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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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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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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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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1.0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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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왕의 길 (8)

DUMMY

106화


“웃기고들 있네. 안 본 사이에 많이들 재밌어지셨군. 두 분께선 조만간 검을 놓고, 음유 시인이라도 하시려는 게요? 내가 설마 그대들에게 무슨 기대라도 하고 있었을 것 같소? 뭐 하러 오밤중에 여기까지 우르르 몰려나온 것이오? 아니, 설마... 내가 지쳐 있으면, 목이라도 딸 생각이셨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요! 다른 놈들은 몰라도! 우리가 그대를 상대로 만용을 부릴 만큼, 그대에 대해 아는 것이 쥐뿔도 없는 놈들이오? 여기 와 있는 우리 모두는 휘하에 수백을 거느린 가장들이란 말이오! 그대에게... 제발 한 번만 살려 달라고 빌려고 나왔소! 오늘 우리의 처신에 따라, 수천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소! 안 그래도 두려웠던 그대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저 거버스 놈까지 때려잡은 마당에! 우리가 지금 못할 짓이 무엇이오! 그대의 피붙이들이 몰살당할 동안 비겁하게 외면했소! 미안하오! 뭐라도 시키면 열심히 할 테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시오!”

“그렇소, 로저 공! 그대가 크레인데일에서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미 틀렸다 생각했었소. 그대의 가문과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교분이 있었다고는 하나, 나에게 일족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도 없소! 이렇게 그대가 부활하여 위엄을 떨칠 줄, 내 어찌 알 수 있었겠소? 그저 그대의 자비를 간절히 바랄 뿐이외다. 정... 분이 안 풀리시거든 내 목을 치시오! 그 대신 내 자식이 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제발 내 목 하나로 사의를 거두어 주시오. 옛정을 봐서라도 한 번만 부탁하오.”

“두 용맹한 백작들께서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닐진대, 못 본 사이에 많이들 감상적으로 변하셨군. 방금도 말했지만 난 그대들에게 별 감정이 없소. 애초에 그대들이 우리 가문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줄 것이란 기대는 손톱만큼도 한 적이 없소. 그러니 내게 섭섭함 따위가 존재할 리가 있겠소? 쓸데없는 착각들은 그만 좀 하시고, 이제 밤이 깊었으니 다들 귀가해서 취침이나 하시오. 나도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 하지 않겠소. 안 그래도 하루 내내 저 날파리 같은 것들과 시간을 허비했는데, 밤늦게까지 그대들에게 시달려야 한다는 말이오?”

“정말 우리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오?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소? 거병을 하라거나, 하다못해 군량이라도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소. 정말로 우리가 안심하고 그냥 돌아가도 되는 것이오? 설마... 이 순간도 우리가 그대의 진의를 파악 못하고 있는 건 아니오?”


내내, 눈썹을 팔자로 만든 채, 짜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던 하지운이 결국 픽 웃어 버리고 말았다.


“환장하겠네... 이 답답이들 때문에. 이보시오, 먼프레빌 공. 난 오히려 그대들에게 감사하고 있단 말이오. 아무것도 안 하고 얌전히 있어 줘서, 내가 굳이 그대들을 죽일 필요가 없게 해 주지 않았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거요. 내가 부활할 때, ‘그분’께서 살생부를 만들어 주셨소. 우리 가문의 몰락에 가담한 놈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문서를 말이오. 거기에 몇 놈이 적혀 있는 줄 아시오? 오늘 삼백 놈이 넘게 죽였는데, 아직도 이천이백 놈 이상이 남아 있소. 명단에 있지도 않은 그대들까지 내가 굳이 왜 죽여야 하오? 안 그래도 죽일 놈이 산더미 같은데.”


말을 잠시 멈춘 하지운이 쇠기둥에 묶인 두 백작에게로 향했다.

대니얼 앞에 선 하지운이 손 대신 발을 살짝 들어, 자신의 전 매제를 가리켰다.


“여기 매제였는지, 가축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머저리가 한 마리 매달려 있소. 이놈은 당신들과 달리, 대놓고 내 등에 칼을 박았지. 이런 거창한 배신자 새끼들을 어떻게 다루어야겠소? 내가 만약 이런 놈들에게까지 함부로 자비를 남발하면, 말하기 좋아하는 놈들이 날 두고 뭐라 지껄이겠소? ‘죽었다 살아 돌아오더니 많이 약해졌구나.’, ‘로저 놈도 이젠 예전만 못하네.’와 같은 시건방진 소리들을 늘어놓지 않겠소?”

“그렇긴 하겠구려...”

“그리고 솔직히 딱 이천이백 마리만 죽이고 끝내는 일이 가능하겠소? 그놈들 피붙이들 중에, 같이 죽겠다고, 달려드는 놈이 설마 한 마리도 없겠소? 제 놈들 친지들 중에 도와주겠다고, 병력을 이끌고, 달려오는 놈이 설마 단 하나도 없을 것 같냐는 말이오?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당신들 같지는 않을 거 아니오?”

“......”

“간단히 말해, 내 살인 복이 터졌다는 거요. 올 연말은 시체의 산을 쌓으며 보내야겠지. 굳이 거기에 소심한 그대들의 시체까지 더할 필요가 있겠소? 대범한 놈들만 죽여도 손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것 같은데. 이 정도 말했는데도 아직도 불안하시오?”

“... 우리가 그대를 한두 해 겪어 봤나... 이러고 그냥 돌아가면... 언제 그대의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데... 제발 내 목을 치든지, 돈을 받아 가든지 뭐라도 하시오! 이러고 돌아가면, 내 피붙이들 모두가 불안해서 말라 죽소!"

“내가... 그대들 따위를 안심까지 시켜 줘야 하나? 그대들을 각자의 성까지 내 손수 업고 가, 한 명씩 자장가를 부르며 재워 줘야 만족들을 하시겠소? 다들 하던 대로 눈치 보면서 조용히 처박혀 있으시오. 그 정도 불안감은 느껴야 하지 않겠소? 설마 내가 살아 돌아왔는데, 그대들을 두 다리 뻗고 세상 편하게 잠들도록 해 줄 줄 아셨소? 내가 기대조차 해 본 적 없던 브리즌이 우리 가문과 같이 죽어 줬소! 대를 이어 우리와 사돈을 맺어 온 터싱엄과 웨이버튼이 배신을 하는 마당에, 우리와 가장 데면데면했던 브리즌이 미련하게 옥쇄했단 말이오!”

“......”

“요즘 저 친구들이 브리즌 가문의 생존자를 찾는다고 고생이 많소. 내가 꼭 찾아내라고 지랄을 했거든. 살아남은 브리즌의 피붙이가 있다면, 차기 콘체스터 백작은 그자가 될 것이오. 아니! 웨스털랜드와 어네스퍼드의 백작도 겸하게 될 것이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겠소?”

“......”

“지금은 네놈들 따위에게 관심도 없다는 말이다. 돌아가서 다들 불안에 떨면서 찌그러져 있어. 내가 원수 놈들 가지고 놀면서 지랄 발광을 하다가, 아직도 부족하다 싶으면 그때, 네놈들도 찢어발기러 찾아갈 거니까. 네놈들이 할 일은 내 원수 놈들이 최선을 다해서 날 만족시켜 주기를 빌고 또 비는 것뿐이야. 어디서 하찮은 대가를 치르고 편해지려는 수작이냐? 내가 그렇게 편한 놈이었어? 그새 내가 어떤 놈이었는지 잊은 거냐?”

“... 잊었을 리가 있느냐... 네놈을...”


두 주의 상위 영주 열셋이 돌아갔다.

어깨가, 뻥 좀 섞어서, 허리에 닿을 만큼 축 처진 채로 멀어져 갔다.

다들 말 위에 널브러져 있는 꼴이 언제 굴러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수행원들을 덕지덕지 달고 오면 숲의 마왕이 오해할까 봐, 피붙이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기들끼리만 몰려왔다.

물론 일 킬로 밖에 수행해 온 전사들이 대기 중이긴 하다.

문제는 거기까지 무사히 말을 몰고 갈 수 있을지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정보 길드 요원들 중 몇몇이 영주들에게 달려갔다.

말고삐라도 잡아 줘야 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 꼴을 키득거리면서 지켜보던 하지운이 거버스에게 다가갔다.


“영감, 생식기가 아직 달려 있어서 기쁘지? 하마터면 ‘북부의 색마’가 북부의 늙은 창녀가 될 뻔했어. 다행히도 내가 생각을 바꿔 먹었어. 있잖아, 영감. 나 영감을 부위별로 잘라서 팔아 볼까 생각 중이야. 영감의 적이 엄청 많더라고. ‘영감 몸뚱어리 하나로 거액을 벌어들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니까. 영감의 몸뚱어리로 경매를 벌이겠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최고의 경매품은 역시 생식기 아니겠어? 그러니 멀쩡하게 달아 둬야지. 팔아먹기 전까지는 말야. 어때? 재밌겠지? 내가 이렇게 생각이 깊어.”

“즈... 즈에브알... 로...즈어... 고옹...”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주둥아리를 뻐끔거리는 거버스를 뒤로 하고, 신이 난 하가 놈이 취침 준비를 시작했다.


황무지 한가운데에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그 밑에 홀딱 벗은 하지운이 열심히 몸뚱어리를 문지르고 있다.

그 앞에 어느새 등장한 롱그레이 영감과 처음 보는 영감탱이 둘이 멀뚱거리고 서 있다.


“급하기도 하네, 영감탱이들. 사람 민망하게시리. 다 씻고 나면 올 것이지.”

“민망하다는 놈이 사방이 휑한 황무지 한가운데서 그러고 있냐? 마법을 참 창의적으로 사용하는구나. 일 년 내내 가려울 일은 없겠다.”

“왜? 가려워, 영감? 영감도 씻을래? 물 옆에 불덩어리 하나 띄워서, 따뜻하게 데워 줄게. 너무 가까이 붙여 놓으면 수증기 때문에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좀 떨어뜨려 놔야 돼서 시간은 좀 걸릴 거야. 말 나온 김에 좀 씻어. 냄새가 좀 나긴 해.”

“그럴 리가... 야생화 추출물을 한 바가지나 뿌리고 나왔는데...”


‘뭔 냄샌가 했다. 이 동네도 향수 비스무리한 것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구나.’


“그냥 씻어, 이 게으른 영감탱이야.”

“야, 이 미친놈아! 물이 얼마나 귀한데! 먹는 것도 아까운데, 몸에 들이붓는 게 말이 되냐? 너니까 마법으로 이러고 있지! 한 해에 강가에서 물 긷다가 죽어 나가는 놈이 몇인 줄은 아느냐?”

“영감! 혹시 영감네 조직에 정화 마법 쓸 줄 아는 애들 있어?”

“여아들이 몇 있기는 한데. 그건 왜?”

“내가 저수지나 몇 개 만들어 줄까? 영감네가 강 근처에 구덩이 좀 크게 만들어 놓고, 그 사이의 땅 밑에다, 내가 흙 마법으로 수로를 뚫어 주면 될 거 아냐? 그리고 그 수로에다 굵은 쇠창살 몇 개 박아 놓으면, 큰 놈들은 저수지로 못 들어올 거 아냐? 작은 놈들은 영감네가 알아서 하고, 수질은 정화 마법 쓰는 애들한테 책임지라고 하면 되잖아. 치료 마법은 몰라도 정화 마법은 사실 별 쓸데도 없지 않아? 오래된 우물 같은 거 청소할 때나 필요하지.”


순간 세 노인네의 눈깔 여섯 개가 현란하게 요동쳤다.

장사꾼들에게 너무 큰 자극을 준 모양이다.


“장사꾼 다 됐구나. 다 됐어. 영감들은 귀족질보다 장사질이 어울려. 죽어서 제프리를 만나거든 고맙다고 해야겠소.”

“뭐, 이 자식아!”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제 놈 집구석도 망한 주제에, 같은 꼴을 겪은 우릴 놀리다니! 돼먹지 못한 놈아!”

“크흑. 놀리는 재미가 있는 세 분, 이제 그만 용건이나 털어놓으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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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마왕의 길 (4) 23.10.27 57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55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63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61 3 9쪽
99 정진 (12) 23.10.19 54 2 10쪽
98 정진 (11) 23.10.18 58 2 9쪽
97 정진 (10) 23.10.15 62 3 10쪽
96 정진 (9) 23.10.12 62 3 9쪽
95 정진 (8) 23.10.10 69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74 3 9쪽
93 정진 (6) 23.10.06 70 4 9쪽
92 정진 (5) 23.10.04 65 3 9쪽
91 정진 (4) 23.10.02 65 4 10쪽
90 정진 (3) 23.10.01 72 3 9쪽
89 정진 (2) 23.09.29 74 3 9쪽
88 정진 (1) 23.09.27 83 3 9쪽
87 인연 (14) 23.09.25 82 3 10쪽
86 인연 (13) 23.09.23 81 3 10쪽
85 인연 (12) 23.09.21 82 3 10쪽
84 인연 (11) +2 23.09.20 84 3 10쪽
83 인연 (10) 23.09.18 95 3 9쪽
82 인연 (9) 23.09.16 83 3 10쪽
81 인연 (8) 23.09.15 8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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