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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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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42,693

작성
23.08.2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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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캠프파이어 (1)

DUMMY

66화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적막하고 끈적한 호수 위에서, 천천히 노를 젓고 있는 하지운이었다.

구덩이에서 걸어 나와, 뗏목을 찾아 늪에 띄우고 노를 저어 이곳에 오기까지,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그럴 것 같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뗏목을 뭍에 끌어 올려, 숨겨 두기를 정말 잘했다고 거듭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정신 상태로 바닥에 죽치고 앉아, 뗏목을 새로 만드는 일 따위는 도저히 무리였다.

아마 도중에 못 견디고, 잘라 놓은 나무 기둥들을 톱밥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화풀이를 한다고, 화가 다 풀릴지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린애 떼쓰듯이 지랄 발광을 해서 승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른스럽게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데, 전력을 다해 고심하는 것이 옳은 선택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다른 방도를 쥐어짜 낸 하지운이었다.


그리고 하지운이 떠올린 그 새로운 방법 때문에, 승아는 정신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결국 참고 참았던 울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이 미친 새끼야! 그게 도대체 무슨 아이디어야! 제발 그러지 마! 제발 정신 차려! 내가 잘못했어! 네가 소멸될 때! 그냥 나도 따라서 소멸시켜 달라고 하면 될 걸... 내가 미쳐서...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서... 내가 지금이라도 싹싹 빌게! 제발 그런 생각 하지 마! 우리 그냥 곱게 같이 죽자... 내가 정말 잘못했어...’

‘넌... 그냥 눈 감고 귀 막고 있어. 오래 안 걸릴 거야. 뭐라도 해 봐야지.’

‘뭐라도 해 본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쓰는 미친놈은 없어! 제발 다시 생각하자!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없어. 내가 좋아서 이런 짓을 하려는 게 아닌 건 너도 알잖아.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말... 제작 팀의 일원이었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건 기만이잖아. 정말 다른 방법이 있어?’

‘......’

‘다른 참가자들이라면 그렇게 착각할 수도 있겠지. 마법 쓰는 놈을 아직 겪어 보질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난 그럴 수가 없잖아. 내가 쓰고 있는 이 몸의 원주인... 그 새끼가 마법에 털린 날이 고작 한 달 반 전이야. 이 동네에선 애가 울면, 호랑이나 곶감 대신 로저 드레이시를 찾아.’

‘......’

‘그런 놈도 쩔쩔맨 것이 마법이야. 내가 운 좋게 바람 쓰는 괴물 한 마리 잡았다고, 마법을 우습게 볼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는 놈으로 보여? 그 여우 놈이 흙이나 불을 쓰질 않아서, 내가 살아 있는 거지...’

‘그래서 생각한 게 고작 그거야? 나더러 어떻게 맨정신으로 견디라고 그런 짓을 해!’

‘그러니까 눈 감고 귀 막고 웅크리고 있어! 생각 같아서는 나도 신성한 맹세든 뭐든 하고, 너를 내 머릿속에서 빼내고 싶어! 참가자는 맹세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안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네 곁에 없었으면 좋겠어?’

‘어! 그래서! 이딴 건... 네가 안 보고 지나갔으면 좋겠어!’


결국 하지운의 머릿속은 승아의 통곡 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상처를 줄 생각은 절대 없었는데, 기어코 줘 버리고 말았다.


‘울려서 미안해... 그래도 내 생각 안 변해. 네가 아무리 울어도... 달라질 거 없어.’

‘나쁜 새끼야...’

‘며칠 전 이 늪을 지나올 때... 실수인 척하면서, 네 부끄러운 비밀을 나한테 하나 던져 줬었지? 개쪽당했다고, 정신 못 차리고 찌질거리고 있는 날 위한답시고... 같이 쪽팔리는 상황으로 유도하는 게 네 최선이었어?’

‘......’

‘앞으로 다른 마법 쓰는 참가자들 만나면... 또다시 개쪽당할 일 많을 텐데. 운 좋게 살아남아도... 또 정신 못 차리고, 찌질하게 굴 수도 있는데. 그때도 날 위해 던져 줄, 네 쪽팔리는 비밀이 더 남아 있어? 뭐 있어? 전생에 발 냄새가 심했다던가 뭐 그런 거야?’

‘......’

‘내가 언제까지 널! 계속 그런 식으로... 수치스럽게 만들어야 하는데!’

‘하나도 안 쪽팔렸어! 그게 뭐! 그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아직도 씨발 존나게 많이 남았어! 좋아하는데! 씨발 새끼야! 내가 널 위해, 그 정도도 못 해!’

‘......’

‘네가 분신자살하는 꼴을 보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쉬워!’

‘누가 죽겠다고 했어?’

‘감응력을 억지로 높이겠다고,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자빠져 있겠다면서! 이 미친 새끼야!’

‘어차피 재생 능력이 있어서 안 죽잖아!’

‘아오! 이 정신 나간 새끼야! 살이 불에 타들어 가는데! 네 정신이 버티냐? 쇼크가 안 와! 네가 무슨 불사조야?’

‘그럼... 다른 방법도 있어. 얼음 동굴을 찾아서, 한 보름 정도 끼니를 거르면서, 그 안에서 누워서 버티는 건 어때?’

‘뭐가 어때! 이 또라이야! 좆같지!’

‘아니면 구덩이를 파고, 빨대 하나만 물고, 그 안에 들어가서 한 달 정도 버틴다든지.’

‘어흑... 고통스럽게 죽는 게, 네 소원이야?’

‘아니! 살고 싶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또 살리고 싶으니까 발버둥 치는 거고!’

‘어억... 아아아아악!’


아무리 간절히 설득해도, 하지운이 마음을 바꿔 줄 것 같지가 않았다.

도저히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승아의 입에서 절망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참을 악을 쓰도록,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아무리 귀신이라도 결국에는 지쳐서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사위가 적막해지자, 하지운의 말이 이어졌다.


‘감응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저 위에서 다 틀어막아 놨으니... 내가 직접,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억지로라도 느껴야지... 로저 같은 새끼가 이십 년을 넘게 못 느낀 걸, 내가 갑자기 느껴 보겠다는 건데... 너한테 보여 주기에 예쁜 방법이 있겠냐.’

‘하아... 너와 나의 마지막이 오늘이 될 수도 있겠네... 한숨 자고 할래? 네 소원 들어줄게...’

‘절대 안 죽을 거라니까... 왜 죽을 준비를 하려고 해...’

‘그게 네 맘대로 다 될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나 지금 절대 잠들면 안 돼! 귀하디귀한 마법 쓰는 여우 피를 처먹었는데! 이게 그냥 영양제처럼 몸에 흡수돼 버리고, 나머지는 똥오줌으로 나와 버리면... 두고두고 후회할지도 몰라!’

‘후회도 살아 있어야 하지...’

‘아! 진짜!’


승아가 한숨을 쉬면서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할 때쯤, 하지운의 시야에 희끗희끗하게 중앙 섬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막상 거사 장소를 두 눈으로 마주하자, 하지운도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굳게 결심한 척 승아 앞에서 큰소리는 쳐 놨지만, 솔직히 하지운은 지금 주저앉아 울고 싶을 정도로, 두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승아도 그걸 알아서, 악을 쓰며 울어 댔던 것이다.

무서워 죽겠으면서 덤덤한 척하는 하지운을 보며, 승아도 내내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기분이었다.


하지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걸 보고 승아의 입에서 다시 비명이 쏟아졌다.

아무리 무서워도, 결국 그 미친 짓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뭍으로 뗏목을 끌어 올리던 하지운이 결국 못 참고, 승아에게 약한 소리를 해 버렸다.


‘저기, 혹시라도... 너무 뜨거워서 중간에 포기해도... 나 비웃지 않을 거지?’

‘아오! 이 등신아! 지금 당장! 무섭다고, 울면서 포기해도 괜찮아... 다 이해해 줄게... 정말이야!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했으면 좋겠어!’

‘그건... 안 돼... 그래도 정말 죽을 거 같으면... 포기할게! 네가 보는 앞에서 새카맣게 타 죽는 건... 아닌 거 같아...’

‘제발... 그렇게 해 줘... 힘들면 바로 포기해... 절대 무리하지 마!’

‘있잖아... 여기 경치 엄청 좋잖아.’

‘응, 저번에 보니까 정말 좋더라.’

‘만약... 실패하면... 여기서 숨어 살래? 마법 쓰는 놈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겠지만... 몇 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나, 나쁘지 않네. 좋은 생각이야! 난 찬성!’

‘그리고 말야... 매일 밤... 내 꿈속에 들어와 줄래? 너... 내 소원 들어주겠다고 했잖아...’

‘응! 매일 네가 잠들기가 무섭게 바로 들어갈게!’

‘저기, 들어오면 말야... 저기...’

‘딱지 떼 달라고?’

‘......’

‘내가 널 몰라? 막상 내가 대놓고 말하니까, 엄청 부끄러워 하네...’

‘미안... 저기, 싫으면...’

‘어!’

‘어?’

‘어!! 어라고!’

‘......’

‘그러니까... 제발 무리하지 말고... 난 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면, 몇 년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그럼... 시작할게... 눈 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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