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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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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7.01 00:14
연재수 :
2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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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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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3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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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왕의 길 (5)

DUMMY

103화


틸리얼 가문의 대장장이들은 뛰어난 솜씨를 보유한 장인들이다.

그들은 맡은 일을 결코 허투루 하지 않는 진정한 프로들이다.


그런 그들이, 가주를 근접 거리에서 경호하는 최정예 전사 십 인을 위해, 전신을 엄폐할 수 있는 무지막지한 방패를 제작했다.


높이와 두께를 보면, 아성의 출입문 문짝을 통으로 뜯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물건이었다.

게다가 방패로서의 정체성에도 충실해서, 바깥쪽 중앙 부위가 볼록하게 튀어나오도록, 곡면을 그리게 만들어 놨다.


말하자면 이 방패를 닮은 쇳덩어리는, 사람이 발로 차서 못 쓰게 만들 정도로, 대충 만든 쓰레기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정성이 가득 담긴 명품이 단숨에 우그러졌다.

백 보가 넘는 거리를 한 걸음에 뛰어 넘어와 질러 버린 하지운의 앞 차기 한 방에, 문짝만 한 철판때기가 깔때기 모양으로 형태가 잡혀 버린 것이다.


방패 바깥쪽이 곡선으로 처리되어 충격의 일정 부분을 흘려 냈음에도, 방패의 중심부가 안쪽으로 움푹 패기까지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방패를 지탱하고 있던 용사의 양팔도, 철판때기와 함께, 우그러드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용사에게는 고통을 느껴 볼 그 어떤 시간적 여유조차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지운의 오른발이 쇳덩어리의 연성을 이겨 내고 방패 한가운데에, 자신의 통나무만 한 다리통이 널널하게 왕복할 만한, 통로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통로의 끝에 있던 용사의 몸통도 온전할 수는 없었다.


용사의 섹시한 쇄골과 장골을 경계로 몸뚱어리의 운명이 나뉘어졌다.

쇄골 윗부분과 장골 아랫부분은 형체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던 것들은 거의 분자 사이즈로 해체되어 버렸다.


용사의 등짝 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살점들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 주변 동료들의 방패를 알록달록하게 장식해 주었다.


동료의 끔찍한 죽음에, 나머지 전사들이 경악하든 말든 하지운으로선 전혀 알 바 아니었다.

당연히 그의 다음 공격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의 현 위치에서 좌측, 대략 열 시 방향쯤에 서 있던, 전사의 방패에 번개 같은 돌려 차기를 꽂아 넣었다.

이번에는 힘 조절을 하면서 짧게 끊어 차려 노력했다.


방금 전 어지러이 흩날리던 살점들을 바라보며, 빈속에 쓴 물이 역류했기 때문이다.


하지운 나름의 힘을 많이 뺀 발차기였음에도, 그의 정강이가 살짝 부딪치고 되돌아가는 순간, 엄청난 두께의 철판때기가 단숨에 안쪽으로 접혀 버렸다.

그 와중에, 방패를 들고 있던, 전사의 양팔도 당연히 같이 접혀 버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안쪽으로 우그러든 방패가 방패수의 면상을 부수고 틀어박혔다.


움푹 패인 쇳덩어리와 한 몸으로 압착된 전사가 바닥에 처박히기도 전에, 하지운의 뒤 차기가 우측에 있던 전사의 방패에 작렬했다.

돌려 차기를 날린 상태에서, 공중에 떠 있던 오른발을 그대로 뒤로 후려갈긴 것이다.

순식간에 초대형 철제 밥사발이 되어 버린 방패가 주인과 격렬한 포옹을 한 채로 아득히 멀어져 갔다.


야밤에 난데없이 쇳덩어리와 한 몸이 되어 허허벌판을 날아가 버린 용사의 마지막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수백 미터 밖에서 염탐 중이던 정보 길드 요원들 덕에, 그 가련한 용사의 시신 일부는 어찌어찌 수습될 수 있었다.


물론 하지운은 그딴 거 신경 안 쓴다.

뒤 차기를 날렸던 오른 다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왼발 뒤꿈치를 정면에서 덮쳐 오던 철판때기에 쑤셔 넣었다.


방패를 앞세워 몸통 박치기를 시도한 네 번째 용사를, 왼발 앞 차기로, 분쇄시킨 하지운이 빛의 속도로 땅을 박찼다.

하지운의 좌우에서 철벽들이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혀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럽게 무거운 쇳덩어리가 주제에 방패 시늉도 못하고 있으니, 더 이상 이 거추장스러운 철판때기를 이고 있을 이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남은 여섯의 용사들 중 넷이 하지운을 향해,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방패를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셋은 검을 온전히 다 뽑을 수 있었지만, 한 명은 안타깝게도 검을 뽑던 와중에 사망했다.

삼 미터 삼십의 거구가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처럼 날아와, 가공할 위력의 발차기를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쇳덩어리들이 덮쳐 오는 것을 보자마자 좌측으로 몸을 날린 하지운이, 방패 위를 스치듯이 날면서, 그림 같은 사이드 플립을 펼쳐 보인 것이다.

그러고 나선 바닥에 왼발이 닿기가 무섭게 오른발로 뒤 차기를 날려 버렸다.


체중이 0.5톤에 육박하는 괴수가 하늘을 날아와 후려갈기는 발차기를 맞고도, 용맹한 전사의 두 발은 꼿꼿하게 땅을 딛고 서 있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서 있는 것은 사실, 발목 부분에서 떨어져 나간, 두 발뿐이었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인수 분해되어,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터져서 날아가는 살점들 사이로, 벌건 꼬챙이 다섯 개가 삽시간에 돌파해 들어왔다.

꼬챙이가 하지운의 낯짝에 처박히기 직전, 하지운의 눈에서 요사스러운 빛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불의 창 다섯 자루가 날아오던 속도의 배가 넘는 극렬한 기세로 되돌아갔다.

허공에 붉은 띠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 거버스의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방패수가 기겁을 하며 방패를 집어 던졌다.


바닥에 처박힌 철판때기 두 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운 좋게도 늦지 않게 방패를 놓아 버린 두 방패수가 반쯤 넋 나간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 둘의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거버스가 미친놈처럼 허우적거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고 뒤로 나자빠져 엉덩방아를 세게 찧고도, 노인네가 번개같이 몸을 굴리며 미친 듯이 멀어져 갔다.


백 살이 코앞인 상노인네의 열정적인 지랄을 멍때리며 바라보던 두 방패수가 갑자기 후두가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질러 댔다.

둘의 양손에서 눈이 부시도록 시뻘건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살짝 뜨거운 것을 느끼자마자, 지체 없이 방패를 내팽개쳐서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괜찮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둘의 괴성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소리가 나올 수 있는 모든 통로가 시커멓게 타 버렸기 때문이다.

재가 되어 날아가는 호위 무사들을 응시하며 거버스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쉬지 않고 새어 나왔다.


흙바닥에서, 간만에 산책 나와서 개신난 믹스견처럼, 굴러다닌 거버스의 몰골이 참으로 스포티해 보였다.

이럴 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하지운이다.


“활기차고 보기 좋네! 다 늙은 게 활달한 거 보소. 너 도대체 평소에 뭐 먹고 사냐? 첩질에, 비보잉에 못 하는 게 없구나. 마법사라는 새끼가 마법은 더럽게 허접한 주제에, 몸 쓰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네.”


거버스가 비보잉이 뭔지를 알아먹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치하의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운의 말투가 그만큼 느글거렸던 것이다.


“뭐 해? 이 새끼들아!”


하지운의 조롱에 울화가 치민 거버스가 남은 전사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가주의 포효에, 넋이 나가 있던 전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머리를 꽉 붙들었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하지운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괴수 놈은 싱긋이 웃으며 기다려 주고 있었다.


“꼴랑 셋밖에 안 남았는데, 천천히 죽여 줄 테니까 너무 허둥대지 마라. 뭐 급할 것도 없는데 여유 있게들 해. 시간 넉넉히 줄 테니까, 유서라도 남길래? 어차피 너희 가족들 다 죽이러 갈 거야. 가는 길에 전해 줄게. 걔들도 죽기 전에, 너희 유서를 읽고 죽으면 감동이 배가 되지 않겠어? 너희 마음 가는 대로 해. 웬만한 건 다 허락해 줄 거야. 난 관대하니까.”


남은 세 용사들의 입에서 거친 쌍욕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하지운의 관대함에 대한 답례로 검 세 자루가 내밀어졌다.


순간 희끗하면서 사라진 하지운이, 세 시 방향에서 달려들던, 전사의 몸통 좌측에 들이닥쳤다.


나타나기가 무섭게, 하지운은 왼손의 손가락들을 세워 날아가던 검날의 옆면을 눌러 잡았다.

다짜고짜 검을 제압당한 용사가 화들짝 놀라서, 자신의 좌측으로 다급하게 시선을 옮겼다.

끔찍하게도 용사의 눈에 처음 들어온 건 자신의 왼쪽 무릎 지척까지 당도한 하지운의 왼발이었다.


왼손잡이 검사의 하반신을 박살 낸 하지운이 방금 갈취한 검을 그대로 뒤로 날려 버렸다.

하지운의 뒤통수를 노리고, 양손에 쥔, 검을 힘차게 내려찍던 용사의 아랫배에 동료의 검이 쑤시고 들어왔다.


용사의 방광을 뚫고 들어온 검날이 직장을 가르고 몸 밖으로 튀어 나갔다.

웬일로 변태 무예의 대가 하지운이 생식기를 피해서 공격한 것이다.

하가 놈도 가끔은 정상인인 척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크로스 가드 끝에 달려 있던 원형 장식이 기어코 용사의 소중한 부위를 후려쳐 버렸다.

이건 정말 맹세코 하지운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용사의, 오른 손목을 틀어쥔 채로, 우측 무릎을 발뒤꿈치로 찍어 버리고 있던 하지운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돌아보았다.


생식기와 방광, 직장이 일 검에 작살이 난 한 젊은이가 비통한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양손에 쥐고 있던 검은 어느새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아랫도리에 박힌 동료의 검을 움켜쥔 청년의 낯빛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어둡게 물들어 갔다.


순간 장래를 약속한 연인을 떠올린 청년이 애달픈 비명을 내질러 댔다.

그러던 찰나 청년의 벌어진 입에서 꼬챙이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차마 더 보고 있기 힘들었던 하지운이 젊은이의 심신의 고통을 멈춰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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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정진 (9) 23.10.12 5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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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정진 (7) +3 23.10.08 70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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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정진 (5) 23.10.04 63 3 9쪽
91 정진 (4) 23.10.02 61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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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인연 (12) 23.09.21 79 3 10쪽
84 인연 (11) +2 23.09.20 81 3 10쪽
83 인연 (10) 23.09.18 91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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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인연 (8) 23.09.15 7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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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인연 (5) 23.09.09 9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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