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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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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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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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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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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신념을 가진 미친놈 (10)

DUMMY

126화


“끄아아아아악!”

“으어억! 아으흐윽!”


내성벽 위에서 외성 안마당을 내려다보는 뭇 용사들의 안색이, 임종을 앞둔 상늙은이의 그것처럼, 창백해져 갔다.

그들이 백인종이라는 걸 감안해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투명함이었다.

마치 미백 치료에 수천을 쓴 듯한 용사들이, 조선백자 같은 피부를 자랑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들의 생식기는 이미 새끼발가락만 하게 쪼그라들어 있는 상태다.

누군가 장난으로 그들의 하의를 동시에 싹 다 내려 버린다면, 오늘 밤을 넘기지 않고, 그들 모두 대들보에 목을 맬 것이다.

하지운이 살려 주고 간다고 해도, 자신들이 스스로 알아서 죽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 정도로 지금 그들의 사타구니 사정이 참담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소중한 부위들이 보여 주고 있는, 퍼포먼스들은 사실 그들 자신의 허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하가 놈에게 백 퍼센트의 과실이 인정되는 상황 그 자체였다.


지금 외성 안마당에선 소머리 좀비들이, 두 패로 나뉘어, 한창 운동회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첫 번째 종목은 단체 줄넘기인데, 줄은 외성을 지키던 용맹한 전사들의 육신을 이용해 만들었다.

급조해서 만들다 보니 외형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하늘 같은 술사님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일회용으로 써먹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었다.


영혼의 주인님께서 적들의 팔다리는 가루를 내어도 상관없으니, 죽이지만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래서 마음 놓고 포로들의 팔과 다리를 이어 묶었다.

로프를 이용해서 묶었다는 게 아니라, 사람의 팔뚝과 발목을 로프처럼 꺾어서 묶었다는 얘기다.

줄넘기 줄에서 귀곡성을 연상시키는 괴성이 난무하고 있는 이유이다.

성벽 위의 불세출의 용사들이 오줌 방울을 뚝뚝 떨구면서, 손을 덜덜 떨고 있는 이유 또한 매한가지다.


이미, 성문을 열고 돌진해서, 좀비들을 으깨어 놓자는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지 오래다.

하필이면 누군가 ‘저게 로저 놈의 유인책이면 어떡하지?’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다들 입 닥치고, 앞마당의 참사를 그저 감상만 하게 돼 버렸던 것이다.

원거리에서 좀비 놈들에게 창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줄넘기 줄을 피해서, 운동 중인 좀비들만을 명중시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만 해도 충분히 용사들을 돌아 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데없이 등 뒤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아성의 출입문에서, 좀비 한 무더기가 좌우로 비틀거리며 네발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용사들의 입에서 자지러질 듯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폭포 같은 눈물도 뒤따라 쏟아졌다.

무려 이백 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모두 그들의 조부모, 부모, 아내, 누이, 자식, 조카 그리고 손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외성에서 지랄을 하고 있는 소머리 시체들의 주인 놈이 한동안 어디서 뭔 짓거리를 하고 있었는지 이제서야 다들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성의 용사들은, 궁금증을 해소하게 된 대가로, 지나치게 끔찍한 일을 겪고 만 것이다.


아성의 출입문이 건물 삼 층에 뚫려 있는 관계로, 목재 계단이 출입문 앞에 설치돼 있다.

그 계단을, 처음 좀비가 되어서 적응이 안 되는, 이백삼십여 마리의 신생 좀비들이 뭉텅이로 엉켜서 굴러 내려갔다.

그 뒤를 뒷짐을 진 극악무도한 마왕 하가 놈이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따라 나왔다.


“안녕, 얘들아. 나 왔어. 많이 기다렸지? 늦어서 미안해. 너희 집구석들 찾아다니면서 헛걸음질 하느라고 이렇게 늦어 버렸어. 그래서 그 대가로 얘들 먼저 손봤어. 뭐 솔직히 말하면, 자꾸 뒷구녕으로 빼돌린 피붙이들 쫓아다니는 게 귀찮기도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가 우리 집 애들 쫓아가서 하나만 남기고 다 죽였잖아. 너희도 느껴 봐야지, 그 좆같은 심정을.”

“으으윽! 이 미친 마귀 놈아! 이 무슨 사악한 짓거리냐윽!”


울대를 염동력으로 후려 맞은, 이 성의 현 주인, 밸런 공이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흙바닥에 널브러졌다.

성문 위에서 부리나케 내려오자마자 내지른 호통에 대한 하지운의 답변이었다.


“너희들 우리 집에서 강간도 하고 살인도 하고 약탈도 하면서 다들 재미가 좋았지? 인생엔 굴곡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어떻게 항상 좋은 날만 있을 수 있겠어? 오늘 같은 날도 있어야지. 오늘도 즐겁게 받아들여. 너희가 자초한 거잖아. 웃어, 병신들아.”

“왜... 왜 이렇게까지 해? 우리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안녕, 귀여운 참가자야. 너야말로 네 진짜 가족 일도 아닌데, 질질 짜지 좀 마. 안 쪽팔려? 정신 차려. 얘들 너랑 생판 남이야.”

“아...”

“얘들아,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 거야. 귓구녕에 박아 놓은 거 있으면, 다 뽑아내고 내 얘기 잘 들어. 여기 있는 너희 집구석 연놈들 모두에게 내가 물어봤어. ‘너희 용사 놈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 졸개들한테 강간을 당할래? 아니면 그냥 내 손에 곱게 죽은 후, 언데드가 될래?’라고 말이야. 얘들이 내 앞에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제발 언데드로 만들어 달라고 울면서 빌었어. 난 얘들 소원을 들어 준 거야. 그리고 너희는 우리 집안 여자들에게 죽어서 언데드가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게 한 거야. 나랑 즐겁게 노는 일에 너희 부랄 한쪽만큼도 불만 갖지 마. 너희는 이렇게 당할 자격이 충분히 있어.”


하지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여 자루의 창이 날아왔다.

당연하게도 좀비들이 대신 맞아 주었다.

언데드가 사령술사를 보호하는 건 지극히 정체성에 부합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어, 어머니!! 끄아아아악!”

“안 돼애액! 다니엘라!”

“으아아악! 하지 마! 이 머저리들아!”

“푸하하하하!”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신들이 던진 창이, 비록 이미 죽은 시체라 해도, 직계 존비속의 몸뚱어리를 걸레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오 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제 놈들이 공격해 놓고 패닉에 빠져 발광하는 모습에, 감정을 숨기는 데 소질이 없는, 하가 놈이 호쾌한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우와! 너희들 정말 냉철한 용사들이구나! 부모 자식도 없는 거야? 얘들 아직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창질을 해 버리네!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 과연 냉혹한 전사들답다. 너희 너무 멋져! 반해 버릴 거 같아.”


밥맛이 뚝 떨어지는 칭찬을 남발 중인 하가 놈에게 세 명의 비장한 용사들이 결연한 기세로 다가섰다.

천하의 개잡놈 하지운도 차마 이 셋을 보고는 웃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한 명 한 명 꽉 끌어안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하지운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미친 연놈들... 그냥 소멸시켜 달라고 하지 그랬어. 그 부스러기만 남은 목록을 보고도, 이 난장판에 기어 들어올 생각을 한 거야? 너희 너무 용감하다...”


세 참가자들은 뭔가 억울하고 허탈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꼭 취업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죽어서까지 이런 울분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기에, 그들의 초췌한 얼굴이 이보다 더 처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너희는 너무 안쓰러워서, 왈칵 눈물이 날 거 같아. 아무것도 해 보지 말고, 그냥 얌전히 죽으면 안 돼? 내가 정말... 너희는 단 한 대라도 때릴 의욕이 안 생겨서 그래. 같은 지구인인데 특별 대우로 정말 편하게 죽여 줄게. 저기 구석에 가서, 얌전히 구경이나 해. 이따가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보내 줄게.”

“닥쳐! 그런 역겨운 표정으로 날 동정하지 마! 난 절대로 너 같은 악인에게, 아무것도 안 해 보고, 맥없이 굴복하진 않을 거야!”

“하아... 어쩌자고 이런 열혈 청년 새끼가 섞여 들어왔지... 좆같네...”


하지운의 좆같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기세가 꺾여 가던 주위의 두 남녀도, 어느새 마음을 고쳐먹고,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허이구... 내가 아무리 착하게 굴려고 해도, 병신들이 이렇게 호응을 안 하는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기껏 자비를 베풀려고 하는데! 왜들 그러는 거니? 이러고서는 나더러 마왕이라느니 악귀라느니... 씨발... 생각하면 할수록 좆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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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신념을 가진 미친놈 (12) 23.12.22 37 1 10쪽
128 신념을 가진 미친놈 (11) 23.12.20 33 1 9쪽
» 신념을 가진 미친놈 (10) 23.12.18 38 1 9쪽
126 신념을 가진 미친놈 (9) 23.12.16 36 1 9쪽
125 신념을 가진 미친놈 (8) 23.12.14 38 1 9쪽
124 신념을 가진 미친놈 (7) 23.12.11 35 1 9쪽
123 신념을 가진 미친놈 (6) 23.12.09 37 1 9쪽
122 신념을 가진 미친놈 (5) 23.12.07 36 1 9쪽
121 신념을 가진 미친놈 (4) 23.12.05 39 1 10쪽
120 신념을 가진 미친놈 (3) 23.12.03 39 1 9쪽
119 신념을 가진 미친놈 (2) 23.12.01 36 1 10쪽
118 신념을 가진 미친놈 (1) 23.11.30 46 2 11쪽
117 마왕의 길 (18) 23.11.28 44 1 10쪽
116 마왕의 길 (17) 23.11.25 41 1 10쪽
115 [수정] 마왕의 길 (16) 23.11.23 42 2 10쪽
114 마왕의 길 (15) 23.11.21 39 1 10쪽
113 마왕의 길 (14) 23.11.19 44 2 10쪽
112 마왕의 길 (13) 23.11.16 45 1 10쪽
111 마왕의 길 (12) 23.11.15 49 1 10쪽
110 마왕의 길 (11) 23.11.12 49 2 10쪽
109 마왕의 길 (10) 23.11.10 51 2 10쪽
108 마왕의 길 (9) 23.11.08 54 2 11쪽
107 마왕의 길 (8) 23.11.06 52 2 11쪽
106 마왕의 길 (7) 23.11.04 49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52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53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3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5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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