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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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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2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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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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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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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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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파이어 (2)

DUMMY

67화


“으으윽! 아하아흐억! 끄아아아악!”


누가 들으면 목소리 걸걸한 여자가 애라도 낳는 줄 알겠지만, 이건 엄연히 남자인, 하지운이 뜨거워서 질러 대는 비명 소리이다.


뭍에 오르자마자, 근처 흙바닥을 쇠말뚝으로 파헤쳐 구덩이를 만들었다.

마른 가지를 잔뜩 꺾어 와, 구덩이 속에 깔아 놓고 불을 지폈다.


분명 수납장 속에 토치가 있었는데, 찾아보니 없다.

아마 하지운이 제 몸뚱어리에 불을 붙이는 개또라이 같은 상상을 하자마자, 기겁한 승아가 잽싸게 치워 버린 듯했다.


하지운은 갑자기 드는 생각에 탄식을 하며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승아가 만들어 준 토치를 가지고 자해를 한다면, 그 애가 얼마나 충격을 받고 죄책감을 느낄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다가올 고통의 시간에 미리 쫄아 버린 나머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미뤄 버린 자신이었다.

부끄러움에 쥐구멍을 찾던 하지운에게 승아의 호통이 들이닥쳤다.


‘그딴 걸로 미안해하지 마! 내 눈앞에서 끔찍한 자해 행위를 하려는 마당에! 그렇게 미안하면, 저 장작들 다 갖다 버리고 잠이나 자! 조금만 지나면 해 뜰 시간이야. 너 한숨도 못 잤어.’

‘왜 자꾸 재우려고 해? 나 부끄러워...’

‘미친놈아... 이 상황에선 하나도 안 재밌어... 장난을 칠 때 쳐야지...’


재생 능력 때문에 죽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떠올려 본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더 해 봐도, 다른 기똥찬 묘안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실제로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살이 타들어 가기가 무섭게,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체력만 버텨 준다면 이박 삼일은 거뜬할 거 같았다.

문제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고통이었다.


돌솥비빔밥 먹다가, 밥그릇 한번 잘못 건드려도 며칠을 고생한다.

손가락에 화상 물집 하나만 생겨도, 통증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엄살이 더럽게 심했던 전생의 하지운의 경우, 진통제까지 처방받을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런 놈이 지금 말 그대로 불구덩이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구덩이 속에 들어가자마자, 삼 초도 못 버티고 도로 뛰쳐나오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승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창피해서 나갈 수가 없었다.

뗏목 위에서 개폼이란 개폼은 다 잡은 채로, 비장하기 짝이 없는 사나이의 굳은 결기를 보여 줬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조루증 환자처럼 몇 초 만에 총알같이 튀어나온다 해도, 승아의 조롱이 뒤따르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잘한 선택이라고, 꿈에 나타나 궁디팡팡을 해 줄 승아다.


문제는 자신이 승아의 이쁨을 받으면서, 떳떳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꿈속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당당하게 두 눈을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해 봤다.

결론은 도저히 못 보겠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 미친 자해 행위를 선택한 것도, 이 잔혹한 게임에서 최종 우승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다시 승아를 영원불멸의 존재로 되돌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운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승아와의 붕가붕가가 아니라, 그녀의 신속한 저승 복귀다.


하지운 자신의 소멸을 막기 위해, 승아가 스스로의 존재를 걸었다.

자신도 승아를 위해, 못 할 짓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욕망이 한가득했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크고 굳건한지 증명하고 싶었다.

어떤 엽기적이고 경악스러운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말이다.


그게 지금 개찌질이 소심남 하지운을 불구덩이 속에 끈질기게 붙잡아 놓고 있는 원동력이다.

그 상태로 한 시간을 더 버텼다.


중간에 몇 번이나 뛰쳐나가려 하였다.

하지만 전혀 의외의 인물이 자신의 빤스런을 원천 봉쇄 했다.

이 분이 이 상황에서 등장하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개새끼가! 내가 우스워? 그동안 눈도 못 마주치던 새끼가 어디서 기어올라! 내가 널 직접 소멸시키면, 규정 위반이니까 참고 있던 거야! 살려 주고 있으니까 뵈는 게 없어? 씨발!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 어차피 개막장 상황인데! 너 찢어발기고 나도 지운이랑 너 따라갈게! 로저 이 씨발새끼! 죽어라, 이 씨발놈아!’


하지운은 살이 녹아내리는 불구덩이 속에서, 온몸이 얼어붙는 신묘한 경험을 해 버렸다.

두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흡사 눈물만으로 주위의 불길을 제압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그는 이 세상으로 넘어온 첫날 강간왕을 제압하는 과정 중에, 로저 놈의 영혼의 찌꺼기도 같이 제압한 줄 알았다.

자신의 담대한 기백으로 놈을 꼼짝 못 하게 만든 줄 알고, 속으로 득의양양했었다.

승아도 자신의 박력 있는 모습에 한층 더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하지운이었다.


매력은 개뿔, 하지운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엄청난 자괴감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괴물들 앞에서 오줌을 싼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승에서 자신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자신이 다른 참가자들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제재가 너무 가혹하지 않냐는,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제재가 손톱만큼도 과한 것이 아니었다.

받을 만해서 받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썸녀가 자신이 겪어야 할 고난을 대신 해결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승아가 보기에, 하지운 자신의 정신력으로는, 로저 놈의 찌꺼기조차도 감당 못 할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첫날부터 승아 자신이 직접 눈을 벌겋게 뜨고 로저 놈을 억제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하지운의 거지 같은 농담과 장난을 받아 주면서, 울고 웃는 시간도 가지고 말이다.


이 정도면 여자 친구가 아니고 엄마다.

이제서야 하지운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홍복을 누리고 있었는지, 얼마나 호강에 겨웠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차라리 불에 타 죽는 것을 선택했다.

승아는 자신에게 할 만큼 했다.

이 이상 바라는 건 개새끼가 할 짓이다.

제 아빠를 닮아서 한없이 호구 같은 녀석이 죽기 전에, 여한이 없으라고 딱지까지 떼 주겠단다.

하지운의 생각에, 그냥 아다인 채로 소멸되는 것이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야!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너 왜 아직도 이러고 있어?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러지 마! 이러면 내가 널 위해 한 일들이 다 개헛짓이 되잖아! 씨발새끼야, 제발 당장 나와!’

‘아직... 아무것도 못 느꼈어... 이대로 못 나가... 이러고, 나가면... 어차피 네 얼굴 못 봐... 로저는... 없앴어?’

‘아, 아니... 그냥 구석에 박아 놨어...’

‘그 새끼도 많이 급했나 보다... 제 몸에 불질렀다고 개깜놀했나 보네... 너한테 덤비고...’

‘흐흑... 내가 아주 혼꾸녕을 내놨어... 그런데 이제 그만 나와 주면 안 돼? 내가 진짜 죽을 거 같아서 그래... 네 마음은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어... 이제 그만 나와도 괜찮아...’

‘많이 힘겨웠겠다... 그 와중에 내 등신짓 다 받아 주느라...’

‘그동안 매 순간이 즐거웠어! 좋으니까 한 거야!’

‘넌 내 엄마가 아니야... 내 썸... 여자 친구지... 너랑 동등해지는 건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지금은 너무 비참해! 절대 이 꼴로 숨어 사는 짓은 못 하겠어!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안 돼!’

‘아아아아악! 제발! 그만 나와! 네 체력이 더 이상 못 버텨!’

‘못 버티면, 그냥 죽는 거지!’

‘이이! 이기적인 새끼야! 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난 널 위해 모든 걸 포기했는데... 넌 그 알량한 자존심 하나 포기 못해? 날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하냐고!’

‘내가 단지 자존심 때문에 이러고 있어? 정말 내 마음이 하나도 안 느껴져?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나갈 거라고! 지금은 버틸 만해! 견딜 만하다고!’

‘뭐... 뭐가 견딜 만해... 재생 속도가 아... 아까 같지가 않아... 지운아...’

‘약속할게... 진짜 안 되겠으면 내 발로 나갈게... 그리고 그 후로는 널 행복하게 해 주는 것만 생각하고 살게... 정말이야... 정말... 약속할게...’


그러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승아의 울음소리, 비명 소리가 간간히 들리기는 했다.

그런데 달팽이관까지 타 버려서 그런지,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미안해... 승아야... 나 포기할게... 이렇게 병신같이 포기할 거... 괜히 너한테 험한 꼴만 보여 준 게 돼 버렸네... 그래도 앞으로 너한테 정말 잘할게... 그래서 내가 어떻게든 오늘 일 만회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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