급 육체를 차지한 채로, 경쟁자들을 가볍게 양학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영감탱이가 로저를 죽이는 과정에서 놈의 팔을 한쪽 날려 먹는 바람에 하지운은, 삼 주가 넘는 시간 동안, 팔이 하나만 남은 상태로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거기에다 이 노인네는 하지운에게 마법의 무서움에 대한 강렬한 경각심을 심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무서운 자연재해에 마력까지 스며들면, 결과가 얼마나 살벌해지는지를 로저의 몸을 통해 각인시켜 준 일종의 선생님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하지운은 자신의 소중한 몸뚱어리에 불까지 싸지르는 괴상망측한 지랄을 행했던 것이다.

몸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고통조차 견뎌 낼 정도의 강력한 공포심을 하지운의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시켜 주었던 대마법사다.


따지고 보면 작금의 하지운이 펼쳐 보이는 경천동지할 이적들 대부분이 거버스의 따끔한 가르침이 우선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다.

하지운같이 경망스러운 인간이, 마법의 막강함을 미리 느껴 보지 못했다면, 같잖은 초능력 몇 개 수집하고는 지랄병 환자처럼 설치고 다니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면 하지운과 임승아는 벌써 조기 탈락해서, 은하계 그 어느 곳에서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말하자면, 대마법사 거버스는 하지운에게 병 주고 약 준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운의 사고의 흐름에 따르면, 이 순간 그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염동력으로 대마법사의 가랑이를 한껏 열어젖혀 놓고, ‘스승의 은혜’를 부르면서, 무회전 킥을 날리는 것이다.


대마법사 영감을 단숨에 대마법사 할멈으로 만들어 놓고, 이곳 탤머스주에서 할멈의 본거지인 베이퍼드 성까지 유람을 떠날 계획이다.

대충 삼백오십 킬로가 조금 안 되는 거리이다.

참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일직선으로 거리를 재면 삼백삼십 킬로 정도가 나온다.


그사이에 알몸의 거버스 할멈과 매제를 좌우에 거느리고,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은 다 거쳐 갈 요량이다.

물론 편하게 업고 다녀 줄 생각 따위는 쥐똥만큼도 없다.

통나무를 잘 다듬어서 만든 말뚝 위에 앉혀 놓고 운반할 계획이다.


몸과 마음에 공평한 고통을 주어서 균형을 잘 잡아 줄 생각이다.

이는 단순히 매제와 대마법사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만 담은 행동이 아니다.

하가 놈이 그 정도로 단세포일 리가 없다.


다른 무엇보다 왕성에서, 편하게 앉은 채로, 보고받을 험프리에게 더 이상 편함이라는 단어가 있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려는 의도가 가장 컸다.


두 명의 고귀한 인물이 겪고 있는 처참한 고난이 왕국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불러올 것이다.


브리갠트 왕국에 존재하는 작위는 오로지 백작 하나뿐이다.

그 외의 귀족은 전부 그냥 ‘영주’다.


물론 명칭이 영주라고 개나 소나 다 똑같은 영주는 아니다.

왕에게서 직접 봉토를 수여받은 소수의 ‘상위 영주’들만이 진정한 의미의 봉건 영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휘하엔 수 없이 많은 장원 영주들이 존재한다.

브리갠트 왕국 내에만 이런 군소 영주들의 숫자가 일만에 육박한다.


왕국 전체에 상위 영주의 수는 대략 사백이 조금 넘는다.

이 상위 영주들 중 모든 면에서 정점에 있는 존재가 백작들이다.

아머릭 왕조가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삼백육십 년 동안, 브리갠트 왕국 내에 설립된 백작령의 수가 겨우 스물아홉 개다.

그리고 어제까지 생존해 있던 백작의 머릿수가 총 스물이었다.


이는 현 국왕인 험프리의 두 아들, 즉 왕자들이 포함된 수다.

물론 대역 죄인 로저 드레이시의 작위는 일찌감치 소멸되어서, 현재 하지운은 그 스무 명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스무 명 중 한 명이 오늘 낮에 오지에서 살해당했고 두 명은, 조만간 인간이 버텨 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수 없이 많은 수치와 고통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왕국 내의 그 누구도 두 다리 뻗고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할 것이다.

물론 하지운은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운이 선보일 미래에 무조건 살아남을 인간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왕부터 노예까지 그 누구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구축되는 것이다.


삼사 일 후부터 하지운의 임무 목록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매일 밤 베개를 눈물로 적시게 될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미취학 아동들처럼 도로 오줌을 가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배우자들의 경멸스러운 눈초리에 시달리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질질 흘리는 삶을 꾸역꾸역 영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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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길 (6) 23.11.01 55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53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5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53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61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9 3 9쪽
99 정진 (12) 23.10.19 52 2 10쪽
98 정진 (11) 23.10.18 55 2 9쪽
97 정진 (10) 23.10.15 60 3 10쪽
96 정진 (9) 23.10.12 59 3 9쪽
95 정진 (8) 23.10.10 67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70 3 9쪽
93 정진 (6) 23.10.06 66 4 9쪽
92 정진 (5) 23.10.04 63 3 9쪽
91 정진 (4) 23.10.02 61 4 10쪽
90 정진 (3) 23.10.01 69 3 9쪽
89 정진 (2) 23.09.29 69 3 9쪽
88 정진 (1) 23.09.27 78 3 9쪽
87 인연 (14) 23.09.25 78 3 10쪽
86 인연 (13) 23.09.23 78 3 10쪽
85 인연 (12) 23.09.21 79 3 10쪽
84 인연 (11) +2 23.09.20 81 3 10쪽
83 인연 (10) 23.09.18 91 3 9쪽
82 인연 (9) 23.09.16 80 3 10쪽
81 인연 (8) 23.09.15 78 3 10쪽
80 인연 (7) 23.09.13 81 4 10쪽
79 인연 (6) +2 23.09.11 82 3 9쪽
78 인연 (5) 23.09.09 91 2 9쪽
77 인연 (4) 23.09.08 89 3 9쪽
76 인연 (3) 23.09.06 8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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