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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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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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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051

작성
23.09.0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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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1)

DUMMY

73화


중앙 섬을 떠난 지 하루 만에, 늪을 통과하여, 벨라스터주로 되돌아왔다.


어젯밤 자정이 되기 전, 처음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섬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섯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는 새벽같이 출발했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승아가 차려 주던 아름다운 잔칫상을 즐기다가, 대뜸 생식을 하려니 허전함이 극에 달해 죽을 맛이었다.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에, 식탐의 노예 하지운은 일각이 여삼추로 노를 저었다.


오랜만에 괴물 소굴에서, 인간 세상으로 나온 하지운은 감회가 전혀 새롭지 않았다.

승아를 제외한, 모든 인간에게 무관심한 인격 파탄자다운 반응이었다.

단지 배만 고팠다.


일이삼사를 통해, 벨라스터주의 대략적인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 걸어가면 할링튼이 나온다.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 거주지이다.


한껏 징그러운 미소를 머금은 하지운이 경쾌한 발놀림으로 할링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멀리 할링튼의 성벽이 희끗희끗 보일 때쯤, 수십 필의 말들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접근해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벼룩의 간만큼의 당황도 없이, 천천히 걸음을 멈춘 하지운이 느긋하게 기다려 줬다.

금세 서른 필이 넘는 말들이 하지운을 둘러싸고, 앞발을 치켜든 채 정신 사납게 울어 댔다.


‘아, 씨발... 먼지...’


“크하하하! 로저 드레이시, 이 쥐새끼 같은 도망자 놈아! 드디어 찾았구나! 내가 이렇게 공을 세우게 되는구나! 크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쾌남아를, 한참 들여다보던 하지운이 끝내 한마디 건넸다.


“너 누구더라? 어디서 본 놈인데... 너 나 본 적 있지?”


질문 한 번에,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던, 사내의 낯짝을 단숨에 일그러뜨린 하지운이었다.


“반역자 놈이 쫓겨 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는가 보구나. 나 펀트니 가문의 토머스를 잊었느냐?”

“어.”

“......”

“네까짓 게 뭐라고, 내가 기억까지 하겠냐? 나이절 그놈의 육촌 동생인가 하는 놈이지? 그건 생각난다. 어때? 그거라도 기억해 주니까, 기쁘냐?”

“사촌 형이다.”


이를 뿌드득 갈면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전달해 줘서 참 듣기 좋았다.

이 동네가 콘체스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사투리가 심해서, 뭐라 떠드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천천히 말해 주니, 이제야 겨우 들을 만했다.


“그런데 네가 달고 온 것들은 너희 가문 용사들이냐? 너희 돈 없다고 징징거리지 않았었냐? 언제 이런 것들을 키웠냐?”

“곧 죽을 놈이 그건 알아서 뭐하게?”

“곧 죽일 거면서, 고작 그런 것도 대답 안 해 주냐? 인정이 메말랐구나. 속이 아주 좁은 놈이로다.”


하지운이 머리에 둘러쓰고 있던 후드를 젖히며, 망토의 끈을 끌렀다.


“누, 누구냐, 넌? 로저가 아닌데... 야, 이 머저리 같은 놈들아! 이놈이 로저냐? 정보 장사한다는 놈들이, 이따위로 일하면서 돈을 받아 처먹어?”


하나같이 눈빛이 차분하고 냉혹해 보이던 놈들도, 그 순간만은 못 참고, 화들짝 놀란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대경실색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하지운도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친절과 진실의 기사 토머스 펀트니 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하지운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디서 기어 나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훈련이 잘된 놈들이었다.

절대 저 등신 같은 펀트니 놈의 수하들로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의 입에서 바른 말이 나오게 하려면, 어떤 고문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고환과 안구의 위치를 바꿔 줘야 할지, 코와 성기의 위치를 바꿔 줘야 할지, 한참을 고민 중이던 하지운이었다.

이렇게 시원하게 고민 해결이 될 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 그대는 산타클로스! 타고난 신분이 고결하여, 결코 거짓부렁을 할 수 없는 토머스 경이시여! 그대의 솔직함에 탄복했소! 나는 로저 드레이시 본인이 확실하오! 존귀한 그대는 의심치 마시오!”

“......”


토머스 놈도 아주 바보는 아닌지, 산타클로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뭔가 크게 말실수를 했다는 것은 알아챈 눈치였다.


“그런데, 정보 길드 소속의 졸개들아. 너희 요즘 살수도 키우냐? 가지가지 하는구나. 정보 장사만으로도 쏠쏠할 텐데. 탐욕이 과하구나.”


전사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소태라도 씹은 듯,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탐욕은 무슨! 이 왕국에서, 탐욕으로 너희 집안을 앞설 곳이 있을 성싶으냐?”


순간 하지운의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그냥 저 반역자 놈을 죽여서, 입막음을 하면 될 것 아니냐! 뭔 고민들을 하고 자빠졌냐? 어서 죽여!”


구구절절이 옳은 말만 하는 토머스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하지운이었다.


그 순간 토머스의 영특함에 놀란, 하지운의 등판에 잘 벼린 검 한 자루가 육박했다.

검을 날린 전사가 너무 쉽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어느새 뒤돌아선, 하지운이 다섯 손가락 끝으로 날아오는 검날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잡힌 검을 그대로 쭉 밀었다.

검을 잡고 있던 전사의 손가락이 뒤틀림과 동시에, 검의 손잡이가 전사의 오른쪽 눈구멍을 뚫고 들어갔다.


전사의 눈구멍에서 피가 솟구치기가 무섭게, 하지운이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운의 뒷목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고 있던, 또 다른 전사의 눈앞으로 난데없이 하지운의 뒤통수가 들이닥쳤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전사의 멱살을 틀어잡은 하지운이 거칠게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고는 왼손을 뻗어, 눈구멍에 검 손잡이를 박은 채로, 허물어지던 전사의 오른 어깨를 틀어잡았다.

그리고 결국 그 둘을 입맞춤 시켰다.


그와 동시에 좌측으로 몸을 틀면서, 오른팔을 힘차게 하늘로 뻗었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검의 폼멜을 오른손으로 움켜잡고, 레프트 훅을 눈앞에 보이는 몸뚱어리에 쑤셔 박았다.

갈비뼈와 간이 함께 으깨져 골고루 뒤섞였다.


어느새 낚아챈 검을 역수로 잡은 하지운이 쳐다도 보지 않고 뒤로 찔러 넣었다.

찌르기가 무섭게 잡아 뽑은 검을 좌우로 미친 듯이 휘둘러 댔다.


잠시 후, 하지운의 양손엔 피범벅이 된 검 두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서른네 구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다.


만면에 웃음을 띤 하지운이 고개를 들어, 유일한 생존자인 토머스 펀트니 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넋이 나간 채 우두커니 서 있던 토머스 경이 다짜고짜 자신의 애마에게 달려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지운이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을 대충 집어 던졌다.


놈이 안장에 앉자마자,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검이 놈의 왼쪽 허벅지를 뚫고 말의 옆구리에 박혔다.

갑작스런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 앞에, 어느새 우측 어깨 위로 검을 들어 올린, 하지운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잠시 후 피 분수가 솟구치고, 길쭉한 머리통이 바닥에 처박혔다.


“흐아아아아악!”


솔직함이 매력인 토머스 경이, 말의 몸뚱어리 아래에 오른 다리가 깔린 채로, 구슬픈 비명을 질러 댔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해도, 왼 다리에 꽂힌 검 때문에, 여의치가 않았다.


눈물범벅이 된 채로 절규하는 토머스 경의 머리맡으로, 하지운의 양발이 살며시 다가섰다.

친절한 하지운이 무릎을 굽혀, 토머스 경과 눈높이를 맞췄다.

용맹한 토머스 경이 입가에 떡칠이 되어 있던 침을 튀기며, 하지운에게 일갈했다.


“사, 살려 주시오! 나를 죽이면 펀트니 가문과 원수가 되는 것이오! 나를 살려 주면, 사촌 동생을 설득해, 그대의 거사를 도울 것이외다!”

“됐어. 필요 없어. 그리고 너 따위가 무슨 수로, 여우 같은 나이절을 설득해?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거야? 아니면 거짓말이 서툰 거야? 하긴 아까 보니까, 사람이 진실되긴 하더라.”

“이, 이런 미친놈아! 네놈이 진정으로 우리 가문과 척질 생각을 하는 거냐?”

“허, 진짜 웃겨서 미치겠네. 너희 가문 따위가 뭐가 무서워서, 내가 신경을 써야 하냐? 아니, 그리고 너 같은 거 하나 죽였다고, 나이절 그놈이 꿈쩍이나 할 것 같냐? 그놈이 얼마나 타산적인 놈인데, 네놈 복수 따위를 하겠다고, 나에게 맞선다고? 내가 그놈을 대신해서 힘껏 웃어 주마. 하하.”

“제, 제발 죽이지 마시오... 그대가 원하는 건 뭐든지 주겠소! 내 영지를 넘기라면, 다 넘겨드리리다! 뭘 원하시오? 말씀만 하시오!”

“네 영지를 내가 왜 받아? 그러면 내가 네 사촌 동생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꼴이 되잖아. 제정신이야? 그리고 네 재산은 내가 알아서 약탈할게. 넌 어차피 리스트에 있어. 얼른 죽여 버리고, 네놈 성도 내가 잘 털어먹을게. 그냥 내가 궁금한 게 있으니까, 대답이나 잘 해. 그러면 한칼에 고통 없이 목을 썰어 줄게.”

“이, 이 얼빠진 놈아! 어차피 죽는 마당에! 대답은 무슨 대답! 저, 절대 네놈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크흑. 웃기고 있네. 아주 용자 납셨어. 일단 너의 고운 손가락을 다 잘라서, 항문에 하나씩 밀어 넣어 줄게. 그거 열 개 다 박힌 채로,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 봐. 진정 뭐가 너 자신을 위한 선택인지를 말이야.”


다섯 번째 손가락이 밑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토머스는 울음을 터뜨리며, 굴복해 버렸다.


작가의말


 오늘 집청소를 하느라 많이 늦었습니다.

 항상 늦지만, 그래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주 중에 끝내서 다행입니다.

 12시가 되려면 삼십분이나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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